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나오자마자 엎어놓고 “죽일래, 살릴래?”…
탈북 여인이 털어놓는 北보위부원의 만행
“언니가 ‘딸이다'라면서 이빨로 탯줄을 잘랐다.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정원에 해당) 사람이 와서 아이를 엎어놓더니, 애를 죽일지 살릴지 물었다. 못 죽인다고 하자 구둣발이 날아왔고 어금니가 깨졌다. 애는 몇 시간 울었고, 나도 정신을 잃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외신 기자회견 ‘재중 탈북난민 문제 해결방안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에서 이명숙(가명·44)씨가 탈북했다가 강제 북송(北送)됐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2005년 11월 29일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개천 관리소. 이날 아침 일하러 가던 이씨는 천천히 걷는다며 보위부원에게 엉덩이를 맞고 넘어져 양수가 터졌다. 관리소 밖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서는 ‘오늘 안 낳으면 죽인다’고 했다.
산통 끝에 자정 직전 아이를 낳았다. 그 직후, 이씨는 기자회견에서 토로한 것처럼 더할 수 없이 험한 꼴을 당한 것이다.
엎어진 채 울고 또 울던 아이는 결국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죽었다. 하지만 이씨는 오전 3시 관리소로 돌아와서 오전 5시 일어나 다시 일하러 나가야 했다. 피가 계속 흘러서 양말로 막았다. 주변 사람들이 몰래 담요를 잘라서 줬다.
여군으로 북한군 중대장까지 지냈던 이씨는 “군 내 성폭행이 많고, 남자들이 여자들을 많이 때린다”고 했다. 1996년 12년 군 생활을 정리한 이씨는 장사를 했다. 같이 장사하던 사람이 중국 가면 부자된다고 해서 2003년 12월 탈북했다. 8000위안(약 140만원)에 40대 중반의 조선족 장애인에게 팔려갔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이씨를 때렸다. 집을 떠난 이씨는 심양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 장사하며 살았다.
2005년 8월 밀고를 받은 중국 공안이 집에 들이닥쳤다. 임신 7개월이었던 이씨는 지역 공안국 구치장을 거쳐, 그날 바로 중국 군대로 끌려갔다. 군인들은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키면서 때렸다. 마음에 드는 여성은 데리고 나가 놀았다. 3일간 조사받고 북한 자강도 만포 보위부로 호송됐다.
보위부에선 옷부터 벗겼다. 식당 아줌마에게 돈이 있는지 자궁을 검사하라고 시켰다. 아줌마는 장갑도 없이 씻지 않은 손을 그곳에 집어넣었다. 임산부도, 세 살이 안 된 여자 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전과 오후, 두 번씩 조사를 받을 때면 몽둥이가 날라왔다. 조사가 끝나면 배추심기 등 밭일도 했다. 양강도 보위부로 옮겨진 이씨는 비판서를 썼다. 틀릴 때마다 막대기나 구둣발로 머리를 맞았다. 잠을 재우지 않고 종일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있게도 했다.
이씨는 재판도 없이 6년형을 받고 개천관리소로 갔다. 1반에 18~20명씩 19개 반이 있었는데 19반에는 병에 걸린 사람들만 있었다. 죽으면 창고에 눕혀 놓았다가, 시체가 모이면 들것에 실어 아무 데나 묻었다. 이씨는 “(창고에서) 쥐가 사람을 다 뜯어먹는다”면서 “못 먹어 죽고, 맞아서 죽고, 거의 매일 죽어나갔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6년 4월 대못으로 수용소 벽을 뚫어 탈출, 다시 탈북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2008년 12월 한국으로 들어왔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2011.11.02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