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
2008-01-23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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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젊은 시절, 텍사스 북부에서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을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약 45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큰 도시에서 한 목사가 문제가 생겨서 그의 교단으로부터 해임을 받았습니다.
후에 우리 교회에서 지방연회가 열리면서 한 지방감독이 아침 예배 설교에서 그 사건을 언급하였습니다. 비록 그는 그 목사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가 누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그 목사를 정죄하고, 말하자면 그를 심하게 비난하는 듯한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 아침 예배에 참석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그것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해긴 목사님, 목사님은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목사가 다른 목사에 대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나는 그와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나서 한두 주일 후에, 내 아내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방문하러 오셨습니다. 그들은 40마일 쯤 떨어진 시골 농장에 사셨습니다. 나의 아내와 두 아이들이 주일 저녁 예배 후에 그들과 같이 처갓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일을 마친 후 운전을 해서 나중에 그곳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아내와 아이들은 없었고 나는 목사관에 혼자 있었습니다.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텔레비전이 없었습니다.)
목사관은 낡은 집으로 집안에 전기가 없을 때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기선을 넣었을 때 그들은 전기 줄을 방 중간에 달아놓고 그냥 불을 끄고, 켜도록 해놓았습니다. 내가 잠을 자려고 했을 때 나는 손을 내밀어서 불을 끄고 침대 머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갑자기 온 방이 불빛으로 환해졌습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정오에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행 9:3, 22:6). 바로 그와 같이 밝은 빛이었습니다. 온 방이 전기를 켜 놓았을 때보다 더 밝았습니다. 나는 모든 가구들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밝은 빛 가운데서 나는 이런 말들을 들었습니다.
“네가 누구관대 다른 사람의 종을 정죄하느냐?”
나는 이것이 주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의 종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곧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그 문제의 목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나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네가 누구라고 다른 사람의 종을 정죄하느냐?”
나는 되풀이하여 대답했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의 종을 결코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인데 다른 사람의 종을 정죄하느냐?”
나는 세 번째 대답했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의 종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주님은 내가 그 목사에 대하여 말한 것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육신이 주관하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탓을 여인에게 돌리려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안 먹혀들자 고는 "당신이 주신 이 여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육신은 항상 다른 사람을 탓하고 싶어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나는 그냥 지방감독이 말한 것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입니다."
주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것을 되풀이했을 때 그것은 네가 말한 것과 똑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네가 누구인데 다른 사람의 종을 정죄하는 것이냐?”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주님이 내가 올라 서있던 발판을 쳐서 없애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그 목사가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잘못을 했지요?”
주님은 그가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내게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가 누구의 종이냐, 나의 종이냐 혹은 너의 종이냐?”
나는 "주님 만일 그가 누구의 종이라면 그는 당신의 종입니다. 그는 분명히 나의 종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만일 그가 나의 종이라면 내가 그를 일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주님은 그 일을 행하였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일으켜 다시 서게 하셨고 그 목사는 그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과거에 실수한 적도 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데 주님의 종을 비난하겠습니까! 때때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우리가 아프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이와 비슷한 또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나의 아내와 나는 텍사스 동부의 순복음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집회를 끝내고 우리 교단에서 개최하는 총회에 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 그 지방에 사는 한 목사님이 문제가 생겨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그 사람은 그 목사가 한 일을 나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아내와 나는 집회를 마치고 총회로 갔습니다.
보통 나는 주님이 주신 건강 가운데 삽니다. : 나는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총회에서 나는 육체적으로 정상적이 아니었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보통 나는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들곤 했습니다.
나는 계속 올바른 고백을 했고 치유를 받은 것을 믿었지만 계속 육체적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총회가 시작된 지 세 번째 밤에도 나는 계속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주님, 만일 내가 내일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회의에 갈 수 없습니다. 나의 몸이 견디지를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릴리안 비 요만박사가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여자는 의사로서 약물 중독에 걸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병이 들었고 죽음의 문 앞까지 갔었지만 그녀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죽음의 병상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 후 그녀는 남은 여생을 신유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서 보냈습니다.
요만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기도하고도 결과를 받지 못하면 나는 변화하기를 시작합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만일 응답을 받는 데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만 박사가 한 이 말을 읽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모든 성경적 옳은 고백을 하고 있었고 모든 바른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상태는 개선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나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내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당신과 나의 믿음이 아직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무개 목사에 대하여"라고 하면서 주님은 그 목사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주님, 내가 말한 것은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뿐입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너는 그가 어떤 압박감 밑에 있었는지 아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니요."
"너는 그가 어떤 상황에 둘러싸여 있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네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너는 그가 한 것만큼도 못했을 수도 있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제발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내가 회개합니다."
내가 회개하자마자 나는 즉각적으로 건강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내가 치유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 나는 즉각적으로 온전하여진 것입니다! 나는 침대에 들어가 며칠 만에 처음으로 잘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환경과 어떤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 오직 주님만이 그것을 아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내가 주의 종들을 비난하는 일에 입을 다무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자신이 그와 같은 환경에 있었더라면 그가 한 만큼도 못할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한다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도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 보셨습니까? 그 목사가 비서하고 놀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교회를 정말로 축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한 12년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지금 그런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관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회개했고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잡았습니다. 그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서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그것은 망각의 깊은 바다에 던져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에 대해서 잊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려 한다면 당신도 그것에 대해 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그런 이야기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성경은 또“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0:12)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죄를 들추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나는 거의 12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나는 어떤 교회 교인들에 대해 많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아내에게도 혹은 다른 아무에게도 그것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그러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잘못을 했단 말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그런 사람들이 제 정신이 돌아오면 그들 자신이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주님,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곧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그런 말을 해버린다면 여러 사람들이 벌써 그것을 알 것이고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볼 때 그들은 그가 한일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그들에게 그것을 늘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많은 죄를 덮는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신간 "사랑:승리하는 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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