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8-09-14 09:4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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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로부터 사랑의 강물이』
2008. 2. 12. 중보기도회, 변승우 목사님의 즉흥설교
디모데전서 6장 3절~5절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여기 다른 교훈이 나오고 바른 말이 나옵니다. 이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바른 교훈이 있고, 다른 말이 있습니다. 그 다른 말이 이단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바른 교훈을 전해야 하는데 너무 다른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른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사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설교자들의 설교가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설교를 시작하신 예수님처럼 먼저 우선적으로 회개를 전하고 있는가? 정말 사람들에게서 회개의 필요성을 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 받을 자들로 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말하지만,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 받을 사람이 너무 많은 걸로 알고 정말로 예수님처럼 회개를 외치고 있는가?
그 다음, 산상수훈에 나오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세요. 팔복의 사람, 빛과 소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가진 사람들, 외식하지 않는 사람들, 산상수훈에 나오는 모래 위에 집을 짓지 않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 등 8복과 산상수훈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이 과연 신앙고백에 근거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인가?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전하는 희석된 복음을 전하고 신앙고백하고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이 과연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독교인들인가? 그렇지 않지요? 너무 엄청난 차이가 나지요.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대단히 절망적입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이 천국을 가르친 모든 비유를 보세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옥토 밭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인내를 가지고 30배, 60배, 100배 지키는 사람만 천국 간다. 그런 얘기 아닙니까? 예수님의 많은 비유들이 그런 의미들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면 열 처녀 비유도 기름준비하고 깨어있는 사람들만 들림 받는다는 얘기고 결국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게 되면 한국 강단의 설교하고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바른 말을 하지 않고 다른 교훈을 말하는 설교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른 말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과 견해와 일치하는 설교가 바른 말입니다. 그 다음에 “경건에 관한 교훈”, 경건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가? 거룩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가? 이게 정말 문제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셨으므로 우리는 거룩함에 흠이 없는 자가 되기 위해서 달려가야 되고 노력해야 마땅한데 과연 거룩을 향하여 달려가는 목회자가 얼마나 되는가? 목회자 중에 몇 퍼센트나 단지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하고 목회하는 게 아니라 거룩을 향해서 달려가는가? 절망적입니다.
신자들 중에 과연 몇 퍼센트가 실제로 거룩을 추구하느냐? 신앙생활하면서 실제로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면서 거룩을 추구하느냐? 거룩함에 흠이 없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야 그게 예정의 목적에 맞는 것이고 그것이 바른 신앙생활인데 심지어는 목회자나 성도들 가운데 진실로 거룩을 추구하는 자조차도 너무나 적습니다. 정말로 “어둠이 온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사60:2) 그렇게 말씀했는데 정말 그런 상태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강해설교하고 제자훈련하고 성경을 가르친다고 그것이 바른 교훈이 아닙니다. 바른 교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치해야 합니다. 또한 바른 교훈은 경건이 그 핵심을 차지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성경 가르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게 하고 은사 받게 하고 봉사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사람을 회개시키고 구원 받게 하고 그 다음에 경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 닮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올바른 기독교입니다. 여기서 한국교회가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가? 목회자들의 메시지와 목회 초점과 목회 목적이 여기서 얼마나 심각할 정도로 빗나가 있는가?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깨어서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중보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살펴볼 것은 17절~19절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돈은 위험한 것입니다. 돈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회개를 외치지 않고 번영을 외치고, 거룩을 외치지 않고 번영을 외치는 것은 영혼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들을 살인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영적 살인 행위입니다. 회개를 외치지 않고 거룩을 외치지 않고 그러면서 긍정의 힘을 말하는 것은 영적 살인 행위입니다. 그것은 영적 살인자입니다. 그런 설교를 듣고 어떻게 사람이 진짜 회개하고 진짜 믿고 거룩하여지고 준비 되어서 천국에 가겠습니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위험한 것입니까?
“이 시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부한 자들에게 명해야 되는 이유는 그들이 위험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하고 위태하기 때문에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돈과 함께 마음이 높아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지고 방자해지고 안하무인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돈이 많으면 교만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헌금 내면서 헌금 가지고 목회자를 조종하려고 하고 헌금 내면서 교회를 자기 손으로 쥐었다 폈다 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파괴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다 버려라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단순히 부하게 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궁핍에도 처할 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을 안다.” 궁핍해도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부요해도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다.’ 이것만 말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부자면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이삭과 야곱처럼 부자면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아브라함처럼 부자만 되면 그것은 저주인 것입니다. 이삭처럼 부자만 되면 그것은 저주요, 패망인 것입니다. 야곱처럼 부자만 되면 그것은 저주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부자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아들을, 독자를 하나님께 드릴 정도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내가 알았노라.” 그들은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고, 그들은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이지 않고, 그들은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철두철미하게 경외했던 자입니다. 아브라함을 바로 보고, 성경을 바로 봐야지 아브라함을 부(富)로 보면 안 돼요. 이삭과 야곱을 부로 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부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부 때문에 세속화되지 않고 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를 주신 사람들입니다.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여러분이 무엇을 가졌든지, 재물뿐 아니라, 지식, 명예, 지위든지 무엇을 가졌든지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사람이 부자가 되면 될수록 재물에 소망을 두려고 합니다. 이게 또 하나의 위험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우리가 아무리 부해지더라도 우리의 소망이 재물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어야 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런 말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장래의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신자의 눈은 현세를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신자의 눈은 내세를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큰 교회를 세우느냐? 이 땅에서 얼마나 부요하게 되느냐? 이 땅에서 얼마나 성공하느냐? 그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이 땅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부요해질수록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져서 멀리 못 봅니다. 부요해질수록 사람들은 눈이 흐려져서 앞의 것밖에 못 봅니다. 이 세상 것밖에 못 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이 세상에서 부요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여기에만 마음 빼앗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내세를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천국에 갔을 때 천국에서도 부자일 것인가? 내가 천국에 갔을 때 천국에서도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일 것인가? 내가 천국에서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국에서도 누리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큰 교회 목사면, ‘내가 지금은 큰 교회 목사이지만 천국에 가서도 큰 교회 목사 대우를 받을 것인가? 천국에서도 나를 그렇게 평가할 것인가?’ 이 세상을 보지 말고 내세를 봐야 됩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위의 것을 바라보고 추구하며 나아가는 자가 될 때 우리 눈이 흐려지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세속화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 생명의 달려갈 길을, 사명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 먼저 말씀 드리고, 5장 1절로 돌아가시면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며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 형제, 아들, 딸을 사랑합니다. 제가 어제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전화를 해서 제 어릴 적에 같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했던 통합측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큰 충격을 받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부부관계에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한국의 목회자들도 그렇고 성도들도 그렇고, 처음에는 서로 좋은 줄 알고 만나서 살지만 살다 보니까 성경 말씀이 가슴에 절절이 와 닿지요.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일곱 번 아멘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겪고 있고 많은 가정들이 이혼도 하고, 또 이혼은 안 해도 그냥 서로 포기하고 사는 거지, 싸우다가 지치고 서로 포기하고 10년, 20년 살다보면 서로 포기하며 그냥 맞춰가며 사는 거고, 진짜 서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드뭅니다.
이 목사님의 얘기를 듣고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것은 이 목사님이 결혼을 했는데 두 분이 성격이 맞지 않는 겁니다. 그 다음에 참 공감되는 얘기인데 그 목사님하고 사모님하고 부부싸움하면 목사님이 저쪽 방에 가 가지고 목사님 생각에는 분명히 사모님이 잘못한 건데, 그건 하나님만 아십니다. 다 자기 생각에는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만 아십니다. 저같이 비교적 정직한 사람은 옛날에 집사람하고 싸우면 내가 보면 틀림없이 집사람이 잘못한 사람인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여, 저는 모릅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만 옳으십니다. 가르쳐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했던 기억들이 납니다. 이 목사님이 부부싸움하고 딴 방에 가 있으면 주님께서 너무 분명하게 그 마음속에 “너 빨리 가서 사과해라. 용서를 빌어라.” 그러면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 아닌데 분명히 사모님이 잘못했는데 자기는 그러기 정말 싫은데 그냥 주님이 하라니까, 주님 말씀이니까 순종해야지 그러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가 가지고 사모님한테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자는 확실히 여자입니다. 보통 남자는 부부싸움해도 금방 풉니다. 여러분, 남편 중에 부부싸움하고 아내보다 화를 늦게 푸는 사람은 사내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자는 꽁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서 잘못했다고 하면 받아줘야지 되는데 목사님이 볼 때는 분명히 사모님이 잘못했는데(하나님만 아시지만), 목사님이 볼 때는 분명히 사모님이 잘못했는데 ‘장난하는 거예요? 조금 전에 그렇게 속상하게 해놓고 장난하는 거예요?’ 그렇게 화를 내고 안 받아들이는 겁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아내를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그냥 속은 막 지글지글 끓지만 가서 억지로 사과하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사랑이 조금 생긴답니다. 그 다음에 또 했더니 또 사랑이 조금 생기더랍니다. 나중에는 점점 사랑이 증가되면서 어떻게 되냐 하면, 여러분, 여러분의 아이가 잘못한 것 많잖아요? 그러나 그 아이가 예쁘잖아요? 여러분 중에 아이가 잘못하니까 무조건 밉다. 그러면 회개해야 합니다. 아이가 잘못한 거 보면 혈기 부리고 때리는 부모 있어요. 그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건 비정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이 그러면 우리는 다 죽었어요. 여러분, 아이가 잘못해도 예쁘게 보여야 정상입니다. 화가 나면서도 예뻐야 정상입니다. 화가 나면서도 예쁘고 그래서 분노 때문에 책망하는 것이 아니고 매를 드는 게 아니고 아이가 예쁘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매를 들어야 합니다. 혈기로 얼굴이 시뻘겋게 마귀 얼굴하고 난 다음에 아이를 잡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징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징계는 폭력이 아닙니다. 징계하고 폭력은 구분됩니다. 「사랑의 매」라고 써놓고 막 ‘저놈의 시키, 잡아 죽여’ 그러고 달려들어서 패면서 ‘이게 사랑의 매다.’ 그건 외식입니다. 그건 거짓입니다. 정상적이면 아이가 잘못을 해도 아이가 예뻐야 부모입니다. 마치 그것처럼 분명히 사모님의 잘못인데 그것을 아는데도 예쁘더란 겁니다.
저는 그 얘기 듣고 충격 받았습니다. 분명히 사모님이 잘못했는데 아이가 예쁜 것처럼 사모님이 예쁘더랍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안 예쁘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계속 실천했더니 나중에는 사랑이 증가되고, 증가되고 증가되다가 나중에는 뭐가 뻥 뚫리는 것같이 사랑이 물밀듯이 주어지는데 아내가 그렇게 예쁠 수 없더래요. 사모님이 몸이 안 좋아서 목사님이 밥을 다 하신대요. 빨래만 빼놓고 집안일을 다 한답니다. 요리도 굉장히 많이 한답니다. 목사님이 목회하시면서 밥을 다하고 살림을 다 하신답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기쁘대요. 그렇게 기쁘고 그렇게 행복하더랍니다. 전에는 자신이 일어나서 밥하고 그러면 주일날도 설교를 하는데 밥하고 설거지하고 집안일하면 사모님이 늦게 자고 있으면 ‘일어나서 좀 도와주지.’ 섭섭한 마음도 들었는데 점점 사랑이 부어지니까 아침에 살그머니 일어난답니다. 사모님이 깰까봐 살그머니 일어나 조용히 음식을 준비한답니다.
그런데 마음에 기쁨이 넘친답니다. 저는 어제 진짜로 엄청 충격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을 낮에 만나가지고 점심 같이 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제가 식당에서 손을 내밀고 임파테이션 좀 해달라고, 손 내밀고, ‘목사님, 여기다 손 좀 얹어 봐요. 임파테이션 좀 해주세요.’
진짜로 충격 받았어요. 그렇게 행복하다는 겁니다. 그 목사님은 서울에서 목회를 하는데 거의 집밖을 안 나가신답니다. 아이들 셋 키우고 사모님 돌보고 모든 일을 자기가 하는데 자기는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겁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기쁨으로 오는데 ‘나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겁니다. 교인이 한 30명 정도 되는 교회 목사님인데 내가 그것을 들으면서 ‘주여, 누가 큰 자입니까? 주님, 천국 가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누가 큰 자입니까?’ 제가 기가 죽어가지고 찍 소리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가 죽어가지고 할 말이 없어요. 찍 소리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 사랑이 증가되어 가지고 샘이 막 솟는답니다. 걸핏하면 안아주고, 걸핏하면 ‘사랑한다.’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봇물이 터지는데 나중에는 줄줄줄 나와서 이제는 사모님이 귀찮아한답니다. ‘옛날로 돌아가면 좋겠다.’ 너무 ‘사랑한다.’ 그러고 너무 아껴주고 너무 화도 안내고 너무 잘해주고, 그 다음에 방에다가 만 원짜리를 가지고 만 원짜리 수십 장으로 「사랑해」하고 써놓았답니다. 사모님이 그걸 보고 나중에는 수표로도 그걸 써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수표로도 썼는데 「사랑해」까지는 못 쓰고 「사랑」까지만 썼답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이벤트를 하는 겁니다. 거기다 심심하면 사랑한다고 써놓고 나갈 때마다 끌어안고 그래서 밖에 나갈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답니다. 하나씩 다 안아줘야 되니까요. 들어갈 때도 하나씩 다 안아줘야 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린답니다. 그것이 아주 고욕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니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답니다.
이것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하는 얘기가 자기는 이것이 다른 모든 데에 적용된다고 믿는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뿐 아니고 이웃에 대한 것, 원수에 대한 것 누구에 대한 것이든지 이것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사랑이 펑펑 쏟아 나와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억지로, 억지로 어렵게, 어렵게 ‘정말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 실천하고 시작하다 보면 조금 조금씩 사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게 어느 순간이 되면 그냥 천국의 사랑의 수문이 열려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지기 시작하면, 그게 천국이랍니다.
저는 어제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인데 제가 들어본 어느 간증보다 더 놀라운 간증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간증보다 값어치가 있고, 영적이고, 천국에 올라가는 것보다 영적이고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 때 우리를 담당했던 목사님이 그 목사님을 보고 충격을 받아가지고 그러셨대요. ‘어떻게 경상도 남자가 저럴 수 있느냐?’
저는 어제 심각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주님, 주님을 사랑하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사랑하게 해주옵소서. 아내를 사랑하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부목사님들, 전도사님들, 동역자들을 다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님들을 진짜로 다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탄식하면서 기도하다가 왔습니다.
이 간증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목사님이 모든 밥을 다 하고 설거지를 다 하고 청소를 다하고 아이들을 다 돌보고 그러면서도 놀라운 것이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겁니다. 그러고 자기 부인이 예뻐서 죽겠대요. 그냥 그렇게 예쁘대요. 그러고 청년 중에 사모님한테 관심이 있고, 사모님께 잘하는 청년들이 있으면, 옛날에는 질투심이 생겼지만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랑이 부어지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완전히 달라져서, 이게 인간적인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과의 차이인데, 남자 청년들이 사모님한테 잘하고 얘기하고 좋아하면 ‘야, 너희들도 우리 집사람이 예쁜걸 아는 모양이지? 너희들도 이제 우리 집사람이 예쁜걸 알았구나?’ 그러면서 자기 집사람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지, 다른 사람들한테, 청년들한테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지.’ 그러고 그렇게 마음이 기쁘대요.
나는 진짜로 어제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충격에서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될 때까지, 아내에 대한 문제만 아니거든요. 모든 것에 대한 문제거든요. 하나님, 가족, 이웃, 형제, 원수와 핍박자, 이 모두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충격에서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국 가봐야 압니다. 유명하던 유명하지 않던,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설교를 어떻게 하던 천국에 가봐야 압니다. 심판대 앞에 서봐야 압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작은 자인지 그 목사님하고 대화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에 도전 받고 여러분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실천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계속 부어지고 자람으로 말미암아 나중에는 그 목사님처럼 걷잡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간증하는 사람을 못 들어봤습니다. 자기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는데, 그게 천국입니다. ‘이 목사님은 정말 천국을 누리고 있구나. 놀랄 정도로 천국을 깊이 누리고 있구나.’ 교회가 작아도 교인이 30명이라도 아무런 부러운 것이 없고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겁니다. 그게 사랑의 힘입니다. 아까 돈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그게 진정한 부요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속에 부어져서 강물처럼 흐르는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거기에 진짜 기쁨이 넘쳐나고 거기에 천국이 임하고, 이것이 진정한 부요인 줄 믿습니다. 그런 부요한 자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의 은혜와 주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감사드리고 찬양드리고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이 시간에 간절히 원하옵고 기도하오니 한국 교회 강단에서 바른 말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다른 교훈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 바른 말이 회복되게 하시고 경건의 교훈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교회가 깨어나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도 목회자도 성도도 점점 부요해지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부가 가지고 있는 위험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말씀의 교훈을 따라 아브라함처럼 부자만 되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은 이 땅에 보이는 성을 찾는 것이 아니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성을 찾았습니다. 아버지,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는 목회자들, 성도들, 교회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그 놀라운 목사님의 간증처럼 아버지, 우리가 회개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너무나 적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게 해주옵소서. 말과 혀로만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아버지, 저희들의 마음속에 점점 사랑을 부어주시고 그 목사님이 경험했던 것처럼 사랑이 뻥 뚫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주옵소서. 위로부터 사랑이 물 붓듯 우리에게 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사랑의 수고를 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은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게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가 그런 천국의 수준으로, 천국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아내와 가족을 그렇게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형제를 그렇게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원수와 핍박자까지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저희들도 변화시켜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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