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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대한 잘못된 해석 (마이크 빅클, 카리스마 잡지 2013년 4월)

행복자(幸福者) |

2013-09-01 00:00:00 |

조회: 338

은혜에 대한 잘못된 해석

 

: 마이크 빅클

구성: 카리스마 잡지 2013 4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하고 중요하며,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메시지는 은혜의 복음에 대한 메시지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상에 행하신 일과 성령께서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강조하는 이 놀라운 진리 위에 세워진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는 바울의 극적인 선포는 우리의 삶과 너무도 큰 관계가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로[우리의 영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17-21).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우리의 영적인 자아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 영에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게 되었다 (21).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새로운 법적인 위치를 설명해주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며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알려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새롭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전체를 받으셨음을 말하며,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권세를 받았음을 말하며, 내주하시는 성령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죄와 질병과 사단을 이길 수 있도록 해주며, 승리 가운데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법적인 변화 아래에서 예전 것이 된 것은 더 이상 죄의 형벌 아래에 있거나 죄의 권능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자유함을 받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불행하게도 인간의 진리를 왜곡해버리는 본성적인 경향이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은혜라는 기초적이고 중대한 진리에 작동하게 될 때, 이 왜곡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전체 세대에게 중대한 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위기

 

유다 사도는 자신의 시대에 심각한 영적인 위기를 직면하게 되었으며, 그는 초대 사도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진 믿음또는 은혜의 메시지를 위해 성도들이 힘써 싸울 것을 권고한다. 그는 유다서 3-4절에 이렇게 기록한다, “…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

 

한번 생각해보자: 예수님의 부활 이후 한 세대 만에, 벌써 참된 은혜의 메시지를 위해 싸워야 할 필요성이 생겨버렸다. 이는 참된 은혜의 메시지에 대한 이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명백한 일하심 이후로 항상 있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다는 교회 교제권 안에 알리지 않고 가만히 들어온 어떤 사람들에 대해 경고했다. 이는 이와 관련된 오류가 대부분의 지도자나 성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생겨났음을 말한다. 이 사람들은 은혜의 메시지를 불법의 메시지, 즉 다양한 타협과 성적인 음행까지도 허용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설득력이 강한 이 사람들의 가르침은 성경이 은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왜곡시켜버렸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되 회개의 위급함은 전혀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대담하게 죄악된 행동들을 계속하도록 만들어버렸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잘못된 교사들은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개인의 삶의 여러 가지 정욕에 대한 회개를 거절했다. 그 대신 그들은 은혜의 메시지를 왜곡해서 자신의 삶을 변명함으로 그들의 거룩하지 않은 습관들을 정당화했다.

 

이로 인한 결과는 끔찍했는데,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이와 유사한 타협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는 이 유명한 교사들이 이러한 삶을 여러 가지 성경 구절들로 정당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들은 이 구절들을 신약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해석하지 않았다. 신약의 메시지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향한 전심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것을 부르고 있으며, 성도가 전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는 성도들이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 14:15, 21).

 

이는 오늘날 과도한 은혜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죄 사함만을 강조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주를 향한 전심의 헌신 가운데 살아갈 것을 말씀하신 것을 사실상 무시한다. 그들은 대부분 회개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죄 사함만을 설교하며,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자신의 환경 가운데 축복하실 것을 설교한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값 없이 죄 사함을 받으며 그분이 우리의 환경을 축복하시는 것은 영광스러운 진리이다; 그러나 이 진리들은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관계 가운데 살아가며 그분의 주권(리더십)과 말씀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유다의 충고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몸에 주는 중요한 경고이다. 은혜에 대한 메시지가 왜곡되면, 한 사람의 영적 생활의 모든 것들이 흐려지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의 교회에서 성경에 충성된 은혜에 대한 메시지를 지키기 위해 싸워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영적 전쟁은 없다.

 

불행히도, 어떤 성도들은 희석된 은혜에 대한 메시지에 관한 이 영적인 위기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온 위기에 대해 깨어나야 한다. 이는 오늘날 진리의 영을 향해 싸워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세대의 영혼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TV나 인터넷으로 인해 유다가 말한 것처럼 가만히 들어오는 일이 더 쉬워졌다. 은혜에 대한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현대의 어떤 교사들은 매우 유명한 사역지 출신이기에, 이들의 대중성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신뢰감을 심어준다. 우리는 어떤 사역이 매력적이고 대중적이라서 그 사역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이 진리에 충성되어 있을 때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이들이 건전하지 않은 가르침에 빠지게 될 때가 올 것을 예언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이 사람들은 신약의 건전한 가르침에서 강조되는,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소욕을 용인해주는 메시지를 듣기를 원하는 가려운 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죄악된 정욕을 담대하게 계속 행하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기를 원한다.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신약의 더 큰 메시지가 아닌,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죄 사함에 대한 성경 구절만을 사용함으로 청중의 정욕에 대한 소망들을 지지해준다. 어떤 유명한 TV 설교자는 심지어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 성도들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거듭난 성도들이 다양한 타협에 대해 회개할 것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신 사실을 분명히 간과했다 ( 2:5, 16, 21-22; 3:3, 19 참조).

 

은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

 

만일 셀 수 없는 신실한 성도들이 이미 이 왜곡된 은혜의 메시지에 굴복해버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재난 가운데 강건하게 서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성경적인 진리 안에 굳게 서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적인 은혜의 메시지에 대해 접근할 때,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렌즈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 12:30).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전심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성도와 주님 간의 전심으로 사랑하는 이 상호 관계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이는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시는 방법인, 온 마음을 다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시며, 성령께서는 이와 동일하게 아버지와 그 아들을 사랑하신다. 서로를 향해 전심으로 사랑하기를 기뻐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 관계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신비인가 ( 3:35; 5:20; 14:31; 15:9; 17:23, 26 참조)! 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은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성삼위의 세 위격이 즐거워하시는 이 사랑의 교제 관계에 그들이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다.

 

은혜의 메시지는 우리가 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것이 그 핵심적인 실재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첫째 계명이라고 부르셨다 ( 12:30). 따라서 성령님의 첫 번째 과제는 교회 안에 첫째 계명을 최우선의 자리에 세우시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첫 번째 과제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전심을 다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첫째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을 대하시는 방법이며,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혜를 사랑의 이러한 본질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 첫째 계명에 기반을 두지 않고 은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목표를 겨냥하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은혜에 대한 메시지를 첫째 계명의 눈을 통해 해석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를 왜곡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되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사랑해야 하며, 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그분의 계명에 대한 순종의 영의 측면에서 정의하셨다 ( 14:15, 21, 23 참조).

 

예수님을 사랑하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인본주의적 문화가 정의하는 방법으로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며, 이에는 말씀에 대한 순종함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분께 순종하기를 구하는 것은 동일한 일이다. 그분의 모든 계명들은 그분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적인 은혜의 메시지는 우리가 의롭게 살며 경건치 않은 것을 거절하며 살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도록 가르친다. 디도서 2:11-1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우리가 만일 경건치 않은 것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 은혜의 가르침을 듣는다면, 이는 성경적인 은혜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는 왜곡된 것일 뿐이다.

 

법적인 위치 vs. 삶의 모습

 

우리가 첫째 계명을 통해 은혜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법적인 위치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반응하여 드리는 우리의 계속되는 삶의 모습(삶의 환경)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과다한 은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종종 손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의 법적인 위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부분이며, 우리의 삶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분께 반응하여 드리기를 원하시는 부분이다. 우리의 법적인 위치로 인해, 우리는 그분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고후 5:21). 우리가 법적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영광스러운 일이며, 이는 우리가 부활체의 완성된 몸을 가지더라도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는 부분인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적인 위치는 우리가 거듭날 때 즉시 그분의 의를 받음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와 달리 우리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 점진적으로 의 가운데 자라나는 것을 말하며, 이로 인해 우리의 행동과 감정들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 변화되게 된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부여 받는 것에 대한 좋은 소식이며, 이는 3개의 시제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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