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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적 친북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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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보고나서

주님으로살기 |

2015-07-04 21:25:13 |

조회: 476

꼭 보시기바랍니다. 벌써부터 평점은 악질네티즌에 의해 평가절하됬지만 일반적인 평가는 아주 좋습니다. 

뉴스나 보도를 통해 벌써부터 왜곡기사가 나갔습니다. 김대중을 비판했다느니 북한군을 나쁘게 표현했다느니 대한민국 맞습니까? 잘못한것을 지적하지 못하게 만드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김대중의 우상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연평해전을 보고나서 모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에게 다시한번 크게 고마움을 알게 되었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군사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보는 내내 모든 해군들이 자신의 개인의 삶이 있었지만 끝까지 전사할때까지 나라를 위해 힘써 싸웠습니다. 국민들은 월드컵의 열기로 무르익어갈때 개인의 욕구를 뒤로 한채로. 중반이 지났을 무렵 엄마랑 함께 온 6~7세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낭랑한 목소리가 서러움에 복받친 울음소리로 변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선재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므로 맥없이 앗아간 젊은 군인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반역의 바다, 서해 NLL 역적 모의 13년 略史(약사)!


*서해 NLL 반역 일지

*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 한국 해군, NLL 침범 북한 함정 격침. 勝戰(승전)을 지휘하였던 박정성 사령관 사실상 좌천된 후 전역. 이 무렵 김대중 정부, 北에 유리하도록 交戰수칙 개정-'먼저 쏘지 마라'

* 2002년 6월 29일:
김대중 정권하의 軍 수뇌부, 북한 해군의 확실한 도발 의도 정보('명령만 내리면 발포하겠다'는 취지)를 입수하고도 도발 의지 없다고 정보를 조작, 기습 허용, 참수리호 격침되고 6명 戰死(전사).

軍 지휘부, NLL을 넘어와 참수리호 공격한 두 척의 북한 경비정을 우리 해군이 격침시키지 못하게 사격중지 명령. 사건 후에도 우발적 충돌이라고 북괴군 비호 시도. 도발 정보 입수, 보고하였던 한철용 소장은 징계당한 후 전역. 김대중 대통령은 戰死者(전사자) 문상도 하지 않고 월드컵 결승전 구경차 일본行.

* 2004년 7월:
노무현 정권, NLL 침범한 북괴 경비정(참수리호 격침시킨 함정)에 경고사격 하였다고 국군 수뇌부 문책 압박. 조영길 국방장관 사임, 박승춘 정보본부장 사실상 강제전역.

* 2005년:
제주~부산 사이의 제주해협을 北선박에 개방. 北선박들, 해경 검문에 불응.

* 2007년 10월:
노무현, 김정일에게 NLL 수호 포기 의사를 전달하였다는 의혹이 진행중. 노무현, 평소에도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강변, 미군이 땅따먹기 운운. 남북한 좌익정권은 NLL을 공동어로구역으로 만들어 무력화 시키려 하다가 김장수 국방장관의 고집으로 좌절.

*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親盧(친노) 세력과 민주당 및 민노당 세력은 아직도 북한 소행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 하더라도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돌림.

*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 연평도 포격, 4명을 죽임. 민주당과 민노당과 종북좌파 세력, 북괴군보다 이명박 정부를 더 비난.

* 2011년:
민주당과 민노당 등 종북, 좌파 세력, 북한 해군 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묵살된 '결정적 도발 정보'

국군 5679 부대는 對北(대북)통신감청을 主임무로 한다. 부대장 韓哲鏞(한철용) 육군소장은 2002년 6월 13일, 그날 있었던 북한함정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침범과 관련한 결정적 정보를 입수했다.

6월14일 국군의 최고위 정보관계자 회의에서 韓 소장은 이 ‘민감한 특이 정보(교신 내용)’를 강조했다.

14일 합참 정보본부는 이 ‘민감한 특이 정보’를 빼고 북한함정의 침범을 ‘의도적 침범’이 아닌 ‘단순 침범’이라고 판단하여 예하 부대에 통보했다.

韓 소장은 6월 27일의 북한 함정 NLL 침범 때도 도발 의도를 보여주는 결정적 첩보를 보고했으나 合參(합참) 정보본부는, 이 침범도 ‘단순 침범’이라고 판단했다. NLL을 지키던 한국 해군은 적절한 事前(사전) 경보를 받지 못하고 6·29 기습을 당한 것이다.

‘민감한 특이 정보’가 묵살된 이유는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어긋나는 정보를 축소-은폐하려는 분위기가 軍 지휘부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韓 소장의 생각이다. 韓 소장은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도발징후를 쉬쉬 하다가 엄청난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19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이 이긴 직후
金大中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4대 지침을 내렸다.

“첫째, 북방한계선을 지켜라.
둘째, 먼저 발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을 준수해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되도록 하지 말라.”

이 지침은 敵(적)에 유리하고 我軍(아군)에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지시이다.

NLL을 상습적으로 침범하는 敵(적)의 함정에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는, 결투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惡黨(악당)을 잡으러 나가는 보안관을 향해서 “절대로 먼저 쏘지 말고 악당을 잡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2002년 6월29일 서해상에서 기습을 당하여 죽은 여섯 명의 해군 장병은 金大中 대통령의 이 자살적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敵의 아가리로 祭物(제물)처럼 바쳐졌다. 


반역적 사격 중지 명령

2002년 6월29일 오전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 684호는 砲身(포신)을 정조준 자세로 내렸다.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8호는 利敵的인 교전 수칙에 따른다고 경고사격도 하지 못하고 이 북한경비정에 500야드(457m)까지 접근하여 경고방송을 했다.

북한 경비정은 경고방송을 무시하고 시속 12노트로 남하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고사격을 했어야 했다. 참수리 358호는 북한 함정 앞을 가로질러 지나갔을 뿐 경고사격을 하지 않았다.

햇볕정책이란 마취약이 국군 지휘부의 의지력을 마비시켜 놓으니 아무리 뛰어난 장비를 가져도 쓸모가 없게 된 것이다.

358호를 뒤따라 가던 참수리 357호가 南下(남하)하는 敵(적)의 경비정 앞을 왼쪽 측면을 노출시킨 채 지나갈 때 敵船(적선)이 눈앞의 목표를 향해서 사격했다. 敵의 포탄은 참수리호의 조타실에 명중했다. 참수리호의 대원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응사했다.

敵船(적선)의 뒤로 돌아가 있던 358호도 북한 경비정 684호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북한 경비정은 곧 무력화되었다.

이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변의 우리 해군 함정이 무력화된 북한 경비정 684호와 이를 끌고가려고 NLL을 넘어온 북한 예인함정 388호를 격침시키지 않은 것이다.

684호에 기습을 받은 참수리호는 침몰했지만 우리 해군은 敵船(적선)을 보고도 보복하지 않았다. 사격 중지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金大中의 반역적 햇볕정책에 기초한 자살적 交戰(교전)지침이 국군 지휘부의 전투의지를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 의도적 기습을 ‘우발적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6명이 죽고 19명이 부상한 기습사건의 피해자인 국군이 아니라 침략자 김정일 정권을 비호한 것이다.

韓哲鏞(한철용) 5679부대장은 비망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런데 합참 정보본부는 어느 특정집단의 대변자인 것처럼 ‘우발적’이고 ‘경비정 단독범행’이라고 계속 주장하길래 추가적인 자료 두 건을 갖고 정보본부의 입장에 반박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정보지원 미흡으로 조사하겠다고 천명하였던 것이다.>



정보 수집 부대장은 옷을 벗고

북한 함정의 기습 의도가 담긴 ‘특이 정보’를 보고했으나 상부에서 묵살 당했던 韓哲鏞(한철용) 부대장은 사건 후에 정보지원 미흡이란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자진 轉役(전역)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참수리호의 순직자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金 대통령은 사건 다음 날 일본으로 월드컵 경기를 구경하러 떠났다.

6명의 해군 장병들이 戰死(전사)한 북한군의 기습사건에 대해서 MBC는 북한군을 비호하고 국군을 비난하는 왜곡 보도를 계속했다.

MBC는 '꽃게잡이로 빚어진 갈등이 해상교전으로 확대된 지금 운운‘하는 兩非論(양비론)을 폈고, 교전시엔 우리 어선이 철수했는데도 ’우리 군이 (우리 어선의) 불법조업을 묵인하고 있을 때 북한 경비정이 우리 어선쪽으로 내려왔다‘고 허위보도를 했다.

이런 왜곡보도를 지적한 月刊朝鮮을 상대로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던 MBC는 敗訴(패소)했다.

西海(서해)기습으로 죽은 유가족들은 푸대접을 받았고 한 순직자의 부인은 조국에 절망하고 이민을 갔다.


북한 함정에 경고사격 했다고
국방장관과 정보본부장 몰아낸 노무현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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