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니 |
2006-12-20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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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11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 "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마지막 시대에 관한 많은 가르침들은- 대부분 아닐지라도- 심판과 같은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두려움이 아닌 희망이 참 예언의 토대를 이룬다.
하나님은 이 땅을 덮고 있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들을 그의 선하심과 의로움과 정의로서 무찌르실 것이다.
영광스러운 약속 대신에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종말론이 마지막 시대의 예언들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가지고 있다. 이때에 시련이 있으며 , 심지어 세상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시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할 지라도, 시련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안된다. 사실, 그것들은 여흥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이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밝히 계시될 시기에 다다르고 있다. 이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에 파멸의 위기에 처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번성을 이룰 시기에 다가서고 있다.
그들은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출애굽 사건은 다가올 실체에 비하여 "그림자" 에 지나지 않을 만큼 놀랍고 환상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고센" 땅에 살던 사람들과 이 세상의 우상들을 예배하던 자들 사이에 지어졌던 분명한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보물들을 가지고 떠났던 것처럼, 악한 자들의 재물이 의인들을 위하여 저장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얻은 재물을 소비할 수 있는 백화점으로 즉시 인도되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로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를 짓는 일에 그것들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질 것이다. 우리가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열방의 부가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방의 부는 우리가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지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이다.
열방의 재물은 그리스도의 몸인 그의 교회, 즉 그의 거하실 처소를 짓기 위한 것이다. 우리 가운데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이 세상의 모든 사치스러운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러한 멋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위한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시는 것을 이해할수 없다.
베드로는 그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 만물의 회복" (행3:21참조)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은 그의 성전인 교회를 회복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전체 목적은 아니다. 교회는 하나의 수단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회복하기 원하신다. 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곧 회복되어질 것이다.
분별력의 속성 (The Nature of Discemment)
시기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우리 분별력이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참된 분별력의 은사는 도래하는 시기에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은사이다. 수년 전에, 주님은 예언적인 은사를 받은 여러 친구들과 나에게 그 당시 교회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이 참된 분별력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그들에게 분별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의 은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분별의 은사는 인간의 지혜 혹은 우리가 " 거리의 지식 " 이라고 부르는 것을 뛰어 넘는 초자연적인 은사이다. 주님은 또한 이 은사는 다가올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은사들 중의 하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 은사를 지도자들에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깨달음 있은 바로 직후에, 주님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친구 밥 존스에게 교회가 " 거짓 분별의 은사 " 에 의해서 계속해서 오도되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주님은 교회에서 " 의심의 영 " 이 분별의 은사로 가장하여 기능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주님은 참 분별의 은사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역사 할 수 있다고 그에게 말씀하시면서 빌립보서 1:9절의 말씀을 주셨다 :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all discernment)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 " 주님은 "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참 분별을 왜곡시킬 것이다" 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나의 사고 방식은 " 맹목적인 사랑 " 은 정확한 분별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분별력을 흐리게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정반대가 사실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문제를 놓고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있었을 때에, 주님은 의심이 어떻게 나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을 오해하게 했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분의 뜻을 내가 얼마나 자주 깨닫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셨다.
영적 권위의 속성(The Nature of spiritual Authority)
바로 이때에, 주님께서는 모든 영적인 권위가 어떻게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 몇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우리는 그것의 증거를 이 땅에서 사셨던 주님의 삶을 통해 볼 수 있다.
주님께서 목자 없는 양떼들의 목자가 되신 것은 그러한 양떼들을 위한 측은한 사랑이 그 분 안에 있어났을 때였다. 주님께서 어둠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교사가 되신 것은 그렇게 앉아 있는 자들을 향한 측은한 사랑이 그 안에 일어났을 때였다.
그 때에 주님은 나에게 붙여주신 자들을 위한 그 분의 사랑을 내가 느낄 것이기 때문에, 그 분이 나를 언제 보내실지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어떤 교회를 위한 그 분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할 때에, 내가 그 교회로 보내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역을 위한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할 때에, 내가 그 사역으로 보내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이것은 한 도시나 , 나라나, 문화나, 어느 그룹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오직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만 어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뿌리를 분별해 내어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점만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을 위해 오직 선한 것만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린도 후서 5:14절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종국적인 질문들 중의 하나를 던지게 해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조절한다면 우리가 어떠한 사람들이 되겠는가?
그리고 이 위에 주님이 행하셨던 일, 그리고 심지어 그것보다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해 보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겠는가?
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안에 그 분의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것 때문에 그들도 예수님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마지막 시대에 관한 건전하고 성서적인 예언이다.
주님의 뜻을 알고자하는 우리의 목표는 그 분의 뜻을 행하는 일에 우리를 준비시켜 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실제적이어야 한다. 그 분의 사랑이 당신을 강권하고, 그 분의 능력이 당신 안에 있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가? 당신은 누구를 치유하려는가? 당신은 어떤 귀신들을 쫓아내려는가? 당신은 누구를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려는가? 당신은 누구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려는가?
우리는 또한 몇몇 다른 실제적인 질문들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당신을 강권하고, 그 분의 능력이 당신 안에 있었다면 당신은 당신이 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보았겠는가? 당신은 얼마나 많은 험담들을 들어왔으며, 심지어 그러한 험담들이 퍼지는 것을 도와주지는 않았는가? 당신은 그렇게 작은 일로 당신의 이웃과 그렇게 다시 분노하겠는가? 주님의 사랑이 당신을 강권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만난 재앙을 보고 기뻐했겠는가?
매우 중대하며 영원한 진리가 지금 교회에 회복되어지고 있다. 이 진리는 십자가의 능력의 진리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또한 변화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혹은 하나님의 능력을 십자가처럼 계시해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실증되어지는 것을 볼 시기에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과 함께 도래할 것이다. 십자가가 인간의 모든 문제에 해답이 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우리는 이것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끝까지 우리를 바로 인도해 줄 " 소망의 풍성함 " (히6:11)이다.
모닝스타코리아저널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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