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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인 이단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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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사냥꾼들이여, 은사중단론이라는 구시대적인 잣대는 이제 버려라!

예세 |

2008-01-25 00:00:00 |

조회: 112

  고전 13:8-10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곡해함으로써 성경의 완성과 더불어 예언을 비롯한 성령의 은사들이 중단되었다는 그릇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들이 성경의 완성과 함께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기는커녕 도리어 성령의 은사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을 보여줍니다. 12절까지 문맥에 주의하여 성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바울은 예언과 방언들과 지식이 그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이 그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성경이 완성된 때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때는 언제일까요?

  고린도전서 13:8-12절을 통해서 우리는 그때가

  ① “장성한 사람이 될 때(완전함에 이를 때)”,

  ②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③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하게 알 때”(10, 12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성경이 완성된 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전한 것'(10절)이 성경의 완성을 언급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쓰여졌을 때, 교회는 완전한 성경을 가졌고, 더 이상 기적적인 성령의 은사들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그에 반대하는 확고한 논의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것을 소개해드리면,   

 

  첫째로, 인접한 문맥의 어디에서도 바울은 성경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로,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뵙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완전히 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12절에 나오는 표현은 교회나 성경의 완성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할 경우에만 사용 가능한 표현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12절)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주께서 아시는 것만큼 내가 온전히 알리라”(12절)는 말 역시 주님의 다시 오실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들이 주님처럼 전지해질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보나 오해 없이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이 올 때” 즉 예언을 위시해서 여러 가지 은사들이 끝나는 때는 성경의 완성의 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흔히 은사가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 구절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들이 계속 작동할 것이며 지속될 것임을 오히려 입증해주는 구절인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7)라고 말했을 때 이것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령의 은사들이 계속 존재할 것임을 암시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이후로 성령의 이적적인 은사들이 중단되었다’고 가르치는 가장 대표적인 신학교는 미국에 있는 달라스신학대학입니다. 그런데 달라스신학대학의 구약학 조교수로 있었던 잭 디어는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 “놀라운 성령의 능력”, “놀라운 예언의 은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들은 그가 몸담고 있었던 신학교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잭 디어도 그 학교의 다른 교수들처럼 성령의 은사가 지금은 사라졌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적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경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연구해본 결과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그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앞에서 말한 책들을 썼습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날 잭 디어 교수가 체험한 것과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는 사람의 수가 놀랍도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수가 많다 못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정사실화 되자 마지못해 그것을 인정하기는 하나 거기에 적극 가담하지 않는 방관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예언이 현재도 존재함을 인정하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앵무새처럼 “말씀 말씀 말씀”을 되풀이합니다.

 

  물론 말씀을 강조하는 것은 백 번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알아야 하고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예언을 멸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했고, 또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특별히”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잊지 마십시오. 예언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언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을 터부시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변승우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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