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9-03-19 09: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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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보다 강한 회개의 눈물
2006. 4. 25.
사 58: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시는 메시지는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사람은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기도 조금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체험을, 성령의 불을 받는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성령 체험을 하고 은사를 받는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금식을 많이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는다 해도 변화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만 받으면 사람이 변화된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마태복음 7장에 기록된 선지자들과 귀신을 내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그렇게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될 수도 없고 버림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변화는 사람이 회개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는 바뀌지 않고 회개할 때 바뀝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 사람이 성경을 얼마나 아는가? 그 사람이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는가? 그 사람이 종교 활동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나? 그 사람이 헌금을 얼마나 하나? 그 사람이 어떤 체험을 했고 어떤 은사들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단순히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그 사람의 생각을 보십니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사람입니다. 사람의 말씀에 관한 지식이나 은사나 체험이나 활동이나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신구약과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늘 보여주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에 보냄 받은 모든 선지자들은 성경을 가르치라고 보냄 받은 선지자들이 아닙니다. 한 사람도 강해 설교하라고 보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한 사람도 강해 설교하거나 제자 훈련하라고 보낸 사람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회개를 촉구하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어도 세례 요한이 왔어도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단 한 가지만은 꼭해야 한다면 그 한 가지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천국 가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 뒤에 성경공부하고 은사 받고 모든 일을 다 해도, 평생을 목회해도 하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고 천국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회개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회개를 이렇게 원하셨는데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자체가 하나님께서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간절히 원하시는데 왜 목회자들이 회개를 외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교회가 회개를 외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는 회개에 대한 메시지가 왜 강대상에서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왜 늘 다른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만가지 얘기를 합니다. 요새는 가정 사역이 중요하다고 해서 부부간의 문제에 대한 메시지들. 또 내적치유가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마음에 상처가 많다. 그래서 내적치유. 그리고 성경을 더 알아야 된다. 제자 훈련. 여러 가지를 하는데 회개를 강하게 외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회개가 하나님의 중요 관심사고 영혼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왜 목회자들이 서로 짠 것처럼 무슨 모의라도 한 것처럼 다른 것은 다 하는데 회개를 빼먹을까요? 무슨 영적 운동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것은 다하는데 거의 회개를 빼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지나가는 식으로 말은 다 하겠지요. 그러나 회개가 초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회개가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 너무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하나님과 다른 눈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눈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봅니다. 마음을 보지 않고 겉모습을 봅니다. ‘주일성수 하나, 안 하나?’ 주일성수하면 ‘믿음이 제법 들어갔나 보다. 십일조 하나, 안 하나? 와, 온전한 십일조를 하니까 이 사람이 이제 견고해졌다. 십일조도 할 정도면 견고해졌다.’ 또 기도하고 교회 봉사하고 여전도회, 남전도회 활동하게 되면 ‘야, 이 사람은 이제 제법 신앙이 성장하고 일꾼이 됐다.’ 거기다 방언하고 예언하고 은사 받고 활동하면 ‘아, 이 사람은 상당한 일꾼이 됐다.’ 이렇게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2절에 나온 것입니다. 지금 회개하라고 외친 그 대상들이 누구인가를 보세요.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서 회개하라고 외친 대상들입니다. 상상을 초월하지요? 하나님께서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보세요. 불신자들이 아니라 내 백성과 야곱의 집입니다. 더구나 그 사람들이 굉장히 죄인들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라고 했고, 그 뒤에 보면 금식도 합니다. 올바로 하는 금식은 아니지만 요즘에 얼마나 금식을 안 합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목해 보면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그들이 그게 죄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 허물을 모르고 있다. 그들이 자기 죄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신앙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들은 자기 자신이 천국 간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들은 자기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들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그 허물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보고 있는 그 죄를 그에게 고하고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의 메시지가 교회에서 사라진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볼 때 성도들이 2절과 같은 것입니다. ‘열심히 주일성수하고 십일조생활하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고 있고, 때로는 금식도 하고 열심히 봉사도 잘하고 있는데 당연히 회개한 사람이지. 당연히 구원 받은 사람이고 당연히 천국 갈 사람이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것입니다. 이걸 가리켜서 성경에서 “눈이 멀었다. 소경이다.” 주님이 보시는 것처럼 사람의 심령을 봐야 되는데, 사람의 마음을 봐야 되는데 사람의 마음을 보지 않고 종교적인 활동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생명이 없어도, 은혜가 없어도 가능한 것입니다. 절간에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싸들고 다닙니까? 얼마나 그들이 헌신적입니까?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자살특공대까지 만들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잖아요.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거기에 무슨 은혜가 있습니까? 거기에 무슨 하나님이 있습니까? 그것은 종교만으로 가능한 일들입니다. 종교의 힘만으로 다 가능한 일이므로 그것을 보고 ‘이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구나. 이 사람 속에 하나님이 있구나. 이 사람 진짜 은혜를 받았구나. 이 사람이 진짜 회개하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구나.’ 그렇게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이 멀어서 표면적인 신앙의 활동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외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성경을 더 잘 가르치고 양육하고 일꾼으로 키우면 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게 소경된 인도자입니다.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해서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지는 그런 일이 교회 안에서 되풀이되고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굉장히 신앙이 좋은 것 같지요. 3절 이하에도 보면 이들이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자신이 진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와 금식에 응답하지 않으시나?’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행동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의 중심을 꿰뚫어보시고 “너희가 이렇게 신앙생활하고,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고,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고, 이렇게 금식까지 하지만 너희의 마음은 이렇다.” 그러면서 그것을 폭로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의 메시지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제가 설교할 때 사람들이 언제 제일 은혜를 받나 가만히 보면 회개하라고 외칠 때 제일 은혜를 받습니다. 안 찔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설교하면서 나부터 찔려서 난리니까 주일낮예배 때는 조금 추스르고 설교를 했는데 주일밤예배 때는 설교하는데 양심의 가책 때문에 제가 죽겠어요. 내가 누구보고 회개하라고 외치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면 찔리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바리새인 같은 외식자들이나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고 저 창기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고백하지. 외식자였던 바울이 제대로 믿음을 갖게 됐을 때에는 나중에 신앙이 성숙해져서도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말씀을 배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성경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거울이기 때문에 자신을 더 분명하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아서 어떤 존재이어야 되는데 얼마나 거기에서 못 미치는 존재인가? 내가 얼마나 잘못되어있고 내가 얼마나 죄악 된 존재인가?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과 같다.” 그 말씀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찌르는 검과 같이 우리가 회개해야 될 것, 우리가 바꿔야 될 것, 변화 되어야 될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나는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이건 종교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 같은 혼을 찔러 쪼개고 영을 찔러 쪼개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그런 성령이 역사하는 말씀을 듣게 될 때에는 우리가 회개해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됩니다. 자기 믿음의 상태가 어느 정도이든지간에 자신의 영적 수준이 어느 정도이든지간에 회개해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천국 가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불완전한 대답입니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대답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요? 그것도 불완전한 대답입니다. 만족할만한 대답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속에서 파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목적은 우리 안에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누가 성공자입니까? 10만 명 모이는 교회 목회자가 성공한 목사일까요? 아닙니다. 계시적인 체험을 깊이 해서 놀라운 계시를 받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정말 성공자는 예수님을 최대한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역을 보시는 게 아니고 우리 자신을 보십니다. “네가 몇 명 전도했느냐? 네가 몇 년 목회 했느냐? 얼마나 대단한 역사를 일으켰느냐?” 이런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사람이나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것은 하나도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 받을 것이 아닙니다. 화가가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고 감동을 받겠어요? “이거 잘 그렸네.” 그런 정도이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능력이 나타나는 걸 보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대단한 계시적인 사역이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온 우주를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100만 명 모였다고 깜짝 놀라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시고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는가? 를 보고 놀라십니다. 천사들이 놀라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천사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도 놀라지 않고, 타락한 인간들이 비이기적이 되어서 겸손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놀랍니다. 그것이 하늘의 초점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이 뭐냐 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입니다. 그게 성공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메시지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시간을 기도하든 두 시간을 기도하든 세 시간을 기도하든 기도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깊은 회개가 여러분 영속에 그때 일어났느냐? 그것에 따라서 받는 은혜가 달라집니다. 무조건 거머리처럼 다고다고 하면서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그런다고 은혜가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고 회개를 해서 자기 자신을 비우는 만큼 채워지는 것입니다. 비우는 만큼 실제로 채워지는 것이 있는 것이고 실제적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느냐, 못하고 있느냐?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는가 하면 11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게 우리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환상을 잘 보는 사람도 아니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도 아니고, 불 받았다고 대굴대굴 구르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령의 불을 받는다는 것도 허망하고 허전합니다. 회개가 없는 성령의 불은 가짜 불입니다. 회개가 없는 성령의 불을 다 겉불입니다. 영혼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무슨 불 받았다고 대굴대굴 구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현상을 쫓아가면 안 됩니다. 본질적인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왕도가 없습니다. 회개해야 사람은 변화 받습니다. 불 받아서 뜨겁다고 팔짝팔짝 뛰고 대굴대굴 구르지 않더라도 진짜 깊은 회개가 일어나면 성령님이 인격적으로 우리 속에 와서 우리를 장악하시고 진정한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음과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되고 겸손해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할 줄 알고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넘어지는 것이나 웃는 것이나 불 받았다고 대굴대굴 구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본질에 충실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질에 충실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해야지 그것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초점은 회개하는데 맞춰야 합니다. 초점은 우리가 겸손해지는데, 우리가 거룩해지고 정결해지는데 맞춰야 합니다. 초점은 자아의 죽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데에, 주님과 가까워지는 데에, 예수님을 닮는 데에 맞춰야 합니다. 이런데 초점을 맞추면서 성령이 임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현상만 나타나는 것은 실체가 아니고 빈 박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빈 포장지, 빈 박스만 실컷 모아놓고 “와, 우리 교회는 성령이 충만하다. 대단한 능력이 역사한다. 능력의 종이다. 불의 종이다.”라고 좋아라합니다. 이것은 미혹된 것입니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미혹이 아주 묘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여러분,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회개가 없는 말씀 운동, 은사 운동, 영성운동은 공허한 것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은사를 얼마나 받고 어떤 현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11절 말씀처럼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영혼에 만족이 있는 사람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진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마음이 물댄 동산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속에서 에덴동산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영이 물댄 동산같이 되어야 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같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중요한데, 이것은 회개할 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사람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물으니까 베드로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것이 샘입니다. “내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수가성 여인에게 약속하신 선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하고 우리 속에 마르지 않는 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하고 우리 심령이 물댄 동산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아름다운 말씀의 씨앗들이 심겨지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물 댄 동산 같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옥토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말씀의 씨앗을 뿌리면 무슨 씨앗을 뿌리든지 아멘이고 무슨 말씀을 듣든지 그의 영에서 회개가 일어나고 무슨 말씀을 듣든지 그 사람이 이제는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진지한 결심을 갖게 되고 은혜 속에서 그 말씀대로 살면서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의 빛 속에서 깊은 회개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죄로 더러워진 그릇을 그대로 가지고 앉아서 욕심대로, 다른 사람이 기도하니까 기도하고 다른 사람이 간구하니까 간구할 것이 아니라 깊은 회개를 통해서 더러운 것을 치우고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깊은 회개가 일어나서 깊은 은혜를 받고 돌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니느웨 성 같은 곳에서만 회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도 주님의 종들에게도 회개가 필요하고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모든 사람에게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그릇을 넓히게 하시고 회개를 통해서 정말 은혜 받을 준비를 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기 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회개의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데 우리가 신앙의 활동과 같은 외모를 봄으로서 속는 일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성경 말씀을 얼마나 아는가, 체험이나 열심. 이런 것을 보지 말고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마음을 보게 하시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속는 일이 없게 하시고 깊은 회개가 일어나게 하시고, 정말 우리 마음이 물 댄 동산같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마르지 아니하는 샘이 우리 속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혼의 만족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회개를 통해서 깊은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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