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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데만주의 -로이드 존즈-

인내의열매 |

2010-07-25 00:00:00 |

조회: 24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일종의 "신앙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주의가 흔히 교회를 황폐화시키곤 하였습니다. 이 점은 우리 마음 속에 언제나 고수하고 있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흔히 산데만주의(Sandemanism)라 불리우는 이단은 교회를 무섭게 황폐화 시켰습니다. 하나님께 크게 사용되었던 유명한 침례교 설교자 크리스마스 에반스 (christmas Evans)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는 산데만주의 이단의 희생물이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 속에 존재하는 가공할 만한 무서운 메마름을 그냥 저버려 두고 몇 년 동안을 지났습니다. 그의 목회는 전혀 효력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자기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 마음이 감동되지 못하고 차가와졌다는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른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른 것들의 능력과 효력을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카더 이드리스(Cader Idris)라는 산 가까이에 있는 길을 따라 거닐고 있을 때 그에게 큰 체험이 임하였고, 그 체험을 통해서 그는 그러한 자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갑자기 성령이 그의 마음에 찾아 들어오셔서 그 마음을 녹여 그는 굴레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던 지역에 큰 부흥을 일으키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만일 "믿음의 순종"이라는 이 어구만 기억한다면 그 이단의 희생물이 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인(whole man)이 수반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인격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 가운데서 이 주제에 관하여 무어라고 가르치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가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이 바로 대답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할 때 둘째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말한 후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간 것이 바로 회개의 일부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좋습니다. 난 내가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미안하게 생각되어 지금 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만 한다면 - 가지 않고 그런 말만 한다면,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 아들은 "예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가지 않았는데, 그 경우나 똑같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순종이란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순종이란 뉘우치고 실제로 마음을 아프게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고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는 회개와 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그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믿는다 하는 진술을 뜻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또한 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지성으로 승리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고 우리 자신을 의탁시키며 우리의 전인격을 수반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면, 회개하여 죄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라도 복음을 믿는 사람으로 여길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죄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제공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만일 내가 그렇게 믿는다면, 내가 전에 있었던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가공할 죽음을 필연케 한 내 죄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죄를 서글프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 죄를 의식했으니 나는 내 죄로부터 돌아섭니다. 나는 세상에 속하고 싶지 않으며 세상의 죄에 더 이상 속해 있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에게 속하고 싶으며, 나를 위해서 그처럼 많은 일을 행하신 그 분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에게 나 자신을 드립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러분이 그 분을 여러분의 "구주" 뿐만 아니라 "주"로 믿지 않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일종의 "신앙주의"를 가르치고 있는지 주목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회개는 그 다음에 온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만일 죄에 대한 이러한 슬픔, 죄의 결과로 여러분이 처한 절망적인 곤경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믿음의 순종"이라는 용어는 그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그 용어를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순종"을 말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순종입니다. 믿음의 순종 뒤에 나타나는 행위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바로 그 과정은 "믿음의 순종"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믿자마자 나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섭니다.

  

로이드존스,'로마서 강해'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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