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pT |
2011-06-16 00:00:00 |
조회: 366
왜 개신교는 주일 즉 일요일을 지키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안식일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들을 만나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19절을 보면 제자들 즉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 곳에 예수님이 친히 오십니다.
동일한 장면이 누가복음 24장 36-52절에도 나오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친히 증거하시고 (38-43절), 말씀을 선포하시고 (44-49절),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50-51절).
그리고 성도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돌아갑니다 (52절).
이처럼 안식후 첫날 즉 일요일 또는 주일에 성도들이 모여 예수님을 만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사람들이 정한 전통이나 관습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날부터 우리 성도들에게 직접 세워주신 규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그러한 규범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지켜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도행전 20장 7절을 보면 안식후 첫날 성도들이 모여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떡을 떼어 먹으며 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 1장 10-20절을 보면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주의 날 즉 주일에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님을 뵙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의 날 즉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성도들이 모이는 날이요,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 가운데 오셔서 자신을 증거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시며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는 특별한 만남의 날입니다.
요즘 다양한 단체가 주일성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제칠안식교는 주일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이단취급하며,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반대하는 무슨무슨 개혁연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일요일 (Sunday)은 태양신을 기념하는 날이며, 로마 카톨릭이 이교도들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일요일을 지키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라면, 토요일 (Saturday) 역시 로마신 새턴 즉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버지인 타이탄신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동일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일예배의 첫 모범을 보이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것도 부활하시고 나서 첫번째로 맞은 주일이 바로 초대교회에게 있어서 첫번째 예배의 날이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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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요즘 메시아닉 쥬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그들에게서 배울 부분도 많이 있지만, 가끔 가다 주일대신 안식일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소수 있는데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다거나, 성도님들이 어떤 특별한 목적에 따라 (예: 이스라엘 선교 등) 주일과 안식일을 함께 지키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 지니라 (롬14:5)").
하지만 주일을 폐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 [갈라디아서 4장 8-10절에서 말씀하는 "초등학문"은 이교도의 풍습과 규례를 말하며, 따라서 10절의 절기들도 이교도적인 것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10절에서 지키지 말라고 하는 날과 달과 절기는 이교도적 절기들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교도적인 절기에 해당하는) 일요일이 아니라 성경적인 안식일인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론을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권면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4장 20절에서 말하는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그리고 21절에서 말하는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즉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의심을 받을만한 갈라디아교인들 즉 "너희들" 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의심하는 근거는 10절의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이며,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는 율법적인 절기들을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울은 9절에서 "너희가 초등학문에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초등학문은 3절에서 말하는 "우리" 즉 사울(회심하기 전의 바울)과 유대인들이 종노릇했던 "초등학문"과 같은 것이며, 3장에서 말하는 "몽학선생"과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초등학문"과 "몽학선생"은 이교도들의 풍습이나 규례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지켰던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3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초등학문" 또는 "몽학선생" 즉 율법이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바르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3:24). 그리고 율법에서 말하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이 오신 이상,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면 되는 것이지, 굳이 옛날 율법으로 돌아가서 그 아래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3:25-27).
또한 바울은 "너희들" 즉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율법의 할례]가 왜 무의미한 것인지를 5장에서 말합니다. 그리고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1-3장 그리고 특히 6장을 읽어보면, 갈라디아서의 포커스는 율법으로 회귀하려는 일부 갈라디아 교인에 대한 권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혼란시킨 자들은 "할례받은 저희들"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절기와 할례 등 율법의 요구를 지키게 하려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갈6:12-13). 즉 그 당시에 예수를 믿으면서도 율법적 사고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유대인들로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갈1:6-10)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게 하려는" (갈2:11-14)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에 대해서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라, 갈라디아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을 대하여 열심내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갈4:17), 결국 "육체로 자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갈6:13). 이처럼 초대교회 당시의 메시아닉 쥬 즉 예수믿는 유대인들 중에는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참된 주의 종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회복]에 나오는 것처럼, 메시아닉 쥬들은 우리의 귀한 형제들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을 믿는 메시아닉 쥬들을 존귀하게 생각하며, 또한 그들의 풍부한 성경지식, 히브리어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 등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인간인 이상 분명히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들이 일부 있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중에는 심각하게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소수 있을 수 있음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런 잘못된 주장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도록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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