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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믿음교회가 계시를 성경보다 높인다고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벌 받습니다.

겸손 |

2008-02-13 00:00:00 |

조회: 75

  큰믿음교회가 계시를 성경보다 높인다고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벌 받습니다.

 

 

  어떤 분들 특히 이단사냥꾼들이 저희 교회를 보고 계시를 성경 위에 올려놓는다는 모함을 하곤 합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요. 저희는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성경은 모두 그냥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오하며 절대 진리이니까요. 그러나 예언이나 입신 간증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분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얼마든지 마귀가 속일 수 있는 것이며 위험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카페의 입신간증란에 공지로 올려놓은 글과 저의 책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공격하는지 모르겠네요. 읽어보세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말은 하지도 말고 그리고 그런 말에 부화뇌동하지도 마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먼저, 큰믿음교회 천국 지옥 간증 게시판 공지에 오래 전부터 올려져 있는 “큰믿음교회 천국 지옥 간증을 읽기 전에 꼭 읽어보세요.”라는 글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입신이 터부시 되고 있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입신 간증들을 분별없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입신을 분별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당연히 입신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오만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입신을 다음 세 가지 부류로 구분합니다.

 

  1. 어떤 입신들은 정말 믿을만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검증된 사역의 열매, 그리고 확인된 계시의 적확성으로 인해 의문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입신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이 쓴 “영계의 묵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주옥같은 간증들, 나침반출판사에서 이례적으로 펴낸 리차드 이비 박사의 “하늘나라 기행문”, 마빈 포드 박사가 쓴 “죽음 저 편”(이 책은 역자는 문제가 있지만 책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박영문 장로님의 “두고 보리라!” 그리고 하이디 베이커나 샨 볼츠의 책들에 나오는 입신 간증이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2. 어떤 입신 간증들은 정말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믿거나 인정하지 않는 많은 입신 간증과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될 수 있으므로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3. 어떤 입신 간증들은 분별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종류의 간증이 가장 많은데 특별히 틀리지도 않지만 또 꼭 맞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내용의 간증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간증들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참고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간증에 의해서 실제로 제 생각이나 견해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이런 간증들은 단순히 제가 알고 있는 성경진리나 이미 확인된 영적 원리들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서 예화의 수준으로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게시판에 소개하는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 입신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세 번째 범주에 속하는 간증들임을 밝혀둡니다.

 

  어떤 분들은 이 글을 읽고 “그러면 그런 범주의 간증을 왜 소개하느냐?” 라고 말할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저도 이 게시판을 없애버릴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해야 하며 둘 다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입신이라는 체험이나 현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앞으로 이런 체험과 현상들이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릭 조이너, 하이디 베이커, 타드 벤트리, 샨 볼츠 등이 증거한 것처럼 그것이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중의 일부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우리 교회의 입신의 수준은 병아리요, 걸음마 수준이지만 이것을 배격하지 않고 품에 안고 발전시키고 키워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덛붙여서 이런 간증들을 통해 마음에 깊은 감동과 함께 강렬한 도전을 받고 변화되는 분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을 없애는 대신 ‘이것이 옳다, 이것을 믿어라’ 라고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배움의 자세를 가지고 이 게시판을 운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하시고 흠을 찾으려는 뾰족한 눈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관대하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으로, 저의 책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에 쓰여져 있는 부분 중 일부를 증거로 제시합니다.

   

  < 3. 예언을 무분별하게 모두 받아들이지 말고 잘 분별하십시오.

 

  예언을 분별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물론입니다. 여기 두 증인이 있습니다.

 

  고전 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살전 5:19-21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사람들은 만약 어떤 사람이 받은 은사가 성령의 은사라면 그 사람이 예언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분이 많겠지만 어떤 사람이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그가 하는 모든 설교가 다 옳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예언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분이었던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하나님 하시는 것인데 맞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영감 아래에서 사람들이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완전합니다. 성령의 은사들 그 자체로는 완전하지만 그것이 불완전한 그릇들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들은 완전한 상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과 방언통역이 말씀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한 선지자로 사용하고 계시는 릭 조이너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언이 오류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예언은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거룩하게 여겨야 하지만, 또한 예언은 인간을 통하여 오는 것이므로 오류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날 살아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실수할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누가 그것을 말하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예언을 판단해야 합니다. 오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성숙한 선지자로부터 나온 예언이라 할지라도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고전 14:29). 예언과 그 예언을 한 선지자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일이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닙니다(살전 5:20-21).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을 분별해야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한 때는 부자였던 사람들이 예언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서 돈을 어디에다 투자해야 할지를 결정했다가 파산한 경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에 참석했던 그 사람은 예언자에게 예언을 받기 전에는 결코 사업상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해긴 목사님은 “당신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들의 말에 계속 귀 기울인다면 당신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부자였던 그는 결국 모든 소유와 집까지 날려버렸습니다. 해긴 목사님은 이런 경우를 아주 여러 번 보았다고 합니다.

  저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즉 예언을 분별하지 않고 무턱대고 받아들였다가 사업상의 큰 손해를 본 경우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언의 은사를 존중하되 예언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언은 오히려 큰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언을 분별없이 받아들이고 그 예언이 틀렸다고 예언하는 사람에게 책임과 화살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분명히 예언을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언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1) 예언의 내용이 성경적인가?

  우리는 먼저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만일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는 영안이 열리고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또 성도들이 계속해서 영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처음 영안이 열릴 때 제가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은 성경을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상이나 계시나 입신, 체험의 거의 대부분은 성경만 바로 알아도 분별이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것은 성경을 아는 것만으로는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성경만 많이 알아도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예언이나 그 밖의 계시의 은사들이 임하고 그 위에 영분별의 은사가 임하면 성경을 잘 몰라도 그 은사로 안전하게 분별할 수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과 영분별의 은사는 각기 그 영역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영분별의 은사가 성경의 무지로 인한 무분별을 대신해주거나 보충해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분별의 은사를 받아도 성경을 모르면 분별하지 못하고 속는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열리면 열릴수록 더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성경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성경이 예언을 분별하는데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지 한 가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과거 시한부종말론자들이 환상과 계시와 각종 입신 간증에 입각하여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못 박고 흰옷을 입고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시한부종말론이 교묘하게 머리를 들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날과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 해 정도는 알 수 있다는 유사 시한부종말론을 펼칩니다. 그러나 그 해를 아는 것과 그 날을 아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둘 다 똑같이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저는 일부 사람들이 왜 그토록 예수님의 재림의 년도나 시기에 관심을 갖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재림의 시기가 아니라 재림 준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계시를 인정하되 계시가 아니라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안전합니다.  

 

  (2) 예언하는 사람이 권위 아래 거하는가?

  그래엄 쿡은 “이렇게 예언하라”라는 책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약의 예언은 구약의 예언과는 다르게 행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옛 언약 아래서 선지자들은 부패하고 반항적인 국가에 대해 홀로 의의 목소리를 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언 사역자 혹은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 일원으로서 지역 교회의 예언사역자들은 은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지역 교회의 예언 사역자들에게 ‘그들은 지역 교회에 적(등록)을 두고 있는가?’ ‘그들은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그들이 다른 지역에서 사역할 때 그들을 보호해주고 변호해주는 것이 있는가?’ ‘만일 잘못될 경우 어떤 시정책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해 봐야 한다...

  신약에 보면 선지자는 독립적인 슈퍼스타가 아니라 우주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섬기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언을 분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할 아주 중요한 요소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그 예언자가 겸손히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아래 순복하므로 교회에서 인정받는 자이며 목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종교적인 교회에서 예언하는 사람이 목회자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같이 성령에 대해 열려있고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는 교회에서 목회자의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전에 제가 “무당의 영” 에 대해서 설교할 때 인용한바 있습니다만 킹슬리 플레처 박사는 “지역교회에서 적절히 사역하는 참된 예언자”라는 주제의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부름 받은 예언자들은 소속한 교회를 책임지는 목회자의 권위에 순복한다. 이런 예언자들은 목회 권위의 원리를 올바로 인식하고, 항상 교회의 '의사 결정권자’(set man)에게 권위를 양보한다. 5대 사역자 가운데 하나로서, 예언자들은 교회 직분과 감당하는 역할에 대해 전적이고 깊은 이해를 나타낸다. 진정한 예언자는 절대로 목회자의 권위를 침범하거나 조종하거나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공공연히 양떼들에게 목자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참된 예언자들은 예언 사역이 교회에서 이미 가르친 진리를 보충하거나 지지하는 것이지, 결코 그것을 대체하거나 더구나 상충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참된 예언자들은 사역하는 동안에 교회 비전의 여러 양상들을 참고하면서 교회의 비전에 열심히 협력하려고 할 것이다. 목회자에 대한 전적인 지지와 사도에 대한 순복(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은 그가 참된 예언자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증거한다.”

 

  또한, 탐 해몬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는 주제의 글에서 예언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예언 사역자는 끊임없이 교만의 영에 맞서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언자는 지역 교회에서 권위의 자리를 빼앗아 신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할 것이다.

  비난과 반항을 피하라. 예언이나 분별의 말씀을 비난의 영이나 반항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목회자의 얼굴에 들이밀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지도자를 교정하는 말씀은 공개적으로 제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인적인 자리에서 기도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자세로 겸손의 영이 충만한 가운데 제시해야 한다. 몹시 많은 독불장군들, 곧 그리스도의 몸에서 마치 보안관이나 되는 양 행동하는 자존심 강한 예언자들은 목회자들의 입에 쓴맛을 남겼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개인적인 욕심을 품고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하고 말하는 예언자에게 목회자들이 커다란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말하는 5대 사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예언자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양육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예언자들은 독립적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게 아니라 협력하여 사역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언자들이여, 충성스럽고 순종적이 되라! 예언자들이여, 지역 교회에서 머리의 위치에 서 있지 않은 사람은, 마땅히 그 교회의 지도자(목회자)가 성공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은 충성심과 헌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언자의 위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은사를 사용하여 마음껏 지지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예언자의 사역에서 이런 사실을 분명히 목격할 때, 목회자는 대개 예언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언자의 부르심이 성취되도록 공포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사용하여 다윗에게 했던 것처럼, 예언자에게 험난한 앞길을 걷게 하실 것이다. 그래야만 예언자가 다윗처럼 자기 마음을 올바로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예언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권위 아래 순복하고 영적 질서 안에 거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역자로 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사역을 통해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사역자는 예언의 은사나 능력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권위에 순복하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예언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끔씩 보면 교회에서 사역자로 임명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의 예언은 받지도 말고 신뢰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적어도 저희 교회에서는 그렇게 예언하는 사람들이 바른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설사 그 사람의 예언이 맞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과 많은 말을 하고 영향을 받으면 예언을 통한 유익보다 7배나 되는 손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즉 그 사람 속에 역사하고 있는 “반역의 영”에 전염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목회자의 권위에 순복하며 질서 안에 거하는가? 이것은 예언을 분별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시금석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예언자와 예언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3) 예언하는 자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신디 제이콥스는 예언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면서 “예언하는 사람의 삶이 어떠한가? 이것은 결정적으로 고려해야 될 문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분별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영분별은 진짜 영(그 사람의 영) 분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분별하면서 예언 자체만 분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언을 제대로 분별하려면 예언 자체보다도 예언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마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러므로 예언자나 예언을 분별함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예언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맺는 열매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예언 사역자도 미성숙했을 경우 틀릴 수 있고 반대로 예언이 정확해도 발람처럼 거짓 선지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세가 경고했던 것처럼 바른 예언을 통해 우리를 그릇된 곳으로 인도합니다(신 13:1-3). 그리고 예언이 틀리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의 예언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신뢰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언은 잘 하지만 아주 교만합니다. 그리고 비판적이고 무례합니다. 어떤 사람은 탐욕스럽고 은근히 돈을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말이 많고 너무 넉살 좋고 시끄럽고 수다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사람이 가볍고 경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심령이 안정되어 있지 않고 불안정하며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의 예언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들을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4) 예언의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가?

  오늘날의 문제점은 예언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확한 경우가 별로 혹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한 번은 제가 성령님께 그 이유를 여쭤본 적이 있는데 성령님 두 가지 이유를 저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구약의 선지자들은 거룩했다. 그러나 요즘은 예언의 은사는 받았으나 거룩하지 않은 자가 너무 많다.

 

  둘째, 구약의 선지자들은 요셉과 다니엘의 고백에 잘 나타나듯이 겸손했다. 그런데 요즘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적잖은 사람들이 너무 교만하다. 사탄이 교만 때문에 자기가 감히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믿은 것(이것은 가장 큰 미혹이었다.)처럼 교만은 미혹을 불러들인다. 그런데 예언의 은사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은사 때문에 교만해져서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대신 은사를 의지하여 사역한다. 이것이 예언이 부정확한 이유이다.

 

  신 18:20-22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이 말씀에 보면 참된 예언의 표징이 될 수 있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증험’과 ‘성취함’이 그것입니다. 증험은 현재적인 것이고 성취함은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고전 14:23-25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바울은 예언에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게 하므로” 불신자까지도 엎드리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신자이겠습니까? 마땅히 예언에는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증험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저희 교회의 인터넷 카페에 보면 밥 존스의 예언적인 경험과 글을 소개하는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릭 조이너는 “횃불과 검”이라는 책에서 밥 존스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밥을 만났을 때 그가 나에 대해 꿈을 꾼 내용을 말하여 주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처한 상황을 나타내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한 해답도 주었다. 꿈 내용 중에는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의 가족상황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다 사실이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밥은 말씀을 전해주던가 꿈의 내용을 말해주었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고 자세했으며 그 예언이 놀라운 방법으로 현실화 되었다.”

 

  릭 조이너는 증험과 관련하여 또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종종 내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예언의 말씀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예언은 대부분은 내가 하고 있는 전 사역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나로 하여금 엄청난 시간과 정력을 요하는 선교나 사역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들이다. 하나님이 보여주시지 않아서 아무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의 은밀한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이 없다면 나는 보통 낯선 사람들에게 받은 지시하는 내용을 담은 예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얼마 전 3년 전에 변애경 전도사로부터 “앞으로 책을 쓰게 될 것이고 사역의 많은 길들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받았던 사람이 찾아와서 실제로 자기가 쓴 책 2권을 들고 와 예언대로 이렇게 책을 쓰게 되었고 그리고 사역의 길들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 예언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이라면 단순히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는데서 멈추지 말고 실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언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예언이 틀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으므로 예언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런 예언이나 예언자를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5) 그 예언이 소망을 주고 있는가?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신디 제이콥스는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점검해 보아야 할 또 다른 영역은 예언의 말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예언을 하는 사람이 개발해야 하는 가장 필요한 성품 중 한 가지가 인자함이다... 그 사람은 판단적이거나 비판적인가?... 성령으로부터 오는 예언은 놀라게 하거나, 가혹하거나, 유죄판결하거나, 혹은 비판적인 경우가 거의 없다. 주님은 종종 우리를 교정하여 회개하게 하시기 위해 예언을 사용하시며, 어떤 때에는 우리 삶에서 잘못된 특정한 부분을 지적해내시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판결을 내리시지 않는다. 그 대신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변화시켜 주기 위해 당신께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저는 신학생 때 잘못된 사람에게 거짓 예언을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게 앞으로 이런 시련을 세 번 더 통과해야 한다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저를 아주 낙담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과 명백히 반대됩니다. 예를 들어 요셉의 미래에 대한 꿈의 경우, 그가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것만 나오지 그것을 위해 형제에게 팔려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혀야 한다는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희망을 주어 어려움을 통과하는 순간에도 미래를 바라보고 인내하고 감당케 하시기 위해 좋은 내용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절망과 좌절감을 심어주는 부정적인 예언은 대부분 하나님께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예언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긍정적인 것입니다. 물론 예언의 초기에는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바르고 적절하지만 부정적인 면을 가진 예언도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 사역(렘 1:5-10)은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부정적인 면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예언 사역은 또한 “건설하며 심는 것”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긍정적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어떤 것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파괴하고, 뿌리를 뽑고, 끌어내리고 파멸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기 때문에 때로 우리는 부정적인 것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세우고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째 부분은 부정적이지만 마지막 부분은 긍정적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편지에 매우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칭찬거리가 있으면 반드시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책망할 것을 책망하신 후 그들에게 회개하면 받고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심으로 결국 그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따라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데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이 우리를 절망시키는가 아니면 격려하고 희망을 주는가? 이것을 살피십시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예언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6) 예언을 들을 때에 그것이 심령에 와 닿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예언에 대해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듯한 지침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하 20:20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고전 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이처럼 한 군데서는 신뢰하라고 했고 다른 곳에서는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선지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지자하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같은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을 수 있는가?” 라는 책에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1959년 2월 어느 날 저녁 6시 30분경에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것에 대해 간증했습니다. 그 방문에서 예수님은 선지자의 사역에 관하여 1시간 반 동안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신약의 선지자와 구약의 선지자는 초자연적으로 어떤 것을 보고 알았기 때문에 보는 자(seer)라고 불렸던 점에 있어서는 매우 비슷하다. 신약의 선지자도 초자연적으로 무엇을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의 선지자는 교회에서 앞길을 안내하라고 그들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약의 선지자의 위치와는 같지 않다. 새 언약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선지자들을 통해 인도를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선지자들을 통해 인도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신약의 선지자 사역은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뿐이다.

  옛 언약 아래서는 오직 제사장, 선지자와 왕만이 이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었다. 구약 시대에 네가 지금 평신도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 위에나 그들 안에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옛 언약 아래서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선지자로부터 인도를 구했었다...

  새 언약 아래서는 ‘선지자들에 의해 인도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다’라고 하지 않고 새 언약은 말하기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말하고 있다(롬 8:14). 내가 나의 자녀들을 인도하는 최우선적인 방법은 내적 증거(the inward witness)에 의하여 인도하는 것이다... 이제 후로는 너를 내적 증거를 통해서 인도할 것이다. 너는 항상 내적 증거를 가지고 있고 너의 영 안에 점검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구약시대엔 선지자들에게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엔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욜 2:28). 구약시대엔 선지자들이 지도자로서 앞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인도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엔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내적 증거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고 있으므로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증해주는 역할을 주로 합니다. 구약시대와 달리 신약시대엔 양자에게 다 성령이 계시므로 하나님의 등불인 영의 반응을 통해 어떤 예언이 진짜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언을 분별하는데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언을 분별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것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을 수 있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개인 예언은 당신 자신의 영 안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당신이 판단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영 안에 무엇인가가 없다면 개인적인 예언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또, 빌 해몬 박사님은 “선지자와 개인적 예언”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영의 반응은 우리 속의 깊은 데서 생겨납니다. 많은 성도들은 영적인 반응을 배의 위쪽 부분에서 느끼거나 아니면 흉곽 아래에서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다. 조심하라’ 또는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라는 부정적인 영적인 증거는 대체로 초조하거나 흠칫하거나 혹은 편치 못한 느낌으로 어딘가가 잘못되었다는 깊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느낌으로 나타납니다...

  영이 긍정적인 증거를 해주고 있거나 혹은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예언의 말씀이 옳고, 하나님께로 나온 것이며, 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를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여실히 보여주실 때에는, 우리의 영이 성령의 열매로 반응을 보여줍니다. 깊은 형언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포근하며 사랑하는 느낌, 혹은 심지어 우리의 영이 흥분에 차서 아래위로 뛰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신디 제이콥스는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라는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은 나의 내면에서 어떻게 증거 하시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외치게 된다.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이 공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의 내면에서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이다. 브루스 요컴은 이렇게 말한다.

  ‘공명이라고 불리우는 간단한 물리적 원리가 있다. 물체는 각자 진동하는 고유 주파수가 있다. 어떤 주파수를 갖고 있는 물체의 옆에서 그와 동일한 주파수를 가진 한 물체를 진동시키면(예를 들면 어떤 종을 울림) 두 번째 물체는 저절로 진동하게 된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도 이와 같다. 우리가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사람들이 당신에게 개인 예언을 할 때, 정작 당신은 어떤 긁히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거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영적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성경적이고 예언의 말도 바르게 보인다. 즉각적으로 딱 꼬집어 지적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전에 아프리카에서 선지자학교를 하고 있는 마크 비써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왔을 때 예언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면서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라는 멋진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영과 영이 서로 공명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참 멋진 표현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참된 예언은 듣는 사람의 영에 공명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언을 받을 때에 ‘이게 도대체 누구 얘기야? 이게 정말 나에게 하는 말이 맞아?’ 이렇게 생소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십중팔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이 아닙니다. 바른 예언을 들으면 평소 자기가 기도하면서 깨닫고 느끼고 소원하였던 많은 것들을 그대로 말하므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눈물이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변 전도사와 함께 미국 아틀란타에 집회를 갔을 때 예언을 분별하는 이런 방법을 가르쳐준 후 변 전도사에게 예언을 받으면서 이런 것을 느낀 분 손들어보라고 하니까 예언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드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언은 내가 알기는 아는데 긴가민가했던 것들에 확증을 주는 내용들이 거의 80%쯤 되고 나머지 10-20% 정도가 내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앞의 것에서 확증을 받고 뒤의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통해 예언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

 

 잘 읽으셨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계시를 성경 위에 올려놓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그러므로 앞으로는 그런 거짓말을 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마세요. 회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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