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랑 | |
2007-04-03 00:00:00 |
조회: 251
자신을 판단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판단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사랑의 법을 주실 때, 우리들에게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과 또 다른 믿는 자들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 우리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른 사람들이 사랑으로 행하는지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옳은 일을 하는지를 확인하고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 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다툼과 분란만 일으키게 될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서 다툼과 내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주목하여 보십시오. (갈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서로를 물고 삼키는 일은 사랑으로 행하는 일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심하게 아프고,어떤 경우 그들의 인생의 날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이유는 그들이 사랑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툼과 분란과 다른 사람을 판단 하는 것을 심으면 반드시 그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갈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보통 우리가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는 술 취해 욕을 하고 돌아다니는 죄인들을 생각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잇습니까? 이 구절들은 죄인들에게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믿는자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당신이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구절에는 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죄인들에게 향한 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사실 바울이 이것을 쓸 때 갈라디아와 그리고 다른 모든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결코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그가 거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일찍 올수도 있고 좀 늦게 올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들의 닭들이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죄는 그를 발견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민 32:12) 60년이 되어가는 나의 사역 기간 동안 나는 당신이 계속하여 사랑으로 행하면 당신을 판단하고 당신에게 잘못을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돌아와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갈라디아서 6장7절의 이 성경구절은 반대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으로 행동을 할 때 당신은 그것에 대한 보상도 거두게 됩니다.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면무엇을 거둘 수 있을까요? 건강,치유,장수, 그리고 번영을 거두게 됩니다. 당신안에 있는 사랑의 품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당신이 계속하여 실천 한다면 사랑은 당신의 삶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서 당신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에 대한 유익함과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사랑으로 심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심으면 나는 그사랑이 가져오는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율법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병은 내 가운데서 제하여 질것이고 나의 날들을 하나님이 채우실 것입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 하십시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새로운 언약 아래서는 우리들 자신들에 의해서 우리의 날수가 채워질 것인지 아닌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구원안에는 이미 우리 몸의 치유가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 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이사야 53장 4절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이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셨습니다. 히브리말에서는 문자 그대로 "그는 우리의 병을 지셨고 우리의 고통을 가져 가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치유 언약을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치유는 우리들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는 하나님의 마련하신 치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구원에서 치유를 우리들에게 마련하셨다면 왜 모든 사람이 치유를 받지 못할까요? 만일 우리가 건강을 소유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고린도 전서 11장에서 말하는 것에 대하여 주목 하십시오. (고전11:23~32)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읽은 성경 구절로 돌아가서 우리가 읽은 것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깨뜨린 나의 몸이다." 예수님이 매맞으심으로 우리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는 치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잔은 피로서 하는 새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히9:22) 예수님의 피는 우리 구원을 상징하고 우리의 죄를 깨끗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 몸의 치유와 우리 죄의 구속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7절에 "합당하지 않게"란 말을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여기서 사용하는 단어는 "자격이 없는"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나는 정말 자격이 없다고 느낍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구절을 '자격이 없는 것'이란 느낌으로 이 말을 적용하는것입니다. 그렇지만 27절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합당치 않은 이라는 단어는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는 당신의 방법과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고린도 사람들이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성경구절 앞에 있는 구절들을 읽고 그 문맥을 공부한다면 당신은 이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주님의 성찬에 같이 참예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중 몇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저주 혹은 심판을 불러 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성찬에 아주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아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때가 되기 전에 죽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병약하거나 아프지 말아야 할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사람의 육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성찬에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몸이 약해지고 아프게 되고 또 때가 되기전에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들은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음으로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아프고 많은 사람들이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잔다"는 말은 그들의 몸이 무덤에서 자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의 영이 주님앞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때가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들의 날 수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때가 되기 전에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들이 주님의 몸을 분별했다면 그들은 약하지도, 몸이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들은 때가 되기 전에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때로 사람들이 약하고 몸이 아프고 또 죽기까지 하는 데는 이유나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들이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그들 자신이 심판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피를 분별하는 것에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것을 주의해 보셨습니까? 성경은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별하는 것"은 보고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찬을 떼는 것은 예수님의 부서진 몸을 상징 하거나 혹은 그 모형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의 부서진 몸이 당신의 육신을 유지해 주는 것, 혹은 치유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이 사랑으로 행한다 해도 당신을 위하여 갈보리 십자가에서 준비 된 치유를 사용하지 않게 되므로 계속하여 병약하고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유월절 양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육체를 유지해 주고 치유해 주기 위해서 부셔졌습니다. 성경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라고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은 것을 모르고 있다면 당신은 계속하여 병약하고 육신적으로 아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때가 되기 전에 죽어서 이 땅에서 살아야 할 모든 날들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의 영적인 몸, 즉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프고 병이 들고 때가 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골3:15)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이 오늘날 이 땅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거듭난 믿는 자들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골1:18)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님의 육신적인 몸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날 그리스도의 몸은 모든 믿는 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여 그들에게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인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자신이 약하고 병들고 일찍 죽도록 문을 열어 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믿는 자들이 약하고 병든 상태에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합당하게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의 몸에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사랑으로 행치 않는다면 당신은 약하고 병들게 되므로 당신이 이땅에 사는 날들을 연장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수명을 단축할 것이고 때가 되기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다른 믿는자들에 대하여 사랑으로 행치 않았기 때문에 이미 일찍 죽었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 그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의 결핍이 그들의 날들을 단축시킨 것입니다. 사랑으로 행치 않는다는 것은 당신의 날들을 단축 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마귀가 당신의 인생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되기때문입니다. 사랑에서 벗어난 모든 발걸음은 죄로 가는 발걸음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땅에서 사는 날들을 채우기 위해서 당신은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다른 믿는 자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행할 수 있게 역사하는 것은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령한 사랑은 어떤 다툼이나 어떤 분쟁도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어떤문제도 해결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역사하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도 모든 작은 일들까지 다 동의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다 같이 동의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고 예수님의 피흘림이 없이는 죄를 속죄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든 세부적인 교리 문제에서 당신에게 동의 하든지 동의하지 않든지, 또 그들이 사랑으로 행치 않는다 해도 당신은 그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 중략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죽고사는문제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사랑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나이에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자들이 요절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날을 단축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몸을 분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을 주님의 몸의 일부같이 합당하게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회개를 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를 위한 하나님의 최선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것입니다. 그런일은 그에게 꼭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일이 일어나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으로 행하는 주제에 대하여 엄숙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은 믿음이나 소망보다도 더 크다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전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롬12:9)"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때때로 우리는 위 구절을 읽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멈추어 생각해 보지는 않습니다. "거짓"이라는 단어는 "착하다"혹은 "가장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무슨말이냐고요? "나는 정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감히 그들에게 등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당신을 사랑하는 척 할 뿐입니다. (롬12: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사랑 - 하나님의 사랑 -은 이기적이 아닙니다. 사랑은 항상 다른 사람을 더 좋게 생각하고 그사람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절대로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은 말로만 사랑하거나 사랑하는 것같이 가장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말은 물론이고 행동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행동가운데서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것이 나타나야 하는것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잘못하더라도 당신은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놀라운 보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만일 자신을 판단한다면 당신은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자신을 잘 판단 한다면 의료비를 많이 지불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당신의 심령에 사랑으로 행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자동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주님의 몸을 분별할 때 - 당신의 육신적인 치유를 위하여 깨어진 예수님의 육체적인 몸만아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할 때- 당신은 약하고 아프지 않고 강하고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날을 다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참 진리를 말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치유이상의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물론 당신에게 치유가 필요 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의 것도 준비하셨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당신이 건강의 축복을 받는 길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역사하지 않을 때 만일 당신이 사랑으로 행치 않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단순한 일입니다. 만일 당신의 믿음이 실패를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고 있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갈5:6)"그리스도 예수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나는 자신만을 빼고 다른사람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한 특별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도 그 믿음이라는것을 해 보았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역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가 사랑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으로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는 "믿음은 안되는 것이야"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성령을 모욕했던 것입니다. 만일 믿음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마가복음 11장24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빋은즐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게서 거짓말을 하신 것이 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거짓말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디엔가 실패가 있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실패가 있다면,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어디에서 잘못 되었는지를 점검하고 알아내는 것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돌아가는 일입니다. - 중략 -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내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되면 나는 고치겠습니다. 당신도 그렇지요? 나는 내가 잘못 했을 때 고집을 부리며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사랑으로 행하는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당신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은 이땅에서의 당신의 날수를 다 채울 때까지 살기 원하십니까?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기를 결단하지 않는 한 이 땅에서의 삶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는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두 번째 좋은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당신 자신의 죄를 스스로 판단 하십시오. 다른사람의 죄에 대하여 판단을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은 당신이 당신 자신민을 판단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14:13 고전11:31,32)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고 있는지를 판단하시고 또 그리스도의 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판단을 하십시오. 그리고 죄를 멀리하고 당신의 삶 모든 면에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실천 하십시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려고 할 때 잠시 중지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 자신에게 '이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사랑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물어 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하려는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악이 될 것 같다면 말하거나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랑가운데 행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서 벗어난 모든 발걸음은 죄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율법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는 인내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질투로 불타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건방지게 나타내지 않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만의 이익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나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까다롭지 않고 조급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자신에게 행해진 잘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억울하게 당한 일을 개의치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배운다면 이미 전개된 어떤 상황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상황을 회복할 것입니다. 물론 사랑은 당신이 수고하지 않으면 역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수고를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말이냐구요? 당신이 사랑을 가져오는 보상을 받기 전에 이미 당신 안에 있는 사랑을 실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갔고 의사는 그의 아픈증상에 따라 처방전을 주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사람은 약을 사 가지고 집에 갔지만 약을 침대 옆에 놓아두고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약을 얼마나 복용해야 하는지를 말해주었지만 만일 그 사람이 그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그 약의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다음날 그 사람의 상태가 더 나빠졌을 때 그는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야 그약이 효과가 없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약이 탁상위에 있는 상태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당신의 침대 옆 탁상에 놓아두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은 성경을 꺼내 가지고 그 안에 있는 영적 진리들을 당신의 삶에서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의 삶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랑이 저절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말씀으로 양육 받아야 하고 그것을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성장하고 증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훨씬 더 좋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을 위하여 역사할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목사님의 사랑, 승리하는 길중에서
다음글 | † 나는 네가 죽기를 원한다! (2) | Mahanaim | 2007-04-05 00:00:00 |
---|---|---|---|
이전글 | 더 젊은 세대에게 심기 - 영적 아버지와 어머니 | 십자가 사랑 | 2007-04-02 00: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