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9-04-22 17:59:00 |
조회: 258
종교 활동과 진정한 사역
2006. 4. 28.
사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누가복음 4장 18-19절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오셔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 앞에서 이 부분을 펼치시고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1)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이 지식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어떤 랍비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오늘날로 따지면 ‘어떤 신학대학을 나와서 목사로서 안수를 받았다.’ 절대로 거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신학을 하신 적도 없고 안수를 받으신 적도 없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예수님은 목사가 아니고 평신도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목사로 성직자로 안수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성령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진정한 사역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역은 설교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정한 사역은 제자훈련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정한 사역은 무슨 프로그램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정한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면 진정한 사역은 없습니다. 흉내 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3년 동안 사복음서에 나온 것 정도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설교를 하시고 가르침을 주셨겠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그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충분한 내용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에 머무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까지 머무르라(눅 24:49, 행 1:4)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까지 아무리 성경을 알아도 진정한 사역은 없습니다. 보조 사역입니다.
왜 그러느냐?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역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라는 종교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 또 교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 또 교회활동에 헌신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 사역이 무엇인지 나와 있습니다. 왜 성령을 받지 않으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아니면 진정한 사역을 할 수 없느냐?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며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이것이 사역입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고 익숙하게 하고 교회 안에 끌어들이고 헌신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사역은 사람을 고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 사람입니다. 사람을 고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적 치유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역은 그 사람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을 고치고 바꿔놓고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아 쓴 뿌리가 있고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고 이기적이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사랑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역은 사람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사역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까? 설교가 사람을 바꿔놓습니까? 못 바꿔놓습니다. 성경 지식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까? 못 바꿔놓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사용하지만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 성령께서 사용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그 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면 사역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사역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죄에 매여 있는 사람들, 악한 영에 매여 있는 사람들, 어떤 습관에 매여 있는 사람들, 포로 된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갇힌 자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역입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여호와의 은혜의 해는 희년입니다.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역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을 찾게 만들고 하나님을 주는 것이 사역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하지 않는데 내게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줄 수 있습니까? 내 뱃속에서 성령이 생수의 강처럼 흘러 넘쳐야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입니다. 또 마음의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몸만 쫓겨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도 천국이 쫓겨났습니다. 마음에서도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역은 교회 다니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마음속에 천국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또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거룩을 회복시키고 자유를 회복시키는 것이 사역입니다. 또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는데 저주에서 가난에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 되고 위에 올라가고 꾸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사역은 병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역인 것입니다. 이것을 에덴동산에서 다 잃어버렸는데 이것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역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게 만들고 성령의 은사들을 받게 만드는 것이 사역입니다. 사역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성경을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사역은 바로 예수님이 모본을 보이신 이런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고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사역이 제대로 되고 있나 안 되나? 이 목회가 지금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가, 안 되고 있는 것인가? 겉모습만 보고 모릅니다. 성경을 잘 알고 교회 열심히 나오고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예의 바른 것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도, 불교에서도, 유교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는 모릅니다. 사역이 제대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마음이 변화됐나, 안 됐나? 그것을 봐야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다듬어지고 세련됐나? 이런 것 말고 그 사람의 마음이 변화됐나? 사람의 마음이 치유 받고 그 사람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회복이 되었는가? 성도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회복이 되었는가? 성도들이 자유함을 얻었는가? 눌린 데서 갇힌 데서 포로 된 데에서 성도들이 자유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성도들에게 회복이 일어났는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회복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하셨는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속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임하는가? 또 마음의 천국이 회복이 되고 성령 충만이 회복이 되었는가? 또 사람이 가난에서 자유하게 되고 질병에서 자유하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회복이 됐는가? 그것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사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것 가지고는 모릅니다. 모이는 사람의 성도 수, 나오는 헌금, 얼마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교회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석하고 또 사람들이 얼마나 교회 일에 헌신하는가? 이런 가지고는 모릅니다. 이것 가지고 사역을 달아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 사역을 달아 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2절 후반 절에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기쁨을 회복했는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마음속에 기쁨이 없으면 그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이 살아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찬양하는 것을 보면 목회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 가운데에는 찬양을 부르면 찬양을 장송곡 분위기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경건의 모양을 경건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것, 근엄한 것을 경건으로 착각하는데 경건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경건은 능력이고 경건은 생명입니다. 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지만 의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경건은 기쁨입니다. 정말 기쁨이 있으면 기뻐하고 뛰고 소리 지르고 찬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 조용하고 근엄한 것을 강조하고 유도하는 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종교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기독교의 사역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내 마음에 자유함이 있으면 예배 분위기도, 찬양도, 기도도 자유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우리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다 발휘해서 자연스럽게 성령의 은혜 속에서 다 발휘해서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고 반응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들 마음속에 기쁨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사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늘 회개한다하고 경건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울 수도 있고 춤출 수도 있지만 늘 울기만 한다면 그것은 지옥지점이지 어떻게 천국지점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울 때도 있고 춤출 때도 있고 두 가지를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죄 때문에, 부족 때문에, 영혼 때문에 울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울 때는 울고 또 기뻐할 때는 기뻐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사역을 달아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들이 결국은 의의 나무로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사역이 일어나야 합니다. 늘 우리만 좋고 우리만 춤추고 우리만 기뻐하고 우리만 은혜 받고 우리만 무엇을 체험하고 영혼들은 하나도 구원하지 않고 세상은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에 영향력은 하나도 끼치지 못하고 늘 나만 좋고, 그것은 짐승을 키울 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짐승은 늘 먹고 자기만 살찌웁니다. 우리는 의의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역의 열매입니다.
진정한 사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시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오셨는데 그분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노력과 열심으로 사역하실 수 없었습니다. 목수 일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역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실 때까지 예수님은 하실 수 없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사복음서에 나오는 진정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목사들은 예수님보다 너무 잘났습니다. 신학대학 나오면 예수님보다 더 똑똑해집니다. 그 잘난 미국, 영국은 무엇인지 거기 가서 신학 박사 학위 받아오면 그때부터는 성령님보다도 자기가 가진 지식이 더 중요하고, 성령님보다도 자기가 가진 그 잘난 지식을 더 의지합니다. 늘 입에서 토해내는 것은 지식뿐이고 성령의 기름부음은 없습니다. 신학대학교 총장들이나 교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안 그런 분들도 있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은 가뭄에 마른 시내처럼 말라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늘 지식, 지식. 늘 학설, 이론, 늘 말장난. 그것 가지고 신학생들을 키우고 거기서 배출된 신학생들이 계속 지적인 목회를 하고, 그러니까 교회는 세워지고 결신하는 사람은 생기고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만 정말 예수님이 하셨던 그 사역이 교회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까? 정말 마음이 상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고침을 받고 있습니까? 정말 포로 된 자가 자유하게 되고 있습니까? 정말 갇힌 자들이 놓임을 받고 있습니까? 정말 저들이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고 찬송의 옷을 입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정말 신자들이 의의 나무로 변화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제대로 안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해서 일부에게는 일어나지만 전반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 일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냥 성경 가르치고, 그냥 예배하고, 그냥 심방하고, 그냥 모여서 기도 좀 하고, 그냥 봉사하는 것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예수님께 임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하셨던 진정한 사역들이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으니까 성도들이 목이 말라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역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수시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기도를 합니까? 그러나 그분이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밤이 맟도록 기도하시고 또는 금식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예수님도 사역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성령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셔야 진정한 사역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종교 활동이 아니라 진짜 영으로 생명을 얻고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내가 왔다.”(요 10:10)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들의 착각과 교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보다 잘난 것으로 의도적으로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제로 그런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 예수님보다 자기가 더 잘난 것으로, 예수님께 직접 교육 받은 사도들보다 자기가 더 잘난 것으로, ‘내가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나왔기 때문에, 내가 미국, 영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 왔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보다 자기가 더 잘난 줄로 착각하고, 박사 학위에 속고 지식에 속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무언가 다른 목사들보다 나은 설교를 할 수 있고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이런 속임수, 이런 것 때문에 교회가 이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 인류 중에 3%밖에 천국 가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도 천국 가는 사람들보다 지옥 가는 사람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런 교회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진정한 사역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3년 동안 직접 개인지도를 받고 교습을 받고 훈련을 받은 사도들까지도, 주님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더군다나 사도들에게는 병 고치는 능력, 귀신 쫓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말씀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도들에게까지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너희들, 그것 가지고 사역은 어림도 없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너희가 복음을 전해야겠지만, 그래서 내가 너희를 불렀지만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고 이 성에 유해라. 내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받은 그 성령을 받기 전까지 너희가 아는 가르침 받은 것으로, 너희가 가진 그 은사로 사역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 입힐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진정으로 낮아지고 진정으로 겸손해지고 인간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심는 이나 물주는 이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는 하나님뿐”(고전 3:7)인 줄 알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 얼마나 많은 모조 사역이 판치고 있습니까? 요즘 일부 대형교회들의 사역도 그것이 진정한 사역입니까? 흉내 내는 모조 사역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역은 유명한 설교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역은 어떤 대단한 은사자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사역은 오직 주님이 하실 수 있고, 진정한 사역은 오직 성령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이시지만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바로 주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병 고치는 은사와 귀신 쫓는 권세를 받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사역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사역은 은사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된다는 것과 은사와는 다른 것입니다. 사역은 은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사역은 하나님으로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다 해서 사역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아가 죽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 성령님이 인격적으로 나를 통해서 흘러가야 합니다. 그 성령님이 나를 통해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가야 합니다. 그 성령님이 실제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역이 가능합니다. 제가 볼 때 제가 보조를 잘못 맞춰서 우리 교회 안에서 외롭게 주님께서 사역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비로 제가 성도들을 잘 만나서 여러분들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정한 사역을 부분적이긴 하지만 불완전하긴 하지만, 이 교회 안에서 이루고 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더 완전한 주님의 사역이 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나와 있고 예수님께서 사복음서를 통해서 펼쳤던 그런 완전한 사역, 사도들이 사도행전에서 펼쳤던 그런 완전한 사역이, 종교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이 교회 안에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 안에 열방의 교회들 안에 이제는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진정한 사역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수많은 서기관들, 율법사들, 바리새인들이 가르쳤지만 예수님이 그것을 진정한 사역으로 인정하셨습니까? 오히려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해라. 저희들의 가르침을 조심해라.”(마 16:6) 그것을 누룩으로 보셨습니다. 퍼트려서는 안 될 잘못된 가르침을 퍼트리고 영혼들을 속이고 영혼들을 미혹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 안수만 받은 모조 목사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조 교회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 있고 하나님은 없는 즉 성령은 없는, 성령의 임재라고는 아무리 느껴보려고 해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그런 교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조 사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 명이 모이든, 만 명이 모이든, 십만 명이 모이든 하나님의 운행하심과 하나님의 손길과 역사가 없는 그런 모조 사역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조 목사, 모조 교회, 모조 사역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사역을 일으켜야 합니다. 한국 교회와 열방의 교회 안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고 진정한 교회들이 일어나도록, 또 진정한 사역들이 일어나고 퍼져나가도록 우리가 사모하고 기도해야 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대로 우리의 분량대로 이 일에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은혜에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사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사역은 인간 예수님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인간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 사역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인간 예수님이 하실 수 없었다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 신학박사, 어떤 신학대학의 총장이든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사역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위하여 성취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비워서 드리고 자아를 죽이고 주님을 모셔 드리는 자들에게 임하셔서 그를 통로로 삼아서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역은 단순히 성경을 가르치고 기독교에 귀화시키고 또는 교회 생활에 가깝게 끌어들이고 거기에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교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사역은 상한 마음을 고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역은 포로 된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갇힌 자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영적인 것, 경제적인 것, 건강,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역입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이 교회에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진정한 사역이 일어나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것을 행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영광을 취하실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 교회 안에서 운행하시고 역사하시고 진정한 사역들을 일으키시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부족한 종이 너무나 방해가 되고 아버지 하나님께 너무나 합당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시기를 원하오며,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셔서 부족한 종과 하나님의 모든 종들이 주님께 보조를 맞추고 주님과 동역하게 하시고, 더 완전한 하나님의 사역들이 이 교회 안에서 불일듯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한국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열방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진정한 사역, 예수님의 사역, 사도들의 사역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 안에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진정한 사역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래서 사모하며 모이는 사랑하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이 사랑하시고 주님이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그 영혼들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옵소서. 그들이 의의 나무로 세워지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들이 일어나며 많은 열매가 맺혀지며 도시와 나라와 열방이 변화 받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다음글 | 변화를 감지하는 것(Recognizing Chance) - 래리 랜돌프 | 묘지니 | 2009-04-25 12:53:00 |
|---|---|---|---|
| 이전글 | 말씀의 혁명적 권능 | 묘지니 | 2009-04-20 23:0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