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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영생이며 이것이 천국이다. (즉흥설교)

주님생각 |

2008-11-12 16:04:00 |

조회: 198

이것이 영생이며 이것이 천국이다.

2005. 12. 30.

 

전도서 1장에 솔로몬이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저는 해 아래 새 것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솔로몬의 말도 맞고 제 말도 맞습니다. 솔로몬이 말한 “해 아래”는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 해 아래는 당연히 새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해 아래”는 단순히 물질세계뿐 아니라 영적인 존재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에도 새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인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 새 것이 있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제일 오래되셨는데 제일 새롭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이 있기 전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가 있기 전에, 아담이 있기 전에 계셨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오래된 분이시지만 우리와 세대 차이를 느낄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최신식이십니다.

 

교회 안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찬송가를 좋아하는데 성경에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찬송가가 복음성가보다 조금도 더 거룩하지 않습니다. 교리적인 사람들이 찬송가를 썼기 때문에 비성경적인 가사가 많습니다. 찬송가는 성경처럼 영감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성한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를 숭배하지 마십시오. 저는 찬송가보다 복음성가를 더 좋아합니다. 주님은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오, 부활이시오, 생명이시오, 생명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늙는 것이 없고 피곤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늘 새 신랑하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새 신랑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새롭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부들은 영원히 행복을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새롭습니다.

 

주님 보좌에 있는 그룹 천사들이, 스랍 천사들이 몇 천 년을 주님의 얼굴을 보며 사는데 주님께 완전히 압도가 되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지금 몇 천 년째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천사가 만 년을 거룩하다고 외쳐도 하나님은 새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새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 차 사면 금방 헌 차 되고, 새 집 사면 금방 헌 집이 되니 세상이 주는 만족은 다 그때뿐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새롭기 때문에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을 구하고 주님께 가까이 나가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우십니다. 또 하나 새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몸은 후패하지만 인간의 영은 늘 새롭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해 아래 새 것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의 영은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고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더 큰 은혜를 목말라하고 사모해야 됩니다.

 

인간의 영은 끊임없이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타락한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입니다. 우리의 영이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서 성경을 많이 알면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서 기도를 많이 하면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서 노력을 많이 하면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출 때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라고 했습니까? 찬송 부를 때 우리는 주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설교할 때, 기도할 때, 그때도 우리는 자기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 부를 때는 주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제가 왜 찬송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느냐 하면 찬송가가 설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찬송가에 회개가, 교리가, 설교가 너무 많습니다.

 

찬송가는 주님을 높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초점을 주님께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를 불러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찬양은 오히려 복음송 중에, 새로 만들어진 경배와 찬양 중에 많습니다. 저는 그런 찬양들이 찬송가보다 칠 배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찬양들이 하늘에서 환영받는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찬양은 우리의 관심을 주님께로 돌립니다. 그때 주님이 임재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초점을 맞출 때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 만나고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진짜 거룩한 자가, 정결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정말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주님의 임재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의 허기를, 배고픔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아무거나 다 먹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세상 것들이 예수님께 유혹이 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늘 행복하고 기쁘고 충만하기 때문에 세상 온갖 화려한 것들이 전혀 유혹이 되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성령 충만한 것은 세상이 내게 대하여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내게 대해서 죽어버린 것입니다. 죽은 것에 누가 관심이 있겠습니까? 세상이 내게 대하여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함으로써 주님의 임재의 떡을 충분히 먹음으로 우리 영이 충족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목적으로 추구하고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 영이 주님으로 채워지고 주님의 임재의 떡을 먹음으로 내 영에 만족감이 와야 합니다. 내 영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만족, 행복, 기쁨이 와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거룩해질 수 있고 정결해질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목적으로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이 했던 것처럼 여섯 번째 남자, 일곱 번째 남자를 찾아 헤매지 말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어디서 예배드리느냐? 어느 산에서 예배드리느냐? 이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리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요 1:12)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 신앙은 예수님을 내 영 속에 모셔 들임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 성장은 성경 지식의 성장이 아닙니다. 기도 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이나 은사가 더 온 것이나 봉사를 더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성장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영접하고 그분과 사귀고 그분과 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땅에서 제일 성공하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최고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목적으로 추구하시고 주님과 친밀해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친구가 되셔서 가장 높은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거룩해져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 35) 예수님이 왜 새 계명을 주셨을까요? 십계명의 강령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게 왜 새 계명입니까? 십계명이 잘못된 것이 아닌데 왜 새 계명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자꾸 계율주의자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유전도 만들고 사람의 계명을 더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원래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취지와는 상관없이 잘못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새 계명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십계명은, 율법은 다른 게 아니다. 내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나처럼 살라고 주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십계명을 가지고 계명을 좇아가면서 사랑을 잃어버렸다. 가장 중요한 초점을 잃었다. 율법의 계명 자체는 정당하고 옳은 것이요, 율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이걸 가지고 자꾸 계율주의자들이 되고 하나님이 원래 주신 취지에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아무리 해도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고 자꾸 계율주의자로 성장하기 때문에 내가 새 계명을 줘야겠다.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계율주의자, 율법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전하든지 거기서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거룩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우리가 거룩해야, 우리가 사랑해야 하나님같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천사도, 하나님도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똑같이 살아있지만 짐승이 사는 것은 사람의 삶에 비하면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아라."(마 8:2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라고 말씀했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계 3:1)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생존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하셨습니다. 풍성한 생명은 하나님처럼 사는 생명입니다. 식물처럼, 곤충처럼, 동물처럼, 타락한 인간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처럼 살아야, 즉 사랑하고 거룩해야 그때 우리 마음에 진짜 평안, 행복, 만족, 기쁨이 있고 그때 비로소 사는 것이 됩니다. 그때 진짜 숨 쉬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겸손하지 않으면, 온유하지 않으면,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면, 남을 진정으로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과 같은 삶의 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마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사랑해야, 겸손해야, 섬겨야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평화가 내 평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에 있는 안정감이 내 마음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 속에 있는 만족과 기쁨이 내 속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 속에 있는 용솟음치는 행복이 내 영 속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영생이요, 천국입니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살기 때문에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삶입니다. 생명에는 본성이, 속성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사랑하면서, 겸손하게, 온유하게, 긍휼히 여기며,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이 땅에서부터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때, 사랑하면서 살 때, 겸손하고 남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고, 섬기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영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이, 사랑이, 겸손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없이는 영생이 없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이것 자체가 영생이기 때문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행복하지 못하냐 하면 사람인데 짐승같은, 귀신같은 삶을 살아서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기를 원하고, 주님이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기를 원하고, 주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기를 원하고, 주님이 섬기신 것처럼 섬기기를 원하고, 그렇게 주님을 닮아 살면 우리 속에 천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끼리끼리 모이기 때문입니다. 노름꾼은 노름꾼끼리 모이고, 술꾼은 술꾼끼리, 산악인은 산악인끼리, 낚시꾼은 낚시꾼끼리 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끼리끼리 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올린 동영상을 보고 영적인 갈증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영상을 보고 이단이라고 열이 받쳐서 우리 교회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데, 어떤 사람들은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 우리 교회에 못 와서 난리입니다.

 

신앙생활도 끼리끼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나눠주실 때 한 무더기로 다 모아놓고 나눠주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보고 50명씩, 100명씩 무리를 지어서 앉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모형입니다. 영이 맞는 사람들끼리,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끼리,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끼리, 회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회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끼리, 마음의 청결을 원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청결을 원하는 사람들끼리,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사람들끼리 하나님께서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신앙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끼리끼리 모이게 하십니다.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서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법칙입니다. 바울 주변에는 바울의 영성과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 삽니다. 엘리야의 주변에는 엘리야의 영성과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 모세의 주위에는 모세의 영성과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 삽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천국이 다 고향 같고 평안하지만 천국에서 가장 평안한 곳은 주님이 자기 집으로 정해준 곳입니다. 거기는 자기와 다 비슷한 사람들이고 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하늘나라도 그렇게 되어 있고 이 세상의 교회도 그렇게 만드십니다.

 

교회가 어지러운 것은 사람들을 붙잡아 놓아서 그렇습니다. 안 맞는데 계속 있으라 하니 서로 힘든 겁니다. 교회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수 믿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영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 아닌데 바르면서도 서로 영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큰믿음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지만 나는 어떤 교회가 좋다.' 하면 축복하고 보내줘야 합니다. 그리고 오는 사람도 거리낌없이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교회를 선택할 권한이 각자에게 있기 때문에 오는 사람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다른 교회 간 사람들 많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전혀 붙잡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교회가 평안합니다. 그래야 성도끼리 서로 보면서 '아, 진짜 형제자매이구나.' 느껴지고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왜 이 교회는 이렇게 나가나? 찬양은 왜 이렇게 하나?' 이러면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형제요, 자매가 아니라 원수 집단이 되어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아주는 것도 잘 받아주고, 보내주는 것도 깨끗하게 잘 보내주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이 영적인 무리를 이루고, 천국에서 같은 영성의 소유자들이 살 자리를 배치 받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영의 세계도 똑 같습니다. 우리가 음란하면 음란 귀신이 따라붙습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교만 귀신이 따라붙고 우리가 혈기를 부리면 혈기 귀신이 따라붙습니다. 그것들하고 같이 살고 그것들하고 교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우리가 겸손하고 섬기게 될 때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성도들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영적인 성도의 교제들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도 우리 속의 어떤 감흥을 통해서 내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들을 통해서 영적인 성도의 교제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시고 주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하지 않으면, 겸손하지 않으면, 주님은 견디지 못하시고 우리를 떠나십니다.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물리치신다."(약 4:6, 벧전 5: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의 임재를 원하면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을 구하는 기도를 주님이 기뻐하시지만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면 주님이 굉장히 난처해하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영적인 생애도 끼리끼리입니다. 우리가 음란하면 음란 귀신이, 혈기를 부리면 혈기 귀신이, 욕심 부리면 욕심 귀신이 따라붙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섬기게 될 때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 진 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변화산에 내려온 것처럼 설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사 57:15)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죄 가운데 살면서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겸손하고 사랑하면 주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에 완전히 휩싸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세계적인 대부흥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그런 차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주님의 임재가, 주님의 영광이 우리를 덮을 수 있습니다. 천국에 사는 것과 이 땅에 사는 것이 동일한 삶, 감옥에서도 주님의 임재가 가득해서 찬양을 불렀던 바울과 같은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면, 거룩해지면, 사랑으로 충만하면, 우리가 진실로 섬기는 자가 되면, 바울이 감옥에서 피 흘리고 있었을 때도 영적으로는 보좌 앞에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철저하게 닮을 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릴 수 있고 이 땅에서부터 보좌 앞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 실제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런 삶을 추구하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초점도, 추구하는 것도 바뀌어야 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하지만 해 아래도 새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를 영원히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또한 그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가까이 나갈 때 날마다 새로워지는 그분을 닮아 우리 영혼이 새로워집니다. 이런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이런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거룩이 왜 중요한지 사랑이 왜 중요한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했으니까 너희도 사랑해야 된다." 단순히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식물은 식물의 삶을 살고, 동물은 동물의 삶을 살고, 사람은 사람의 삶을 살고, 천사는 천사의 삶을 삽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거듭난 나의 자녀들이 아니냐?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든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는 거룩해라. 내가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해라. 내가 용서한 것처럼 너희도 용서해라. 내가 섬긴 것처럼 섬겨라. 이것이 나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러면 내 안에 있는 평안이 너희 것이 될 것이고, 나의 기쁨과 즐거움이 네 것이 될 것이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너희 속에서 터질 것이고, 그 샘물이 점점 충만해질 것인데, 이것이 영생이고 이것이 천국이니라." 이 땅에서부터 천국과 영생을 맛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끼리끼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큰믿음교회가 세워진 후 어째서 그렇게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입니까? 끼리끼리의 법칙 때문입니다. 큰믿음교회는 부평초처럼 세상 풍조와 교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교회가 아닙니다. 분명한 영적인 소명과 부르심과 색깔과 특성을 갖고 있는 특별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 영에 맞는 사람들이 목마름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끼리끼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영의 세계를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천사들과 하늘에 있는 성도들과 교통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임재 속에 덮여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을 닮고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주님의 정신을 가지십시오. 주님, 우리가 그런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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