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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03 밴쿠버, 그리스도인은 율법 없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제로미 & pure & 꿈꾸는 종 & PENUEL]

더깊고깊은 |

2009-08-17 00:00:00 |

조회: 234

그리스도인은 율법 없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2009. 7. 03 / 밴쿠버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사역의 목적은 더 큰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얻는 것,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사역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순교를 무서워합니다. 순교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 화형입니다. 그러나 교회사를 보면 대적들에 의해서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존 후스라는 종교 개혁자가 바로 목사들에 의해 불에 태워져 죽었습니다. 교회에 의해, 기독교에 의해 불에 태워져 죽었습니다. 잔 다르크라는 하나님의 여종은 교회에 의해 불에 타죽었습니다. 교회와 목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고 하면서 얼마나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악질적인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교회도, 밴쿠버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이단사냥꾼들에게 불 태워 죽일 권한이 있다면 저를 불에 태워서 죽였을 것입니다. 이 죄악이 역사를 통해 계속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목사에게, 교회에 있어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다. 사형선고와 같은 것입니다. 얼마나 쉽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목사와 신자들 스스로가 재판장이 되어 마구 떠드는지, 그것은 영적인 살인입니다.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단 말고, 우리 교회처럼 불의하게 이단시비에 걸리는 이유는 대부분 수평이동 때문입니다. 대형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많은 성도들이 옵니다. 우리 교단에서 제일 큰 모 교회가 있는데 성도 한 사람이 우리 교회로 옮겼더니 그 담임목사님이 교단 이단대책위원회에 우리 교회를 조사해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성도 한 사람이 다른 교회로 옮겼다고 큰 교회가 다른 교회를 조사해 달라고 합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목사들이 장사치가 되고, 교회가 장사치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집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두 가지입니다. 장사치의 소굴이 되든지, 기도하는 집이 되든지… 기도하는 집은 모여서 기도하고 밤새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합니다. 장사치의 소굴은 자기의 이익을 원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목사들이, 밴쿠버의 많은 목사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진짜 종들이 아닌 장사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집은 단순히 이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에게 관심 있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 구원에 관심이 있습니다.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사람들에게 받게 하고, 그들을 살리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의 교회가 장사치의 소굴인지, 기도하는 집인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부흥을 원하는데 그릇도 안 되고, 준비도 안했으면서 다 자기를 통해 부흥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다른 교회를 통해 일어나면 이단입니다.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평범한 목회를 하면 정통이라 합니다. 성령이 임하고 계시와 기적이 일어나고 부흥하면 이단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면 부흥이고, 다른 교회에서 일어나면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 안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상당수 목사들과 교인들의 심보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인가. 교회는 장사와는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음식점처럼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설교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이득을 남기는 집단이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의 설교 때문에 세워진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세워진 곳입니다. 예수님의 피 때문에 세워진 곳입니다. 교회는 영혼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세워진 곳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때문에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가장 숭고한 목적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목사라면 영혼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 교회 영혼들은 굉장히 사랑하면서 성도 한 사람이 다른 교회로 옮기면 그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목사는 가짜입니다. 진짜 목자의 마음을 갖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식은 굉장히 사랑하면서 이기적인 삶을 사는 가장(家長)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왕국입니다. 이것을 목회자나 성도는 넘어서서 영혼을 사랑해야 됩니다. 목사들이 자기 교회나 자기 목회, 자기 성도가 아니고 이 세상에 죽어져가는 영혼들을 위해 존재해야 되고 목회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 교회와 성도를 진짜로 쓰십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구하는 것도 귀한 일인데 불 가운데서 구하는 일입니다. 물에 빠져 조금 늦게 구하면 물 조금 먹은 것 토해내면 되지만 불에 빠진 것을 조금 늦게 건져내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목사들은 ‘네가 구원했느냐, 내가 구원했느냐, 네 교회가 구원했느냐, 내 교회가 구원했느냐?’ 하는 식입니다. 이것이 장사꾼의 하는 짓입니다. 돈을 갈취해야만 장사꾼이 아니라 심보 자체가 장사꾼입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누가 구원하면 어떻습니까? 다 같이 협력해서 사람을 구원하면 되는 것인데 왜 이렇게 교회와 교단들이 이기적이고 연합이 되지 않습니까?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것은 목사들의 마음속에,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절대적이고 절박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많은 목사들의 마음이 자기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버릴 정도로 좁습니다. 성도들 앞에서는 거룩해 보이고 웃으며 사랑이 많아 보여도, 결국 자기 왕국을 꿈꾸고 자기 교회와 자기 성도들만 사랑하고 위합니다. 그러다 성도 한 사람이 다른 교회로 옮기면 그 교회는 이단이고, 그 교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구원 받는지는 관심도 없이 그것을 이단으로 매도해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사도 바울이 더 많은 영혼을 얻기 위해 그렇게 수고했는지 아십니까? 「뉴저지 사랑과 진리」교회에서 밥 존스가 천국과 지옥 간증을 설교한 영상을 우리 교회 낮 예배 때 보여드릴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천국과 지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간증들은 제가 “저것이 천국이라면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느낍니다. 영화를 본 것처럼 천국을 보고, 예수님을 봐도 예수님이 별로 영광스럽지 않고 천국을 묘사하는 것이 자연 세계와 비슷합니다. 가짜 체험은 아니지만 깊이가 얕았습니다. 진짜 영안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시력이 마이너스인 사람이 보기는 보는데 희미하게 보는 것처럼 입신을 해서 예수님을 보기는 하는데 알아보기만 하는 정도이지, 그 영광을 못 보는 것입니다. 마치 눈에 비늘이 씌었던 제자들이 평소에 해와 같이 빛나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다가 변화산상에 올랐을 때야 비로소 본 것처럼,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지냈지만 밧모 섬에 유배되어 갔을 때 비로소 그 머리가 양의 털과 같고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발은 빛난 주석 같고, 허리에 금띠를 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대로 본 것처럼, 비유하자면 많은 사람이 입신을 하는데 영적 시력이 마이너스로 너무 낮습니다.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입신해야 요한, 다니엘처럼 그 앞에 납작 엎드러져 죽은 것같이 되는데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이사야처럼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진짜 제대로 예수님을 보고, 진짜 제대로 천국을 보면 그 사람이 변화되고 바뀝니다. 이것이 진짜 입신입니다.

 

  입신을 하려면 제대로, 깊이 있게 해서 주님의 영광을 제대로 봐야하는데 입신 간증이 가치가 없고 도움이 안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도다.” 영안이 확 열리고 천국에 올라가지 않아도 이 땅의 자연이나 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인데 하늘까지 올라가서 그냥 예수님 모양, 바울의 모양, 산, 금으로 지어진 집, 이런 것만 보고 오는가. 이 땅에서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하늘에 가서도 TV나 영화 보듯이 모습만 보고 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답답했는데 이번에 밥 존스 목사님의 천국, 지옥 간증을 듣고 드디어 제대로 입신한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늘나라 기행문’을 쓴 리처드 이비 박사는 제대로 입신한 사람입니다. 그는 천국의 자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천국이고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천국을 밝은 시력으로 제대로 본 것입니다. 그 이후에 여러 입신간증을 보았지만 만족할만한 제대로 된 입신간증이 없었는데 이번에 밥 존스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니까 제대로 보고 오셨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못 가봤지만 말씀으로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다는데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지요. 많은 간증에 예수님과 바울과 만나 대화하고 질문한 것을 보면 수준이 낮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님과의 관계의 성숙도가 문제입니다. 체험에 치중하지 말고 성숙해야 됩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천국도 보고 지옥도 보고 오셨지만 단순히 본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천국과 지옥의 실제를 느끼고 오셨습니다. 제가 이제껏 진짜 천국이 어떤 세계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밥 존스의 간증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지옥이 어떤 세계인지를 가장 잘 표현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지옥에 갔을 때 귀로 소리를 듣는데, 소음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아시지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나, 헤비메탈 같은 음악을 소리를 높여 24시간 틀어놓으면 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듣기에 고통스럽고 괴롭고 신경을 거스르는 최대한의 소리가 영원히 들려오는 것이 지옥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쇠로 무언가 긁는 소리, 분필을 칠판에 긁는 것 같은 소리가 최대한 증폭되어 사람의 모든 신경과 청각을 고문하며 영원히 끊이지 않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옥이 단순히 불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선 고통을 느껴도 일부만 느끼지만 지옥에서는 고통을 오감 전체로 쉼 없이 영원히 느낍니다. 오감 자체에 쉼이 없이 끔찍한 곳이 지옥입니다. 천국은 오감을 통해 충만하게 평강과 기쁨과 안정감, 사랑, 희락을 영원히 느끼는 곳입니다. 생명수 마시고 과일 따먹고 황금 집에 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의, 평강, 희락을 영적인 오감을 통해 영원히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치를 보아도 처음엔 “아, 좋다, 저 나무와 물 색깔을 봐라.” 하다고 조금 있으면 안 좋습니다. 좋은 것 같았는데 조금 있으면 안 좋아요. 무언가 양이 안 찹니다. 이것이 지상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좋은 것 같았는데”가 아니라 “아! 좋다!” 이것이 영혼 속에 꽉 차서 “아~! 좋다, 좋다, 좋다......!” 하는 것이 영원히 되는 데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천국은 굉장히 다릅니다. 완전히 영혼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미는 자연이든, 사람이든 좋은 것 같았다가 뭔가 안 좋고 좋은 것이 틀림없는데 무언가 허전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좋다가 말았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좋은 것 같지만 별로인 것이 호주나 스위스가 좋다고 해도 결국 같습니다. 이것이 세상이지만 천국은 좋은 것이 진짜로 좋은 것입니다. 조금 좋은 것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에 확 압도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천국도 지옥을 간헐적으로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천국에 가면 의와 평강과 희락을 자기의 용량대로 이 땅에서 맛보았던 것 100% 느끼는 것입니다. 지옥도 그 사람의 용량대로 100% 느낍니다. 그러니 천국 가야되는 것입니다. 지옥가면 안됩니다. 종교놀이 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고 교리놀이, 설교놀이 할 시간이 아닙니다. 진짜 설교를 해야 되고, 진짜 회개, 진짜 신앙을 가져야 되고 반드시 지옥만은 피하고 기필코 천국만은 가야되는 것입니다. 나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마음이 들어와야 목사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 도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것이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상에 희생물로 내어주신 그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의 강권을 받아야 목사인 것이지, 그 사랑의 강권을 받지 않고 신학교 가서 설교 기술을 알아내고 목사 안수를 받아 교회를 자기 왕국 세우고 고객관리 하듯이 자기 성도들만 사랑하고 친절히 대하고 다른 교회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마귀 왕국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 것에는 관심 없이 이단이라 매도하는 것은 목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회개해야하고, 우리가 중보기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장사꾼들의 흐름이 사라지게 해주시옵소서.” 하이디 베이커의 “보좌로부터 사랑의 강물이”라는 표어처럼 교회 안에 사랑이 흘러야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자기 왕국이 아닌 성도들 조금 늘어나고, 좋은 차타고 목회자 모임에서도 고개 좀 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영혼들을 위해 목회하고 죽어져가는 사람을 구원하는데 누가 구원하면 어떻습니까. 어느 교회가 부흥하고, 쓰임 받으면 어떻습니까. 서로가 잘되는 것을 축복해주고 박수쳐주는 것이 목사이고 성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회복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이 있었습니다.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하고 교회 성장과 다른 것입니다.

 

  20, 21절을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여러분, 참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신자라든지 교회 안 다니는 무신론자라든지 불신자는 지옥에 가지만,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천국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참 신비한 일입니다.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자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숫자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게 미혹입니다. 도대체 성경을 뭐로 보는 것입니까? 성경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천국 간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찾아보세요. 마태복음 7장 21절이 교회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기껏 인정해봤자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에 하나로 인정하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입으로라도 주라고 부르는 자는 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이 교회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면 교회는 두 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교회는 이 두 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지옥에 갈 자들이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천국 갈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어느 교회든지, 큰믿음교회도 예외가 아니고, 이 두 가지 무리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국 갈 자와 지옥 갈 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다 천국 가지 못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여러분이 절대로 다 천국 가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든지 100% 다 천국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 교회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 지옥 갔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 지옥 갔는데 몇 백 명 되는 교인들이, 몇 천 명되는 교인들이 천국 가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지옥 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 가는 사람과 지옥 가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교회 안에서 천국 갈 사람보다 지옥 갈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 실체를 알고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해야 되는데, 마치 교회가 다 구원받은 사람이고, 교회가 대부분 다 천국 갈 사람인 것처럼 알면서 설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를 들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예수님은 적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이 사람들을 예로 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제일 잘하고,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 받아도 아무 거도 아니다.’하는 종교적인 목사들이 말하는 그런 취지가 아닙니다. 그냥 설교나 하고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적은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실체입니다. 한국의 영성 운동을 보세요. 저는 그 중에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영성 운동하는 목사들 중에, 사도나 선지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지자 노릇합니다. 귀신을 내쫓습니다. 권능들도 행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갈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인 교회뿐만 아니라 영성 운동하고 성령 운동한다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성경을 잘 아느냐, 모르느냐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계시를 정확하게 받느냐, 안 받느냐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암 병을 제대로 척척 고치느냐, 못 고치느냐. 교회가 큰가, 작은가.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것은 교회 안에서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옥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 중에도 많다고 하면 일반 목사들 중에는 더 많습니다. 강해설교나 하고 제자 훈련하는 목사들 중에서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 중에 많다고 하면 일반 신자들 속에는 더 많습니다.

 

  밥 존스가 본 것이 진짜입니다. 죽은 사람 중에 2%만 천국 가는 것을 봤다하는 것이, 하워드 피트만이 본 것이 진짜를 본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 안에 대입시켜보면 교회 안에서 압도적인 숫자의 사람이 지옥 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것이 실체입니다. 목회자들이 언제까지 잠꼬대 같은 설교를 하고 있을 것입니까? 언제까지 잠꼬대 같이 강해설교나 하고 제자훈련이나 하고 있을 것입니까? 회개하라고 외치고,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갖도록 외치고,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외치고, 거룩을 추구하게 만들고, 성도들을 죄의 잠에서 깨워서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하지 않도록 준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왜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불법’ 때문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선지자 노릇을 해도 귀신을 내쫓아도 많은 권능을 행해도 불법을 행하면 주님이 그를 부인하십니다. 일반 목사들이나 일반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불법을 행하며 살면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십니다.

 

  그러면 불법이 무엇입니까? 신자가 불법을 행할 수 있을까요? 많은 목사들이 신자가 불법을 행할 수 없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 의미를 정확하게 모릅니다.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다.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여기서 율법은 제사법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법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으로 표현된 도덕법입니다. 십계명 자체도 아니고, 십계명으로 표현된 도덕법입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다’ 그 말의 의미는 ‘율법의 행위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보혈 공로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받는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은혜로 우리가 변화되고 거룩해지는 것이지. 그냥 자기 노력, 자기 결심, 율법의 행위, 율법적인 노력 이런 것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으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 존 스토트가 그의 책에서 잘 지적한 것처럼… ‘율법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다. 그 의미는 제 멋대로 살아도 최소한 천국은 간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이렇게 가르칩니까? 그것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것은 눈 먼 자입니다. 그것은 설교할 자격이 없는 목사입니다. 길을 모르는 자입니다. 길을 모르는 자가 왜 길 안내한다고 나섭니까. 여러분, ‘율법은 폐해졌으므로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으므로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지만, 죄 가운데 살고, 제 멋대로 살아도 최소한 천국은 간다.’ 그렇게 설교하는 목사가 있으면 그 교회에서 떠나세요. 그 목사는 소경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자입니다. 그것은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조금 전에 그것이 교회 안에 얘기인데, 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자들의 얘기인데, 그 생각대로라면 그들이 불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버림받아 지옥 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생각대로라면 그런 일은 절대로 못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것(불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버림받아 지옥 가는 일)은 가짜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여, 주여’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많이 지옥에 가지 않습니까?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했던 사람 중에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행했기 때문에 지옥 가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켜야 될 법이 없으면, 사람들이 이해하는 식으로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으므로 이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최소한 천국은 간다.’ 이런 식이라고 하면 불법이 성립이 안 됩니다. 불법이 성립될 수 있는 법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신학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이 성립되는 법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법이 지금 여기 나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20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20~21) 여기 율법에 대해서 3가지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 다음에 보시면 율법 없는 자가 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율법 없는 자이고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기독교인은 무엇입니까? ‘아,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난 자다. 우린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으니까. 우린 복음만 있지. 우린 율법이 없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상상입니다. 그것은 미혹이고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정확하게 들으십시오. 21절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고,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어서, 율법 없는 자로 수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이방인들은 율법 없는 자이지만, 우린 율법 없는 자가 아닙니다. 여기 뭐라고 그랬습니까?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율법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그 율법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율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불법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목사들 중에 지옥 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장로 중에 지옥 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권사 중에, 신앙 고백하는 신자들 속에 지옥 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닙니다. 율법이 폐해졌다고 해서,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율법에서 자유하게 됐다고 해서 우리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그냥 제 멋대로 살아도 천국 갈 수 있는 그런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 율법이 3가지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율법이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율법은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로마서 2장 14절, 15절에 나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2:14~16) 여기 마음에 새긴 율법이 나옵니다. 마음의 새긴 율법은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돌 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신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성이 자신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 속에 있는 양심이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그 어느 나라에도 거기 사람들 속에 양심이 있습니다. 이 양심이 옳고 그른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 양심에서 법이 나옵니다. 단순히 이성이나 지식에서 법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추적해보면 그 뿌리가 양심입니다. 나라의 모든 법들은 그 양심에서 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이 마음에 새긴 율법이 성문화된 것이 각 나라의 법입니다. 인류에게 최초로 주어진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율법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간음이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동성애는 생각할 수도 없는 가증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캐나다에서 뭐라고 말하든 미국에서 뭐라고 말하든 그 저주 받을 의견에 동의하지 마세요. 동성애는 사악한 것이고, 그것은 죄악 중의 죄악이고,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때 묻지 않은 양심을 가진 사람은 양심이 증거 해줍니다. 인간의 본성이 증거 해줍니다. 그것에 물들지 마십시오. 타협하지 마십시오. 동성애는 죄입니다. 동성애는 악한 것입니다. 동성애는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이것은 “율법 없는 이방인이…” 그랬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율법을 행할 때는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그랬습니다. 이거는 누구에게 주어진 것입니까?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들은 누구입니까? 모세의 율법 이전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을 몰랐던 모든 사람들. 또 그런 작용은 똑같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도 포함이 됩니다.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그 양심이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살았던 모든 나라의 사람들. 지금까지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의 모든 사람들, 그들은 다른 아무 율법이 없습니다. 마음에 있는 그 양심의 율법밖에 없습니다. 그 양심의 율법에서 만들어낸 성문화된 그 나라의 법, 그 사회의 어떤 마을이면 고유의 법, 이거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입니다. 그래서 인류에게 최초로 주어진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율법이 모세의 율법입니다. 이것은 율법 없는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불러가지고 모세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구약시대 때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았고, 신약시대 때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저도 자라면서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는데, 이것은 무지한 얘기입니다. 구약시대 때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신약시대 때도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을 예증한 사람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신약시대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 행함 있는 산 믿음을 말하면서 예를 든 것이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은 믿음인데 행함 있는 산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행함이 따르는 진짜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라합도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아, 그런데 목사님, 구약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율법 속에 복음이 있습니다. 제사법은 전부 복음입니다. 제사법은 단순히 율법이 아니고 복음입니다. 성막도 전부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표를 통해서 오실 메시야를 믿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신 메시야를 믿는 것이고, 그들은 제사를 지내고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오실 메시야를 믿은 것입니다. 율법 안에는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 안에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 있다고 그래서 그러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안 지키면 그냥 죽느냐? 제물을 갖다가 제사장에게 제사 드리면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자백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이 율법적으로 완전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하고 룰이 똑같습니다. 오실 메시야, 유월절 어린양을 믿고 제사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을 믿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 때문에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것처럼 거기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짐을 받고. 그 다음에 율법,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다가 제대로 말씀대로 못살고 범죄 할 때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면 또 그 죄가 사함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셔야 됩니다. ‘아 그러면 목사님, 구약시대 때 율법대로 살지 않아도, 뭐 죄만 지으면 제사만 드리면 되고 뭐 오늘날 일반 목사님들이나 신자들이 생각하는 거하고 똑같지 않습니까?’ 하실 수 있는데, 똑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자세히 보세요. 그러면 구약시대에 나오는 사람이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제사 드리는 자와 제사 드리지 않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로 나눠집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얘기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이것을 신약시대 표현으로 말하면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진짜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도 때로는 죄를 집니다. 넘어집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습관적인 죄에서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그것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그들이 율법 아래 있었지만 실제로 복음을 믿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다고 해서 그들이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역시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해서 제 멋대로 사는데 제사만 드리면 천국 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 때 진정한 신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한 사람도 천국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영에서 동의가 일어나십니까? 이것은 성령의 음성이기 때문에 여러분 영에서 동의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실제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마음에 새긴 율법인 양심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율법이 아니고 그 안에 복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 자백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에 의해서 교회 안에 지옥 갈 사람이 있고 천국 갈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유대인 중에도 천국 갈 사람이 있고 지옥 갈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유대인이 다 유대인이 아니다! 표면적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 육신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 유대인이 아니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 유대인이다!’ 구약 성경 구절들을 보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이것이 진짜 유대인입니다. 이것이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런 사람들만 천국 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다 천국 갔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만 천국 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 나오는 우상 숭배하다가, 간음하다가, 주를 시험하다가, 또 원망하다가 광야에 엎드린 사람들은 다 천국 간다고 떠드는 목사들 많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허튼 소리하지 말고, 영혼들을 미혹하지 말고 목사직을 내려놨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옥 가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이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천국 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강퍅하고 완악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진노하셔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못 들어갔으니까 지옥 갔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입에 있는 육적인 심판이었습니다. 이 심판을 통해서, 만약에 그 상태로 이스라엘 백성이 죽는다면 지옥 갑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말씀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을 듣고 마음의 찔림을 받고 깨닫고 회개하고 가나안 땅에는 못 들어가도 그 이후에 회개하고 돌이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산 사람은 광야에 엎드러져 죽었지만 천국 갑니다. 그러나 그 삶의 패턴을 그대로 가지고 광야에 엎드러져 죽은 사람들은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그 차이를 아셔야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다 천국 가는 사람들이다.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 이것은 거의 이단사설에 해당됩니다. 복음의 진리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 때문에 복음의 진리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 아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얘기입니다. 제가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 그리고 모세의 율법. 그 다음에 이제 하나가 남았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 그 다음에 인류 중에는 한 종류밖에 없습니다. 전부 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나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유일한 종족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인류로 일어난 교회입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아니다. 나는 율법 없는 이방인도 아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의 고백이 그것입니다. “그럼 나는 누구냐? 나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 믿고 제 멋대로 사는데 십자가 보혈 공로로 천국 가는 그런 일은 영원히 없습니다. 그런 천국 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소경들이 만들어낸 이론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모르는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론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모르는 목사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들이 만들어낸 이론들입니다.

 

  우리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율법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짜 구원받은 자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신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이라는 표징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자손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 할례는 그들이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할례를 받은 이면적인 유대인만 진짜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 너희가 구원받은 증거가 어디 있느냐? 네가 지금 죽으면 천국 가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그 근거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구원의 확신이 아닙니다. 속지 마세요. 구원의 확신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와 바른 믿음이 구원합니다.

 

  마태복음 7:21~23절 말씀에 나온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으로 충만하여서 예수님께 따집니다. 우리가 선지자 노릇하고 권능을 행하고 귀신 쫓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며 따집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만 지옥 갑니다. 내가 천국 가는 증거는 구원의 확신이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이 우리를 안전으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것도 방언하는 것이나 환상 보는 것도 목사 되는 것조차도 아닙니다. 이번에 밥 존스 목사님과 대화중에 지옥에 목사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네가 구원받은,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네가 천국 가는 증거가 무엇이냐? 이 증거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나는 믿는다, 믿는 자라고 우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이 있다면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율법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전부가 무엇입니까? “계명 중에 무엇이 가장 크니이까?”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것이 온 율법이 요구하는 전부다. 이것이 율법의 요구다. 여러분, 우리가 믿으면 제 멋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요? 로마서 8장 4절을 보면 “육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므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없는 자는 가짜입니다. 성공한 목사라도, 교사, 은사자나, 능력자나, 기도자라도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마귀의 자식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이 오래한 자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가짜입니다.

 

  여러분, 이기주의를 경계하세요. 교회와 교단들 안에 기독교 단체들 안에 목사들 안에 심각한 이기주의가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기주의를 버리세요. 자기 왕국, 야망을 버리세요. 주님을 위하면서 탈을 쓴 야망들을 버리세요. 사랑이 강권을 받고 사랑에 의해서 모든 일을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진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말씀이나 능력과 은사를 받은 이기적인 목사와 신자들. 이들이 교회를 죽여가고 있는 암이라는 것을 아세요. 이런 종류의 암 때문에 교회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암을 도려내야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조지 리치의 책을 고 1때 읽었습니다. 그가 처음에 체험한 간증이 참 교훈적입니다. 이 사람이 사막에서 군대생활하다 폐렴에 걸려 죽었습니다. 죽은 이후 주님께서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 믿느냐? 너 거듭났느냐? 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너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똑같은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다 왔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이 고민하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이 기억나서 '주님 제가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표창장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다 받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의학도여서 비상한 머리로 더 고민하여 얘기했습니다. “주님 제가 의학도인데 의사가 되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돌보아주려고 했는데 주님이 일찍 데려오셔서 기회가 없었습니다. 억울합니다.” 이때 주님이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고급 저택과 호화판 요트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너는 의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어 이런 생활을 하기를 원했지 네가 언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했느냐? 너는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나는 누가 죽어서 내게 오든지 단 한 가지만을 묻는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도 사랑했느냐? 이것만 묻는다.’라고 하셨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의 간증 중 33년 전 사탄의 공격으로 죽어서 예수님과 나눈 간증이 있습니다. 그 당시 죽은 사람 중 98%가 지옥가고 단지 2%만 천국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국 가는 줄에서 전도자로 살다간 흑인 여자에게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너는 사랑하는 법을 배웠느냐?’ ‘주여, 제가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상급을 받고 천국에 갔습니다. 전도자는 사랑으로 전도하다 죽은 자였습니다. 두 번째 어린 소녀에게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오랜 병으로 병원에서 사랑으로 중보 기도하던 소녀였는데 같은 대답을 하고 상급을 받고 천국에 갔습니다. 세 번째 흑인 할머니는 오랫동안 다리 질병으로 불구자로 살아 온 분이셨습니다. 주님의 같은 질문에서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자 천국에 갔지만 상급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천국 가는 최저의 기준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 된 나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신자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부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진짜 신자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에 오셔서 뭐라고 탄식하셨습니까? ‘나는 다만 너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노라.’ 예수님이 대다수의 한국교회 목사들을 향해 주님이 밴쿠버의 대다수의 목사들을 향해 똑같은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설교를 잘하는 것이나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나 심방을 열심히 하는 것은 자기 왕국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사업이지 진짜 목사가 아닙니다.

 

  밥 존스 목사님 댁에서 이 간증에 대해 다시 얘기할 때 “2%의 사람들이 천국 가는 것을 보았는데 2%는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성경을 배우고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성가대하고 봉사하는 것은 단지 교회 놀이일 뿐입니다. 종교놀이일 뿐 기독교는 아닙니다. 이것은 진짜 교회도 진짜 목회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랑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의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 진리는 우리를 구원하는 논리나 지식체계나 이론이나 신학이 아닌 복음은 사랑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이야기를 듣고 사랑에 감복하여 죄를 떠나는 것입니다. 구약에 7년이 되면 종이 해방되는데 종이 주인을 사랑하여 계속 있고자 하면 문지방에 귀를 뚫는 것처럼 사랑 때문에 종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을, 사랑이야기를 듣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자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신앙성장이라는 것은 성경을 아는 것이나, 은사를 받는 것이나, 교회 직위의 승진이나 말씀을 단순히 지키는 것들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기독교입니다.

 

  이기심을 버리십시오. 목사님들도 제발 이기심을 버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몇 천 명, 몇 만 명 교회 세우면 무엇 합니까? 총회장, 노회장, 부흥사 회장해서 무엇 할 것입니까?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장로해서 무엇합니까? 권사해서 무엇합니까? 남전도, 여전도회장이 무엇입니까? 교회놀이 하지 마세요. 교회교 신자나 교회교 목사가 되지 마세요. 진짜 기독교 신자가 되고 진짜 기독교 목사가 되세요. 여러분 속에 있는 이기심을 버려야 됩니다. 단순히 지식이나 은사나 체험, 감투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자라야 됩니다. 저는 요즘 마음에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이단사냥꾼들이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불신자도 하지 않는 거짓말을 지어내는데 목사들이 이기적이어서 저를 동료로 보지 않고 경쟁상대로 보아서 이들이 하는 거짓말을 믿고 모함합니다. 그들의 이기심으로 거짓말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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