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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을 아는 것 - 래리 랜돌프

in his garden |

2007-04-13 00:00:00 |

조회: 333

관계의 전환 - 래리 랜돌프

 

 

■ 예수님과의 아침 식사

 

제자들의 고통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사신 후 비통에 빠져있는 그들을 찾으셨다.

주님의 목적은 마지막 만찬의 고통으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아침을 먹는 감동으로 제자들의 영을 살리시는 것이었다.

주님은 제자들과 영원한 친구 관계를 시작하시기 원하셨고, 그들의 식사까지도 준비하셨다.

 

머지않은 미래에,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어두운 밤을 깨고 오시어 아침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제자들과 하셨던 것과 같이, 주님은 '마지막 만찬'의 비탄함에서 '새로운 새벽'으로 우리의 비전을 전환시키실 것이다.

예수님의 떠오르는 해와 같은 모습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하신 아침 식사는 그들이 하늘에서 나눌 다가오는 축제의 예고였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가올 세상에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다듬고 계시는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모두가 그와 함께 하는 영원한 친밀함의 장소를 취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종인가, 친구인가?

 

 

오늘날의 믿는 자들은 우리의 내일에 대해 더 큰 소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곧 있을 최종 막을 위한 의상 리허설과 같이 이 삶을 이루어야 한다.

이생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정도가 다가올 생에서 그 분과의 관계 정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다음 생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와 우리 관계의 수준은 이 생에 있어서의 그분과의 관계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친밀함이 적은 자들이 하늘의 영원함을 누리는 것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이 땅을 벗어날 때의 바로 그 수준으로 하늘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질병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의 종'에서 '하나님의 친구' 로의 전환을 꼼짝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내가 섬겼던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실질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역을 일으키겠다는 나의 야망 때문에, 주님은 내게 친구라기보다는 상사가 되어 있었다.

베드로처럼,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나의 질병으로부터 회복되었고 나의 마음과 영혼에 극적인 깊은 변화들이 생겼다.

그 중 첫 번째로 우선순위의 전환이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와의 친밀함 위에 사역을 올려놓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또한 신랑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에 헌신하기로 했다.

어떠한 값을 치루더라도, 그의 부활에 참여하여 예수를 알기로 결심했다.

아가서 5장 8절에 나오는 술람미 신부처럼 나의 마음은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소리쳤다.

 

 

■ 그 분을 아는 것

 

기독교 신앙은 결코 사건이 아니다. - 이것은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다.

우리가 그분과 친구가 되었을 때, 기독교 신앙의 특성들은 그분과 우리 관계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된다.

 

[...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은사를 받은 믿는 자들'이 그분과의 친밀함의 부족으로 영원히 책망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일까?

이 구절은 더 중요한 것과 마음의 동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상관 관계에 있느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떠나라" 라는 단어는 '간격을 두고' 사람이나 물건으로부터 물러서서 생각하라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choreo 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또한 "안다"는 단어는 '오관을 통해 지각하다.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ginosko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알기쉽게 바꾸어 말한다면,

"물러서라! 나의 공간에서 나가라. 우리는 결코 상세하게 아는 사이가 아니다. 이 특정한 장소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로 말할 수 있다.

 

다음의 생에서 우리가 무엇이 될 것인가는 이생에서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정해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왕좌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영원한 시간을 보내던지 아니면 하늘의 바깥 뜰에서 영원히 살 것인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그분의 부활을 아는 것

 

 

나는 나의 시간을 사역을 좇는 것에 사용하였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와의 열렬한 관계를 추구하는데 사용했는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축복 받은 소망이다.

크리스천의 삶의 모든 도전중에 가장 훌륭한 업적은 그분과 그분의 부활을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의미만을 찾고, 사람들을 주님 대신에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사역들과 상관관계를 만드는 것에 우리의 생을 소비하게 된다.

 

"내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들과 결코 친밀하게 알고 지낸 적이 없다." 라는 가슴 떨리는 말을 듣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단원 발췌, 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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