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바람 |
2015-08-14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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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를 존경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가령, 한 학생이 국어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그 학생은 국어 과목에서 큰 성취를 볼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면, 그만큼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많은 진보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10:41)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천사와 같이”영접한 것(갈4:14)을 칭찬한데에서도 드러납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존경에 대해서 너희들이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사람인 나를 지나치게 높였다고 책망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갈라디아 성도들의 “복”이라고 칭찬합니다.(갈4:15) 왜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높이기 때문입니까? 그의 마음이 교만해서 그렇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지방은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개종한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항하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과 주님의 은총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라디아 성도들은 양자택일해야 했습니다. 다시 과거의 율법으로 돌아갈 것인가?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 때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바로 사도바울에 대한 존경심인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그 만큼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큰믿음교회는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 못지않은 싸움을 치르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이 필요한 한국 교회와의 싸움입니다. 구원에 있어 도덕의 필요성조차도 무시하는 극단적이고 왜곡된 이신칭의론과의 싸움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부정하는 종교의 영과의 싸움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하고 있는 개혁주의 칼빈 사상과의 싸움입니다. 이 피 튀기는 전투의 현장에서 핍박 받으며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게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에서 지도자를 존경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싸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존경과 예배는 다른것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존경하지 목회자를 예배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이에 대한 명확한 실례가 나와있습니다. 루스드라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에서 그곳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환대하고 영접했습니다. 황소와 화한들을 갖고와 제사를 지내려 했습니다.(행14:13) 그곳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극진한 환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옷을 찢고 이들이 하는 짓을 못하게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울을 존경한 것이 아니라 예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큰믿음교회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경함으로 신앙생활에서 큰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유익은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말씀을 집중하여 듣는 은혜입니다. 큰믿음교회 강단에서는 특유의 영적인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그것은 결코 목회자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하고, 귀를 기울이게 하며, 마음을 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감추어진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큰믿음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존경합니다.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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