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생각 |
2008-10-25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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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늘을 뚫고 올라가서 셋째 하늘과 교통하세요! 2005. 12. 16.
하나님은 일꾼이 부족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있었고, 필요하다면 천사들을 더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일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얻기 위해서, 신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남편 될 사람의 경제력이나 지위나 학벌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조건을 보고 그 사람에게 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력과 부요와 영광…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것에도 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 자신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큰일을 행하는 것보다 천배나 더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고 주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서 불행하고 괴로우면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만나서 기뻐야 자꾸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를 만나서 괴로우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큰일을 행하는 것보다도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신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고의 관심사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시면 신랑이 신부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나는 너하고 같이 있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 능력, 축복을 원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를 구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되면 주님의 것이 전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친구와 신부가 되면 예수님의 가진 것이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하는 여자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 될 사람과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 그 여자는 시의원에 당선된 일이 없어도 영부인이 됩니다. 재벌 2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 그 여자는 구멍가게를 한 번도 운영한 적이 없어도 재벌이 됩니다. 샨 볼츠 친구의 입신 간증에, 천국에 갔더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유 사역자나 설교자들이 성전 뜰이나 성전에 있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지성소에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세계적인 치유 사역자처럼 은사를 받은 적도 없고 능력을 행한 적도 없고 기적을 행한 적도 없는데 천국에서는 왕후처럼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설교자처럼 말씀을 깊이 깨달아본 적도 없고 설교를 통해서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친 적도 없지만 주님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가장 존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존귀해지는 것이 없고 그것보다 더 큰 성공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크고 놀라운 성공입니다. 은사를 사용해서 소명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지만 그것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이고, 우리 영혼 속에 열망은 예수님이어야 하고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취향을 잘 알아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까?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잠언 20장 1절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술 취하지 않으면 술을 마셔도 됩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계명을 만들어 술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되는 쪽으로 밀고 나가려고 하는데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예로, 성찬식을 생각해보세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원래 성찬식은 식사입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빵 덩어리도 있고, 술잔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참된 양식이고 예수님의 피가 참된 음료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성찬식을 한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이스라엘에서는 포두주가 음료였고 그것을 누구나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를 많이 재배했고 갈릴리 가나의 잔치 집에서도 포도주를 냈습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죄라면 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셨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포도즙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포도주입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 2:9,10) 보십시오. 분명히 많이 마시면 취하는 술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술 취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술은 대부분 여자가 옆에서 따라주니까 음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음 성경구절을 들이대며 저에게 반박할 것입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 23:31) 하지만 이것은 문맥을 보면 알코올 중독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롭지 않은데 어떤 사람에게는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술주정하다가 예수님 믿고 술 끊었던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술 중독도 없고 술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이 말씀과 무관합니다. 아무튼 포도주는 사람을 거만하게 합니다. 전에 미국에 갔을 때 누가 대접한다고 해서 최고급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어떤 백인 남녀가 식사하면서 '몇 년 산이다.' 자랑하면서 포도주를 마시는데 사람의 교만을 부추기는 것이 포도주에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는데 그것을 새 술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새 술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술은 제대로 마셔야 하는 것처럼 성령의 새 술은 제대로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 때문에 교만해지고 거만해지고 떠들게 됩니다. 영적인 술이나 육적인 술이나 비슷합니다. 성령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그냥 받고 능력을 받으면 그것 때문에 거만해집니다. 은사 받은 것, 체험한 것 때문에 거만해지고 막말하고 떠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냥은 못 씁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성령을 받아도 못 씁니다. 거만하기 때문에 쓸 수가 없습니다. 함부로 떠들기 때문에 쓸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봤다는 사람, 무엇을 들었다는 사람, 예언하는 사람, 함부로 떠들기 때문에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성령 받고도 거만해지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성령 받았으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가장 귀한 것은 지혜로운 입술입니다. 우리는 막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제 영에게 이런 감동을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포도주가 사람을 거만하게 하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교만해지는가?' 독주를 마시고 다른 사람들보다 강력한 성령 체험을 하고, 강력한 은사를 받고 아주 놀라운 것들을 체험하면, 그 마음이 교만해지고 함부로 떠들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성령의 역사를 강하게 체험했던 사람들이, 특별히 계시의 영들과 예언의 영들이 강하게 임했던 사람들이 말 그대로 술 취한 사람이 안하무인으로 떠드는 것처럼, 마치 점쟁이가 점 보러온 사람들에게 욕하고 반말하는 것같이 무례하게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고 더 겸손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기름부음을, 은사 받는 것을 원할 것이 아니라 겸손해지는데 초점을 맞추시고 날로 더 겸손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은사가 많아도 지혜가 없으면 못 씁니다. 능력과 은사는 많은데 좌충우돌이면 못 씁니다. 문제입니다. 골치 덩어리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만 쳐서 넘어뜨린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있어서 어디로 가든지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이 높이 들어서 귀하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은사나 능력만 가지고는 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혜를 구하여 받으시고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잠언 22장 1절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짜 명예는 내가 너를 알아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다 헛된 것이다. 진짜 명예는 이 땅에서 큰 사역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이 구절에 나오는 "많은 재물"은 큰 교회, 큰 사역, 놀라운 은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원하노니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해라. 겸손한 자, 낮아진 자, 섬기는 자가 됨으로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해라." 돈이나 지식은 독입니다. 돈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을 보면 못되거나 교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돈과 지식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돈과 지식이 많은데도 전혀 없는 것같이 순박하고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할 뿐 전혀 해를 받지 않는 사람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를 자극할 수 있고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돈, 지식, 지위, 명예, 성공, 모든 것이 우리를 자극하고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교만해지면 심지어 성령을 받은 것까지 복이 되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돈, 지식, 명예, 은사, 능력, 성공이 독이 되지 않고 복이 됩니다. 잠언 20장 11절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사람은 꾸미려고 해도 꾸밀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꾸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꾸밀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 영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해서 랍비들과 서기관들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뱀들과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호통을 치고 내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볼 때도 바로 그를 꿰뚫어보셨습니다. 그가 참 이스라엘이고 그 마음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을 그냥 아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할수록, 영의 사람이 될수록, 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의 영의 실체를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진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영적인 사람에게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영적인 사람에게도 인정을 못 받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겠습니까? 우리의 살 길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은 변화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벌거벗고 살고 있습니다. 꾸미려고 하는 것은 외식의 출발점입니다. 꾸미려고 하지 말고 변화되기를, 달라지기를, 은혜 받고 새로워지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새롭게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7절에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입니다. 인간의 등불은 지식과 지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지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식적인 목회나 신앙생활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등불을 켜면 길이 보입니다. 등불을 켜면 깜깜한 것이 사라지고 방향을 알 수 있고,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혼의 인도를 받으면 안 됩니다.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 받았습니다. 성소(성막)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성소는 예수님의 모형이기도 하고 사람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성소는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성전 뜰은 인간의 육신이고 성소는 인간의 혼이고 지성소는 인간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임재 해 계셨습니다. 법궤는 지성소에 있었고, 법궤 속에는 만나 항아리,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영적 권위를 혼으로 인정하지 말고 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리고, 그래야 양(羊)이 되고, 동역자가 됩니다. 혼으로 인정하면 혼의 생각에 의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고개를 들 수 있고 대적할 수 있고 반역할 수 있고 파당을 지을 수 있고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영으로 영적 권위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바르게 반응하고 안전합니다. 성경에서 반역을 하기 제일 쉬웠던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합법적이었습니다. 그는 차기 왕으로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선지자인 사무엘이 와서 기름 부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귀신들려 있었고 다윗은 성령 충만해 있었습니다. 다윗은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주셨습니다. 반역을 하려면 제일 쉬웠던 사람이었지만 다윗은 절대로 반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혼으로 생각했다면 '내가 왕으로 선택받았는데 사울이 왜 아직 왕으로 있는 거야? 나는 성령 충만하고 사울은 귀신들려서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죽여 버려야지.'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혼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으면 그 사람은 상황이 좋을 때는 순복합니다. 교회가 부흥할 때는 순복하고 목회자가 성령 충만하고 기름부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폭풍같이 역사할 때는 그 권위 아래 들어가서 순복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도 힘들 때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반역을 하고 비판을 하고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의 전철을 밟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지성소 안 법궤 속에 있는 것처럼 영적 권위를 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영으로 영적 권위를 인정하게 될 때 그때 목자의 음성을 듣고 진정으로 따르는 양이 되는 것입니다. 혼이 아닌 영 속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어야 합니다. 혼이 아닌 영으로 인정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목회자이면 그 교회를 가면 안 됩니다. 그런 목회자를 따르면 안 됩니다. 반드시 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법궤 안에는 돌 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해설교와 제자훈련을 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혼이 아니라 영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성소가 아니라 지성소의 법궤 속에 돌 판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혼에 주입되도록 있는 것이 아니라 혼과 영을 찔러 쪼개며, 혼이란 루트를 통해서 결국은 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 그 마음 밭에 심겨져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으로 배우지 말고 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영 속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혼으로 받지 말고 영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법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이시지만 그 만나는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혼에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혼으로 알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썬다 싱에게 말씀한 것처럼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적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고,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혼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성구를 우리가 다 알고 암송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영에서 온 것입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여기서 너는 영입니다. 혼이나 육은 내가 아닙니다. 영이 나입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즉 이를 네 영에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혼에서 나오는 자는 모두 지옥에 갑니다. 그것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들"입니다. 신앙고백을 혼으로 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혼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고 혼으로 안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는 혼으로 도덕을 다 알고 법을 다 알지만 그대로 살아지지 않잖아요? 영으로 알아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영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내 영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여러분, 영으로 주님을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막은 사람입니다. 육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는데 지성소는 영을 뜻하고 법궤 안에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영 속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십계명을 적은 돌 판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은 혼 속에 있으면 안 되고 여러분의 영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성막은 예수님의 모형이기도 하고 사람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뜰은 육신을 말하고, 성소는 혼을 말하고, 지성소는 영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가나안을 향해서 갈 때 성막을 메고 가다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 자리에 성막을 칩니다. 그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어디에 머무느냐 하면 지성소 위에 머뭅니다. 우리는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불기둥, 구름기둥은 반드시 지성소의 법궤 위에 머무는 것입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은 우리를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름기둥은 말씀이고 불기둥은 성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말씀으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성령으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단순히 성경 지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떤 계시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성경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계시가 아니라 그것이 말씀에 입각해야 합니다. 이 둘로(말씀과 성령)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성령을 통한 진정한 인도는 우리의 영에 머물고 우리의 영에 나타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에, 지성소에 머물러 있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 영에서부터 움직이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을 가지고, 오감을 가지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이런 것 가지고 결정하면 안 됩니다. 환경 보고 결정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어느 땅을 택할래?" 할 때 롯은 눈에 보이는 것, 육을 가지고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습니다. 우리는 오감,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환경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또 우리는 혼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기 지혜나 명철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이 내 영에 나타나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내 영에 말씀과 성령님의 계시들이 올 때, 그 움직임이 시작될 때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광야에서 헤매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영이 가나안 땅이 됩니다. 그런 삶을 살면 내 영 속에 젖과 꿀이 흐릅니다. 그런 삶을 살 때 내 경제에, 육신에, 건강 문제에 젖과 꿀이 흐르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육으로 사는 사람이, 혼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영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방언기도가 중요합니다. 방언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방언으로 열심히 기도하면 영이 작동하고,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계시는 혼에 오는 것이 아니고 계시는 영에 부딪혀 옵니다. 방언기도를 오래하다 보면 영의 눈과 영의 귀가 밝아집니다. 방언기도를 오래하다 보면 심령(영)이 예민해져서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영이 작동하게 됩니다. 잠자는 사람을 막 흔들면 일어나는 것처럼 방언은 영으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마치 영에게 "일어나! 일어나!"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영이 잠자고 있다가 "아, 왜 자꾸 깨우는 거야? 좀 더 자고 싶은데." 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다다다다' 오토바이 가는 소리 나오고 '랄라라라' 노래 연습도 하고 '솰라솰라' 하니까 영이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자겠네.' 하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의 눈과 귀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오는 주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도를 따라가면 가나안 땅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안 살아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 번도 안 가본 광야를 통과했던 것입니다. 광야에는 이정표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후좌우가 다 광야고 아무도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약도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다른 약도가 없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전부 허망한 것입니다. 자기 지식을 의지하는 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지식을 헛것으로 보십니다. 여러분, 영을 작동시키십시오.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서 열심히 기도하므로 영을 작동시키시고 영에 임하는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영이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범사가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도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꿈을 꿨다고 환상을 봤다고 예언을 받았다고 함부로 따라가면 큰 일 납니다.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여러분의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어두운 데 있으면 답답하고 불안한 것처럼 여러분의 영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답답하고 불안할 때 무슨 결정을 내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영에 불어 들어와서 '아, 이거구나.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영에 전혀 걸림이 없이 평안이 와야 합니다. 내적인 확증이 와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등불인 영에 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계시가 옴으로, 주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옴으로 내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져 있으면 안 됩니다. 꺼진 등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꺼져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꺼져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건이 좋은데도 뭔가 걸리고, 석연찮고 찜찜하고 뭔가 불길하면 절대로 그것을 따라가지 마세요. 혼적으로 생각하고 따져보면 아무리 전망이 좋아보여도 절대로 그것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영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등불인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 불은 계시입니다. 그것은 꼭 환상을 봐야 하는 것도, 꼭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내 영에 임하는 계시요 내 영에 임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영에 불이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는 환히 보이는 것입니다. 보면서 길을 가는데 뭐가 불안하겠습니까? 그때부터는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도 막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도 받는 삶입니다. 절대 음성 들었다고, 환상 봤다고, 예수님이 나타났다고, 입신해서 무엇을 들었다고 따라가지 마세요. 왜냐하면 첫째 하늘이 있고 둘째 하늘이 있고 셋째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워드 피트만이 쓴 "플라시보"는 악령들의 세계인 둘째 하늘을 보여준 것입니다. 셋째 하늘은 바울이 올라갔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천국 사이에, 내 영과 하나님의 영 사이에 악령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영이 열린 것만 가지고는 악령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환상이 보이는 것만 가지고는 악령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 마귀도 예수님께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다 보여줬잖아요. 마찬가지로 귀신도 입신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도 처음 입신했을 때, 얕은 영계에 들어갔을 때 많이 속았다고 했습니다. 귀신들이 속이려고 달려든다고 합니다. 입신도 기도를 깊이 하고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음을 받고 정결하게 되어서 악한 영들의 세계를 뚫고 셋째 하늘로 가야 그것이 진짜 입신입니다. 그런데 셋째 하늘로 못 올라가고 영이 올라가다가 둘째 하늘에서 귀신들에게 잡혀가지고 귀신들이 막 보여주기 시작하면 나는 입신했다고 생각하는데 허황된 것들을, 가짜 예수, 가짜 계시를, 가짜 천국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계시, 꿈, 예언, 환상, 음성, 입신들이 셋째 하늘에서 와야 되는데 둘째 하늘에서 옵니다. 그래서 영분별이 필요하고 성숙해야 하고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는 자만이 높아집니다. 겸손한 자만이 둘째 하늘을 뚫고 올라갑니다. 심령이 겸손한 자들이 올라갑니다. 저는 교만한 예언자, 은사자, 입신자들을 절대로 믿지 않고 상종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계시 받는 사람들을 쉽게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을 받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절대로 잡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이 바르다면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고 자기를 인정해주는 것을 원하지 않고 겸손하게 지도 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들의 영이 잘못되었다면 스스로 튕겨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주님 앞에 머물러야 하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내 영에 불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 분명하게 보일 때 그때 나아가는 것입니다. 계시는 셋째 하늘에서 와야 하는데 둘째 하늘에서 오는 계시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환상을 보고 교만해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교만해질수록 계시가 둘째 하늘에서 옵니다. 왜냐하면 같은 것끼리 통하는 것입니다. 영교(靈交)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것들은 교만으로 꽉 차 있습니다. 내 속에 교만이 있으면 둘째 하늘의 것들과 주파수가 맞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은 이기심으로 가득 찼는데 내가 이기적이면 둘째 하늘과 주파수가 맞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에는 더러운 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내가 정결하지 않으면 이것들과 주파수가 맞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은 겸손함으로 올라가는 곳입니다. 셋째 하늘은 겸손한 곳이요, 거룩한 곳이요,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여러분, 셋째 하늘과 교통되기를 원하십니까? 셋째 하늘에서 오는 꿈, 환상, 계시, 입신을 원하십니까? 겸손해지지 않으면, 정결해지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기적인 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진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내가 겸손해지고, 정결해지고, 주님의 사랑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교회이고 계시를 인정하고 실제로 계시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겸손해지고, 정결해지고, 야망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살아가므로, 마음을 비움으로, 둘째 하늘에서 오는 계시를 모두 차단하고 셋째 하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늘과 교류하고 교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늘에서 오는 계시들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꼭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성령 받고, 체험하고, 은사 받은 것으로 인해서 교만해지지 않았습니까? 함부로 떠드는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주님, 용서해주시고 참으로 겸손하게 하여 주옵소서.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은사, 사역, 축복,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진정한 명예인 겸손을 통해 주님께 인정받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 이것을 선택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겸손에 관한 계시가 우리의 영에 충만하게 임하여서 정말로 겸손한 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정말로 겸손을 온 마음으로, 중심으로 추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겸손이 실제로 무엇인지 알게 되면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다른 것을 원하지 않게 될 것을 압니다. 정말로 목마르게 겸손을 추구하게 될 것을 압니다. 아버지여, 겸손에 관한 계시가 우리 영 속에 임하게 해 주옵소서.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꾸미려 해서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혼적인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도, 영적인 사람도 속일 수 없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영적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입니다. 우리는 결국 벌거벗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느니라. 이는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과 영적인 사람들의 눈앞에 벌거벗은 사람처럼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처럼 꾸미려고 하지 말고 빛 속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해 주옵소서. 선지자들이 바른 말을 한다고 돌로 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정말로 말씀의 빛 속에서 자신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하고 이사야처럼 통회하며 회개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진실로 변화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사람들은 육신을 따라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지혜를 믿지 말고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혼을 따라가지 말고, 영을 따라가야 될 줄 믿습니다. 내 영에 불이 켜졌을 때 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내 영은 여호와의 등불임으로 주님의 성령이, 주님의 계시가 내게 임함으로 내 영에 불이 들어올 때 모든 불확실한 것, 모든 꺼림직한 것, 왠지 마음에 미심쩍고 편하지 않는 것이 사라질 것이고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고 '그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하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는 것처럼 내 영이 증거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래,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그래, 이것이 길이구나.' 하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주님 앞에 머물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힘써 기도함으로 영에 불이 오고 난 다음에 결정하고 따라가므로 우리의 영이, 육신이, 경제가 가나안 땅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영이나 육신이나 경제가 광야가 되지 않게 하시고 가나안 땅이 되는 복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꿈을 꿨다고 환상을 봤다고 예언이 임했다고, 입신이라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이 땅에 살고 둘째 하늘이 셋째 하늘과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셋째 하늘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거기서부터 계시가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높이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높이 올라가려면 겸손해져야 합니다. 은사만 받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많이 받았지만 혼탁하고 구제불능일 정도로 섞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겸손해져야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위로 올라가는 것같이 겸손한 자가 영적으로 높은 영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정결한 자가 힘을 얻고 높은 영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야망을, 시기심을,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원수 마귀들과 더러운 영들과 체질이 달라져야 합니다. 성격이 달라져야 합니다. 색깔이 달라져야 합니다. 셋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도들과 천군천사들과 우리의 영이 통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성이 같아져야 합니다. 그들처럼 겸손해져야 하고 정결해져야 하고 사랑이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늘과 통하는 것이고 진정한 꿈이, 환상이, 예언이, 영적 체험이, 계시들이 하늘로서 임하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 귀한 말씀을 주셨사오니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회개하며 간구하며 기도할 때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겸손하고 정결하고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은혜가 넘치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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