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
2010-10-08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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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취소”를 본받아야
고대 기독교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자신이 쓴 93권의 책과 276편의 편지와 1,000편의 설교를 검열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성나게(기분 상하게) 하도록 잘못 말했는지를 자기 자신을 비판하였으며, 잘못된 내용들을 겸손하게 인정하여 「취소」(Retractions)란 책을 썼다.
어거스틴은 초기에 사도시대 이후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기적 종료 이론의 인상을 풍기는 말을 했는데, 이제 그 말은 취소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신의 도시」와 「취소」에서 사도시대 이후에도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극명하게 예증하고 있다.
그는 「취소」 2.7에서 “과거에 내가 한 말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란시의 순교자들의 유골들이 있는 근처에서 소경이 보게 된 것을 나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 시대에만도 기적이 너무나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기적을 다 헤아릴 수도 없으며, 또한 우리가 아는 기적을 다 설명할 수도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기적종료 이론의 인상을 풍긴 말을 취소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의 도시」 22.8에서 사도시대 이후에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실례를 들면서 “세상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잘못까지도 진솔하게 고백하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우리도 우리의 잘못을 인정할 때—그것이 신학 사상에 관한 것이던, 자신의 윤리적인 행동이던 간에—우리의 인격이 손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대 사람들에게 돋보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이단사냥꾼이든 이단사냥꾼의 공격의 대상이 된 자들이든 어거스틴처럼, 자신들의 잘못된 사상을 진솔하게 “취소”한다면 정말 한국 교회가 단결하여 다시 부흥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략>
정통 유대교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도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가 이단이다.
정통 카톨릭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도 그리스도 정교를 포함한 모든 개혁 교회가 이단이다.
정통 그리스 정교에서 보면 아직까지도 자신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교가 이단이다.
정통 개혁 교회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도 가톨릭을 포함한 구세대 종교가 이단이다.
정통 장로교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 이외의 교단은 모두 이단이요 사이비이다.
정통 통합측, 합동측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만이 장자 교단이요 나머지는 사이비요, 이단이다.
이단사냥꾼(이단감별사)은 인격살해를 서슴없이 한다
오늘날의 이단사냥꾼(heresy hunter)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하다. 이단사냥꾼은 전통과 정통을 앞세워 공격의 대상이 결정되면 그 대상의 이름을 이단성이 있는 자로 교계 신문과 잡지에 거론한다. 그 다음엔 실제 이단상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단으로 정죄된 자에게는 변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여지없이 인격적인 살해를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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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단사냥꾼은 이단으로 비판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영적인 살해를 자행할 뿐 아니라, 인격적인 살해를 무자비하게 감행한다. 이단사냥꾼은 교권의 힘을 업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의 칼을 휘두르면서 이단논쟁을 하나의 업으로 삼기 때문에 이단 정죄한 상대가 많을수록 자신의 업적이 크다고 착각하여 정죄한 숫자를 자랑한다. 그러나 제임스 스펜서는 이단사냥꾼은 자신만의 편협한 신학의 잣대만으로 무차별 돌을 던지는 자로서 비판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단정했다.
이단사냥꾼은 자신의 잣대와 맞지 않는 성격해석의 작은 잘못이나 교리만 보면 그 문제를 과장해서 발표하고 상대방의 작은 잘못이나 교리만 보면 그 문제를 과장해서 발표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무차별 거론하면서 마녀-사냥꾼처럼 인격살해를 자행한다. 이들은 자신의 신학 노선과 다르면 상대방을 심판관의 입장에서 계속 채찍질하고, 온갖 동기를 다 찾아내어 TV나, 방송이나, 신문이나, 잡지를 이용하여 개인의 인격적인 살해 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명예훼손의 화형에 처해버린다. 이들은 자신의 지극히 한정된 신앙적 체험의 바탕 위에서 편협한 신학적 잣대를 가지고 대학자나 된 것처럼 우쭐대면서 사소한 일에도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공격함으로써 대중의 심리를 유도하는 사악한 짓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단사냥꾼은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잔인성과 유사한 잔인성을 갖고 인격살해를 자행하고 있다.
이단사냥꾼(이단감별사)은 남의 약점을
교묘히 왜곡 과장하여 이용한다.
스펜서에 의하면, 이단사냥꾼은 (1) 책에서나 테이프에서 정죄에 필요한 부분만을 교묘히 발췌하여 악용함으로써 편견의 죄를 범하고, (2) 기적종료론을 주장하면서 반(反)카리스마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으로써 오만의 죄를 범하고, (3) 공격 대상자의 글을 무차별 비판함으로써 시기(猜忌)와 사기(詐欺)의 죄를 범하고, (4) 인신공격을 무차별하게 가함으로써 인격살해를 자행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단사냥꾼은 자신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어떤 인물이나 단체가 하는 집회나 사역으로부터 수집한 자료나 행동 중에 실수한 것이나 오류들을 선택하고 수집하고 과장하여 비판함으로써 마치 그 사람과 단체가 표방하는 운동 전체를 사실대로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때문에 이단사냥꾼의 수많은 인용문들 뒤에는 깊은 방법론적 오류가 숨어 있다.
이단사냥꾼(이단감별사)은 복수심이 강하여 남을 조직적으로 이단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단사냥꾼은 복수심이 강하기 때문에 잔인하여 이단이나 이단옹호자로 정죄 당한 사람들이 고통하면 할수록 더욱 잔인하게 고통을 가하는 속성이 있다. 그들은 신문지상이나 잡지나 교단이나 단체의 이름으로 폭력적인 폭로를 가함으로써 자신의 잔인성에 승리감마저 느낀다. 그래서 이단사냥꾼의 속성은 남미산 물고기 피라냐(piranha)에 비유된다. 왜냐하면 피라냐는 동물이나 사람을 습격하여 물어뜯어서 삽시간에 뼈만 앙상하게 남겨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피라냐처럼 이단사냥꾼도 잔인하여 한 번 이단으로 몰기로 마음에 작정하면 그 상대자가 쓰러져 뼈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인격살해를 무자비하게 행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그 결과 이단사냥꾼은 자신의 원한을 복수하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저의가 깔려 있기 때문에 편견으로 가득 찬 강박관념에 사로잡혀(obsessed)자신은 재판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고통에 희열과 승리감마저 느끼는 병적인 심리가 있다. 때문에 이런 자에게 이단대책에 관한 일을 맡긴다는 것은 돌을 들어선 안 될 자에게 커다란 돌멩이를 쥐어주는 것과 같다.
이단사냥꾼(이단감별사)은 상대방의 고통에 희열과 승리감을 느끼는 사이코이다.
하나님은 이단사냥꾼과 같은 부류의 인간을 증오하신다고 바로 잠언 6:16-19에서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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