겸손 |
2010-10-12 00:00:00 |
조회: 219
2009년 몇몇 교단들이 내린몊
거짓된 정보에 의한 오판에 대한 답변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출애굽기 23:1~2)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양심을 가지고 진실만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예전에 백석 교단(구 합동정통)에 속해 있을 때, 직업적인 이단사냥꾼들과 갑자기 부흥한 우리 교회를 시기하고 음해하는 자들이 퍼트린 거짓말들에 의해 이단시비가 불거져 조사를 받았습니다. 첫 해 조사 때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그대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다음해 다시 조사를 했습니다. 이번에 한기총에 저의 책 판매를 금지시켜 달라고 요청한데 이어, 조사해 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이단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자기가 두 해 동안 편파적인 조사를 해놓고도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한 자가 꼭 이단으로 만들어달라니 그의 사탄적인 의도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을 그대로 놔두면 그는 제2의 T씨나 C씨 같은 흉악한 이단사냥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석이나 한장총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이런 자를 내쳐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가 백석의 이대위위원장으로 있을 때 두 해에 걸쳐 조사를 받았으나 이단성이 없다는 학자들의 보고에 따라 교단 총회장과 총무님이 저를 직접 만나 이단성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시인했습니다. 교단 내부 관계자들 역시 같은 증언을 제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 교단들은 이단사냥꾼 4인방 중의 하나인 고신 이대위 위원장이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도 안다. 그러나 자기 교단과 주장이 다르므로 집회참여주의를 시키려고 한다는 일방적이고 무례한 전화를 한 것 외에 지난해 저희 교회에 대해서 불의한 결정을 내린 교단들 중에 한 곳도 저에게 소환이나 질의서 심지어는 전화조차 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저 떠도는 거짓말과 악의적인 음해성 자료들을 근거로 저희 교회를 마음껏 난도질했습니다.
기독교신문과 통합 예영수 박사님의 최근 책에서도 지적한 것같이 그들은 자기가 검사고 자기가 판사였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얼마든지 이단으로 만들고 매도할 수 있었고, 이것이 실제로 그들이 저지른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서 오셔서 살 찢고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저와 9,000명의 저희 성도님들과 저와 뜻을 같이하는 90여개의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영적인 살인행위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성급함과 불의함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용서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기총 이대위 위원 여러분, 여러분은 단순히 누구를 이단으로 만들기 위해 그 자리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형제를 참소하는 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매도당한 교회와 목사들을 풀어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사극에서도 재판이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판결되는 것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아주 사악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기총이 악의적인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퍼트린 거짓 정보에 속아 압력을 가해오는 단체나 개인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제까지 충분히 조사한 결과 제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명을 벗겨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훗날 심판날 하나님 앞에서 큰 책망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아무리 한국 교회가 여러모로 정치적이 되었지만, 그래서 정치판과 비슷한 면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여러분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목사님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미루지 말고 이번 기회에 꼭 바른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판단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지난해 저희 교회에 대해 불의한 결정을 내린 교단들의 결정에 대하여 비교적 간명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는 부목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받아 몸이 아프고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제가 제출한 글들보다는 내용이 좀 떨어지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꼭 바른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백석(합동정통) 교단
1.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알미니안주의자임을 명확히 하였다.
답변: 그들은 조사 도중 존 웨슬리도 이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엉터리 발표를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상식에 속하는 것으로 이런 정통교단 간의 교리 차이가 이단 판별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웨슬리안 및 알미니안 신학을 믿는 성결교단이나 감리교단이 엄연히 정통교단인데, 칼빈주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이단 논쟁을 벌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곳은 한기총입니다. 초교파적인 한기총에서 감리교나 성결교단의 정통교리를 이단시비로 문제 삼아서는 더더욱 안 될 일입니다.
1.에 대한 첨부 자료
인간의 잣대로 ‘이단’이 만들어지고 있다 - 기독교신문 (2009년 11월 20일)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이견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감리교는 구원이 취소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장로교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은사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어떤 장로교회는 성령의 사역이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은사중단론) 순복음은 성령의 사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성경 해석을 함에 있어 정통 교리 안에서의 이견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연구는 이러한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각 교단간의 이견이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을 가지고 이단이네 위험하네 라고 판단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2. 한 번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
답변: 만약 이것이 이단적인 사상이라면 존 웨슬리와 D. L 무디도 이단이 됩니다. 그리고 존 비비어, 릭 조이너, 베니 힌, 마이크 비클, 조용기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 나겸일 목사님, 장경동 목사님, 김동호 목사님도 이단이 됩니다. 그분들 모두 저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정통교단인 감리교와 성결교도 이단이 됩니다. 그 외 순복음과 침례교 목사님들 심지어는 장로교 목사님들 중에도 적지 않은 수가 그렇게 믿고 있으므로, 그들도 이단이라는 말이 됩니다.
2. 주제에 대한 첨부 자료(1)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
제2장 교리 및 성례전
제16조 - 자유의지(自由意志) -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값없이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음으로 중생하여 선을 행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의지의 자유가 있으므로 1차의 은혜를 받은 자라도 타락할 수 있은즉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영원한 은총을 끝까지 향유하는 것이다(롬3:23, 요3:16, 딛2:14, 약4:8, 딤후 2:12 하, 눅22:31,32, 마24:13, 히3:14, 벧후1:10, 딤후1:14, 빌2:12).
출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 홈페이지, http://www.kehc.org/
2에 대한 첨부 자료(2)
예수교대한성결교회 헌장
제2장 신조
제 3 절 사 람
제 14 조 우리는,「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자유 의지를 남용하여 범죄하고 타락하였음을 믿는다...
자유 의지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에 자기 형상 곧, 그 속성대로 자유를 주어 고귀하게 창조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였으니, 이는 그 자유 의지를「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않고 남용한 까닭이다. (창 2 : 16, 17)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예수 그리스도」를 값없이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거듭나서「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 : 12, 요 3 : 16). 그러나 또 자유를 남용하여「성령」께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다시 타락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성령」께 순종하여야 한다. (히 3 : 15, 빌 2 : 12)
출처: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홈페이지
http://www.sungkyul.org/sungkyul
3. 구원론에 있어서 십자가에 의한 의를 부정하고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는다. (행위구원론)
답변: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행위에 의한 구원’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왜 ‘행위’하면 율법의 행위만 생각을 하지요? 이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따르는 행함’입니다. 즉 ‘복음적인 순종’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열매이며, 이것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참된 믿음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저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바로 믿음에 따르는 행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로 저를 공격하는 것은 억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율법의 행위”와 조나단 에드워드와 존 웨슬리와 찰스 피니를 위시해서 청교도 신학자들이 그토록 강조하고 주장한 “복음적인 순종”(참된 회개와 믿음에 따르는 행함)의 차이는 구별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단 한 번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참된 회개’와 ‘믿음’을 주장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와 믿음에 당연히 따라야 하는 행함을 강조했을 뿐입니다.
그 증거로 제 책에서 제가 믿음과 행함 그리고 구원과의 관계를 설명한 몇 부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를 읽어보시고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므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자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3에 대한 첨부 자료(1)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 287-289p에 나오는 내용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무명의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쓰고 그 책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책은 구원론을 재조명하고 성경대로 돌려놓으려는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진리에 눈을 뜨고 그리고 회개하고 변화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동안 잘못 가르침 받은 것이 쌓인 결과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대구 신은교회 수련회 때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양약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째,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구원의 공로는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전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렇다고 전 인류가 천국에 갑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믿는 사람만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지만 그 구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구원의 수단은 회개와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어도 그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막 1:15).
셋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참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공로를 의지하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위조지폐는 가치가 없는 것처럼 가짜 회개와 믿음 역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회개이고 믿음입니까?
가짜 회개는 죄를 자백만 하는 것이요, 진정한 회개는 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겔 18:30-32). 가짜 믿음은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요, 진짜 믿음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고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약 2:14). 그러므로 저는 이런 회개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하고 주장합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이 저의 가르침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에다가 행함을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상 세 가지를 여러분이 꼭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저의 가르침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지극히 성경적인 메시지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
3에 대한 첨부 자료(2)
저의 책 『주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율법이 폐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분명히 성경은 율법이 폐해졌다고 말씀합니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또한 성경은 율법이 폐해지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마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런 말이 가능한 이유는 율법이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는 의식법, 민법, 도덕법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의식법은 제사나 절기, 음식에 관한 규례들입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님께 대한 모형이며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으므로 폐해졌습니다. 민법은 각 나라의 법을 통해 계승되고 발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에 드러나 있는 도덕법은 영원히 폐해지지 않습니다(마 5:17-48).
어떤 분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분명히 바울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롬 3:20). 그런 의미에서라면 도덕법 역시 폐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롬 10:4).
이것은 진리지만 그러나 진리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여기까지만 압니다. 즉 하나만 알고 둘은 모릅니다. 그래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소경된 인도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분명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믿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무 율법으로 밀어 넣지 않으며 십계명에 묘사된 도덕법을 지키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율법주의 못지않게 무율법주의 역시 이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구원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다음과 같이 쓴 것입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라고 묻습니다. 왜 이렇게 질문합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는 부정되었고 율법이 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어떻게 율법을 폐하지 않고 도리어 굳게 세울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믿음은 곧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곳에서 또 다시 바울은 우리가 육신 즉 육체의 소욕을 좇지 않고 영 즉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는 성령의 인도를 좇아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면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좇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이때 “율법의 요구” 즉 의와 거룩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는 율법(도덕법)을 지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을 단순히 행위로 지킬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지킵니다.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참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
3에 대한 첨부 자료(3)
존 스토트와 로이드 존즈 목사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에 대한 해석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구절은 사활적으로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즈는 이 구절을 강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그들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찰해야 할 가장 중대한 점들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성결관과 성화관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관은 어떠합니까? 우리 주님은 여기서 기독교인의 의, 곧 가장 작은 기독교인의 의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을 주님의 분석에 비추어서 검토해야 하겠습니다.”1)
우리는 바리새인들에 관해서 아주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바리새인들은 행동으로나마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에 나오는 그들의 고백에도 나타나고, 대접의 겉만 깨끗하게 한다는 예수님의 지적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행동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일례로, 그래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 것입니다.
마 5:27-30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것은 성경적인 명백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근거해서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하며,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설교하면 대번에 행위로 구원받는 것을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라고 공격합니다. 실제로 저는 신문 지상을 통해서까지 이런 공격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그런 억측으로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두 가지로 공격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만 천국에 간다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을 주장하는 이단이다.”
그러나 왜 ‘행위’하면 율법의 행위만 생각을 하지요? 이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따르는 행함입니다. 즉 ‘복음적인 순종’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열매이며, 이것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참된 믿음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저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바로 믿음에 따르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로 저를 공격하는 것은 억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했다(롬 3:20). 누가 과연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있겠는가? 변 목사가 말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결국 율법(도덕법)을 지키는 것인데 과연 율법을 다 지키고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천국에 갈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것 역시 율법의 행위와 믿음에 따르는 행함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한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율법의 모든 계명을 항상 완벽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참 신자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게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이것과는 종류가 다른 것입니다. 참 신자가 가지고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다름 아닌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며, 믿음에 따르는 행함입니다. 그런데 회개는 성화가 아니며, 믿음 역시 성화나 더욱이 완전 성화가 아닙니다. 회개란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며, 믿음은 예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에는 반드시 마음과 삶의 변화가 따르지만 율법의 행위의 경우처럼 항상 율법의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화이며 성화 중에서도 완전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율법의 행위와 같은 수준으로 율법을 항상 완벽하게 지켜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불완전한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갑니까?” 어떻게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냐고요? 간단합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회개나 믿음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덧입혀지는 의! 바로 그것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의를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만 덧입혀지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율법의 행위와 동의어가 아니라 바로 회개의 참됨을 보여주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 그리고 믿음의 참됨을 입증해주는 믿음에 따르는 행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시에 그 의가 율법의 행위처럼 완벽한 것이 아니더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이해가 되시지요.
한편, 저는 전에 극동방송을 통해 설교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는 설교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아직도 저를 오해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인 존 스토트의 글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진정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율법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 회중에게 윤리적 가르침을 전혀 전하지 않는 목사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사도들로부터 빗나가 있는가! '율법주의'란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잘못된 시도이다. '바리새주의'는 외형적이고 사소한 종교적 의무에 몰두하는 것이다. 복음에 광채를 더하는 도덕적 행위의 기준들을 가르치는 것은 율법주의도 바리새주의도 아니고 명백한 사도적 기독교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의 의가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마 5:20), 이는 그리스도인의 의는 율법이 함축하는 모든 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율법의 영역이 실제 행위를 넘어서 말에까지 그리고 말을 넘어서 마음의 생각과 동기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바리새인들의 의는 인간의 전통에 외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는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정신과 마음으로 내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2)
이 글이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지는 법적인 의가 아니라 율법을 행위로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3에 대한 첨부 자료(4)
성결대학교 교수셨던 강금성 선배님이 저의 구원관에 대하여 예성 홈페이지에 직접 올리신 글
강금성 목사입니다.
‘교회와 신앙’은 변 승우 목사의 구원론과 성경관에 문제가 있고, 신비주의를 조장하고 있으므로 이단성이 있음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구원론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변 목사의 구원관
교회와 신앙이 발표한 변 목사의 구원론을 유심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구원파의 구원론이
| 다음글 | “합동정통 교단의 신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계시관, 성경관, 구원관, 교회관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 겸손 | 2010-10-19 00:00:00 |
|---|---|---|---|
| 이전글 | 이단사냥꾼의 전략 - 이단 날조의 수순 | 예세 | 2010-10-03 23:3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