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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용희 교수-신앙계 4월호)|

겸손 |

2007-04-11 00:00:00 |

조회: 393

남한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1. 쾌락사랑하기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전3:1~4)"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체험이 요즘에 종종 생각이 난다. 그 목사님께서 청년들을 위한 여름수련회를 인도하던 중 마지막날 밤 집회때 모두가 회개하며 성령 충만을 구하는 기도시간을 가졌다. 그때 놀랍게도 한 자매가 발작을 하며 곧이어 자매 속에 있는 귀신이 드러났다.

같이 기도하던 청년들이 놀라고 당황해 할 때 목사님께서는 자매에게 다가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날 것을 명령했다. 

그때 목사님과 귀신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목사님 : “네 정체가 뭐냐? 언제 자매에게 들어갔어?”

귀신 : “나는 음란 귀신이다. 나는 이 자매가 음란죄를 지을 때 들어갔다.”

목사님 :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주님이 사랑하는 딸 속에 있는 귀신은 떠날 지어다!”

귀신 : “난 못나가!!!”

목사님 : “왜 못나가! 예수 이름으로 다시 명령한다, 나가!”

귀신 : “절대 못나가! 이 자매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데 내가 왜 나가?”

목사님 : “ ......... ”

이 목사님꼐서는 귀신의 마지막 대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바울이 얘기했던 말세임에 틀림없다.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때 우리는 음란죄를 끊을 수 없고 더더욱 하나님의 거룩에 이를 수 없다.

쾌락을 즐길 때 음란죄로만 끝나지 않는다.

사탄은 이것을 미끼로 더 큰 죄악-살인죄-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음을 성경은 경고한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후 자신의 간음죄를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렀다.

한번 죄악의 덫에 걸리면 우리는 더 큰 죄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 시대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음란죄를 숨기기 위해 살인죄(낙태)를 서슴치 않는다.

이것이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때 발생하는 죄의 열매들이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사탄)에게 제사하였도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 우상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시편106:37-38)”

 

 

 

2. 일류병 = 마귀병

 

얼마 전 에스더 구국 철야기도회 때 한 기도인도자가 회중에게 물었다.

   “기독교보다 더 강력한 ‘교’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답은 ‘대학교’ 였다.

이유는 많은 예수 믿는 수험생들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 주일날 교회를 빠지고 학원과 과외와 도서실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보다 대학교가 더 우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교회에 중직자들도 자신의 자녀들이 주일날 교회예배를 빠지며 입시 준비 하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이들의 대답은 대학 들어간 후 신앙생활 잘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교회학교 교육의 부정적인 단면이다. 올바른 신앙원리를 따라 양육되지 않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 들어감과 함께 세상에 빠져 교회를 등지고 만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젊은이들이 없어지는 세태를 맞이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교회는 기독교율이 각각 90%이상을 넘어선 후에 몰락하기 시작한 반면에 남한의 경우 기독교가 채 30%이르기 전에 벌써 교회의 정체와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그 꽃이 채 피어보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각성해야만 될 것이다.

 한국 성도들은 체면을 중히 여기고 남에게 잘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이 면에 있어서는 유교적인 전통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외적인 면보다 우리의 신앙양심과 내면의 진실일 것이다.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좋은 학벌과 배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적인 교육 풍토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간판을 딸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동원하여 자녀들의 사교육을 지원한다. 그래서 자녀들의 적성과 장래희망보다는 조금이라도 서열이 높은 대학과 고소득이 보장되는 학과에 진학 하도록 강압적으로 조정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고유한 부르심과 그들 각각의 은사와 재능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것은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 부모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녀양육의 성경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대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심각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가장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조차 더 서열이 높은 과에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적으로 위축되어 자존감을 갖지 못한다. 결국 사람들이 학벌로 평가되며, 평생을 이 부분에서 자유하지 못하게 된다.

일류가 되는 것은 바람직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다 일류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등과 꼴등이 함께 공존하며 사랑과 섬김과 나눔으로 살아가도록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일류가 되어야 최고의 인생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예수님도 세상적인 기준에서 일류가 아니셨고, 그의 12제자들도 물론 일류가 아니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1:26~28)”

 

그런데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많은 교계의 지도자들과 성도들까지 일류병에 들려서 교회교육마저 세상적 가치관으로 세속화되어 우리의 자녀들을 다니엘과 요셉같이 올바르게 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심각한 우상숭배 중에 하나는 일류숭배이다. 하나님보다 일류되는 것을 더 사랑하고 또 하나님보다 자녀들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실상이다.

이 시대에 만연된 일류병은 곧 마귀병이다.

 

3.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시편106:28-29)”

 

남한 국민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행하는 우상숭배는 제사행위이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충분히 효도 하지 못했다는 우리의 죄책감을 틈타서, 사단은 교묘한 속임수인 제사라는 행위를 통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사후에라도 효도할 수 있다고 미혹한다. 그래서 제사를 잘 드리지 않으면 불효자로 간주되며,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정죄와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죽은 자들은 다시 이생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가르침으로 후손들이 차린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결국은 죽은 조상들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민25:1-3)”

 

성경은 우상에게 절할 때 우리가 그 우상에게 연합(부속)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절하여 우상하고 연합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백성이 귀신과 한 몸이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격노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경은 어떠한 형상에도 절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명절 때가 되면 대다수가 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민족 복음화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사탄의 견고한 진이다.

 

한국교회가 이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격노하심을 깨닫고 이 견고한 진이 무너지도록 강력하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민족의 복음화와 국가적인 영적 부흥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중보기도자는 추석연휴와 구정연휴가 되면 산에 올라가서 밤을 지새우며 이 민족의 제사를 통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기도로 막아서고 있다. 이와 같은 영적 각성이 각 교회와 성도들에게 불 일 듯이 일어나서 함께 기도함으로 제사라는 민족적 죄악을 대적하며 끊어야 할 것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그렇다면 부모님께 못 다한 효도로 맺힌 마음이 있다면 성도들은 이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1-2)”

 

성경은 교회내의 연로하신 어른들이 곧 우리 아버지이며, 어머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육신의 친부모들이 돌아가셨을지라도 주변에 어른들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섬김으로 부모님에 대한 우리의 효도는 계속된다. 성도들은 죽은 자에게 음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어른들에게 최선의 사랑과 공경을 드림으로 주께서 효도하는 자들에게 기쁨으로 주시는 모든 상급과 유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글을 맺으며...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각 개인과 교회와 민족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수 많은 것들이 곧 우리의 우상숭배의 죄악들이다. 이러한 죄악들이 다 드러날 수 있도록, 우리는 성령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깨끗케 하며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그의 거룩을 열망하며 나아갈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실 것인데, 그것을 일컬어 곧 부흥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27:4)

 

 

글쓴이: 이용희: 경원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신촌 24시 기도의 집과 에스더 기도운동 본부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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