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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환상을 깬 C목사의 '방북체험담'

오늘도기쁘게 |

2009-03-31 02:36:02 |

조회: 234

눈물로 환상을 깬 C목사의 '방북체험담'
북한 동포들을 상상할 수 없이 착취하는 남북한 좌익집단
 
 
작년 7월 16일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박왕자(여 53세) 총격사망사건이 터진 5일후 통일부에서 허가를 받은 150여명의 기독교계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이 단체의 방북은 조심스럽게 이루어졌고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이 단체는 김영태 총회장과 조성기 사무총장을 비롯해 교회건축을 주도한 표명민 예수교장로회의 남선교회연합회의 건축관계자로 구성되었고 방묵목적은 평양의 봉수교회에 헌당식에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봉수교회는 2005년 말, 첫 삽을 뜬 지 2년6개월여 만이며, 지상 3층 연면적 2000여㎡ 규모로 1200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 건축에 사용된 자재는 물론 예배실 장의자까지 모두 남한 제품을 사용했으며,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돼 ‘남북 화합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방북일정은 김일성생가방문-묘향산-평양봉수교회의 순이었다. 일인당 비용은 170만원 정도였다. 평양민항기편으로 갔다. 
 
전주의 S교회의 C목사도 동참했다. 평양행은 이번이 초행길이었다. 용돈으로 쇼핑을 위해 500달러를 지참하였다. 전주의 S교회의 목사는 평양에 다녀온 소감을 밝혔는데, 몇 번이나 북한의 비참한 생활상에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우선 유심히 주위를 살피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예배차 참석한 평양시민들의 옷차림이었다. 평양에 사는 40-50대 아줌마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그녀의 시골뜨기 같은 초퀘한 옷차림과 우울하고 생기없는 표정에서 눈물이 나왔다고 전한다. 

  평양시내를 돌아보니 모든 건물이 낡았는데, 돈이 없어서 펭끼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고, 차량도 남한에서는 두 세번은 이미 폐차해서 버렸어야할 차량들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고 목격했다. 평양주민들은 좋게 말해서 거의 대부분 날씬했고, 살이쪘다든가 비만증 환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먹기가 힘들다는 점은 반증했다.

  C목사는 평양에 비가 와서 우산을 빌리는데 1달러를 썼다. 평양주민들과는 직접 접촉이나 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공안요원들이 항상 감시하면서 따라다녔다. 평양주변의 사진도 마음대로 찍지 못하게 통제했다. 북한은 말 그대로, 거주이전의 자유는 물론, 신앙과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였다. 평양시민들은 한낮에도 장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내가 물이 막혀서 배수시설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김일성의 동상은 도처에 전시되어 있고 무려 10미터가 넘었다. 전력난이 극심해도 야간에는 불까지 켜지고 있었다. 주체탑은 20미터가 넘었다. 평양백화점에 들러보아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묘항산으로 향하기 위해 평양시내를 벗어났는데, 제대로 차량을 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차량은 10분에 한 대꼴로 지나갔다고 한다. 묘향산에 관광을 갔는데도 역시 살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곳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외국원수와 각국의 귀빈들이 두 父子에게 선물로 가져온 것을 모두 진열한 외빈진열장이 두 개가 있었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빈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따로 전시하였다. 그 중에는 현대그룹회장 정주영 회장이 선물한 것도 있었다. 외제자동차도 전시되어 있었다. 북한주민들에게 강제로 관람하게 하여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얼마나 외국의 지도자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지를 과시하면서 김일성-김정일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체제선전 장소로 활용한 것이다.

  C목사는 귀국하여 묘향산에서 안내양에게 팁 1달러라도 주고 오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안쓰럽게 생각이 되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적시었다. 쇼핑도 못하고 499달러는 그대로 가지고 왔다. 3박4일동안 관광해도 1달러밖에 쓸 수 없었던 나라가 바로 북한땅이었다. 세계 어디에도 북한과 같은 곳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쿠바나 아프리카의 오지의 모습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평양을 다녀온 후 C목사의 소감은 간단했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빨리 망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북한의 생활상은 비참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런 북한에 교회건축 등으로 지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혹시나 기독교선교에 도움이 될까하여 지원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평양을 다녀온 C목사에게서 달라진 점이 있다. 6.15공동선언의 실천이니 남북협력이나 남북상생이니 하는 용어가 기도나 설교에서 사라진 점이다. C목사의 평양방문은 그로 하여금 북한 공산체제의 모순을 직시하여 반공목사로 다시 태어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남한인사들의 방북이 부정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9/3/30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ㆍ뉴라이트 전국연합 공동대표: http://www.leejuch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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