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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인 이단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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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엉터리 이단 사냥꾼 박형택 목사의 음해성 글에 대한 반론!

겸손 |

2009-04-24 14:03:00 |

조회: 185

  엉터리 이단 사냥꾼 박형택 목사의 음해성 글에 대한 반론!

 

 

 

  오늘 아침 누군가가 제게 박형택 목사가 쓴 인터넷 기사를 메일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를 위하는 마음은 압니다만 죄송하지만 저는 이런 쓰레기 같은 글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음해성 기사들로 저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기사가 나든 저에게 그 기사를 메일로 보내주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에 인터넷에 “한국 교회는 더 이상 몰상식한 이단사냥꾼들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이제라도 그들에게 철퇴를 내려야 합니다.”라는 주제의 글을 올린 일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에 총회에 갔더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글들과 이단사냥꾼들의 월간지에 나오는 자료들을 한 무더기 준비해두었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그것은 '쓰레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런 글을 쓰레기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단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을 사용하지만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하여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사냥꾼들은 다른 목사의 책과 설교를 상대로 정확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 이단사냥꾼을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와 ㅇㄷ", "교회와 ㅅㅇ", "현대ㅈㄱ"는 물론이요 총신대 교수를 지냈다는 권모 목사와 합신측 이단상담소장이며 한기총이대위 전문위원이라는 박모 목사, 그리고 '양ㅁㄹ 마을', 'ㅇㅅ 그리스도의 향기', '숭ㅅㄹ', '선지자와 ㅇㅇ' 카페(순복음**교회 정**목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런 파렴치한 일들을 행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글을 읽고 처음에는 분노했으나 이제는 어이가 없어서 웃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예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읽을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 같은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히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의 글을 읽고 마음에 평정을 찾았고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한기총 소속이면 그래도 좀 다를 줄 알았거든요. 적어도 공격을 해도 아주 논리적이고 상대하기 힘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이런 어리석고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자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다니... 이거야 원 싱거워서... 이런 무지한 자들과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내가 바보다' 라는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한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이 바로 박형택 목사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에 대해서 쓴 글은 한 마디로 수준이하의 글이고 무지와 음해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비약이 심하고 무지와 편견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 형편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성하기는커녕 이번에 뉴스 파워에 “자칭 사도와 타칭 이단사냥꾼이 된 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반박의 글을 올리려 합니다.

 

 

  1. 박형택 목사의 글 : <요한 계시록 2장을 보면 에베소교회에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나오고 서머나 교회에 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나온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 정체를 드러낸 사실을 칭찬하시며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정체가 바로 “사단의 회”라는 것을 밝혀 주시며 그들(마귀)의 시험에 대처할 것을 알려 주신다.

  자기 스스로를 일컬어 사도니 유대인이니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사도가 되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싶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되니까 거짓과 위선을 행하며 사도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자칭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정체를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위장하여 신뢰감을 줌으로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주님께서 일곱교회의 사자들에게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것은 말세에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 교회를 혼란케 할 것을 미리 알려 주시므로 경계하시기 위함이다. 더 이상 이러한 자들에게 어리석게 속지 말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7:15에서도 주님께서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시면서 거짓선지자들의 행동 특성을 설명하셨다. 그들은 스스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라고 경계하셨다.

  요즈음 신사도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칭 사도라 하고 자칭 선지자라 하면서 과거 예수님 당시 초대교회의 기초가 되었던 열두 사도와 바울사도가 받았던 영감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영감을 받은 자요 같은 사도적 권위를 가진 자로 자처하고 있다. 그들은 사도적 교회를 세워나갈 것을 주장하며 선지자 노릇을 하면서 예언을 하고 있다. 주로 예언이 하나님이 행하실 놀라운 일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개교회나 개인의 신후사에 대한 예언을 해주고 또한 엘리사시대 처럼 예언자 학교를 세워 예언을 가르치며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다.

  누가 그들을 사도로 세웠으며 누가 그들을 선지자로 세웠는가? 주님이 세우셨는가?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칭 사도요 자칭 선지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반론 : 나는 자칭 사도가 아닙니다. 하이디 베이커, 밥 존스, 예수 파담, 신디 제이콥스, 빌 해몬, 질 오스틴, 슈프레자 싯홀, 마크 듀퐁, 제프 젠슨, 샨 볼츠, 라이언 와이어트, 제레미 넬슨, 마크 비써, 사무엘 리... 등을 위시해서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제적인 하나님의 종들이 내가 사도로 부르심 받은 것을 알아보았고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국내외의 수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목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듯이 사도가 사도라고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며, 더우기 천국에서는 사도나 선지자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가장 닮은 사람이 큰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도냐 아니냐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닮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박형택 목사는 특히 “요즈음 신사도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칭 사도라 하고 자칭 선지자라 하면서 과거 예수님 당시 초대교회의 기초가 되었던 열두 사도와 바울사도가 받았던 영감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영감을 받은 자요 같은 사도적 권위를 가진 자로 자처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인정하며 깊이 존경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사도를 네 가지 등급으로 구분합니다. 그것을 제 책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소개한 것을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많은 목사님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오늘날은 절대 사도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 중 누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금은 사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도의 자격이 아니라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양의 12사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에 관해 묘사하면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21:13-14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이처럼 어린양 12사도는 특별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가 어린양의 12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든 사도의 자격이라면 바울도 사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히 사도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이지 모든 사도의 자격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어린양의 12사도와 같은 사도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사도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4장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사도와 선지자가 모두 성경의 완성을 위해 세움 받은 자는 아닙니다. 이것은 사도 중에도 성경을 단 한 권도 기록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도가 아닌데도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도의 사명이 성경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성도는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봉사의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이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즉 사도의 역할이 아직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의 직분이 1세기에, 혹은 교회사의 중간에 끝날 수 있겠습니까?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로, 어떤 이들은 교사로 주셨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그래요, 하지만 이런 사역들은 지금은 없어져버렸어요. 오늘날 남아있는 사역들은 교사와 목사와 전도자뿐이에요. 오늘날 사도나 선지자는 없어요.’ 그러나 바울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로, 어떤 이들은 교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일과 세우는 일에 부르셨다고 했습니다(엡 4:11-12). 모든 성도가 이미 온전케 되었습니까?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는 사역이 있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아직도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이 모든 사역들과 섬기는 은사들은 지금도 역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도의 직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교회를 위해 사도들을 보내고 계시며 지금도 진정한 사도들이 존재합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존재할 것입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쯤 제가 춘천에서 목회하는 저의 동기 목사님의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에게 지금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학교 시절 항상 1등을 도맡아했던 그 목사님이 성경을 펴서 다음 부분을 읽어주었습니다.

 

  엡 3:4-5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러면서 “이 구절에는 당시의 사도와 선지자들에게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시해준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도와 선지자는 그 당시만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과연 장학생답게 예리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 지적에 대해서 올바른 답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 대한 의문을 마음에 묻어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힘써 연구한다고 항상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출판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서 비로소 그 해답을 발견했습니다. 1987년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예수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교회 안에 친히 확립하신 사역의 은사들에 대해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는 네 가지의 등급 또는 서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서열이나 등급 안에서, 사도들은 서로 다른 분량의 기름 부으심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의 첫 번째 서열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도뿐 아니라 각 사역의 은사에서 홀로 한 서열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한량없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요 3:34). 예수님이 가지셨던 한량없는 성령의 기름부음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두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어린양의 사도들입니다. 즉 맛디아를 포함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인데 사도 바울도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비토대적인 사도들입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사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중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에 대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는 바로 바울이 속해 있는 사도의 등급입니다. 이 서열에 들어 있는 사도들의 특징은 그들도 역시 신약성경의 교리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1987년 방문에서 예수님은 또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대적인 사도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이 등급 또는 수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신약성경의 교리적 토대를 놓기 위해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와 선지자들은 토대적인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간주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의 복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토대적인 신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인 이 세 번째 서열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썼으며,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한 계시를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성령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엡 3:4-5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바울은 복음의 계시를 초기 신약 성도들에게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기초를 놓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신약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놓여진 토대 위에 쌓아올리기만 합니다.

  엡 2: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신약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놓은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토대 위에 쌓여져가야 합니다.

  고전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 라.’

  아무도 오늘날 복음의 기초에 무언가를 더하기 위한 부가적인 계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새 언약의 계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바울은, 이미 놓여진 기초 위에 우리가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고전 3:10). 우리는 그것에 뭔가를 더할 수도 뭔가를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방문에서 예수님은 저에게 매우 재미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에는 기초를 놓는 사도들도 없고, 기초를 놓는 선지자들도 없단다. 오늘날에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동일한 수준 또는 권위와 같은 서열, 또는 같은 정도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아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서열에 속해 있지 않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이 글은 오래도록 품고 있었던 에베소서 3장 4-5절에 관한 저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해주었습니다. 이제는 그 구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래서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해긴 목사님의 말대로, 오늘날 토대적인 사도들인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서열의 사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들 네 번째 서열의 사도들에 관해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비록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 등급의 사도와 선지자는 없을지라도 네 번째 서열의 사도는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어느 정도 사도적 직임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초대교회의 사도들보다는 더 낮은 서열에 속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네 번째 서열의 사도들입니다...

  고대 헬라어에서 ‘사도’라는 말은 명사로서 위임받은 사자, 또는 대사를 의미했습니다.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보냄 받은 사람은 사도라고 불리워졌는데, 왜냐하면 그는 어떤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특별히 보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보냄 받은 자들로서 어느 정도 사도적 직임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어떤 영적인 방향을 따라, 특정한 메시지나 사역을 가져오기 위해 성령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네 번째 서열에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주어서 교회에 보내시는데, 어떤 성경적인 계보를 따라 믿는 자들을 분발시키려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람은 단지 그 일을 행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네 번째 서열의 사도들을 특별히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에 어떤 메시지나 사역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스미스 위글스워스를 ‘믿음의 사도’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보냄 받은 자’로 부르신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단지 한 가지 특별한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보냄 받은 사도들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초대 교회 때에는 토대적인 사도와 비토대적인 사도, 두 종류의 사도가 존재했습니다. 바울은 토대적인 사도였고, 바나바는 비토대적인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토대적인 사도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토대적인 사도들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박형택 목사의 “요즈음 신사도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칭 사도라 하고 자칭 선지자라 하면서 과거 예수님 당시 초대 교회의 기초가 되었던 열두 사도와 바울사도가 받았던 영감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영감을 받은 자요 같은 사도적 권위를 가진 자로 자처하고 있다.”는 말은 명백한 음해요 거짓말입니다. 그는 말을 부풀리고 정직하게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2. 박형택 목사의 글 :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포문을 열고 “이단감별사”니 “이단사냥꾼”이니 비아냥거리면서 <가짜가 진짜를 핍박한다>느니 “가짜 정통이 진짜 정통 행세를 한다느니”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의 후예”니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니 하면서 공격하는 것을 본다.

더군다나 이단 옹호자들이나 이단에 기생하는 자들은 이때다 싶어 맞장구를 치면서 이단연구가들을 이단사냥꾼 혹은 이단 감별사니 하면서 한국교회에 해악적인 존재로 매도하고 있음을 본다.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이단문제를 연구하면서 이단 비판을 해왔지만 참다 못하여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불신자들에게는 한국교회내의 분쟁이라고 비처져서 비난을 받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것은 “마녀를 사냥하듯 멀쩡한 사람을 이단을 만드는 이단사냥꾼”으로 이단연구가들을 매도하는 자들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부득불 필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렇게 이단과 사이비 문제로 혼란한 때는 한국교회에 없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숨어서 포교를 하고 전도를 하던 이단들이 이제는 드러내 놓고 적극적인 태도로 포교할 뿐 아니라 교회를 향하여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그 만큼 세력이 커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단 세력이 횡행하는 것을 말세의 현상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세속화가 이단이 왕성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매도기사를 인용하면 “이단 감별사나 이단 사냥꾼 중에 제대로 사역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물어뜯기 좋아하고 독을 주입시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죽이기 좋아하는 뱀들이요 독사의 새끼들일 뿐이다. 사악하고 잔인한 이단 사냥꾼들의 속성을 보라며 기록한 내용이다”

 

  1) 이단사냥꾼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방해한다.

 

  2) 이단사냥꾼은 정의의 투사로 교묘하게 가장하여 이권을 추구한다.

 

  3) 이단사냥꾼은 인격살해를 서슴없이 자행한다.

 

  4) 이단사냥꾼은 남의 약점을 교묘히 왜곡과장하여 이용한다.

 

  5) 이단사냥꾼은 지능적인 거짓말로 비방한다.

 

  6) 이단사냥꾼은 상대방의 고통에 희열과 승리감을 느끼는 싸이코이다.

 

  7) 이단사냥꾼은 지킬-하이드 증후군에 속한 이중적인 인간성을 가진 자이다...

 

  변승우목사의 책 <가짜는 진짜를 핍박한다>,<정통의 탈을 쓴 짝퉁 기독교>, <사도와 선지자들을 잡는 위조 영분별>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이단연구가들을 마녀사냥하는 이단사냥꾼을 몰고 거짓말쟁이요 사탄에게 속한자요 정통으로 위장한 자요 사탄처럼 참소하는 자로 매도하면서 자신이 목회하는 큰 믿음교회가 진짜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변승우목사가 한국교회를 향한 말가운데 새겨들어야 할 말도 있었으나 위의 책들은 결국 자신을 비판하는 자는 가짜요 자기가 진짜라는 내용을 피력하기 위하여 쓴 책이라고 밖에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여러 사람들의 환상이나 글을 인용하고 성경을 여기서 저기서 가져다 인용하면서 자기입장을 변호하며 이단연구가들을 향하여 공격적인 글을 썼지만 안타깝게도 자기변명을 위한 발버둥이요 인용한 성경과 내용들이 견강부회라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반론 : 이단 사냥꾼들에 대한 저의 주장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지 주장이 아니고 저는 이 일에 증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이단 사냥꾼들은 그렇게 악질적인 자들입니다.

  한편, 박형택 목사는 내가 자기변명을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오히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말씀드리지요. 박형택 목사를 포함하여 한기총에서 그동안 한기총을 등에 업고 종교 마피아 노릇을 일삼던 이단 사냥꾼들 4인방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 신문사의 사장의 말에 의하면(그 사장이 직접 저를 방문해서 해 준 말들이고 그 이후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거의 10여년 간 한기총을 등에 업고 악을 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기총도 이들이 하는 일이 잘못된 일인 것을 알고 얼마 전 4명 모두를 한기총에서 퇴출시켰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박형택 목사입니다. 그래서 전에 저를 음해하는 글을 쓸 때는 뒤에 한기총 이단상담소장이라는 직함을 붙였으나 지금은 그 직함을 못 쓰고 있는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입니다. 저는 모 신문사의 기자로부터 한장총에서도 이들을 쫓아낼 계획이라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박형택 목사는 한장총에서도 곧 쫓겨날 것입니다. 당연히 합신 교단도 이런 저질 이단 사냥꾼은 교단의 이대위에서 퇴출해야 합니다. 아니면 합신 교단의 불명예가 될 것입니다.

 

 

  3. 박형택 목사의 글 :<사도와 선지자가 지금도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계시가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와 지금도 사도가 있고 선지자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사람들이 현재도 사도의 존재나 선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가장 많은 인용을 하고 있는 성경이 에베소서 4:11-13 이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바울사도가 에베소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다양한 직분을 주셨는데 그 직분은 성도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직분들은 당시 교회에 존재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교회안에 없는 직분을 사도바울이 말씀했을 리 없다. .

 

  문제는 초대교회 당시에 있었던 직분이 지금도 있는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초대교회처럼 있어야 하지 않은가? . 아니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이후로 사도가 계속해서 존재해야 한다면 특별한 위치의 12사도의 존재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주님은 더 이상의 사도는 세우시지 않으셨다.

 

  지금까지 개혁교회는 사도와 선지자 직분이 없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없다.>

 

  반론 : 보십시오. 박형택 목사는 지금은 사도와 선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성경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신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의 전통이 기준이 아닌 것처럼 개신교의 전통도 기준이 아닙니다.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사도나 선지자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성경에 의해 입증된 명백한 진리입니다. 이것은 제가 교단 총회에서 답변한 것을 열린 마음으로 읽어보면 즉각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변승우 목사님은 신사도적 계승을 따르고 있습니까? 큰믿음교회도 신사도적 계승을 계승하고 있습니까?

 

  저는 1세기에 성령의 은사와 사도직이 끝났다고 보지 않으며 지금도 사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1-22)

 

  이것은 모든 사도의 자격이 아니라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입니다. 만약 이것이 모든 사도의 자격이라면 바울도 사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살전 2:6)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1장 1절에 나타납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에서 사도의 계보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이 세 가지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성도는 온전케 되어야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오늘날도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 오랄 로버츠, 로렌 커닝햄, 케네스 해긴, 릭 조이너, 존 비비어, 밥 존스, 마이크 비클, 베니 힌, 피터 와그너, 신디 제이콥스, 체안, 마크 듀퐁,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를 위시해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금도 사도나 선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가 무지한 자요, 눈 멀고 시대에 뒤떨어진 자일 뿐입니다.

 

 

  4. 박형택 목사의 글 :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는 때가 있었다. 첫째가 출애굽 당시의 상황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계시이고, 두 번째가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시대와 귀환 전후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졌고, 세 번째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과 초대교회 시대를 중심으로 주어졌다. 계시가 주어질 때는 구속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지 않는 암흑시대도 있었다. 계시가 없을 때 선지자도 없었다. 그래서 성경은 구속사라 할 수 있다. 구속과 관계없는 계시는 성경에 기록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성경은 완전한 계시이며 더 이상 계시가 필요없는 완전성과 충족성을 가지고 있다. 사도요한은 마지작 계시로서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예언의 말씀을 제하지 못한다” 고 선언하고 있다. 물론 이 말씀이 성경 전체에 대한 말씀이냐 아니면 요한 계시록 자체에 대한 말씀이냐 논란이 있지만 개혁교회는 요한 계시록을 성경의 계시를 마감하는 마지막 계시로 믿는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이외에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 만일 성경 이외에 다른 계시를 받았다거나 다른 계시를 주장하면 이단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이 쓴 글이나 책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고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문제는 계시라고 주장하는 내용가운데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성경해석을 서로 틀리게 한다는 것이다. 누가 진짜인가? 하나님의 계시라면 같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여호와 증인의 럿셀이 받은 계시나 몰몬교의 몰몬이 받은 계시나 안식교의 엘렌지 화잇이 받은 계시는 무엇인가? 통일교의 문선명이 받은 계시는 무엇이고 전도관의 박태선, 안상홍증인회의 안상홍, 신천지 이만희등 수많은 이단들이 받았다는 계시는 무엇인가? 오직 그들은 자신의 체험과 생각. 자신의 환상을 계시라고 주장했다가 이단이 되었다.

  성경 이외에 자기가 받은 계시를 성경과 같은 수준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계시가 없다면 선지자가 있을 이유가 없다. 또 이미 교회의 기초로서 12사도가 있다면 더 이상의 사도가 있을 이유가 없다. 사도는 주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도한 사람들로서 사도의 사명을 수여받은 중요한 직분이다. 물론 사도바울의 경우도 있지만.

  지금도 성령께서는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도의 직분과 선지자의 직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도와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가 사도적 전승이나 선지자적 기능은 계속된다고 본다. 부름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는 사도적 기능과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메세지를 선포하는 선지자적 기능을 교회가 하는 것이다.>

 

  반론 : 박형택 목사와 대부분의 이단사냥꾼들은 은사중단론자입니다. 그 증거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는 때가 있었다. 첫째가 출애굽 당시의 상황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계시이고, 두 번째가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시대와 귀환 전후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졌고, 세 번째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과 초대교회 시대를 중심으로 주어졌다. 계시가 주어질 때는 구속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시대였다.” 이것은 벤자민 워필드와 같은 은사중단론자들의 주장입니다.

  전에 우리 교회를 음해하는 기사를 쓴 “교회와 이단” 기자에게 왜 우리 교회가 이단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경절적으로 “예언하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은사중단론이라는 신학사상에 빠져서 직통계시와 예언의 은사 차이조차도 분별할 식별력이 없는 무지한 자들입니다. 이번에 총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질문을 받고 그러면 특별계시에 예언도 포함됩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예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큰믿음교회가 아니라 대다수 이단사냥꾼들의 잣대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구시대적인 것입니다. 이제는 제발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좀 배우십시오. 그래서 잘못된 기준과 사상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 이외에 자기가 받은 계시를 성경과 같은 수준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적어도 내 이름까지 앞에서 거명해 놓고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우리는 절대 우리나 누가 받는 계시도 성경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1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서 내가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이단 사냥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항상 이렇게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가 믿거나 주장하고 있지 않은 내용을 마치 우리가 그렇게 믿거나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말로 매도하고 음해합니다. 이것이 늘 당신들이 하는 추잡한 일입니다. 목사가 왜 이렇게 양심적이지 못하고 추잡한 거짓말을 일삼습니까? 제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5. 박형택 목사의 글 :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빌립의 딸 4명을 예언하는 자라 했고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바울사도가 예루살렘 방문할 때 결박당하여 이방인에게 넘겨진다고 예언을 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그들의 예언을 듣고 피하거나 방문을 보류하지 않았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한 예언인데도 왜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 방문하는데 흔들림이 없었는가? 왜 거기에 대해 대책을 세우거나 처방을 하지 않았는가? 예언을 듣고 거기에 따라 방책을 세우는 것이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후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사전에 미리 방책을 세우고자 함이다. 이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개인의 신후사에 대하여 예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신명기 18장 9절에서 14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이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주로 예언기도룰 한다는 사람들은 개인의 신후사를 점을 쳐준다. 이것은 하나님앞에 가증한 일이다. 이러한 예언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곧 직통계시이다. 자신이 하는 말은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의 모든 이단들이 이러한 직통계시 방법을 사용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사도가 있다, 선지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직통계시를 빙자한 계시를 받는다거나 예언을 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이단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반론 : 박형택 목사의 성경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박형택 목사는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빌립의 딸 4명을 예언하는 자라 했고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바울사도가 예루살렘 방문할 때 결박당하여 이방인에게 넘겨진다고 예언을 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그들의 예언을 듣고 피하거나 방문을 보류하지 않았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한 예언인데도 왜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 방문하는데 흔들림이 없었는가? 왜 거기에 대해 대책을 세우거나 처방을 하지 않았는가? 예언을 듣고 거기에 따라 방책을 세우는 것이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후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사전에 미리 방책을 세우고자 함이다. 이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개인의 신후사에 대하여 예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행위이다.” 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바울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한 사람은 바로 바울입니다. 그리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라고 쓴 사람도 바로 바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언에 대해 그렇게 반응했을 리가 있습니까? 그 말씀을 봅시다.

 

  행 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여기서 아가보 선지자가 실제로 예언한 부분은 11절입니다.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이 예언은 정확한 것이고 바울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이 예언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이 바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부르심과 사명 중의 하나는 바로 이렇게 결박당하는 것을 통해 변론하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행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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