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비~ |
2011-09-27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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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전위부대로 쓰임받는 참소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모 장로교단 전 노회장 목사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장 성경적이고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참 회개와 순종과 겸손과 순결함과 거룩함으로 주님의 신부될 것을 외치는 이 시대의 참 선지자 엘리야와 세례요한 같이 쓰임받는 변승우 목사님과 같은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종을 자신의 교만과 독한 시기와 질투로 말미암아 이단시하고 매도하고 정죄함으로 오늘날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인 성도들의 귀를 멀게 하고 눈을 멀게 함으로 분별없는 그들이 소경인 저들의 욕심과 헛된 교리를 따르게 하는, 이 소경되고 강퍅한 오늘날의 교계와, 많은 지도자들의 작금의 행태를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부디 참소하던 자들은 물론 분별 있고 깨어있는 목사와 성도들은 이 글을 보시고 간교한 사단의 궤계를 알고 변승우 목사님과 같은 참 선지자와 그를 대적하여 참 생명과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종하는 그 배후에 존재를 더욱 분별할 줄 알며 진리가운데 더욱 견고히 서셔서 변승우 목사님과 같이 참 회개로 이끌어 주님의 신부되게 하여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참 복음을 전파하는데 동참하셨으면 합니다.
사단의 궤계는 교만함과 독한 시기와 질투로 다른 사람을 용납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유혹자와 참소자 두 가지 모습으로 사람을 찾아와 시험하고 공격합니다.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의 역할은 둘 다 죄에 대해 단호하고 죄를 책망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또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에 관하여 혼동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라고 외쳤던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했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바리새인들 역시 다른 사람의 죄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적한대로 사람들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잡아먹는“독사들”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이 둘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죄를 꾸짖은 목적은 사람들을 회개케 하려는 것이었고, 바리새인들이 죄를 물고 늘어진 이유는 사람들을 깎아 내리고 정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랑의 동기와 사랑의 힘으로 활동했지만 바리새인들은 교만과 시기심과 남을 멸시하는 마음으로 활동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과거에 저 자신도 그랬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세례 요한처럼 선지자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나, 사실은 마귀 혹은 바리새인들을 답습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지 않고 거룩함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참소하는 자였던 사단과 바리새인처럼 율법적이 되어 다른 사람을 가혹하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절대로 옳은 일이 아닙니다.
사단의 전략 중의 하나는 회개하고 상대적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로 하여금 바리새인들의 경우처럼 자기와 닮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그들을 참소하는 자인 자신의 전위 부대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 말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의 타락한 종교계를 보십시오. 동일한 처사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양 안일함과 나태함에 빠져 있는 목사와 성도들에게 쓰임 받고 버림받을까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갔던 사도바울처럼 당연히 해야 할 회개와 순종과 겸손과 순결함과 거룩함으로 가야함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세례요한처럼 참 복음을 외치며 참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변승우 목사를 시기하고 질투함으로 갖은 궤계와 궤변으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비판하는 많은 교계의 지도자들이 마치 예수님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바리새인처럼 사단의 전위부대로 쓰임 받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는데,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입증해주는 자료들도 있습니다.
릭 조이너가 쓴 “빛과 어두움의 영적 전쟁”이라는 책에 보면 그가 본 “지옥의 군대들이 오고 있다”라는 환상이 나옵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귀의 군대는 엄청난 규모로 내 시야 끝까지 뻗쳐 있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군기를 들고 있는 부대들로 나뉘어 있었다.
맨 앞에 있는 부대들은 교만, 자기 의, 존엄, 야욕, 불의한 판단, 그리고 질투와 같은 깃발들 아래서 진군하였다. 나의 시야 너머에도 훨씬 더 많은 악의 군대들이 있었지만, 지옥에서 나온 이 끔찍한 선봉대가 가장 강력해 보였다. 이 군대의 대장은 바로 ‘형제들의 참소자’였다.
이 군대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칼의 이름은 협박이었고, 창은 배반, 그리고 화살들은 참소, 험담, 중상, 흠잡기였다. 이 군대의 주공격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초대로 거절, 앙심, 조급, 용서하지 못함, 정욕 등의 이름을 가진 군대들의 중대들이 앞서 나가 있었다. 작은 전초대는 숫자는 훨씬 적었지만 그 뒤를 따르는 더 큰 부대 못지않을 만큼 강력했다. 그들은 오직 전략적 이유로 소규모였을 뿐이다...
이 군대는 특히 교회를 향해 진군해 오고 있었지만, 공격은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할 하나님의 역사를 사전 격파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군대의 일차 전략은 가능한 대로 모든 관계, 즉 각 교회들의 상호관계, 성도들과 목사들, 부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심지어 어린이 서로간의 모든 관계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정찰병들은 교회들과 가정들 그리고 각 개인들 안에 있는 틈새를 찾아내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그러면 거절, 앙심, 정욕과 같은 것들이 이를 이용하고 틈새를 더욱 벌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뒤따라 온 수많은 부대들이 이 틈새를 통해 밀어닥치고 희생자들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다.
이 환상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 군대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도인을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옷을 잘 차려입고, 존경받을만하고 또한 세련된 데다 교육도 잘 받은 듯이 보였으며, 사회 각 계층을 고루 대표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들은 스스로의 양심을 다독거리기 위하여 기독교의 진리는 고백하지만 실제의 삶은 어두움의 세력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 기독교인들이 어둠의 세력들과 타협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배속된 마귀들은 더욱 더 강해져서 이들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했다...
나는 마귀들이 이 그리스도인들을 타고 있는 것을 보았으나 불신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그들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이 그리스도인들이 마귀들을 털어 내려면 단지 그들의 마귀들과 타협하는 것을 중단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명백하였다...
마귀들의 권세는 거의 전부 기만의 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명백하였다. 그들은 이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도, 정작 이들 스스로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만큼만 속이고 있었다...
내가 멀리 있는 군대의 후위를 바라보니 바로 ‘참소자’의 측근들이 보였다. 나는 그의 전략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것이 너무 단순함에 놀랐다. 그는 분쟁이 난 집은 온전히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군대는 교회에 분열을 가져와 교회가 완전히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획책하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하여 자기 형제들 간의 싸움을 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전방 사단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었다.”
어떻습니까?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릭 조이너는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이라는 책을 다시 썼습니다. 그 책에도 몇 가지 종류의 환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전쟁과 영광”이라는 제목의 주목할 만한 환상이 있습니다. 그 환상은 거의 15페이지나 될 정도로 내용이 깁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93년 8월에 나는 바다 가운데 섬으로 표현되고 있는 교회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많은 서로 다른 유형의 건물들이 이 섬 전체에 세워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이 서로 다른 교단들과 운동들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단히 오래된 건물들이 대단히 현대적인 건물들과 나란히 있으면서 서로 부딪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건물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은 폭발해 버린 폭탄 껍데기들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건물들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어두운 영이 섬 위에서 이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질투였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건물 중 하나가 피해를 입고 사람들이 다칠 때마다 이 영들은 서로 축하를 했습니다...
이 전쟁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병원들-즉 치료를 제공해주는 운동들과 교단들-은 곧 섬에서 가장 큰 건물이 되었습니다. 이 건물들이 크게 성장하자 전쟁을 벌이고 있던 다른 파당들은 그 병원 건물을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그들 자신의 부상자들을 돌봐주는 곳으로도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곧 다른 건물들보다도 그 병원 건물들을 파괴하기 위해 더욱 결심을 굳혔습니다.
전쟁이 계속되자 심지어 그리 심하게 부상을 입지 않은 자들도 허깨비들처럼 보이게 되었고 굶주림과 질병 때문에 점점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건물로든 몰려들었고 그러면 다른 건물들이 그 건물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나는 아무리 전쟁이라 해도 그것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교회였습니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건물들을 넓히려고 노력했고 혹은 새 건물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 건물이 다른 것들보다 조금만 더 높아지기 시작하거나 언제든 새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른 모든 건물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고 얼마 안 되어 파편 조각으로 변했습니다.”
이 환상 역시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의 환상은 오늘날 교계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단들과 선교 단체,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공격적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동역자로 여기기보다는 경쟁 상대, 심지어는 적으로까지 여깁니다.
그래서 서로 시기하고 물고 뜯고 싸웁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현재 하나님은 이런 교계에 대해 오래 참고 계십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참고만 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원간 하나님께서 이기심과 시기와 분쟁으로 가득한 기독교 단체와 개인들을 심판할 날이 이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서로에 대하여 손가락질하는 것을 그만 두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놓인 두 가지 사역들 중 하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두 사역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계속적으로 진행됩니다.
그 중 하나는‘중재’(중보)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참소’(비판)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은 위한 중재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형제들의 참소자”라고 불리며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계 12:10).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의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중보자인 예수님의 기도하는 손입니까? 아니면 참소자인 사단의 손가락질하는 손입니까?
릭 조이너는 “교회들에 대해 가장 큰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게 할 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비판이 중보 사역으로 바뀌는 변화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우리가 주님과 그분의 궁극적 목적들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세대가 될 수 있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두 사역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참소하고 비판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는 속히 우리의 비판을 중보 사역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제 1단계는 죄를 짓도록 유혹한 후 참소의 화살을 날려 죄책감에 빠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죄책감이라는 사슬로 그리스도인들의 손과 발을 묶어 그리스도인들을 무력화시키고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사단의 1단계 작전입니다.
제 2단계는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진리를 앎으로써 죄책감에서 자유케 되면, 이제는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전에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고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며 그들에게 상처를 주게 만듭니다. 전에는 죄책감으로 자기의 손발을 묶었지만 이제는 비판과 판단과 정죄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손과 발을 묶는 일을 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2단계 작전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은 오늘날도 동일한 방법으로 역사합니다. 릭조이너를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대로 사단은 그리스도인을 말처럼 타고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그들을 통해 슬기롭고 용기있는, 참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로 말씀을 깨달아 참 생명의 복음을 외치므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진정으로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신부되게 하는 변승우 목사님과 같은 이 시대에 엘리야와 세례요한 같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이단시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며 중상하는 것은 곧 그들의 독한 시기와 질투와 교만 때문이며 또한 우매하고 무지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을 못박고 희롱하는 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신 것처럼 자신들이 도무지 무슨 짓을 하는지 얼마나 어리석고 무서운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소경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말씀대로 같이 구덩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변승우 목사님과 큰믿음교회에서는 살아 운동력있는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진리의 말씀과 또한 그 따르는 표적으로 큰 믿음교회의 사역에서 사도행전을 방불케하는 역사가 계속 일어나며 능력있고 탁월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승우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사역을 통해서 많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초대교회 때에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심히 시기하는 자들이 이러한 사역을 방해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훼방하고 핍박 했지만 오히려 세계로 전파된 것처럼 변승우 목사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예수님의 참 복음의 역사는 전 세계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실한 종과 섬기는 교회를 참소하고 비판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처럼 가시채로 뒷발질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쌓는 자들이여! 이것은 바로 그러한 교회의 머리되시고 역사하시는 예수그리스도 바로 그 분을 대적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사단의 전위부대로 쓰임받는 참소자가 되지 말고 속히 당신을 타고 조종하는 참소하는 영을 털어내 버리고 돌이켜 당신들이 정말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며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라면 진정한 중보자가 되어 이러한 귀한 분들과 같이 서로 뜻을 같이하여 격려하고 협력하면서 변승우 목사님처럼 영혼들을 바로 깨우고 바로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확장시켜 나가는 사역자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 (벧후 3:9)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회개치 않은 채 죽을 것이며 멸망할 것입니다. 변승우 목사와 큰믿음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여러분들이여! 당신들의 양심이 화인을 맞지 않았다면 그가 이단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속히 회개 하시고 멸망받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쓰임받고 버림받을까봐 자고하지 않고 근신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릭조이너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단의 전략을 다시 한 번 명심하고 참소자로 사는 한 당신이 비록 주의 종이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참소자가 아닌 진정한 중보자와 동역자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3년을 사귀어도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사귀어 보기는커녕 만나보지도 않고 그것도 당신들의 양심을 거스릴 만큼 별다른 근거도 없이 함부로 판단한다면 그는 곧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참소의 길에서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진리와 양심에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저는 특별히 큰 믿음교회는 영혼들을 회개와 거룩함으로 이끌어 말씀의 반석위에 세워 그리스도의 참 신부되게 하는 참으로 이 시대의 표본이 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분과 교재하며 지켜보아왔는데 겸손함으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실천하며 참으로 명철하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이 시대와 말씀을 꿰뚫어보며 주옥같은 진리와 생명의 말씀들을 책으로서 수 없이 쏟아내며 영혼들을 일깨우는 모든 교회와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변승우 목사님을 그렇게 귀하게 쓰시는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온 세계 열방을 뒤 흔들고 참 생수와 같은 생명의 말씀으로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시는 목사님의 사역을 통하여서 뭇 열방의 교회들이 바로 서며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확장되어 견고히 서가는 것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강건하시고 목사님에게서 그 사랑과 열정이 식지 않고 변질되지 아니하며 온유와 겸손의 옷이 벗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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