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8-09-29 15:5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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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008. 9. 22. 기도회, 변승우 목사님의 즉흥설교>
본문 : 마가복음 12:1~12, 28~34
마가복음 12장 1절,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더니",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더니"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주인도 아니고, 성도의 주인도 아니고, 재정의 주인도 아닙니다.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목회자에게 세(貰)로 맡기신 것입니다.
울산에서 배 과수원을 하는 큰믿음교회 성도님이 있습니다. 그 과수원을 다른 사람에게 판 것이 아니고 세로 주었습니다. 주인은 그 성도님입니다. 그 과수원에서 소출이 생기면 그 소출 중에 약속한 분량을 주인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께 교회를 세로 들어서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는데 성령께서 가장 먼저 제게 주신 말씀이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교회를 세로 주신 것인데 목회자는 자기를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 행세하는 못된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그런 악한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로 줬는데 그들은 자신이 주인인 줄 착각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거기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느껴졌습니다.
2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여기 농부들에게 세로 줬다고 말씀했습니다. 목회자들은 사업가도,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농부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교회가 기업화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이나 많이 모이고, 교회가 좋은 건물 짓고, 땅 사서 수양관 짓고, 헌금 많이 나오고. 교회가 이렇게 기업화되면 안 됩니다. 목회자는 사업가가 아니라 농부입니다. 농부는 열매를 맺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기업의 이윤이나 이득이 아니라 농부는 곡식들과 나무들을 잘 돌봐서 열매를 맺게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큰 교회 세우고 헌금 많이 나오고 성도 수가 많은, 단순히 그게 아니라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 열매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 자체가 열매입니다. "곡식이 익어서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 영혼들 자체가 열매입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우상숭배자들을 전도하는 것. 영혼들을 구원 받게 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또 하나의 열매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들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그것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 그 교회를 통해서 정말 사람들이 구원 받고 있느냐? 그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되고 바뀌고 있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덩그러니 잘 세워놓은 교회 건물이 아니고, 사람들의 머리 수가 아닙니다. 종교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바리새적으로 단순히 길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들이 사업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농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의 교회의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너희의 열매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내놓을 수 있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농부가 아니고 사업가같이 변질되고 타락한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교회에 교인 수는 몇 명이다.’ 말은 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에 한 달에 헌금이 얼마나 나온다.’는 말은 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 성전은 몇 억을 들여 지었어.’ 말하는 목회자들은 많지만 그 교회를 통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이 구원받고 그 교회를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목회자가 이 땅에서 과연 몇 퍼센트나 될 것인가? 얼마나 악하고 심판받을만한 종들이, 목회자들이 많은가? 목회자는 사업가가 아니라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 수치(數値)가 아니라 열매를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9절에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교회 담임목사로, 당회장으로 교회를 점거하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열매는 맺지 못하고, 하나님께 열매를 드리지 못하면서 장사치 같은 마음으로 목회를 해 가지고 교회를 장사치의 소굴,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버리고 영혼 구원하는 데는 실패하고 사람들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런 진전이 없고 기업을 운영하듯이 교회를 운영하고 그런 목회자들에게 주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충분히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지루할 정도로, 따분할 정도로 회개할 기회를 오랫동안 주시지만 그러나 정녕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를 진멸하셨듯이 그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회자들이라고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기 말씀한대로 그들을 진멸하시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수평이동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한국 교회, 이것은 목회자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보존을 위해서 시각이 삐뚤어져서 수평이동에 대해서 민감한 것입니다. 큰믿음교회에 대한 이단시비의 저변(底邊)에 들어가 보면 저도 다 들은 얘기인데 수평이동 때문에 그들이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대로 목회하고 정말로 열매를 맺는 자라면 수평이동에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자기 교회에 성도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목회를 똑바로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살겠다고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대로 농부로서 성도들이 열매 맺도록, 구원받도록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포도원을 빼앗아서 열매 맺는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수평이동은 열매 맺지 못하는 농부에게서 열매 맺는 농부에게로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이전시키는 역사입니다. 그것을 인간의 혼적 시야에서 봐서 양 도둑이니, 진짜 도둑놈 심보는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으면서 양 도둑이니 뭐니 매도하는 목회자들이 많은데 이것이 눈먼 소경들입니다. 그런 얄팍한 인간의 이론을 가지고 하늘을 가리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처럼, 속에는 탐심이, 자기중심이 가득하면서, 진짜 영혼을 생각합니까? 진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합니까?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니까? 얄팍한 도덕으로 겉칠해가지고 그런 말들을 하고 그런 말에 편승(便乘)하는 한국 교회 자체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말에 편승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썩은 양심을 도려내야 합니다. 평토장한 무덤같이 겉으로는 대단히 고상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속은 썩어있는 목사들의 썩은 상태, 교계의 썩은 상태를 개혁해야 되고, 수술해야 되고 바꿔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속마음을 아시고 그들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농부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자기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교회를 세로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인에게 쫓겨나가지 않고 원로목사까지 잘 지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빼앗아서 열매를 잘 맺는 다른 농부에게, 다른 목회자들에게 그 성도를 흩어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세를 든 사람이고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교회의 성도들의 이동을 다 세든 사람의 입장에서 보니까 자기가 세든 것을 모르고 주인 행세하면서 도둑이니 뭐니 망발을 하는데 여러분, 주인의 입장에서 보세요. 주인이 뭐하려고 열매 맺지 않는 농부에게 포도원을 계속 맡겨두겠습니까? 예수님이 뭐하시려고 열매 맺지 않는 목사들의 교회에 성도들을 계속 가둬두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리석으십니까?
수평이동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평이동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장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말장난을 그만두어야합니다. 교계가 어린 아이들도, 삼척동자들도 알 수 있는 겉과 속이 다른 말장난, 이론에 의해서 휩쓸려 다니고 매도하는 유치한 장난들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자신들이 주인이 아니고 세든 사람인 것을 알고, 그러므로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 하셨지 언제 네 양을 먹여라 하셨습니까? “내 양을 치라” 하셨지 언제 네 양을 치라 하셨습니까? 주인이 하나님이심으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받고 큰믿음교회로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도둑과 협작하는 분입니까? 하나님이 도둑과 동업하는 자입니까? 눈을 뜨고 바르게 현실을 봐야 합니다. 모든 교회는 목사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양은 목사들의 양이 아니고 하나님의 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들을 당신의 뜻대로 처분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양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이동시킬 권리가 있습니다. 사울에게 붙였던 양들을 다윗에게 붙이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 모든 교회에 대해서 그런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모든 교회에 대해서 그런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목사들이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교계가 그런 얄팍한 혼적인 잘못된 이론들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가 세든 사람인 것을 알고, 사업하지 말고 진짜 농부가 되어서 목회하는 자는 수평이동 때문에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 맺는 그곳은 부흥하게 되어 있고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처음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13절에,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여기 저희는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단 사냥꾼들하고 싸워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벌써 해야 할 일인데 눈이 어두워서 이단사냥꾼들에게 한국 교회가 놀아나고 있습니다. 한기총과 대형교단들이 놀아나고 기독교단체와 언론들이 놀아나고 있습니다. 이단사냥꾼들은 정확하게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하여" 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모든 이단사냥꾼들의 기사에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냥 책잡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요,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라 참소하는 마귀의 종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의 하수인들이요, 사탄의 사냥개들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단사냥꾼들의 정체에 대해서 바르게 눈을 떠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에 나오는 뱀들과 독사의 자식들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의 설교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책들을 책잡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서 역사하시는, 사용하시려고 하는 교회들을 책잡으려고 하는 자들이지 진리에, 진실에 관심이 있는 자들도 아니고 진짜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자들도 아니고 진짜 부흥을 염원하는 자들도 아닙니다. 이런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 이런 한국 교회의 암적 존재들을 한국 교회가 용납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그만큼 영적인 눈이 어둡다는 것이고 소경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고, 그만큼 한국 교회에 참소하는 귀신의 세력들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터부시하고, 성령은 소멸하고, 성령은 받아들이지 않고 참소하는 귀신과 그의 세력은 ‘아멘’하고 받아들이고, 성령은 거절하고 터부시하고 방언과 예언과 은사와 기적을 터부시하고 종교화되어 가고 있는, 점점 화석화 되어 가고 있는 한국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한국 교회를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은 한국 교회를, 이 시대의 교회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개혁하는 자는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매도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누가 이단이라고 하든지 뭐라고 하든지 ‘너희들 멋대로 해라.’ 내려놓았습니다. ‘나는 너희같이 어리석은 자들, 눈먼 자들, 오만한 자들의 판단에 더 이상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겠다. 나는 그냥 눈 뜬 자들과 함께 내 길을 가겠다.’
한국 교회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 교단 전체에도, 교계에도, 기독교 방송에도, 기독교 언론에도, 기독교 연합단체에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큰믿음교회를 그 개혁을 위해서 부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오해와 핍박을 받든지 주님을 의지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해서 한국 교회를 개혁하고 회복시키고 변화시키고 부흥시키는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말씀을 읽으면서 새롭고 참 특이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28절~35절 말씀입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좀 드문 일인데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보통은 제게 감동을 주실 때는 말씀을 쭈욱 가르쳐주시면서 “서론, 일대지, 이대지, 삼대지, 결론”, 쭉 가르쳐주시면서 “이것을 설교로 준비해라.” 보통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읽는데 성령께서 제 영에게 어떤 말씀도 주시지 않고 어떤 구체적인 말씀을 주시지 않고 단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본문)은 중요하다. 이것을 설교로 준비하라.”
이게 제 영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선명하게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조금 전에 읽은 말씀에 서기관이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까?” 우리는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놓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너무 익숙하고, 너무 유명하고,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진짜 무엇을 말하는지를 성경을 읽으면서도 모르고 있고, 놓치고 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말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한국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것처럼 ‘말씀 말씀’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는 말씀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도 발길로 차버리고 ‘말씀 말씀’ 하면서 떠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말씀이 거의 우상 수준입니다. 실제로는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실제적으로는 교리적이면서 그게 말씀인 줄 착각하고 ‘말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리주의자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조주의자(敎條主義者)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이 아닙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령도, 부흥도, 기도도, 전도도 아닙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에베소교회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얼마나 바르든, 얼마나 열심이 있든, 얼마나 기도하든, 봉사하든, 능력과 기적이 나타나든, 얼마나 전도하든,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잃어버리면 그걸로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는 『관계』인 것입니다. 타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교제가 끊어진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진짜 아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끊어지면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관계가 끊어지면 기도가, 봉사가, 전도가, 부흥이,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이 말씀이 가려져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씀처럼 들으십시오. 예수님의 입에서 이 말씀이 떨어졌을 때 태어나서 그 자리에서 처음 이 말씀을 듣는 사람처럼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며 문제 삼았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췄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까? 그들은 안식일에 초점을 맞췄고, 장로의 유전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어쩌면 한국 교회가 그렇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큰믿음교회를 공격하는 사람이 큰믿음교회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그것을 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인데 그들은 교리와 전통을 들이대고 다른 것을 들이댑니다. 어쩌면 성경의 바리새인들과 그렇게 똑 빼닮았는지?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잊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고 하나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초점을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하십시오. 초점 중에 초점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점 중에 초점은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을 얻는 것,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말씀했는데 이웃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고 이 말씀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이 말씀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정말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이 말씀을 정말 깨달은 사람은 그의 삶에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날 것인데 그것은 말씀도, 은사도, 전도도 아니고 기도도 아니다. 이 말씀을 정말 이해하고 이 말씀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은 그의 삶에 두 가지 열매가 분명하게 나타날 것인데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잃어버리고 다른 것을 논하는 것은 다 의미가 없는 것이다. 너는 설교를 준비해서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하고 둘째로 사람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해라.” 성경에 가장 첫째 되고 으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이 계명을 분명하게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각인시키고, 분명하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모든 분야에서 성공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꿉니다. 판사가 되겠다고, 교수가 되겠다고 꿈꾼다고 다 판사나 교수가 됩니까? 장군이 되겠다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꿈꾼다고 다 될 수 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분야에서 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 분야에서 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말씀에 정통하고 깊이 들어가고 말씀에 강렬한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치유 분야에서, 예언 분야에서, 기도 분야에서, 전도 분야에서, 부흥의 분야에서 모두가 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공자로 산다 해도 심지어 성공한 사람도 그의 삶을 보면 많은 분야에서 실패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자입니다. 바닥을 기던 제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많은 분야에서 실패자입니다. 100가지 분야라면 한두 가지만 주님의 은혜로 성공했지 98가지에 있어서 저는 실패자입니다. 저는 많은 분야에서 실패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에서 실패하고,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붙잡아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될 분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실패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실패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실패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실패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실패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너무 많은 일에 손을 대서도, 너무 많은 것을 원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34절의 의미가 깊습니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진정한 지혜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까? 교리적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강해설교를 잘하고 설명을 잘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진정한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성경을 해석하고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교리를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지혜는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이게 무슨 뜻이냐? 이게 무슨 의미냐?’ 이게 아닙니다. 진정한 지혜는 진짜 무엇이 중요한가를 아는 것입니다. 더 본질적, 더 근원적인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이, 진짜 필수적인 것이, 진짜 절대적인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서기관에게 말씀했습니다. “지혜가 있다.” 서기관은 지금 성경을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서기관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예배가 아니고 십일조, 기도, 전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은 성경만 가르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자는 성경만 묵상하거나 책만 읽고 있지 않을 겁니다. 정말 지혜 있는 자는 설교하고 가르치기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자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추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할 것입니다. 그분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갈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은 이기심을, 탐욕을 버릴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려고 시도하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고, 원수를 선대할 것입니다. 자기의 육적인 본성을 깨뜨려버리고, 부인해 버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지혜 있는 자인 것입니다.
다니엘이 말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리라.”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사람들은 유명한 강해설교자들이나 유명한 교사들이나, 저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사람들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혜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세상 관점에서 지혜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어리석은 자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기름준비하지 않는 자는 미련한 처녀고, 기름 준비하는 것, 바꿔 말하면 항상 깨어 있고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이게 슬기로운 처녀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순종을 뜻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성경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순종을, 거룩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최고의 지혜는, 더 근본적인 지혜는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다른 사람을,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진짜로 지혜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에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는데 한국 교회가 점점 지적이 되고 점점 가짜 지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지혜를 버리고 있습니다. 순종을 버리고, 거룩을 버리고 하나님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서로 교회끼리 물고 뜯고 공격하고 목사끼리 서로 시기하고 못 잡아먹어서 난리고, 부흥하는 교회가 있으면 이단으로 못 만들어서 안달을 떨고 이게 무슨 목사고, 무슨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진짜 지혜를 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짜 지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지혜입니다. 거룩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 진짜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지혜 있게 대답한 사람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지금 구원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가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밥 존스의 간증에 ‘네가 사랑하는 법을 배웠느냐?’ 제가 밥 존스 선지자님 댁에서 밥 존스를 뵈었을 때도 구원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만 간다.’ 교회에서 천국 가는 비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 그 한 마디만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왜 천국 가는 비율이 낮은가? 천국은 사랑하는 사람만 가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 15절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그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줄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구원 받은 증거는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개가, 믿음이 무엇입니까? 회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이기적이라서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이제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회개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죄에서 떠나고, 죄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해서, 아까 세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교회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목사들의 실상처럼, 훌륭한 사람들도 많지만 이런 사람들도 많다는 겁니다. 존경할만한 훌륭한 분들도 많은 것을 저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종이 희년이 되어서 풀려날 때가 됐는데 주인을 사랑해서 계속 주인을 섬기려면 “내가 주인을 사랑하니”, 그리고 귀를 뚫어서 영원히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의 주인이 되고 그는 주의 종이 됩니다. 이웃을 정말 사랑하면 이웃의 이익을 위해서 이웃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니까 잘못된 삶을 사는데,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시는 이 믿음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다는 것은 바꿔 말해서 이제는 내가 나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겠다는 겁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진정한 믿음의 핵(核)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중심, 진정한 믿음의 중심의 핵은 주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교인들을 보고 한 마디 하셨습니다. “나는 다만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노라.” 그러니까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되 주여,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린도전서 8장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진정한 믿음의 핵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안다고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다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고 지옥 갈 목사도 수두룩하고, 장로 되었다고 그게 진짜가 아니고 지옥 갈 장로가 수두룩하고, 무슨 은사 받았다고 그게 진짜가 아니고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하고 은사 받고 능력 받았다고 기도 많이 해서 대단한 능력을 받고 체험했다고 그게 진짜도 아니고 이것이 진짜냐, 가짜냐 나누는 그 근본적인 핵심에 도달하면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도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핵에는 뭐가 있느냐? 진정한 믿음을 파고 들어가고 들어가면 가장 중심부에 들어가면 거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지식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관한 학식이나 기름부음이나 은사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열심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우리는 무엇에 의해서 움직이는가? 우리의 근본 동기가 무엇인가? 우리 마음 저변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 속에는 많거나 적거나 간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씨앗이 있습니다. 그 영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에도, 진정한 믿음에도, 진정한 신자에게도, 진정한 목회에도,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설교, 심방, 상담, 전도를 잘 할 수 있느냐 묻지 않으시고 병 잘 고칠 수 있느냐 묻지 않으시고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됐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그것이 진짜 목회자의 자격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됐다. 설교 좀 부족해도 되고, 말을 좀 못해도 되고 능력과 은사가 부족해도 된다. 네가 나를 진짜로 사랑하면 됐다. 내 양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왜냐하면 처음에 말씀한 것처럼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것은 다 소중히 여깁니다. 자기 것은 잘 보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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