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8-10-18 11:52:00 |
조회: 248
예수님의 보혈과 영적 거머리
2005. 12. 14.
잠언 17장 3절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은과 금은 귀한 것입니다. 은과 금이 귀하지 않으면 굳이 연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과 금이 귀한 것이기 때문에 연단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하기 때문에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찌기를 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제거해야 할 찌끼들이 너무 많습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얼마나 다른지 아십니까? 우리는 도가니도 풀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평안하고, 형통하고, 성공하고, 잘 되고, 높아지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도가니나 풀무 속에 우리를 던져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과 고통 속에 우리를 던져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도가니나 풀무 같은 것과 관계없이 그냥 평안하게 번창하고 성공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연단하여 마음에서 찌끼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마음에서 교만과 혈기를 제하고 욕심과 이기심을 제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찌끼를 제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에서 찌끼를 제하면 그것이 나중에 보배 합에 넣어져서 귀하게 사용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여러분, 평안한 것이 다가 아니고 이 땅에서 도가니나 풀무를 통과한다 해도 우리 마음이 연단을 받아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존귀해지고 높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요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되고 성공하고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지 말고, 정결하게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변화되고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난을 싫어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하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싫어하는 나, 변화되지 않고도 평안하게, 성공하며, 형통하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차라리 변화되고 아프고 살기를 원해야 합니다. 차라리 질병에 걸리더라도 내가 그것을 통해서 정결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차라리 가난을 통과하더라도 내가 정결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차라리 중국이나 북한교회처럼 고난을 통과하고 순교를 통과하더라도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 우리가 주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보배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더 원해야 합니다. 이게 지금 이 시대와 한국 교회에 빠져 있는 요소입니다.
우리는 너무 형통신학이라든지 축복신학이라든지 번영의 신학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연단되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고난, 시련을 만나거든, 불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우리가 연단 받으면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영광과 존귀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금방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하고, 번영하고, 잘되는 것도 원하시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더 원하시는 것은 우리 마음이 연단 받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 제게도 말씀의 은사를 주세요. 하나님, 제게도 영안을 열어주세요. 하나님, 저도 주님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저도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도 크게 써주세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부흥하게 해주세요.' 다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점이 바르지 못합니다. 너무나 영적으로 초점이 바르지 못하고 흐려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초점이 흐리고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 간절히 원해야 하는 것은 형통도, 번영도 아니고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은이나 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들의 활동이나 사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마음에 있고,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에서 찌끼를 제하기 원하십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닮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맞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우리 본성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우리 온 몸의 세포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인정받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섬기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평안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 닮는 것은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우리의 것을 챙기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다 내주고 다 나눠주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싸우기를 원하고 자기를 변호하고 보호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대해서 비난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을 닮는 것은 다 내려놓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지고 우리는 능력이 있어지고 우리는 은사들로 채워지고 그리고 그냥 얄팍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비전을 가지고 큰 능력과 은혜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쁨을 느끼며 쓰임 받을 것을 원하지만 하늘에서 볼 때는 속이 환하게 보이는 겁니다. 하늘에서 볼 때는 너무나 얄팍하고 천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지혜나 은사나 그런 기도생활이나 그런 충성이나 그런 부흥이나 그런 체험이나 그렇게 쓰임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서 주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의 본성과 다르지만 우리들의 관심사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다르지만 주님은 겸손에 관한 빛을 우리 영 속에 비춰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온유에 관한 빛을, 섬김에 관한 빛을, 고난과 순교에 관한 빛을, 헌신과 희생과 용서에 관한 빛을 우리 속에 비춰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미달되어 있는지 우리가 그것과 얼마나 무관한 삶을 사는지 우리가 이대로 하늘나라에 가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할 것인지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고 기름부음과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기뻐 뛰고 찬양하고 그러면서도 하늘나라 가서는 얼마나 보잘 것 없을 것인지, 얼마나 가치 없는 작은 자일 것인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아가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 성공과 야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가지고 있고, 정말 예수님의 겸손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예수님의 사심 없는 사랑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점잖케 설교만 하신 것이 아니고 기적만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큰 부흥을 일으키고 놀라운 사역만 하신 것이 아니고 고난과 조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난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고난 안 받겠다고 666에만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지만 우리는 예수님께 단물만 빨아먹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은 것을 누리기만 원합니다. 죄 용서 받고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성령 받고, 치유 받고 축복 받는 것만 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도 너무 이기적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고, 성령 충만하다고 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고 부흥을 꿈꾼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기적입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늘나라에 갔을 때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얼마나 초라하겠습니다. 얼마나 초라하고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겠습니까?
씨를 뿌려야 되는 것이지 우연히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진리의 씨앗들이 정말 겸손의 씨앗들이, 섬김의 씨앗들이 고난과 희생의 씨앗들이 용서와 중보의 씨앗들이 우리 속에 심겨져서 그것이 우리 속에서 자라고 우리의 성품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우연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우연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겠습니까? 빛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내 영혼에 빛을 비춰 주옵소서.' 황금빛으로 빛나고 영화로운 그냥 하늘의 빛이 아니라 내 영혼을 비춰 줄 수 있는 주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겸손에 관한 빛, 섬김에 관한 빛, 자기부정과 희생에 관한 빛,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정말 주님의 영광과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영혼의 빛, 나를 위해서 고난당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핍박과 고문을 당하고 고난과 순교를 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빛들이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삶의 척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얼마나 부흥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주님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처럼 지혜롭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런 권능을 행할 수 있는가? 이게 문제가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실제적인 인격과 삶을 우리가 어떻게 닮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은과 금이 도가니와 풀무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연단이 되겠습니까?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하고 좋기만 한 데서 어떻게 연단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하시지만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안일과 이기심을 충족시키지만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을 보내십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참된 유익, 영원한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고난의 풀무 불에 던져 넣습니다. 갈등을 겪게 하시고 반대에 직면하게 하시고 어려움을 만나게 하시고 산이 가로막게 하시고 홍해가 가로막게 하시고 광야가 그 앞에 놓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그런 것을 허용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 땅이 가나안 땅이 되기를 원합니다. 젖과 꿀만 흘려주기를 원합니다. 젖과 꿀이 우리의 육신에는 유익할지 모르나 우리 영혼에는 독약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는 광야가 필요합니다. 우리 영혼에는 풀무가 필요합니다. 우리 영혼에는 고난도 필요합니다. 우리 영혼에는 고문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우리 영혼에는 옥에 갇히는 것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오늘날 주님의 종들 가운데 참되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종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몇 퍼센트나 되겠습니까? 주님을 진짜 위해서 사는 종이 저를 포함해서 얼마나 되겠습니까? 초대 교회에는 몇 퍼센트나 진실했을 것 같습니까? 거의 백 퍼센트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고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명예의 자리가 아니고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고 그것은 고난당하고 추격당하고 고문당하고 죽는 자리입니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누가 그 자리를 원하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고난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순교사를, 고난의 역사들을 읽으면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네로에게 도미시안에게 토라잘에게, 기독교인들이 짐승처럼 학대를 당하고 유린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비참하고 처절하게 죽도록,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보호하시지 않고 내버려 두셨는가? 하고 의아해 합니다. 여러분, 천국에서는 그것이 영광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따뜻한 밥 먹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것을 복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천국에 가서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불쌍히 여겼던 그 사람들이 '우리는 이런 때 안 태어나서 참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런 위치에 처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의 왕들이고, 재벌들입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닌데 크게 쓰임 받으면, 큰 교회 세우면 성공한 줄 아는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큰 교회에도, 크게 쓰임 받는 것에도, 큰 축복에도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마음을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닮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내 마음이 문둥이가 되든 말든 내 마음이 교만한 사탄처럼 되든 말든, 내 마음은 탐욕스럽고 거머리처럼 다고 다고 하는 거머리처럼 되든 말든, 복 받고 쓰임 받는 데만 우리가 관심을 뺏길 수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미혹들이 우리 속에 임해 있을 수 있습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경제생활을 하고 내가 어떤 은사를 받고 어떤 사역을 하고 있고, 어떤 사역의 결과들이 생겨나고 있는가 이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어떠한가? 내 마음과 생각과 정신과 나의 시각과 관점과 초점과 가치관과 삶의 진정한 목표가 예수님의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빛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 우리는 지식 나부랭이가 아니고 성경 해석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 영혼 속에 우리가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지를 보여주셔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 영혼 속에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보여주셔야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제멋대로고 자기중심적인지, 얼마나 육적이고 세상적인지! 신령한 척하지만 얼마나 땅의 것을 위해서 순간적인 것을 위해서 사는지! 벌레와 같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영 속에 보여주셔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대하는지, 얼마나 이기적으로 반응하는지, 내 죄 때문에 채찍에 맞으시고 내 죄 때문에 고문,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상에서 벌거벗고 처절하게 죽으신 주님 앞에서도 우리는 고난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날 위해서 그러셨는데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들인데 고난도 고문도 순교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냥 은혜 받고, 복 받고 크게 쓰임 받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전부 원합니다. 우리는 섬기려고 하지 않고 우리는 희생하려고도 하지 않고 우리는 진짜 사랑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머리처럼 예수님의 피를 빨아먹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피 공로로 용서받고 예수님의 피 공로로 치유받고, 부요하게 되는 것만 원합니다. 만약 그런 것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거머리 복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 받았으면 이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날 위해서 살고 날 위해서 죽으신 그분을 위해서 살고 죽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책을 쓰고 있는데 제가 예전에 했던 설교들 중의 일부를 검토하고 원고를 다시 다듬고 그러면서 참 내가 심각해졌습니다. 거기서 제가 인용한 릭 조이너의 글들을 읽으면서 많이 심각해졌습니다. 그러고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제게 겸손의 빛을 비춰 주옵소서. 겸손에 관한 계시가 필요합니다. 섬김에 관한 빛과 계시가 필요합니다. 고난과 순교에 관한 빛과 계시가 필요합니다. 정말 주님의 형상과 성품과 주님의 영광에 대한, 주님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닮을 것인가에 대한 빛과 계시들이 필요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이 무너져야 되고 그 속에서 우리가 회개해야 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은혜를 구하고 뒹굴어야 되고 깨어져야 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천국 가는 것도, 보좌에 이끌려 올라가는 것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주님, 이런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 제가 진짜 예수님을 닮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흥도, 크게 쓰임 받는 것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부흥하고 크게 쓰임 받고 천국에 가서 개뿔도 아니고 초라하고 그렇게 얕고 값어치가 없고 그런 삶을 무엇 때문에 삽니까? 주님, 제 영혼에 계시가 필요합니다. 겸손과 섬김에 대한 계시, 고난과 순교에 대한 계시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빛과 계시가 제 영혼에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정말 이런 계시들이 필요합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환상 보는 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입신도, 주님 얼굴 보는 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보좌에 이끌려 올라가는 것도 관심 없습니다. 깊은 계시도 창조적인 기적도 어떤 능력도, 부흥도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저고 주님의 관심은 제 영혼이고 제 심령입니다. 주님, 제 마음에, 제 영에 빛을 비춰 주시옵소서.'
사람 볼 때 큰 발걸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큰 발걸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보세요. 사람들이 볼 때는 전혀 큰 발걸음이 아닙니다. 고문당하다가 큰 기적을 행하시고, 한번 멋있게 무엇인가 보여주실 줄 알았더니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팔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힘없이 채찍에 맞고 잔인하게 고난당하고 피 흘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것이 승리였습니다. 하늘에서는 그것이 인류의 최고의 승리, 역사상 최고의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보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린 것보다 모세가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낸 것보다 성경에 기록된 그 어떤 위대한 기적과 부흥과 사건보다 하늘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으심을 최고의 승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의 평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나신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복종, 영혼들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과 희생, 십자가에 나타난 원수를 위한 용서와 기도,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진정한 사랑과 희생,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분의 겸손, 그분의 마음, 이것이 되지 않고는 이것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않고는 우리는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작은 자입니다. 어떤 지혜가 오고 어떤 은사가 오고 어떤 축복이 오고 어떤 부흥이 온다 해도 어떤 열매들을 맺게 된다 해도 우리는 작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굉장한 부흥과 엄청난 사역과 엄청난 업적들이 하늘에서는 하찮은 것들로 기록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끌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이 가졌던 동기와 그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거대한 승리로 기록된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진지해져야 합니다. 어떻게 살다가 주님 앞에 갈 것인가? 하늘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우리가 정말 진지해져야 합니다.
성도들이 제게 어떤 선물을 하고 어떤 대접을 하고 무엇을 해주든지 저는 그것을 그 사람 속에 있는 마음보다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제게 아무것도 안 해준다고 해도 겸손하고 사랑하고 진실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제게 많은 것을 해줘도 그 마음이 없는 사람보다 저는 그 사람을 진실로 귀하게 여깁니다. 제 마음은 제게 무엇을 해주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제 마음은 마음의 상태가 바른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에 합한 사람들의 마음에 가 있습니다. 제게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제 마음에 합한 사람, 정말 겸손하고 정말 말씀을 사모하고 정말 목회자와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정말 순복하고 정말 자기가 가진 것을 희생할 수 있고 정말 헌신할 수 있는 사람, 제 마음은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 가 있습니다. 저를 대접하는 사람들에게 가 있지 않습니다. 주님도 똑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설교하고 어떻게 기적을 행하고 어떻게 목회하고 어떻게 주님의 일에 헌신하고 어떤 부흥을 일으키든지 어떤 큰 교회를 세우고 어떤 세계적인 사역을 하든지 주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고난의 풀무를 통과함으로써 이기심의 찌끼를 제하고 교만의 찌끼를 제하고 야망의 찌끼를 제하고 미움과 시기심의 찌끼를 제하고 안일과 자기만족과 안주의 이런 모든 찌끼들을 제하고 주님께서 다윗을 볼 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보실 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주님의 마음은 그들에게 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저를 대접하는 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 무엇을 대접한다고 해서 그들이 제게 마음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대접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에 합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그들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주님도 똑같을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위해서 이런저런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성과를 거둔 사람들과 영원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보좌에서, 하늘의 왕좌들에서. 당신의 옆에, 좌우편에, 혹은 당신의 주위에 앉혀놓고 그들과 영원을 절대로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능력의 사도든지, 어떤 계시적인 선지자든지 수백만 명에게 설교하는 설교자든지 어떤 탁월한 교사나 대형교회 목사든지 절대로 그들과 영원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사람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사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라 할지라도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찾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당신 옆에 앉히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영원히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옆자리를 원해야 합니다. 야고보나 요한처럼 야망을 가지고, 땅의 생각을 가지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원해야 합니다. 시각과 초점이 다른 사람들은 같은 한국말을 해도 말이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는데 마음을 교류할 수 없습니다. 거기는 진정한 교제와 하나 됨이 없습니다. 주님은 보좌가 어수선하고 형식적이고 그렇게 불일치하는 장소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보좌 주변에 주님이 귀중히 여기는 것을 귀중히 여기고 주님이 관심을 갖는 것을 관심 갖고 주님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주님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정말 그 속에 주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 정말 주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주님의 가신 희생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 성공입니까? 무엇이 진짜 우리의 푯대입니까? 크게 쓰임 받는 것입니까? 부흥입니까? 그런 것들은 푯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 땅에서 어떻게 쓰임 받고 이 땅에서 어떻게 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위에서 부르는 부름의 상입니다. 하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주님의 동료,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분과 마음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푯대가 되지 않으면 푯대를 잘못 잡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실패한 삶이 될 것입니다. 푯대를 바르게 설정할 수 있는 지혜가 위로부터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평생을 거짓된 푯대에 미혹이 되어서 곁길로 나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푯대인 것을,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는 것, 예수님의 섬김과 겸손과 희생과 고난을 본받는 것. 이것이 우리의 푯대가 되어서 그 푯대를 향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곁눈질하지 않고 평생을 달려갈 수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에, 주님께서 계신 보좌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좌우편에 있는 보좌들, 우리가 무엇이관대 감히 예수님의 좌우편 보좌들을 탐하겠습니까? 그분의 좌우편에 있는 보좌들에 가까이 도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될 이유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드립니다. "대저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주님, 우리 생각에 변화가 생겨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빛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며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관심 가지고 주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과 우리들의 생각이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납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밝힐 수 있는 계시가 필요합니다. 겸손과 용서와 섬김과 긍휼에 관한 계시, 고난과 순교에 대한 계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에 대한 계시, 남 섬기고 종노릇하는 것에 대한 계시, 희생하고 손해 볼 줄 아는 것에 대한 계시. 우리에게는 많은 계시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계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밝히어 주시고 우리의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 예수님을 닮는 것,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 길을 그 뒤를 따라가는 것. 여기에서 우리의 시선이 절대로 흐려지지 않게 하시고 나눠지지 않게 하시고, 따라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끝에 하늘 보좌가 있사오니 끝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시고 우리의 심령을 뒤흔드시고 깨우시고 우리 속에 불을 주시고 열정을 주시고,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삶을 살지 않도록 자비와 은혜를 베푸소서. 헛되고 무가치한 삶에 우리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자비와 은혜와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다음글 | -스펄전목사와 조지뮐러의 기도의 간증- | 예수님만사랑 | 2008-11-06 12:06:00 |
|---|---|---|---|
| 이전글 | 좋은것의 가장 좋은것 | 묘지니 | 2008-10-17 22:5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