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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을 추구하지 말고 진솔하게 진리를 추구하라!(찰스 피니)

겸손 |

2008-05-31 14:20:00 |

조회: 112

만약  형제들 가운데 누구라도 나의 실수에 대해 지적하려 한다면, 그들은 첫째 나를 이해해야만 할 것이며, 이 책을 통독했음을 보여야 하겠고, 그 요지들을 이해했어야만 할 것이며, “정통을 위한 추구”가아닌 진솔하게 진리를 뒤쫓기 위함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형제들이 진리를 알아보기 위함인 것이라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부디 “양쪽 귀 모두로 듣고, 그러고 나서 판단”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그런 트집쟁이들이 늘어놓을 말들에 모두 귀를 기울이겠다거나, 혹은 무례하고 적절하지 못한 말쟁이들이나 작가들의 말들과 논쟁들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겠다.  반면, 진리를 좇는 모든 진정한 질문자들에게 나는 “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면밀히 전체적인 것을 살핍시다”라고 말할 것이다.  진리는 우리를 유익하게 할 것이기에...

 

  나는 나의 신학적 시각에 있어서 어떤 고정관념적인 틀에 박아두지 않았으며, 결코 그렇게 하려는 의사가 없다.  그것은 불합리한 생각일 것이다.  오직 전지한 마음만이 시각과 견해들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을 계속하여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정한 마음, 즉 숙면에 빠져서 해를 입지 않았다거나 혹은  편견들에 의해서 그 능력이 무효화 되지 않은 마음만이 지식에 있어서 진보할 수 있다.  새로운 진리의 발견은 낡은 시각을 수정할 것이며, 아마도 무한정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세상에서도 이것의 과정이 무한할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의 일관성이란 우리의 시각과 견해를 판에 박아 두는 것이라던가 혹은 변화에 대한 죄의식에 의해서 어떤 발전이라도 거절하는 것에 있지 않으며, 우리가 장래의 정보들에 도달함에 따라 종종 그리고 신속하게 우리의 시각과 언어를 바꾸고 훈련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고 사방으로부터 진리의 햇살을 받는 것에 있다.  나는 이것을 기독교의 일관성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하나의 과정 자체만으로도 기독교 신조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조란 순수성의 신조와 모든 진리를 알고 복종하고자하는 성향을 포함한다.  즉, 기독교의 일관성이란 증가되는 지식에 부응하는 시각과 실행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라면, 그리고 신학자라면 그 누구라도, 증가되는 조명에 준수하는 그의 시각, 그의 언어, 혹은 그의 실천들에 대한 변환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와 같은 두려움의 유행은 기껏해야 세상을 그 지식 체계에 대한 모든 주제들에서 영구적으로 발전 정지되게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모든 종류의 발전들을 막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할 나위 없는 고정된 해석으로 간주되어야만 하게끔 자기식의 기준을 삼아 교회를 일정한 틀 안에 넣으려는 비감동적인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례하고 불경스러울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은 교황제도에 입각한 무언의 억측인 것이다.  성직자들의 의회에서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견해에 법칙을 제정하기 위한 교황의 필요성에 대해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행사했다; 그들은 하나의 불변성을 창조하려는 억지를 부렸고 혹은, 자신들의 강령을 미라로 만들어서 모든 세대의 교황으로서 보존하려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즉 믿음의 고백과 교리문답을 권위 있는 기준의 신조로서 채택한 이들은 불합리하게도, 비난을 면치 못할 가장 불쾌한, 교황의 원리들을 채택한 것이며, 그들의 신조와 교리문답을 교황의 보좌에게로 들어 올림으로써 성령님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이다.  19세기에 의회에 의해서 짜 맞춰진 틀이라는 도구가 교회의 기준으로서 인식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혹은 교회의 지적인 가지라고 인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놀랍고 기이할 뿐만 아니라 나는 그것이 가장 어처구니없다는 것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신학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학문의 가지로서도 부조리 하며, 그것은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울 뿐 아니라 매우 해롭고 우롱하는 처사이다.  죽은 교황보다는 살아있는 교황을 두는 것이 더 낫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설자를 소유해야만 한다면, 발전의 소망이 가로 막히지 않도록 살아계신 분을 소유하자.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전도서 9:4).  그러므로 죽었고 틀에 박힌 믿음의 고백과 모든 사람들을 바뀔 수 없는 신조와 일정불변의 교리에 묶여있게 만드는 술어학보다는 살아있는 교황이 더 낫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이러한 입장들을 고취시키려 자신을 종교적으로 떠받치고 있지 않다.  반면에, 그것들의 모든 주제들을 가장 전반적인 논의에게 열어두고 있으며, 그 누구의 견해일지라도 내 것인 것만큼이나 수용하고 대우할 것이다.  즉, 만약 앞으로의 논의와 조사에 따라서 바꿀 여지를 못 발견한다면 나는 그것을 신속히 붙잡을 것이지만, 만약에 내가 그것들에서 어떤 잘못이라도 찾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수정하거나 혹은 전체적으로 거부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에 있어서 내가 거절하거나 실패한다면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비일관성을 부끄러워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진정한 기독교의 일관성이란 지식과 거룩 안에서 진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그와 같은 변환들은 증가하고 있는 조명과 깨달음에 의해서 요구되고 있다.

 

  신학에 있어서 오직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질문들만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견해 안에서 내가 이전에 이해했던 것들보다 더욱 명확하게 깨달아지지 않는 이상 여러 해 동안 어떤 변화도 지나지 않았으며, 이제 나는 그것들 가운데의 몇 가지를 설명해야만 할 것이며, 그것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견해들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현재 큰믿음출판사에서 의뢰하여 캐나다의 이아미 사모님께서 번역 중인 “찰스 피니의 조직 신학” 서문의 한 부분입니다. 굉장히 두꺼운 책입니다. 번역하시는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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