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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겸손의 겉옷 (즉흥설교 전문)

주님생각 |

2008-09-19 16:20:00 |

조회: 214

다윗의 겸손의 겉옷

 

2006. 12. 27. (수요중보기도회), 변승우 목사님의 즉흥설교

 

 

  호세아 13장 1절에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함으로 망하였거늘" 여기 사람들이 멸망하는 세 가지 단계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가 교만이고, 둘째가 범죄하는 것, 셋째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교만, 범죄, 멸망. 교만이 씨앗이나 싹과 같은 거고, 범죄는 자라고 꽃이 피는 거고, 멸망이 그 열매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솔로몬이 말했는데 교만을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사람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교만이 왜 무서우냐? 교만이 들어오면 여기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함으로"라고 말한 대로 범죄하게 됩니다. 사람이 교만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정결하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약간은 다르겠지만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정결하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세리나 창기 같지도 않고 라고 말한 대로 교만의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자기를 정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정결합니다. 그런데 정결하기 때문에 안심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가 정결해서 정결한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교만해지는 순간 자기가 정결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은혜의 줄기, 은혜의 흐름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교만하면 반드시 범죄합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의 부인 도리스 와그너가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왜 목회자들이 타락하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사용하시던 귀한 목회자들이 왜 타락하게 되는가? 첫 번째 이유가 너무 바빠지는 것이고, 두 번째가 주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음란물을 접하게 되고 그러다 그게 심해지게 되면 타락하게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근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통, 교제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측면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위대하게 사용했던 주의 종들이 왜 그렇게 타락하는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써서 교만해져서 타락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겸손할 때는 그런 죄들이나 타락을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겸손했기 때문에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 받고, 받은 은혜로 변화되고 새로워지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귀하게 쓰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높여서 귀하게 쓰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교만이 들어옵니다. 그 교만 때문에 결국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이 무서운 것입니다.

 

  제가 주변을 살펴보아도, 마음이 교만해지면 꼭 타락합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사역자들이나 사람들 속에 교만의 모양이라도 보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책망하는지 아십니까? 불행히도 교만의 위험성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그럴 것 같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마음이 교만할 때 넘어지고, 정말 그런 죄를 지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이 교만해지니까 그런 죄들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교만으로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진 것을 빨리 막지 않으면 거기서 타락으로 넘어갑니다. 다른 범죄로 나아갑니다.

 

  사탄이 천국에서 간음을 했습니까? 사탄이 천국에서 살인을 했습니까? 사탄은 천국에서 다른 죄를 안 지었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였습니다. 사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모든 죄들이 다 생겨났습니다. 교만은 교만한 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다른 죄들을 몰고 오고 다른 죄들의 원인이 됩니다. '저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해도 교만이 들어가면 그렇게 됩니다.

 

  사탄도 절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사탄은 거룩한 천사장입니다. 그런데 교만이 들어가니까 천국의 천사들이 알았던 사탄의 그 모습이 아니고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간음할 사람이 아니야, 저 사람은 절대로 사기 칠 사람이 아니야. 도둑질할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교만이 들어가면 다른 죄가 나옵니다. 반드시 다른 죄를 짓게 됩니다. 교만이 시작입니다. 시작 때 이것을 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이래서 제가 교만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제 동생을 포함해서 부교역자들의 교만 문제를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권위 아래 들어오는 만큼만 저는 사람에게 권위를 줍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만큼만 그 사람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권위 아래 들어오는 것보다 더 권위를 주면 그 사람 스스로를 반역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반역죄의 유혹에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권위 아래 들어가는 것만큼 권위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입니다.

 

  권위는 지식만큼, 지혜만큼, 은사만큼, 일한 것만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는 자기가 권위 아래 들어간 것만큼 갖는 것입니다.

 

  일대일로는 내가 주님의 권위 아래 굴복한 만큼 권위가 주어집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내 위에 세우신 권위자 안에 얼마나 거하느냐? 거기에 비례하여 권위가 주어집니다.

 

  여기에 또 미혹이 있습니다. '나는 주님 말만 듣는다.' 이것 아주 위험합니다. '나는 주님의 음성만 듣는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그 교만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음성만 듣는다.' 이 사람이 제일 속은 사람입니다. 제일 교만하고 못된 사람입니다. 저는 이 설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성전의 성도 중에 '나는 담임목사님의 권위에만 순복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지성전에서 나가야 합니다. 지성전의 교역자들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악한 영들이 가져다 준 속성이 그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압니다. 제 앞에서 지성전의 교역자들을 비판하면서 '목사님, 제가 목사님의 권위에는 철저히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저는 속으로 '당신은 기회만 되면 나한테도 거역할 사람이다.' 항상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 판단이 틀린 적이 없습니다. 지성전의 교역자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저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타켙이 지성전 교역자이지만 그 타켙이 제거되면 그 화살이 제게 옵니다. 본인들은 미혹이 되어서 이걸 모릅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습니다. 그게 교만의 미묘한 속임수요, 작전입니다. 그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대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내가 분명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의 권위 아래 분명히 들어가야 합니다. 신자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곡이고, 얼마만큼 알곡입니까? 간단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설교 잘 듣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지식적인 겁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리라." 그건 권위 아래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때 들을 수 있는 음성입니다. 똑같이 나와서 설교 듣고 있고, 지성을 갖고 있는데,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설교만 들으면 이게 쭉정이가 되고 염소가 됩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권위 아래 들어가면 그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설교만 듣는 사람은 꼭 목회자를 대적합니다. '왜 설교를, 목회를 저렇게 하시나? 우리 목사님은 왜 저런가?' 별게 다 흠이 됩니다. 그러나 권위 아래 들어가서 설교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따릅니다.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들짐승들은 목자가 따라오라고 해도 따르지 않지만 양은 따릅니다. 이게 진짜 양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완강한 염소입니까, 아니면 양입니까?

 

  그 다음에 양 중에서도 진짜 양, 하나님이 다윗을 양무리 가운데서 선택하셔서 그 나라의 왕으로 높이신 것처럼 양무리 가운데서 선택해서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귀하게 들어 쓰는 사람들.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예수님의 말씀에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양무리들 가운데서도 더 어린아이 같은 사람, 양무리들 가운데서도 더 겸손한 사람, 그래서 더 주님의 음성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고 따라오고, 다른 성도들보다 주님의 음성을 더 잘 알아듣고 따라야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오히려 성도들보다 주님의 음성을 더 못 알아듣는 것, 이게 한국 교회의 비극입니다. 상당수 목회자들이 성도들보다 주님의 음성은 못 듣고 그냥 성경 지식만 있고, 음성을 들으면서 설교를 해야 그게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되고 성도들 속에 있는 기갈을 해갈하고 영혼들을 살리는데, 음성을 성도들보다 더 못 알아듣고 성경 지식만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내용은 분명히 훌륭한데 들어도, 들어도 그 심령 속에 있는 기갈이 해갈되지 않고, 그 심령이 생수를 못 마시니까 영혼은 말라 비틀어져 고갈 되고 곤고하고 그게 한국 교회입니다. 그게 열방에 있는 교회들의 현재 상태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목사가 되기 전에 양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예수님의 양이 되어야 진짜 목사가 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집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되기 전에 예수님의 진짜 양이 되어 그 권위 아래 철저하게 들어가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르는 것만큼 영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신학교 나오고 목사 안수 받았다고 영적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회장, 총회장 된다고, 박사 학위 몇 개 땄다고 영적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의 양이 되어서 성도들보다 더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대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외적인 것을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어떤 덕목들을 가지고 사도들이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더 경건한 삶을 사나? 더 거룩한가? 더 양심적인가? 더 성경 읽고 더 잘 아는가? 더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는가? 그런 원칙이라면 저부터 아무것도 될 것이 없습니다. 구제를 남보다 더 잘 하는가? 주님은 그런 것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고 그가 얼마나 겸손한가? 지금 현 상태를 보시지 않고,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보다 기도를 덜 할 수 있고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보다 덜 의로울 수 있고, 지식도 덜 가질 수 있지만 현재 상태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영을 보십니다. 그 영 속에서 가능성을 보십니다.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주님의 음성을 잘 알아듣고 소화하고 따라오려고 하는가? 바로 그것을 보십니다.

 

  훌륭하면 쓰고 훌륭하지 않으면 못 쓰고 그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어부나 세리 속에서도 사도를 택하시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들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결국은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선택의 원리가 거기에 나와 있습니다. 선택의 원리가 무엇인가? 그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조건이나 장점이나 능력이나 재능을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얼마나 겸손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겸손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가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강대상에서 '주님이 지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니까 '당신 환상도 못 본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아니 무슨 주님이 걸핏하면 저 사람에게 얘기하실까?' 그것은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지식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키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겸손하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마찬가지고 은사 사역자들도, 우리 교회 은사 사역자들의 특징이 겸손 아닙니까?

 

  은사가 들어가면 교역자나 교인이나 다 교만해지는데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사가 들어갔는데 교만하면 그것은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쓰레기입니다. 그것은 버려야 됩니다. 성도들을 볼 때도 저는 결국은 겸손을 보고 판단합니다. 사역자들을 볼 때도 은사가 아니고 겸손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동역자들, 교역자들을 볼 때도 저는 결국은 겸손을 보고 판단합니다. 겸손이 일정 수준이 안 되면 저는 절대로 동역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런 사람을 쓰지 않습니다. 성도도, 사역자도, 교역자도 마찬가지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나를 쓰느냐, 안 쓰느냐? 그 가장 키가 되는 것은 내가 주님 앞에 겸손하냐, 겸손하지 않느냐? 그게 좌우하고 그게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 목사는 겸손이란 닉네임을 쓰면서 카페 안에서 자기 자랑은 다해놨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마음은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이기 때문에, 거듭났다 해도 부패성, 타락성이 있어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므로 제가 다 모릅니다. 나를 좀 돋보이게 하고 나타내려고 하는 의도도 거기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 중심은 제가 제 자신을 진실로 아무것도 아닌 걸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를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제게 주신 권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유익을 위해 부득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교만하면 외부에서 카페에 들어온 사람들도 환상만 말해도 '잘못됐네. 이상하네. 신비주의네.' 이런 목사, 이런 성도들이 얼마나 들어옵니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권위를 알아보고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권세 아래 들어와서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까? 그들이 겸손해져야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겸손해져야만 깨달을 수 있고 분별력을 얻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빛을 주기 위해서 제가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는 것을 알지만 저는 개의치 않고 그 일을 지금까지 하는 것은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스티브 탐슨 목사님이 오셨을 때 저는 개인적으로 예언사역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본인이 받은 걸 제게 잠깐 얘기해 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미래에 대한 많은 계획들을 스티브 탐슨 목사님에게 보여주셨는데 '하나님, 변승우 목사님에게 왜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스티브 탐슨 목사님이 궁금해서 하나님께 여쭤보았을 때 세 가지를 가르쳐주셨답니다.

 

  첫째는 '성경적인 올바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가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고 주님의 일을 추진해 나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인데 '그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것인데 그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이다.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저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결국 겸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결국 겸손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성도든지, 은사 사역자든지, 교역자든지, 자기를 최종적으로 체크할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체크할 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만과 겸손입니다. 성도, 사역자, 주의 종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해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겼던 존재는 루시퍼였습니다.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교만이 들어가자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교만이 들어가면 반역자가 됩니다. 어떤 지혜가 있든지, 어떤 은사가 있든지, 어떤 열심이 있든지 교만이 들어가면 반역자가 됩니다. 성도들도, 은사자들도, 목회자들도 교만이 들어가면 반드시 반역자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성도를 볼 때나 사역자를 볼 때나 목회자를 볼 때나 발 겸손입니다.

 

  어제 트랜스포메이션 2007 운영위원 모임에 갔을 때 손종태 목사님이 최근에 인도에 갔다 오셨는데 인도에 부흥이 일어난 것을 보고하셨습니다. 손종태 목사님이 결국 하신 이야기가 뭔가 하면, 어제 우리가 서울극장에서 내티비티 이야기를 봤잖아요. 예수님이 마굿간으로 오셨습니다. 이게 참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나야말로 마굿간 출신인데,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아니라 나야말로 천박한, 가난하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하층민입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자랐고 웬 말인지 웬 은혠지 하나님이 나 같은 것에게 복을 주셔서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미국과 캐나다를 갔다왔습니다. 처음에는 미국도 괜찮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멕시코 갔다 와서는 제 마음이 미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너무 잘 사는 나라인데 멕시코는 너무 가난한 나라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멕시코나 인도, 인도네시아 이런 어려운 나라들로 제 마음이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멕시코를 갔을 때 '이런데서 어떻게 사나?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집에서, 이런 차를 타고 어떻게 사나?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누리고 사니까 이런데 적응하기 힘들겠고 이런데 오는 것도 힘들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더욱 끌리는 것입니다.

 

  미국은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 교만한 것이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흐르고 있고 진짜 목마름이 없고 진짜 배고픔이 없고 진짜 겸손히 순복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같은 나라들에는 육신만 배고픈 것이 아니라 그 영에 배고픔이 있어서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그런 데로 끌립니다. 예수님이 마굿간에 오셨다. 어제 영화 보면서 그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마굿간에 오셨는데 내 마음이 잘 사는 나라, 그래서 멋지고 좋은 빌딩들에 들어가서 집회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유명 인사들을 만나고, 이게 아니고 마굿간에 오신 예수님이 나에게 진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마굿간에 오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정말 멕시코나 인도나 인도네시아나 이런 어려운 나라들로 가기를 원하시지 않으실까? 이런 나라들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육신적으로는 고달프다 해도 이런 나라들에 가서 기쁨으로 사역하는 것을 내게 원하시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들을 어제 영화를 보면서 제 나름대로 해봤습니다.

 

  아무튼 손종태 목사님이 인도에 일어나는 부흥을 보고 와서 "형제들아 너희들을 부르심이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그런 사람들을 택하시고, 마굿간에 오시는 예수님이시다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에서 인도로 가기 전에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아주 예언적인 사람이 아주 중요한 예언을 했는데 '앞으로 일어날 한국부흥의 키는 겸손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겸손한 자들을 찾으실 것이고 겸손한 자들에게 기름 부으실 것이고 하나님이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실 것입니다. 정말 앞으로 일어날 부흥에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우리 마음이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손 목사님이 다 보고하고 끝마무리로 기도하면서 하는 얘기가 '사도 바울이 대사도인데 셋째 하늘에 이끌려가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고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 그래서 평생을 괴로움을 당하게 만들었다. 대사도 바울이 아무런 불편 없이 주의 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탄의 사자, 육체의 가시를 주셔서 평생 괴롭힘을 당하고 장애를 겪어도, 그것을 없애달라고 해도 주님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하셨다. 그러니 겸손이 어느 정도로 가치가 있는가? 사도 바울 같은 대사도가 평생 괴롭힘을 당하고라도 겸손한 게 더 나을 정도로 겸손이 그렇게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기도하는 데 그것이 제 마음 속에 굉장히 많이 와 닿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또 이 동영상을 볼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낮아지지 않으면 여러분이 겸손해지지 않으면 여러분이 권위 아래 들어가지 않으면 쓸 수 없습니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성전의 성도님들에게 특별히 말씀드립니다. 지성전 성도님들 회개하고 권위 아래 들어가세요. 담임목사의 권위뿐 아니라 지성전 교역자들의 권위 아래 들어가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귀중한 일꾼이 될 것이고 아니면 교회의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입으로 무엇이라고 말을 하든 자신의 마음은 어떻든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가증하고 거짓되어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권위 아래 들어가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귀중한 동역자와 일꾼이 되어서 주의 일을 이루어낼 것이지만, 여러분이 교만을 버리지 않고 권위 아래 들어가지 않으면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열심을 내든지 주님의 일에 걸림돌이 될 것이고 결국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지성전들의 성도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교만을 버리세요. 겸손하세요. 첫째, 하나님의 권위 아래 철저히 들어가서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께 순복하세요. 둘째, 담임목사의 권위 아래 들어가세요. 이 교회에 다닌다고 이 교회의 성도가 아닙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 그래야 진짜 이 교회 성도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근본 원인 중의 하나가 교만입니다. 자기가 양이 못 되었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못 알아듣는 겁니다. 셋째로는 지성전의 교역자들의 권위 아래 들어가세요. 그게 피난처요, 산성이요, 높은 바위요, 안전한 곳입니다. 그 외의 곳은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 권위 아래 들어가지 않으면 그곳은 이리들이, 늑대들이 활개 치는 곳이요, 거기는 곰들이 잡아서 찢으려 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의 권위 아래 들어가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담임목사의 영적 권위 아래 들어가서, 설교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되며, 지성전의 목회자들의 영적 권위 아래 들어가서 그분의 "아론과 훌"이 되세요. 그분들을 섬기는 종이 되세요. 그래야 진짜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서울 큰믿음교회 성도님들, 잘하고 계시지만 더 깊이 들어가세요. 겸손의 기초를 더 깊이 파고 더 깊이 들어가세요. 여러분이 겸손의 기초를 더 깊이 파는 만큼 정확하게 거기에 정비례해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주시고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교만, 범죄, 멸망, 이 세 가지 내리막길 계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아무도 자기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루시퍼도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교만이 들어가기 전까지 누가 루시퍼의 모습에서 사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으며 사탄의 그 흉악하고 사악한 모습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교만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범죄들이 싹터나오고 불가능해 보이던 변질들이 일어나고 타락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데 가장 귀중하게 보시는 것 중에 하나가 교만하냐, 겸손하냐? 바로 그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느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으로 예선된 사람을 선택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합해서 택한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가장 주된 특징은 귀신들린 사울의 그 영적인 권위 아래 들어가는 신비할 정도의 겸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실 때 사람의 중심에서 진짜로 보고 계신 것, 진짜로 찾고 계신 것, 진짜로 보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 속에 있었던 겸손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다윗의 예배의 기름부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칠 배나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을 다윗 되게 한 것은 다윗 속에 있는 겸손의 기름부음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높여주신 것입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다윗의 겸손의 기름부음이 종에게와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윗의 겸손의 기름부음을 저와 이 교회 모든 교역자들과 모든 사역자들과 모든 성도들과 모든 지성전들에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에게 겸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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