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8-11-24 23:02:00 |
조회: 172
가까이하여 말씀을 들어라!
2006. 1. 6.
전 5:1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발을 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은 다 듣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습니까?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사모하면 앞자리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앞자리, 뒷자리 문제가 아니라 비율로 보면 진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앞자리에 많이 앉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말씀을 정말 사모하면서도 중간 자리 또는 뒷자리에 앉아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거리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에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면서 식사 준비하느라 바쁜데, 남자인 나사로라면 예수님과 소파에 앉아서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가 그것도 동생이 언니는 열심히 일하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님께 "동생에게 저를 좀 도와주라고 명하소서" 하며 투덜대니까 예수님께서 "마리아는 제일 좋은 것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보기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과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無)입니다. 태초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것을 우리는 인간의 타락한 성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진리를 알지 못해 다 혼돈되고 영이 채워지지 않아 다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영적인 무지와 죄악으로 엉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빛이 생기고 그 후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옛 창조와 새 창조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되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창조는 거듭남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나니 곧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다른 곳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기에 나오는 “이때”는 마지막 때 부활이 아니라 죽었던 영이 우리 속에서 살아나는 거듭남을 말합니다. 그런데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천지창조 때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에 말씀이 선포됨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잘 들으므로 말씀이 내 영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리 봉사하고 헌금하고 주일성수하고 교회 직분이 올라가더라도 그 사람의 영은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영은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됩니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리라"라는 말씀대로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계속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런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이 목사가 되어도, 장로가 되어도 계속 혼돈이 그 속에 있게 됩니다. 말씀만이 이 혼돈을 몰아냅니다. 말씀만이 그 공허를 진짜로 채워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은혜 받지 못하면 영은 공허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가 안 되면 어둠이 떠나지 않습니다. 무지, 편견, 착각, 선입견, 전통, 종교적인 것, 그 외 여러 가지 도덕적인 어둠들인 교만, 혈기, 음란, 게으름, 이기적인 것, 탐욕. 이런 것들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말씀에 은혜 받을 때 이것들이 다 처리됩니다. 그러니 말씀을 잘 듣고 은혜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옛 창조 때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새 창조 때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말씀했다고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말씀 그대로 됩니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있으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물질세계는 그대로 됩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될 대상인 광석이나 물질들이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지요. 말씀하면 그냥 그대로 됩니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그냥 되는 것입니다. 물과 물이 나눠지고 육지는 육지대로 모이고 땅이 되고 바다가 되는데 물로 덮인 지구가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냥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들도 짐승들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말씀하면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안 그렇습니다. 사람은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리라."라는 말씀대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그대로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그러잖아요. 믿을 때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근본은 그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근본은 노력이 아닙니다. 말씀 듣고 그 다음에 내가 삶 속에서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면들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 가지고 우리들이 변화되지 못합니다. 그것 가지고 우리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실제로 내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령이 실제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 때 그랬던 것처럼 주님과 말씀이 믿을 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전능한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변화되고 육신은 치유되고 물질문제는 해결되고 부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는 데 달려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마음은 밭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이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그것은 신앙성숙입니다. 신앙성숙은 어디에 달려 있느냐?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옥토 밭과 가시밭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듣고 깨닫는 자니" 옥토 밭은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말씀을 가까이 하여 듣는 자는 결국 깨닫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매자는 자기 악을 깨닫지 못하는데 "깨닫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없이 열심히 봉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없이 예언의 은사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없이 신유의 은사를 받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2류, 3류 일꾼들입니다. 교회는 마르다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예언하는 사람도, 신유 사역자도, 헌금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먼저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되고 마르다처럼 식당 봉사도 하고, 먼저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헌금도 하고 예언을 하고 신유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일꾼이고,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동역자고, 그런 사람들이 목회자가 아주 믿고 쓸 수 있는 참된 일꾼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봉사하는 것 자체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 자체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언의 은사 자체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신유 은사 자체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봉사는 말 그대로 봉사고 헌금은 말 그대로 헌금이고 예언은 말 그대로 예언이고 신유는 말 그대로 병 고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됩니다. 말씀이 심령에 들어오고 은혜를 받을 때 됩니다. 그때 내 신앙이 성숙하고 내가 변화되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은사는 많은데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언은 잘하고 병은 잘 고치는데 다혈질적이고 무례하고 인격적으로 큰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추적해보면 다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 하면 말씀을 사모하면서 깊이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내 말이 반석을 쳐서 부서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말씀의 불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 소멸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방망이에 의해서 부서질 것은 부서져야 합니다. 말씀의 방망이에 얻어맞아서 교만도 혈기도 깨지고, 말씀의 방망이에 의해서 얼마나 잘게 부서졌느냐에 따라서 좋은 그릇이 빚어지게 됩니다. 말씀의 방망이로 교만도 혈기도 음란도 이기심도 시기도 질투도 모든 것을 다 부서뜨려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에서 좋은 그릇으로 빚어져야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 중에 중보기도자들을 가장 귀하게 봅니다. 그런데 중보기도자가 중보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말씀에 은혜는 못 받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습니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십시오. 밥을 먹어야 성장하고, 밥을 먹어야 힘이 나서 일을 잘할 것 아닙니까? 기술이 아무리 좋으면 뭐합니까? 지식이 아무리 많고, 기술이 뛰어나고 아무리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밥을 굶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 받지 못하면서 진짜 일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역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교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도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영적인 질서 아래 거하게 되고 군대가 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교회가 완전히 오합지졸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전에는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것이 됐는데, 은사 받고 난 후 그것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신도 때는 됐는데 안수집사 되니까, 권사, 장로 되니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잘못되면 더 위험합니다. 평신도 중에 제일 위험한 사람이 장로입니다. 그리고 은사자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평생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까이하여 말씀 듣는 것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영안이 열려 환상을 보는 분들이 많은데, 영안이 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열려야 합니다. 정확하게 열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 받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열립니다. 그 다음에 환상이, 예언이, 신유가 점점 깊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무엇을 통해서 되느냐? 자기에게 은사가 왔는데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둔해지지 않고 그 마음이 겸손해져서 더 말씀을 사모하고 깊이 은혜 받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적으로 점점 더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 즉 진짜로 말씀에 은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면 다 발을 삼가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마음에 준비가 안 된 사람과 그날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졸린 사람은 뒤에 가서 앉아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준비된 사람만 앞에 와서 앉아야 합니다.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것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외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 오늘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과 크리스천들이 음욕이 지옥에 가게 할 수도 있는 죄라는 깨닫지 못하여 그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가는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과 동일한 패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려고 왔노라." 여기서 죄인은 죄를 깨달은 사람을 뜻합니다. 주님이 전능하시지만 죄를 깨달은 사람 외에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전에 율법을 전해야 합니다. 율법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기 때문에, 율법을 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죄를 깨닫는 것은 자기 병을 깨닫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는 의원이 쓸데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원에게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병을 깨달은 사람은 의원에게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을 때 의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의사에게로 나가는 것입니다. 병자가 의사를 만나면 의사가 시키는 대로 다 합니다.
오늘날 복음이 제대로 선포가 안 됩니다. 회개는 쏙 빼먹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을 빼먹습니다. 자기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가장 사랑해야 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인데 이것을 전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전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눈이 뜨여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모릅니다. 율법을 제대로 전해서 죄를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를 외칠 때 회개하게 되고,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외칠 때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아무 소리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기 때문에 율법을 전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잘못 전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가 어떤 것인지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저희는 제사를 드리면서도 악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서 제사드리고 예배드리면서도 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곧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런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가 안 되고, 죄를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사람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으니라." 짐승은 이성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깨달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꾸 내가 보이고 보여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전에 보지 못했던 내가 자꾸 보여야 합니다. 내 부족과 잘못된 점과 고쳐야 할 점과 내 영적인 진정한 상태들이 자꾸 보여야 합니다. 설교를 듣는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달을 때 회개가 되고 더 성숙해지고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때문에 말씀에 은혜 받지 못하면 은사를 던져버리세요. 그것이 복입니다. 말씀에 은혜 받는데 방해되는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라면 집어던져버리세요. 말씀에 은혜 받는데 방해되는 장로 직분이라면 당장 집어던져버리세요. 말씀에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모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말씀에 은혜 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죄와 부족이 깨달아지고,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것이고, 여러분의 영이 변화될 것이고 성장될 것입니다. 말씀이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주님이 여러분의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실 것이고,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 즉 예수님의 마음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온 천지를 바꿔놓으신 것처럼 여러분을 완전히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과 경제생활과 여러분의 미래와 자녀들과 모든 것을 다 바꿔놓을 것입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을 때 말씀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리며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좋은 편을 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만약에 양자택일해야 된다면 은사를, 봉사를, 능력을 택하지 말고 겸손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까이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고 깊이 회개하고 변화되고 새 창조되는, 주님의 형상을 좇아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날로 영원히 새로워지는 그 은혜를 선택하게 하여주옵소서. 이것을 선택하고 다른 것을 갖는 것은 좋지만 다른 것을 가짐으로 이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다른 것을 갖되 이것을 갖지 못하면 무의미하고 헛된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천천금은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게 느껴지게 해 주옵소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히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기다리게 해주옵소서. 아버지여, 말씀에 은혜 받고 주님이 원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날로 날로 새로워지고 온전히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다음글 | 열방을 품는 기도성회 4 - 마이클 비클 - 신랑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 | 의의종 | 2008-12-01 23:41:00 |
|---|---|---|---|
| 이전글 | 조나단 에드워즈 23세때의 글 | in his garden | 2008-11-23 03:4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