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
2013-11-13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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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권사님 글 "행위와 행함이 다르다?” 반론_ 강순방 드림
이인규 권사님은, 변승우 목사님을 "행위구원자 이단"으로 단정하며 그 근거로 변 목사님의 저서들을 인용하면서 "본인은 변승우목사의 책을 거의 모두 읽었다. 그 책의 내용은 이단성이 농후하며, 쓰레기같은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책에서 이단성이 있는 증거자료를 뽑는다면 아마 수백페이지가 넘을 것이다". 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습니다.
변승우 목사님은 2004년부터 올해 10월까지 63권을 저술하였고 거의 모든 설교들이 카페에 공개되어 있는데, 이 권사님이 책을 정말 거의 다 읽었고 설교들도 들어 봤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읽었다"고, "들었다"고 다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이 권사님의 글에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인규 권사님은, 변승우 목사님의 모든 저서에서 자신있게 발견하신 “이단성이 농후한 쓰레기 같은 내용들”에 대해서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발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탁드릴 것은 변 목사님의 저서들을 열린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보고, 제발 일부 문장이나 단어에만 집착해서 문맥의 흐름과 전체적인 내용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 권사님이 많이 인용했고, 통합교단이대위를 비롯한 여러 교단들의 이대위에서 많이 인용하면서 비판하는 변승우 목사님의 대표저서 중의 하나인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책에서 정말 변 목사님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변승우 목사님은 단 한 번도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되, 참 믿음을 가진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성경적인 주장입니다.
먼저「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책에 나오는, 로마서 4:1~3과 야고보서 2:21~24 본문을 비교하며 말하고 있는 부분을 인용합니다.
특별히, 인용 글에서 바울과 야고보가 언급하고 있는 '행함'과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유념하면서, 이 권사님이 헬라어사전과 영어사전을 언급하며 설명한 " '행위(엘곤, work)' 와 '행함(엘곤, work)' 은 같다" 라는 설명이 얼마나 수박겉핥기이며 성경 본래의 의미를 벗어 났는지를 바로 잡으시길 바랍니다.
(여기부터 인용 부분입니다)
<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1~3)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21~24)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서로 정면충돌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바울과 야고보가 사용하고 있는 ‘믿음’이라는 단어와 ‘행위’와 ‘행함’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중략)
간단히 말해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행함의 원인이 되며 따라서 행함을 수반하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런 의미로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야고보는 기독교의 복음 진리를 이해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믿음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아닙니다…(중략) 이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이런 거짓 믿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행위’ 혹은 ‘행함’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기독교 중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빈번한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복음적 순종이 칭의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빈번한 주장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로 보건대 조나단 에드워드도 행위와 행함의 차이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행위와 행함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면 이 둘이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바울이 비판적으로 사용한 ‘행위’라는 단어는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 즉 ‘율법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롬 3:20). 그러므로 이것은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하지만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율법의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믿음의 행함’입니다. 전자는 구원받기 전에 나타나는 행위이고 후자는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행함이고, 전자는 실현 불가능하고 후자는 실현 가능하며, 전자는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있으나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와 같이 ‘행위’와 ‘행함’은 단어는 같으나 그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해하고 아브라함의 칭의에 대한 두 부분을 읽으면 충돌하는 것이 전혀 없고,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며, 상호 보완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로마서나 야고보서에 아브라함에 대해 언급된 내용이 하나에 의해서 다른 하나가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문자 그대로 온전히 진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단순히 상급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7장 21절이나 야고보서 2장 14절 말씀을 액면 그대로의 의미로 붙잡아야 합니다. >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pp. 153-156)
(여기까지 인용 부분입니다)
위에 인용했듯이, 변승우 목사님도 분명히 “이와 같이 ‘행위’와 ‘행함’은 단어는 같으나 그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즉 이 권사님이 영어사전과 헬라어사전을 찾으면서 단어 자체와 일부 문장에 집중할 때, 변 목사님은 성경 문맥이 주는 전체 의미를 깨닫고 설교와 책을 통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책에서 하나만 더 인용하겠습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진실한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열린 마음으로 보기바랍니다. 이것으로 더 이상 잘못된 시각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기부터 다시 인용합니다.)
<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무명의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 책은 구원론을 재조명하고 성경대로 돌려놓으려는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진리에 눈을 뜨고 회개하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동안 잘못 가르침 받은 것이 쌓인 결과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대구에 있는 교회의 수련회 때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양약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째,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구원의 공로는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전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렇다고 전 인류가 천국에 갑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믿는 사람만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지만 그 구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구원의 수단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어도 그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막 1:15).
셋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참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를 의지하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위조지폐는 가치가 없는 것처럼 가짜 회개와 믿음 역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중략)
저는 일부 사람들이 저의 설교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에 행함을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만으로 충분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상 세 가지를 여러분이 꼭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저의 가르침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지극히 성경적인 메시지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pp. 287-289)
(여기까지 인용 부분입니다)
길게 인용했지만 신뢰를 주기 위해서 그리고 꼭 필요한 내용이기에 인용했습니다. 이 권사님이 일부 문장들만 인용하면서 변 목사님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읽어보면 구원론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변승우 목사님의 구원론에 대한 주장을 문제 삼는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위험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잘못된 구원론으로 교인들에게 거짓 믿음을 심어주고 거짓 평안을 줄 수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권사님이 믿고 목숨걸고 주장하고 싶은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변승우 목사님도, 큰믿음교회 모든 성도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권사님의 하나님과 저희들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한 하나님, 그리고 오직 우리의 왕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같은 형제들을 핍박하며 죽이려고만 하십니까? 하나님이 바라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까?
이 권사님이 믿으시는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신데, 변승우 목사님과 큰믿음교회 성도들이 믿는 예수님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마귀라고 장담하십니까?
거짓되고 불의한 이단정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중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줄 아십니까?
이 권사님의 심령에서 울려나는 양심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심으로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성도들을 왜 이리 핍박하시는지요.
멀지 않은 장래에 하나님 안의 한 가족으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강순방 드림
PS) 이곳이나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토론방안에 대해서는 효과는 없고 불신만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게시판 토론을 통해서 상대를 인정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봅니다. 게시판 관리자께서 제안한 방안에 대해서는 감사드리며 협조를 해야겠지만, 가장 좋은 것은 논쟁 당자들이 공정하게 공청회에 나서서 왜 예성이대위의 결과들이 다른 것인가 대해서,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자신을 주장하며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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