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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소문과 진실 중 어느 것을 믿으시겠습니까?(기성 이대위에서 보내온 질의서에 대한 진솔한 답변)

겸손 |

2010-07-06 00:00:00 |

조회: 226

소문과 진실 중 어느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잘못된 것을 지적해주시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고치겠습니다.” 이런 판에 박힌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잘못한 것도 없고 당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목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양심을 가지고 사실만을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예전에 백석 교단(구 합동정통)에 속해 있을 때, 지금은 이런저런 부정적인 이유로 한기총에서 퇴출된 이단사냥꾼 4인방과 교회를 시기하고 음해하는 세력들이 퍼트린 거짓말들에 의해 이단시비가 불거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이대위위원장은 이단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구원 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웨슬리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저를 끝까지 이단으로 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그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도 다음해 다시 조사를 하였고 “입신이 성경에 없으니 이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하다가 노회장이 성경의 에스겔과 바울과 사도 요한을 예를 들며 입신이 왜 성경에 없냐고 하자 "어, 있네요"하고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자들을 동원하여 저의 모든 책과 설교들을 조사하였지만 역시 이단성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그때 조사가 얼마나 편파적이었는지 조사 과정에서 이대위 임원 중에 한 사람이 동의할 수 없어 사표를 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견인의 교리를 문제 삼았고 장로교의 교리대로 설교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제가 신양양심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자 교인 1명이 옮긴 것에 앙심을 품은 전직 총회장이 나서 정치적인 장난을 하여 출교로 몰고 갔습니다. 그것은 이대위가 요구한 경고나 주의 조치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대표적인 이단사냥꾼 최××이 속해있는 통합 교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항간에 떠도는 악성 루머와 거짓말들에 근거하여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했고, 처음부터 제 말을 고의적으로 왜곡시키면서 집회참여주의를 결정했던 고신을 비롯하여 합동, 합신 등 몇몇 교단이 이단으로는 정죄를 못하고 교회에 흠집을 내는 엉터리 결정들을 내렸습니다. 그들 중 실제로 저를 조사하여 사실 확인을 한 교단은 하나도 없으며 그저 이단사냥꾼들과 일부 질 나쁜 목사들이 지어내어 퍼트린 삼류소설과 같은 악질적인 거짓말들에 속아 그런 악을 자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단시비에 관한한 한국 교회는 중세 암흑시대의 교황청과 다를 바가 없으며 전혀 공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기대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무 상관도 없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교단에서 저를 조사한 끝에 ‘이단성 없음’을 확인하고 ‘사이비 논의를 종결하고 다시 다루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내부 반발이 있자 이를 번복하고 2차 조사(사실상은 재조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성은 타 교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정하게 저에게 질의서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질의서와 답변을 여러분에게 공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동안 이단사냥꾼들과 우리 교회를 시기하는 일부 목사들이 지어내어 퍼트린 거짓말이 산적해 있어 어디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거짓말을 지어내어 조직적으로 퍼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말에 일일히 대응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려면 목회를 접고 그 일에만 매달려야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제가 문선명처럼 대관식을 치뤘다는 등 상식 이하의 새빨간 거짓말들을 지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어이없는 거짓말들을 많은 분들이 사실 확인도 않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디 이런 기사를 쓴 신문이나 인터넷 카페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형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아비는 거짓말쟁이요 형제를 참소하는 자인 마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그 아비의 행실을 그들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제가 공개하는 질의서와 대답은 기성 교단에서 1차도 아니고 2차 조사를 하고 보내준 질문이므로 상식적으로 큰믿음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악성 루머가 사실이라면 당연히 질문에 포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문에 나오지 않는 악성 루머들은 사실이 아닌 음해로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저는 기성의 이 질문서를 사용하여 우리 교회를 변호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몸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일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이 글을 열린 마음으로 읽으시고, 바른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기성 교단 총회장님과 이대위위원장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제가 전에 백석에 속해 있을 때 신학자들이 두 해에 걸쳐 저의 모든 책들을 가져가 조사했습니다. 제 설교 CD들도 들었고 총회장님의 특별지시를 받은 교단 총무님이 저희 교회에 여러 번 몰래 와서 설교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단성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총회장님과 교단총무님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제가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출교했습니다.

 

  그 후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기 목사님과 윤석전 목사님을 이단으로 매도한 전과가 있는 통합이 저와 전태식 목사님을 이단으로 매도했고, 몇몇 교단들이 저에 대해 이단이라고 단죄하지는 못하고 저에 대해 거짓 증거들과 왜곡된 자료들을 근거로 불의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사실 확인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저에게 전화 한통 한 적도 없습니다. 자신들이 검사였고 판사였습니다. 이것은 중세 암흑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것이 한국교회의 이단몰이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귀 교단이 처음으로 저에 대해서 용기있고 공정하게 조사하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이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판단을 위해 이렇게 저에게 질의서를 보내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 귀 교단의 질문에 정직하게 성실하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질 의 서

  본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2010. 6. 16)에서는 귀하께서 저술하신 도서와 동영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본교단에서 5인의 전문위원에게 위촉하여 연구하였고, 그 연구의 한 과정으로 별지와 같은 내용의 질의를 하오니 정직하게 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28쪽에 “천국에 가려면 이 말씀 그대로 회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단 한 가지라도 회개할 죄가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했어야 합니다.”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약화시키고 회개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보입니다. 변 목사님이 “믿음 지상주의 (fideism)"를 비판했는데 오히려 “회개 지상주의”를 말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행위로서의 회개를 앞세우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 보혈의 공로가 경시되지 않겠습니까?

 

  답변 : 회개는 죄에 대한 것이며 특정 죄가 아니라 모든 죄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당신의 죄가 10가지인데 다 회개할 필요 없습니다. 그중 다섯 가지만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온전히 용서해주실 것이며 당신은 구원 받을 것입니다.” 라고 설교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므로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라고 설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라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에스겔 18장 30-31절)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것을 증거했습니다.

 

  “참다운 회개는 보류하는 것도 동거자도 없어야 합니다.”(토마스 왓슨)

 

  “가장 작은 하나의 죄라도, 또 나쁜 한 가지 생각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멸하며 하늘나라 밖에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썬다 싱)

 

  “사람이 계속 한 가지의 죄 속에서 생활하며 그 죄를 버리지 않는 한, 결코 참 회개는 있을 수 없다.”(찰스 피니)

 

  “죄 중에 하나라도 보류시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용납치 않으실 것이다... 단 하나의 아주 작고 은밀한 죄일지라도 그대가 그것을 용납한다면 그대의 영혼은 그 죄를 살려 준 대가로 죽어야한다.”(조셉 얼라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죄라도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건방진 욕망을 가지고 탐닉하는 죄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니다.”(찰스 스펄전)

 

  이러한 말들은 죄가 전혀 없어야 혹은 죄를 전혀 짓지 않아야 구원 받는다는 것과 다릅니다. 그것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성경대로 회개를 강조하는 것이지 ‘회개 지상주의’가 아닙니다. 나아가서 회개는 율법의 행위 같은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다. 회개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랍군요. 그러면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율법의 행위 즉 인간의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한 것입니까? 그리고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약화시키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과 바울도 회개와 믿음을 강조했습니다(막 1:15, 행 20:21).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약화시켰습니까? 성경을 보면 ‘은혜 논쟁’은 율법의 행위와 믿음에 대해서만 벌어졌습니다. 회개를 상대로 은혜 논쟁이 벌어진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대로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약화시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행 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회개 자체로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회개를 유효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훼손하고 십자가의 공로를 약화시킬 수 있다니 그것이 말이 됩니까? 그것은 성경 저자들이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1)

  저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 85~87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회개는 모든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에 대한 이런 말씀을 듣고 나면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회개가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한 마디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회개는 모든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전혀 안 짓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따금 강력한 유혹을 받아 죄를 짓고 나서는 회개하고 당분간 그것을 버렸다가 다시 유혹에 굴복하여 그 죄를 범한다면 그가 죄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고의적이고 상습적이며 고집스럽게 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며 항상 그 죄를 버리려고 하며 그것에 저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유혹이 그를 덮쳐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에 그것은 우발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찰스 피니)

 

  회개는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표현해 보면 회개는 성화(聖化)가 아닙니다. 저는 조셉 얼라인의 말이 회개한 자가 어떤 자인지에 대한 가장 적합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면 그는 죄와 영원히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는 죄와 몸부림치고 싸운다. 자주 실패하긴 하지만 호흡이 붙어 있는 한 신조를 굽히지 않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비록 온전히 거룩하지 않아도 이런 자는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이며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2)

  저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 287-289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무명의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 책은 구원론을 재조명하고 성경대로 돌려놓으려는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진리에 눈을 뜨고 회개하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동안 잘못 가르침 받은 것이 쌓인 결과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다음 진술이 양약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째,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지만 구원의 수단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어도 그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막 1:15).

 

  셋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참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의지하고 죄를 회개하고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위조지폐처럼 가짜 회개와 믿음 역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회개이고 믿음입니까? 가짜 회개는 죄를 자백만 하는 것이요, 진정한 회개는 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겔 18:30-32). 가짜 믿음은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요, 진짜 믿음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고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약 2:14). 저는 이런 회개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합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에 행함을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만으로 충분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3)

  최근에 출간된 저의 책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75-80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롤랜드 벅 목사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죄나 실수를 보지 않으시고,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로 보신다는 내용을 성경 어디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미 그것을 성경에 기록해 두었단다.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 내용이 나온단다.’라고 대답하셨고, 나중에 민수기를 찾아본 결과 23장 21절에 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저는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읽어왔습니다만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들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진리에 대해서는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주님은 보혈로 우리를 덮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실 때 예수님처럼 바라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그분의 사랑에 완전히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를 이렇게 보십니다. 우리가 완전해야 주님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죄가 있어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점 없는 자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설사 회개에 합당한 열매나 믿음에 따르는 행함일지라도 그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를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밥 존스 목사님은 모닝스타 코리아 저널 19호에 실린 "종교의 영"라는 제하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온전해져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은 속임이자 미혹이다... 종교의 영은 육체의 행함과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획득하라고 부추긴다.”

 

  또,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밥 존스 목사님은 역시 “종교의 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종교적인 영은 다섯 가지입니다... 이중에 가장 악독한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주의 적이면, 하나님의 은혜를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무엇인가 더해야지만 하나님의 일이 성취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곧 교만의 극치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이미 성취된 역사입니다.”

 

  전에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온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이 말은 회개나 행함 있는 산 믿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참 믿음을 가져도 그것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거나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것이나 믿음에 따르는 행함을 보시고, 우리를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온전히 의롭다고 보아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보고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보아주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찬양처럼 진실로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영광을 오직 그분께 올려드리십시오. 이것이 성경적인 올바른 믿음입니다.

 

 

 

  2. 회개는 특성상 “중생의 회개”(방향전환, repent)와 “성화의 회개”(점진성화, confess)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 목사님의 주장은 존 웨슬리의 경우처럼 “(중생한) 신자의 회개”를 강조한다고 보는데, 그것을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저는 그 둘을 혼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책 “명목상의 신자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라는 책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회개하고 믿는 신자도 삶속에 많은 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성화가 아니라 위에서 말씀한 그대로 ‘방향전환’이요 출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성화를 구원 즉 칭의나 중생의 조건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 20~25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땅히 설교자는 바울을 본받아 성경대로 회개하고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지라고 강력하게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외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과도하게 강조하다가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명목상의 신자로 오해하거나 그들을 궁지로 내모는 것입니다.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이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육신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시기하고 분쟁을 일삼고, 사람을 따라 행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들도 구원받은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 이들도 구원받은 자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 옥한흠 목사님도 일전에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이 점에 있어서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웨슬리, 찰스 피니 그리고 청교도들은 방향은 옳았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희석된 복음을 전하는 현대 설교자들에 비하면 오히려 영혼들에게 복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설교와 글에서 묘사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거의 성화된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교회 안에서 웬만해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찰스 피니의 경우, 본문에 나오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배교한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승리의 원리」라는 책에서 찰스 피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은 ‘육신’이라는 말을 한 번, 그것도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단 한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라는 말은 신앙이 저조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여기까지는 옳습니다. -저자-).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이와 같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배교하였으며(이것은 잘못입니다. -저자-) 마치 회심하지 않은 자처럼, 육적인 자들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이처럼 찰스 피니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이들의 영적 상태를 배교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아마도 그는 이들이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존 웨슬리는 피니 못지않게 강성이고 구원의 기준을 높게 설정했지만 이 구절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신자 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라는 설교에서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인용한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바울은 의심할 여지없이 신자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형제 된 자들, 그러나 어느 정도 아직도 육에 속한 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시기(하나의 나쁜 성질)가 있어서 종종 분쟁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신앙을 잃어버렸다고는 조금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믿음을 잃었다면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그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아이란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인 동안에는 모든 신자가(어느 정도) 육신에 속하여 있음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말이 옳습니다. 이들 역시 구원받은 자이고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한 가정에 성숙한 어른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청년들과 어른들이 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영적인 어린아이들과 청년들, 그리고 아비들이 있습니다(요일 2:12-14). 교회 안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다 있으며 모두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 위의 내용에서 보듯이 회개를 구원의 조건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신다면 변 목사님은 자신이 회개할 것이 전혀 없으며 필히 천국에 들어간다고 단정하실 수 있습니까?

 

  답변: 앞에서 말했듯이 회개는 성화가 아니며 방향 전환입니다. 그러므로 행위가 완전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이 질문은 이것을 오해한 상태에서 나온 질문이기 때문에 따로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4.『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66쪽에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만 모셔 들이면 구원을 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라고 할 때에는 성경의 표현대로 “구원의 주”로 믿는 것이 아닙니까? 즉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구원을 주시는 분이며 동시에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변 목사님이 주장하는 이런 내용도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명백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는 인정하나 진실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명목상의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여기서 주여주여하는 자가 예수님이 구주임을 부정하는 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구절의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6:46에 보면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예수님을 입으로만 주님으로 부르고 실제로는 주님으로 모셔들이지 않은 자들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여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명백한 그리고 기본적인 진리인데 제가 계시를 받고 말아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단지 성경대로 설교했을 뿐입니다.

 

 

  네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구원에 이르는 지혜” 57~61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거두절미하고, 믿음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처럼 믿음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분으로 모셔 들이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이 진리가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는 지 성경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요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예수님이 왕이심을 의미)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무엇으로? 단순히 구주로가 아니라 왕으로)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구주가 아니다)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영접하지 말고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 진리는 제가 독창적으로 고안하여 혼자 별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증거한 참된 진리입니다.

 

  먼저,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주와 왕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는 결코 주님을 단순히 자기를 위하여 속죄하는 제사장으로만 영접하는 자가 아니다.”

 

  또,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두 관계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의 고난을 인정하고 용서와 영광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과 구원 방법에 순복하는 것이다.”

 

  또,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대답해보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확신한다면, 모든 사람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표어는 ‘황제이든지 아무 것도 아니든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황제나 왕이나 군주가 아니시라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이다.

 

  또, 에이든 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권 없는 구주는 없다. 그리스도는 구주이시며 주님이시다. 죄인이 그를 주로서 시인하지 않고도 구주로만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현대의 이단이다... 그리스도의 구주 되신 신분은 그의 주권과 영원히 연합되어 있다.”

 

  또, 로이드 존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러분이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 뿐만 아니라 '주'로 믿지 않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믿음, 실로 믿음뿐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은 그 자체에 복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롬 10:3). 또한 그 믿음의 대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롬 1:4)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7)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평생에 걸친 순종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고도 그 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으면서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5. 『보이지 않는 적 귀신』 104쪽에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거듭날 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는 말씀대로 우리의 영만 거듭났습니다. 먼저 거듭날 때 우리의 영은 구원 받았지만 혼은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또한 「박형택 목사에 대한 반론」의 글에서 중생의 단계에서는 영의 구원(요 3:5-6), 성화 과정에서는 혼의 구원(빌 2:12, 벧전 2:1-2; 약 1:19-21), 그리고 예수 재림의 때에는 몸(육)의 구원(롬 8:22-23; 빌 3:20-21; 딤후 4:18)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변 목사님은 이와 같이 영의 구원과 혼의 구원, 그리고 몸의 구원을 분리시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솔직히 저는 이 질문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말할 때 중생, 성화, 영화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구원론의 기본 아닙니까? 이러한 구원관은 성경적이며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영의 구원 즉 거듭남을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거듭날 때 부분적으로 구원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거듭날 때 아직 성화되지 않았으며 성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화 역시 구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대로 그렇게 설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과 혼과 육의 구원은 분리의 개념이 아니라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처럼 유기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런 순서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영의 구원 즉 중생과 혼의 구원 즉 성화를 구분하여 말한다는 것 자체가 역으로 1-4번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즉 저는 성화를 최초의 구원의 조건 혹은 자격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행위가 완전해야 천국에 간다고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6. 「예장 합동정통 교단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변 목사님은 “저는 피터 와그너 박사의 추종자가 아닙니다.”라고 하시면서 신사도개혁운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셨지만 핵심적인 주장들에서는 신사도개혁운동을 추종한다고 봅니다. 특히 신사도개혁운동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5종류의 사역자가 현대교회에도 그대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변 목사님도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 특별계시를 받는 사도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변 목사님 자신이 정말 ‘사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저는 신사도개혁운동이 아니라 ‘성경’과 ‘성령’을 추종합니다. 즉 어느 운동에서든 성경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신사도운동을 하는 측에서도 저를 좋지 않게 봅니다. 그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성경대로 사도나 선지자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사도운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여러분이 “직접, 특별계시”라고 부르는 성경의 사도들이 받았던 그런 권위 있는 계시를 받는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사도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 가르치고, 그리고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따르는 목회자들을 지도할 뿐입니다. 그들이 체험하는 모든 것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이 결코 아니며 성경에 의하여 분별되어야만 합니다.

 

 

  여섯 번째 질문에 대한 증거 자료

  저의 책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178~191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사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선구자적인 케네스 해긴, 피터 와그너, 빌 해몬, 데이빗 캐니스트러시,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등 많은 분들의 수고에 의해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주장이 과연 성경적일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 21-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많은 목사님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오늘날은 절대 사도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 중 누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금은 사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도의 자격이 아니라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양의 12사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계 21:13-14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이처럼 어린양 12사도는 특별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가 어린양의 12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도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세례요한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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