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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을 향하여...

십자가 사랑 |

2006-08-20 00:00:00 |

조회: 234

완전하다는 말처럼 마음에 걸림을 주는 표현은 성서에서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완전하다는 말은 실로 많은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완전이라는 말을 하기조차 싫어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완전을 설교하는 사람', 즉 완전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리나 이방인보다도 더 나쁘게 평가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표현이 너무나 많은 반대를 초래하고 있다는 이류로 아예 사용하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완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설혹 많은 사람의 마음에 걸린다고 하여도 어느 설교자가 무슨 권위를 가지고 이 말씀을 삭제하여 버린다는 말입니까? 우리 주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을 마귀에게 양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말할 것이며,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우리는 외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회피하지 말아야만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기 때문에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뜻을 풀어 설명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신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 상의 푯대에서 좌로나 우리나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더욱 더 풀어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 빌립보서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얻었다는 것도 아니요, 또 이미 완전해졌다는 것도 아닙니다"(빌3:12)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또한 위의 말을 언급한 후에 이어서 곧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라"(빌3:15)고 함으로써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이미 완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완전하지 못하고 또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실 아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인 감각이 발달한 이들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것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들은 모르는 것도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고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지능으로 자연의 이치와 역사적 섭리를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깨닫지 못한 지식들이 천지에 널려 있으며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영적인 직관과 감각으로 주의 뜻을 분별하고 주가 계시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주의 신비에 있어서 알지 못하는 것드리 우주만물 가운데 널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삼위일체이신 성부,성자,성령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부분적으로는 알수 있으나 날마다 그 한계를 인정하며 우리의 무지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는 주의 계시로 말미암아 알수 있으나 날마다 그 한계를 인정하며 우리의 무지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몸에 관해서도 그렇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연만물에 만연한 수많은 생태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완전에 대해서 사도 바울처럼 "나는 이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도 아니요, 또 이미 완전해졌다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전혀 실수하지 않을 만큼 완전하지도 못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또한 슈퍼맨처럼 날마다 초인적인 능력을 행할 수 있으리만큼 또한 우리의 연약성(infimities)을 떠나 완벽해지리 만큼 완전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세상의 유혹(tempatation)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리만큼 완전한 존재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면에서 사도 바울처럼 또 다시 "완전"을 외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있어서 완전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게 우리의 썩어질 육이 부분적으로 개선되거나 수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중생의 구원은 하늘로부터 임한 완전한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하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말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성결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혈의 능력으로 완전한 성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이 우리가 지을 수 있는 죄의 가능성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지은 모든 죄의 영향력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사적인 측면과 열매라는 측면에서 완전을 외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신령한 집을 세워가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는 신령한 집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차원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완전을 향하여 이 선물들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것이 우리의 삶속에서 성령충만함과 더불어 우리의 눈에 발견되어지고 우리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비젼이며 소원이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것들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중에 많은 이들이 대부분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완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감히 주께서 말씀하신 그 완전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인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불경건하고 배은망덕한 일이 아닐까요? 주님은 주님의 제자로서 그리고 주님의 자녀로서 완벽한 삶을 제시했던 산상수훈의 가르침 중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라는 차원에서 또한 완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속사람의 강건과 더불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정도의 완전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는 이 거룩한 행진을 결코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주께서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일들을 감당하고 이 땅에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가는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읽고 다시 정리하여 강론하며 성부,성자,성령이 함께 역사하는 삼합리 예배당 한 구석에서 김진구 목사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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