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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중국인이 들고 온 성금 100만원

겸손 |

2008-02-02 00:00:00 |

조회: 349

 

 

불법체류 중국인이 들고 온 성금 100만원
매일 12시간씩 허드렛일로 번 돈… "불우이웃에 써달라" 
"고향에 가지 못해도 따뜻한 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지난달 22일 오전 11시쯤 중년의 한 사내가 조선일보사 로비로 들어와 갈피를 못 잡고 두리번거렸다. 머리와 어깨에는 흰 눈이 덮여 있었다. 밖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눈이 내렸다.

그는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로비를 오가는 사람을 붙잡고 보여 주며 말을 걸었다. 편지는 중국어로 씌어 있었고, 그의 말도 중국어였다. 두꺼운 포장지 뒷면에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새해가 됐습니다. 한 중국인의 작은 마음을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전해주세요."

그는 기자에게 그 편지와 현금 100만원을 건넸다. '신문사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직접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나는 어디에 내야 할지 모르니 신문사가 대신 좀 전달해달라"고 돈과 편지를 떠 안기고 돌아섰다. 사연을 들어보자는 말에도 "12시까지는 출근해야 한다"며 눈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맡긴 100만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전달하기로 했다.
▲ 중국인 불법체류자 오모(54)씨가 식당에서 매일 12시간 이상 설거지와 허드렛일을 하면서 번 100만원을“불우이웃에게 전해 달라”며, 지난달 22일 본사를 찾아왔다. 오씨가 자신이 쓴 편지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그가 누군지, 어떤 사연으로 100만원을 들고 왔는지는 이후 며칠간에 걸쳐 10~20분씩 이뤄진 전화통화를 통해 조금씩 들었다. 그는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 한국으로 온 지 7년 된 불법체류자 오모(54)씨였다. 2001년 산업연수원생 신분으로 부산에 왔다가 1년 뒤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에다 한국어도 거의 하지 못하니, 그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라곤 공사장 잡부가 고작이었다.

"서울로 처음 왔을 때 아무 것도 없는 데다 혼자여서 너무 힘들었어요.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전 사무치게 알고 있습니다."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고, 겨울에 불을 때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공사장만 전전하던 그는 지난해 5월 한 식당에서 설거지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는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했다.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100여 만원. 그 돈으로 15만원 사글세와 생활비를 내고, 남는 돈은 중국에 있는 부모에게 부친다고 했다. 성금으로 들고 온 100만원은 생활비와 중국에 부치는 돈만 빼고, 주전부리나 과일 한번 사먹지 않고 6개월간 모은 돈이라고 했다. 그가 한국으로 오기 전 중국에서 한 달 벌이는 4만~5만원이었다 하니, 성금으로 낸 돈은 고향에서 2년치 월급인 셈이다. 

자기 형편도 어려우면서 그렇게 큰 돈을 선뜻 내놓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우면 고향에 가지 못해도 따뜻한 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중국인들에도 '춘제(春節·설)'는 가장 큰 명절이다. 그는 "나의 작은 정성으로 한 사람이라도 외롭지 않게 설을 보내는 것, 한 사람이라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이 새해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의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겨울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봄날도 머지않았네요. 중국인 친구가." 
입력 : 2008.02.0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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