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
2011-07-10 00:00:00 |
조회: 114
악마들의 교리를 대적하기
CONFRONTING THE DOCTRINE OF DEMONS
「릭 조이너」 Rick Joyner
2011년을 위한 예언적 시각을 얻기 위해 주님을 구하고 있었을 때에, 주님은 나에게 그분의 진리를 수호하는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그들은 수많은 그분의 백성을 방해하고 오도했던 ‘악마들의 교리들’을 대적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행하실 일에 대한 중요한 단어가 이 일을 행할 자들을 ‘세우신다’(raise up)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여기에 있으며, 그분의 진리를 깊이 그리고 헌신적으로 추구할 만큼 사랑하는 신실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세우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주시고 그들을 더욱 드러나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성경적으로 볼 때에, 거짓 교리들을 대적하는 일은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의 책임이었고, 신약에서는 사도들의 책임이었다. 나는 ‘세우신다’는 말을 올해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수준의 사도적 권위를 교회에 풀어주실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물론 지금도 거짓 교리들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일이 사도적 권위를 지닌 한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교회 안에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참된 사도적 권위를 가진 자가 없기 때문에, 정말 권위나 기름 부음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려 애써왔다. 그 결과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섞여 있다. 이 일을 행하려 했던 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교사였고, 또 어떤 이들은 선지자나 목사였다. 하지만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이 일을 행한 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오늘날 스스로를 사도라 부르는 많은 사람들을 인정하는 일에 침묵해 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참된 사도가 되는 것은 단순히 어떤 것을 훌륭하게 조직하거나 사람들을 잘 모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참된 사도는 그 이상이다. 참된 사도가 되는 것은 효과적인 선교사나 교회 개척자가 되는 것을 넘어선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사도 사역의 기본적인 양태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도 사역의 몇몇 기본적인 양태들이 빠져 있기 때문에 세워지고 있는 많은 교회들이 교회가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프랜차이즈화 같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는 그동안 잘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것에 큰 결핍이 있음을 보았다. 이것을 알면서도 나는 많은 일을 하지 못했다. 사실, 이것과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밖에 없다. 내가 이 말씀으로부터 받는 위로는 이렇게 중요한 사도 사역의 양태가 올해에 그 사역으로 부름 받은 자들에게 풀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도 서신서들에는 교회를 위한 어떤 교정 사항들이 담겨 있다. 갈라디아서와 같은 서신서들은 거의 전적으로 거짓 가르침들을 대적하기 위해 쓰였다. 이것은 우리가 사도행전 15장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사도들이 감당해야 할 기본적인 임무 중의 하나다. 사도와 장로들은 그러한 교리적 논쟁을 판단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닌 자들이었다.
사도적 권위를 지닌 자들이 거짓 가르침을 대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수호하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고전 4:1 참조). 사도들은 우선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맡은 자들로서 그리고 또한 교회를 세우는 자들로서 그러한 가르침들이 교회와 각 성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을 한 자들이다. 그들은 교회와 각 성도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크게 힘쓰는 자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격적 기준에 합당한 참된 사도들은 거짓 교리들을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구속적인 방식으로 대적하여 교회를 힘 있게 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사도들의 서신서들에 담겨 있는 능력이다.
이 예언적 말씀에는 함축적 의미들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말씀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권위를 지닐 수 있는 참된 사도 사역이 교회에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 의해 거짓이라는 낙인이 찍힌 많은 교리들은 사실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 차이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에 관한 불일치 불과할 뿐이다. 성경은 무엇이 거짓 가르침이고, 누가 거짓 교사들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물론 이러한 것을 조명해 주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믿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고, 또한 어떤 것들을 다르게 보면서도 서로 관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회에 은혜와 자유를 주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따라서 아무도 완벽한 그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우기 위해 겸손과 은혜를 지녀야 한다. 성숙한 자들은 그들이 믿는 것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진리의 또 다른 면(다른 관점에서 볼 때에)일 수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이렇게 성숙한 자들은 또한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거짓 교리를 올바로 대적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짓 교리를 대적할 때에 반동적으로(reactionary way) 반응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시궁창에 빠져 있는 사람을 건져냈다 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과민 반응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또 다른 시궁창에 빠지게 하는 일을 초래할 것이다. 지혜롭고 성숙한 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증가된 권위와 지혜와 성숙과 은혜가 교회의 리더십에 임할 것이라는 증거다. 그 결과 거짓 가르침에 매인 자들을 자유케 하는 진리가 선포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크게 강화시켜 줄 것이다.
겸손 19:54
다음글 | '베리칩’은 ‘666 짐승의 표’인가? 美 한인교계 성명 | 거룩 | 2011-08-02 00:00:00 |
---|---|---|---|
이전글 | 우유부단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뭔가를 성취하지 못합니다 - 캐더린 쿨만 | 묘지니 | 2011-07-02 00: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