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니 |
2008-07-15 22:3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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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게 하는 분주함에서 벗어나기
하나님은 조용히 기다리며 하나님을 듣는 법을 배우라고 하신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거나 원수의 책략을 분별함이 없이, 영적 전쟁에 뛰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모든 참된 분별은 바삐 몰아치는 심령이 잠잠해질 때만 가능해진다.
개인적으로 당하는 불시험을 통과해 나간대해도, 하나님은 그 때도 역시 우리를 통치하시는
주인이시다.
우리의 분별력을 방해하는 <방해전파 송신소> 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과 반응들이
바로 방해전파를 형성시키는 주 요인이다. 시종일관 확실한 분별력을 유지하려면, 육적인
생각들의 발동기가 꺼져야 한다. 개인적인 비판, 보복하려는 의도, 그리고 자신의 욕심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지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복음 5: 30)
예수님은 스스로 애쓰지 않으셨다. 우리도 역시 성령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애쓰
는 노력을 멈추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분별하게 된다.
넘치는 사랑에 분별이 따름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서 1:9)
분별은 넘치는 사랑으로부터 온다. 넘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는 우리로부터 다른 이에게 흘러 넘쳐
나가는 사랑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헌신된 사랑이며, 희생하는 사랑이다.
불신, 의심, 두려움에 기초를 둔 거짓 분별도 있다.
거짓된 분별은 분별을 둘러싸고 있는 그 냉랭함이 거짓분별이라는 증거이다. 거짓 분별은 언제나 비판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참된 분별은 사랑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긴 머리의 한 젊은이를 한번 상상해보아라. 그의 옷모양새는 흐트러져있고, 양 팔뚝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때는 밤이고, 인기척 없는 거리에 그 청년이 당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우리는 그런 사람을 눈에 뛰는 외모로 판단하기 쉽다. 빤히 보이는 겉모양만 보면 그는 여지없이 부랑자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청년을 그 청년의 어머니의 눈으로 한번 다시 바라보자. 그러면 그의 외모는 덜 무서움을
자아낼 것이며, 심지어 장래에 소망까지 가진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당신이 새롭게 보는 그 청년은 아버지 없이 자라난 청년이며, 친구들에게 종종 따돌림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이 청년에 대한 깊은 사랑의 헌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를 일생 사랑으로 지원해 주고, 태어나서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도 사랑으로
지원해주었던 사람이 당신이 되고 싶을 것이다.
거짓 분별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상황을 보고, 그 속사정을 아는 척한다.
그들의 분별이 거짓 분별인 이유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적 노동과 산고를
통해서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신성한 영적 분별은 그 동기가 바른 데에 그 참된 가치가 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외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7: 24)
공의로 판단하는 것은 사랑의 결과이다. 교회나 타인을 위해 사랑 안에서 기도할 수 없다면, 진실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 사랑이 평강에 앞서며, 평강이 통찰력에 앞선다 "
당신의 마음에 사랑과 평강이 없다면, 당신의 판단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될 것이다. 얼굴에 웃음을 뛰운다해도, 마음속은
분노로 들끓을 것이다. 거짓으로 분별하는 자들은 듣기는 더디하고, 말은 급하게 하며, 화는 금새 낸다.
평강이 우리의 심령을 다스려야 한다
거짓 분별밑에는 어떤 긴장이 깔려있다. 이는 마음으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불안에 기인한것이다.
진정한 분별은 조용하고 맑은 마음, 지혜와 은혜가 담긴 하나님의 음성에 감동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자에게 임한다.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들의 생각은 우리들의 마음의 태도로 물들여진다.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 34)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가복음 7 :21- 23)
라고도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 8). 라는
말씀도 주셨다. 마음에 있는 것을 우리는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보며, 머리로 생각한다.
잠언 4: 23 은 진실로 진리의 말씀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23)
인생을 보는 관점, 즉 인생관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 영 분별의 은사를 받고자하는 신자의 마음의 상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세상에 드러나기전에 , 먼저 우리의 마음을 통과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은사도 비뚤어지게 나타난다.
마음이 불안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릐의 마음이 씁쓸함, 분노, 야심, 불화의 감정을
품고 있을 때는 , 우리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의심하는 버릇을 키워야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 15)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들으려면, 먼저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야 한다.
솔로몬은 "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속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전도서 4: 6)
고 기록했다. 우리의 마음은 바람을 잡아보려는 노력으로 너무나 분주하게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뜬구름 잡는 헛수고를 그치고, 엄청나게 조용한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한다. 그래야만 하늘로부터 내리는
영분별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소극적인 마음의 자세는 아니다.
하나님에게만 바라고, 하나님께 큰 기대를 걸며, 하나님께만 집중된 마음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영적
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에게 대단히 민감해진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의 근본 동기는 사랑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준비된 자세로 기다리는 평안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