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
2013-02-02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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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을 주와 함께 걸으며!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길은 예수님이 이 땅에 33년 6개월간 계실 때 친히 걸어가신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 넓은 길을 걸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하게 좁은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날마다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걸어야 할 좁은 길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이 길은 진리의 길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 사이에 난 길입니다.
시편 25: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보십시오. 여호와의 모든 길은 인자와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길은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가 조화된 길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은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가 균형을 이루어 그 사이로 난 길입니다. 이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18:21-29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여기 “주의 길”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길을 설명할 때 먼저 인자하심에 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21-22)
그 후에 하나님의 엄위하심으로 균형을 잡습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24)
이것이 주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시 85:10)라는 말씀처럼 진실로 주의 길은 인자와 엄위 사이로 난 길입니다. 이것은 또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하신 예수님 존재 자체가 증거해줍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좁은 길을 걸어가신 분이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체가 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1:9-17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길 되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모든 길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 사이로 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좁은 길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저는 수년 전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 그 가운데 생명의 좁은 길이 있습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작지만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 사이로 난 생명의 좁은 길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매우 특별한 책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좁은 길은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의 우측으로 치우칩니다. 즉 인자 쪽으로 치우칩니다. 그래서 좁은 길에서 벗어나 불법이라는 도랑에 빠집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길의 좌측으로 치우칩니다. 즉 엄위 쪽으로 치우칩니다. 그래서 좁은 길에서 벗어나 율법이라는 도랑에 빠집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음과 같이 경고한 것입니다.
로마서 11:21-22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바울은 여기서 좁은 길의 우측으로 치우친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항상 사랑타령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이런 흐름은 영혼에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그들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좁은 길은 말 그대로 좁은 길이기 때문에 길을 걸을 때 좌나 우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길을 벗어나게 되고 실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음과 같은 경고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여호수아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 23: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행하려고 할 때 절대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1) 좌로 치우치지 마십시오.
일반적으로 길 옆에는 도랑이 있습니다. 좁은 길 양 옆에도 도랑이 있습니다. 이중 왼쪽 도랑은 균형을 잃고 왼쪽으로 치우칠 때, 즉 하나님의 엄위 쪽으로 치우칠 때 빠지게 되는 도랑입니다. 우리가 좁은 길의 왼쪽 도랑에 빠지면 다음과 같은 잘못된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1) ‘내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지 않으실 거야!’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위 쪽으로 치우쳤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죄만 용서하시고 큰 죄는 용서하지 않으실까요?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은 큰 죄든 작은 죄든 모든 죄를 짊어지셨고 따라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죄든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이 이 말을 한 이유는 전에 그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살인했고, 나는 간음했고, 나는 도적질을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바울보다 더 큰 죄인이다.’
그러나 이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 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앞의 “죄인”이라는 단어는 살인자, 간음자, 강도 등 모든 유형의 범죄자들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유형의 죄인들을 떠올리며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의 죄가 결코 바울의 죄보다 크지 않습니다.
바울은 열성적인 박해자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고문하고 죽인 로마의 독재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이나 일제 순사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최악의 사람이요, 가장 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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