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his garden |
2010-02-02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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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도 필요합니다
- 도널드 지(1947-1958 신유부흥의 Donald Gee, "치유의 소리"에서.)
/ [마이더스 터치 pg 154-155] - 케네스 해긴
우리 중에 더 많은 사람들은 단조로운 중도의 길을 추구하므로 능력있는 삶을 놓쳐버리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항상 동시에 양쪽의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에는 뜨거움이 부족합니다.
전통이나 존경심을 상하게 하는 어떤 공격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방법은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룩한 성공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지만 우리가 얻은 안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으므로 성취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실제로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미친사람들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뻔한 얘기지만 지역사회는 우리가 그들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균형의 중요성을 격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극단주의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극단주의로 계속 치닫는 것은 사람이나 그 운동 자체나 스스로 파멸하게 될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부흥은 누군가 극단적이 되지 않고는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열정적인 중보사역은 균형을 잃었습니다.
죄인들을 떨게 하는 열정적인 설교도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친척들조차 주님이 미치셨다고(막 3:21) 생각했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실 때 이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 2:17).
오순절날이 제자들의 정서적 균형을 어떻게 깨뜨렸었는지 그들은 모두 술취한 사람들 같이 보였었습니다.
삼십 년 후 로마의 관리는 바울이 미쳤다고 단정했습니다.
이런 말에 대해 정중하고 적절하게 논박을 했지만 우리는 베드로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스스로도 가끔 자신이 미쳤음을 증언했으며(고후 5:13), 그의 제정신을 넘어서는 가르침과 겉모양은 하늘나라의 수준이었습니다.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는 극단주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믿음이 논리적인 것을 거절하고 많은 반대되는 경험들과 보다 '균형잡힌' 가르침에 근거한 주장을 무시할 때 치유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사실 우리는 진정한 기적 가운데에는 무언가 극단적인 것이 없지는 않았는지 잘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당한 극단주의가 필수적인 균형을 껴안는 오순절적 진리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이제까지의 말로 대답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른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치유의 기적을 위해서는 극단주의가 필요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균형잡힌 정신이 필요합니다.
어떤 운동을 시작하기에는 극단적인 열정이 필요하지만 그 운동이 스스로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온 지혜만이 완전한 통합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극단적인 교리나 행위가 수정되어 좀 더 균형 잡힌 관점을 갖게 될 것인지,
반면에 어디에서 넓은 진리를 수용하는 선(line)이 일시적으로 좁아져서 역동적인 능력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을 위해 역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아는 데는 오순절적인 천재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비상한 천재적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부흥의 기간마다 나타났던 하나님께서 보내신 지도자의 표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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