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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언할 수 있습니다! (즉흥설교 전문)

주님생각 |

2008-09-22 00:00:00 |

조회: 214

 

저는 예언할 수 있습니다!

<2007. 7. 18. 변승우 목사님의 즉흥설교>
본문 : 요한복음 2:1~1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성경을 해석할 때 풍유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알레고리’라고도 하는데 풍유법은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전부 비유적으로 해석하면 이상해집니다. 그런 설교자들도 있는데 그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전체가 비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마땅한데 비유가 아닌 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풍유법 또는 알레고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성경적인가?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나오고, 히브리서에 비슷한 게 나오고, 고린도전서 10장에 나옵니다. 

‘김치를 담글 때 고춧가루가 들어가니까 고춧가루를 써도 된다. 그러니까 배추 한 포기에 고춧가루 한 말을 넣어도 된다.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거니까 맞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풍유법이 성경에 나오니까 성경적이기는 한데 모든 성구를 풍유법으로 해석하면 위험합니다. 저는 알레고리(풍유법)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레고리를 전혀 배격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분명히 나오니까요.


그러나 성경에 나온다고 다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강조한 만큼 강조해야 성경적인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설교하지 않는 목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회개의 비중을 두는 만큼, 성경에서 회개가 출현하고, 성경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회개를 강조한 만큼 회개를 외치는 목사가 거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약화시키고 세속화 시키고 부패하게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회개가 나오는 만큼 회개를 외쳐야 합니다. 성경에 행함 있는 산 믿음이 나오는 만큼, 성경에 거룩이 나오는 만큼 거룩을 외쳐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적입니다.


‘메시지가 성경적이다.’ 그게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비율도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강조의 강도(强度)도 성경적이라야 그게 진짜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어리석은 설교자들은 늘 난해구(難解句) 가지고 떠드는 설교자입니다. 자기가 최고의 지혜자처럼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제일 적게 나오는 것이 난해구입니다. 그런 것은 1년이나 10년에 한 번 언급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지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고, 이것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어리석은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기 위해서 스스로 미혹된 것입니다.


제일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 회개를 늘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거룩을 늘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부정과 순종과 사랑을 늘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제일 훌륭한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짜 성경적인 것입니다. 주제만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강조점이나 비중이나 비율에 있어서 성경적이라야 진짜 성경적이고 그래야 이게 밥이 되고, 김치가 되고,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배추 한 포기에 고춧가루 한 말 넣고 그것을 김치라고 한다면 그것 먹고 다 탈이 납니다. 설교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의 비율대로 적당하게 메시지들을 넣어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영적인, 진정한 밥이 되고 영적인 반찬이 되는 것입니다.


알레고리는 성경에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게 설교해야지 알레고리를 자주 설교하면 안 됩니다. 알레고리를 바꿔 말해서 영해(靈解)라고 합니다. 비유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비유가 아닌 것을 어떤 영감을 받아서, 감동을 받아서, 조명을 받아서 그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알레고리 또는 영해라고 말합니다. 영해를 해야 신령한 것처럼 착각해서 늘 영해만 하고 있으면 그건 이상해지고 절대로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해는 어쩌다 한 번, 드물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늘 문맥으로만 설교해서도 안 됩니다. 때때로는 어쩌다 한 번씩은 영해로 들어가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영해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읽는데 하나님께서 영해를 주셔서 영해를 하려고 합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제자들이 초청을 받아 참석했습니다. 성경에서 보통 잔치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문맥에 의한 해석이 아닙니다. 잔치를 벌여놓고 사람들을 초청하니까 하나는 밭으로, 하나는 소를 사러, 하나는 장사하러 갔는데, 잔치 집은 교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잔치 집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포도주입니다. 교회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새 술, 영적 포도주입니다. 교회는 잔치 집이기 때문에 음식만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여러 군데 나오는 것처럼 교회는 영적인 잔치 집이기 때문에 교회는 음식(떡), 즉 말씀만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설교만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성경공부나 강해설교나 제자훈련만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절대로 말씀만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반드시 성령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새 술이 충만해야 합니다. 잔치 집에 가서 술을 마실 때, 한 잔만 마시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취할 때까지 마십니다.

 

여기 본문에 술이 왜 떨어졌습니까? 술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마시니까 떨어졌습니다. 그냥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에 취할 정도로 성령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 처녀 비유에도 나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도 교회,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교회입니다. 물론 비가시적(非可視的)인 교회, 진정한 교회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뿐입니다. 그러나 가시적(可視的)인 교회, 큰믿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안장로교회 이건 다 가시적인 교회입니다. 가시적인 교회 안에는 어느 교회이든지 슬기로운 처녀도 있고 미련한 처녀도 있습니다.

 

그러면 열 처녀는 무엇이냐? 세상에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보니까 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등은 있는데 기름이 없는 게 아니고, 기름이 부족한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 혼인 잔치와 똑 같은 상황입니다. 하나는 등이 있을 뿐 아니라 기름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등은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한 것처럼 말씀이 등입니다. 어디가 길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디가 좁은 길인가, 어디가 생명 길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 자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름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로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준비한 자가 슬기로운 다섯 처녀인데, 들림 받을 자인데 그 비유의 결론이 “그런즉 깨어 있으라.”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깨어 있는 비결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 성령 충만을 받으면 말씀대로 살게 되고 거룩하게 됩니다. “내 신을 너희에게 두어 내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기름 준비한 게 단순히 우리가 성령 충만해서 방언하고, 예언하고, 귀신 쫓고 병고치고 권능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마태복음 7장 22, 23절에 나오는 것처럼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불법을 행한 자로 정죄되어서 버림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옥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기름 준비는 성령 충만 받아서 영적으로 잠들지 말고 깨어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로마서 13장 11절 이하에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그러면서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쭉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게 깨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단순히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고치고, 귀신 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고, 점점 거룩해지게 되고 점점 주님을 닮게 되는데 이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온 천하는 돈, 명예, 권세, 쾌락 이런 것을 가리킬 수 있고 온 천하를 얻는다는 말은 큰교회 목회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예언 사역을 하는 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형 치유집회를 인도하는 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어떤 큰 사역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언하고 병고치고 설교하고 집회 인도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내 영이 깨어있는가가 문제입니다. ‘나는 정결한가? 나는 거룩한가? 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게 중요합니다.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기도원에 올라간 이유가 그것입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큰믿음교회가 아무리 부흥하고 네 이름이 세계적으로 아무리 알려져도 책들이 계속 나오고 아무리 팔려도, 세계적인 선지자들이 너의 사역에 대해서 얼마나 놀라운 예언을 해도 네가 내 앞에 거룩하지 않으면, 정결하지 않으면, 네가 내 앞에 말씀대로 사는 자가 되지 않으면, 네가 나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하지 않으면, 그래서 네 영혼이 버림 받아서 지옥 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네가 세계적인 교회를 세워도, 네가 세계적인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도, 네가 세계적인 사역을 해도 네가 네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래서 제가 깊이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에 철두철미하게 사는 자, 변화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그 목적 가지고 제가 기도하고 왔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등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되고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 받고 방언, 예언, 병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결해지고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활적으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여기에 목숨을 걸기 바랍니다. 안 되면 금식이라도 하고 매달리고 목숨을 걸고 정결해지고 거룩해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다음, 오늘 성경 말씀에 잔치 집이 교회인데, 교회에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포도주입니다. 포도주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게 많은 교회들의 현실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포도주가 없습니다. 포도주가 원래부터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교회 중에 성령 충만한 교회가 몇 교회나 되겠습니까? 대부분은 성령 충만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한둘을 빼놓고는 대부분은 포도주가 떨어진 교회입니다. 잔치 집에 사람들은 많이 모여 있지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음식은 많지만, 좋은 설교, 성경공부, 제자훈련 많지만 포도주는 떨어졌습니다. 이게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여기 잔치 집 주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포도주가 떨어지면 이 잔치 다 망쳤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은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를 망쳤다는 것을 못 깨닫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아무리 음식이 많아도,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아무 소용없고 이 잔치는 망쳤다. 어디서 포도주를 구해올까? 어떻게 해야 이 포도주를 다시 채울 것인가?’ 정상적이라면 그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고 그것을 정통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모델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건전하다는 회칠한 거짓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으면서, ‘이것이 건전한 것이고 우리는 성경적이고 우리는 말씀만 사랑한다.’하고 오히려 포도주가 넘쳐나는 이웃 잔치 집을 보면, 이웃의 교회들을 보면 ‘조심해야 된다. 이단이다. 사이비다. 광신자다. 신비주의자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뱀들, 독사의 자식들과 같은 말들을 합니다.


교회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도 포도주가 떨어지면 안 됩니다. 항상 포도주가 충만해야 합니다. 항상 포도주가 넘쳐나야 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항상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물이 흘러넘쳐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는가? 본문을 보니까 무엇이 포도주가 되었느냐 하면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돌 항아리는 마음을 말합니다. 다른 데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라고 말씀했습니다. 뭐가 포도주가 되냐고 하면 말씀이 포도주가 됩니다. 물은 말씀을 뜻합니다. 말씀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회개(베드로전서에), 또 하나는 말씀을 뜻합니다. 회개가 포도주가 되는 것이고, 말씀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때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의 새 술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기도보다 앞서 회개를 말합니다. 성령은 비둘기 같은 영입니다. 그냥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 고치는 것은 기도만 열심히 하면 옵니다. 그러나 나를 깨어 있게 하는 것, 나를 거룩하게, 정결하게 하는 것, 진짜로 내 영혼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성령의 기름은 회개하는 자에게 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처럼 회개가 포도주로 변합니다. 회개할 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또,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고넬료의 집에 가서 설교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하는데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할 뿐이지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오지 않으면 이것은 미달된 설교자입니다. 비성경적인 설교자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할 때 성령이 사람들에게 내려와야 합니다. 그게 성경적인 설교자입니다.

 

또 하나, 성도들이 설교를 듣는데 성령이 자신에게 내려오지 않는다. 이건 뭔가 잘못돼서 그런 겁니다. 성도들이 설교를 들으면 성령이 자기에게 내려와야 합니다. 진짜 성령 충만한 설교자는 설교를 하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옵니다. 진짜 제대로 된 성도는 설교를 들으면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에게 성령이 내려와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성령으로 채워집니다. 설교가 끝났는데 기도가 평소하고 똑같이 된다. 그 예배는 실패했습니다. 설교가 끝났으면 다른 때는 안 됐던 회개가 되고 눈물이 터지고 회개가 되고, 다른 때는 안 됐던 기도가 상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이 되어서 간절하게 기도가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입니다. 정말 성령이 임하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도하기 제일 좋은 시간은 설교 끝난 바로 그 시간입니다. 그 설교가 제대로 된 설교라면, 그 성도가 제대로 된 성도라면, 기도가 가장 잘 되는 시간은 설교 끝난 바로 그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들을 때, 기도할 때 성령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주일 낮 설교 끝나고 10분 기도회를 갖습니다. 그 시간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냥 일 이분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10분 동안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집중적으로 기도하면 그때 성령 받고, 그때 마음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정결해지고, 사랑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그때 은사가 임하고, 그때 병 고침이 일어나고, 축사가 일어나고, 그때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황금과 같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10분 기도를 통해서 천국을 막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서 천국에 있는 정결한 마음도, 지혜도 갖고 내려오고, 능력도, 은사도, 치유도 갖고 내려오고, 문제 해결도, 축복도 갖고 내려오고, 영감과 권능도 갖고 내려 와야 합니다. 그 시간이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설교 끝나고 10분 기도할 때가 기적의 기회인 것입니다. 그 시간이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이고 그 시간이 응답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능력의 시간이고 축복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 시간에 10분 기도하는 것이 다른 시간에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여러분, 그때는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물은 회개를 뜻하고, 말씀을 뜻합니다. 이 둘은 서로 상관이 있습니다. 회개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찔려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예레미야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설교는 심령을 찌르는 검과 같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설교는 불과 같고, 반석을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은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쳤을 때 생수가 터진 것처럼, 말씀이 검과 같이 되고 말씀이 불과 같이 되고 말씀이 반석을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이 될 때, 우리의 완고한 마음이 깨어지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게 되어 성령의 생수의 강물이 그 영에서 터져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물이 그 영에서, 심령에서 터져 나오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인데 회개와 말씀은 서로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찔림 받아서 회개하고, 성령이 임하는 것, 성령의 새 술로 충만하게 되는 것, 물이 포도주로 변화 되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 물이 포도주가 되면 단순히 그것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변하고 우리의 삶도 변합니다. 우리의 지혜도 달라지고 능력도, 사역도 달라지고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말씀 드릴 것은, 10절에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다 같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물로 된 포도주는 먼저 포도주보다 좋은 포도주입니다. 여러분이 포도주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고 철야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성집회에 참석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안수 기도, 임파테이션을 받아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집회를 참석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안수를 받거나 여러 가지를 통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포도주는 포도주인데 질이 떨어지는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최상의 포도주는 어디서 받느냐?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그 포도주를 받아야 됩니다. 최상의 포도주는 어디서 오느냐? 기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집회참석해서, 안수기도, 임파테이션 받아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최상의 포도주는 말씀으로 자기 영혼을 채울 때 오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돌 항아리는 사람의 심령을 말합니다. 말씀이란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찌르는 검과 같은 말씀, 불과 같은 말씀,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은 말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심령에, 자기 영에 채워야 합니다. 자기 심령에 이런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면 이 말씀은 반드시 변합니다. 변하여 성령의 새 술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상의 포도주는 이것입니다. 이것이 더 좋은 포도주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통해서, 집회를 통해서 마시는 포도주보다, 안수를 받아서 마시는 포도주보다 최상의 포도주는 말씀으로 심령을 채우고 말씀이 내 심령을 찌르고 들어와서 내 심령을 채우고, 말씀의 찔림 받았을 때 내가 회개하고 깊은 회개와 탄식이 일어나고 자기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보이고 통회하고 상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기도하며 주님 앞에 정말 마음을 쏟으며 기도하게 될 때 그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포도주, 새 술이 있고 성령이 있습니다. 그게 최상의 포도주입니다.

 

‘목사님, 이것을 왜 최상의 포도주라고 하십니까?’ 이 두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압니다. 잔치 집에 참석한 사람들이 두 술을 마셔봤습니다. ‘아니, 앞에 포도주는 별로였는데 이것은 훨씬 좋네.’ 두 술을 다 마셔보세요. 그냥 기도해서 성령 받는 것, 그냥 집회 참석해서 은혜 받고 성령 받는 것, 안수 받을 때 성령 받는 것, 그것도 포도주는 포도주입니다. 그것도 우리에게 기쁨과 만족을 줍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게 심원(深遠)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기쁜데 뭔가가 빠져 있어요. 2% 부족하다는 무슨 음료수 광고처럼, 김빠진 콜라처럼 뭔가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찔림을 받고 심령에 통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회개하고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하면 그것은 영혼을 완전히 채웁니다. 그것은 영혼을 완전히 새롭게 합니다. 그것은 하늘을 엽니다. 내 영혼의 하늘을 엽니다. 하늘의 빛이 내게 들어오고 하늘의 영광이 내게 들어오고 하늘의 기쁨과 하늘이 주는 평화와 주님의 달콤하고 거룩한 임재가 내 영혼을 채우고 거룩을 느낄 수 있게 되고 우리는 그때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단지 기름부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기름부음을 경험합니다. 집회 참석하면 ‘와, 기름부음이 강하네. 불이 강하네.’ 안수 받으면서 팍팍 쓰러지면 ‘저 목사님 기름부음이 강하네.’ 그것은 덜 좋은 포도주입니다. 진짜 좋은 극상품의 포도주는 천국을 느끼게 하고 천국을 경험하게 하고 우리 영을 충족시키고, 영을 새롭게 하고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앞의 포도주는 방언하게 하고, 예언하게 하고, 귀신을 쫓게 하고, 능력을 행하고 사역하게 합니다. 뒤에 포도주는 우리를 정결하게 합니다. 뒤에 포도주는 우리를 깨어지게, 거룩하게 합니다. 우리를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하늘의 것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점점 닮아가게 만듭니다. 주님과 친밀해지게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담이 무너지고, 주님과 나 사이에 실제적인 영적인 교류, 교감, 교통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이게 뒤의 포도주입니다. 이게 더 좋은 포도주입니다. 물이 변해서 술이 된 포도주입니다. 그냥 원래 포도주에 만족하지 말고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그 포도주를 사모하라는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직접 해야 합니다. 그것은 집회참석하고 안수 받고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마음이 겸손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영적 권위를 보고 말씀을 들으며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받지 않고 내 심령을 찌르고, 그래서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자기 모습을 보게 되고 그래서 정말 회개하게 되고, 마음이 녹아지게 되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른 사람에게 포도주를 줬다가 그 포도주를 우리가 나눠 받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에게 직접 포도주를, 새 술을 주고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좋은 포도주입니다. 여러분, 이 포도주를 마신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큰믿음교회가 예배 때마다 안수기도와 여러 가지 사역을 많이 해줬는데 그런 포도주 말고 이 포도주를 경험한 지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사람은 이 포도주를 마셔야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역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되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역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 처녀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같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더 좋은 포도주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성령 운동이 일어나지만 덜 좋은 포도주를 나눠주는 성령 운동이 거의 80~90%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것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예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한국의 영성운동에 변화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열방과 세계의 영성운동에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어떤 변화를 주실 것인가? 원래 술로 된 포도주를 나눠주는 사역에서 이제는 다림줄이란 책에 나온 것처럼 말씀의 회복이, 릭 조이너가 예언한 것처럼 진리의 회복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이 찔림을 받고 회개하는 가운데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고, 물로 된 포도주를 나눠주는 사역자들로, 교회로, 집회로 하나님께서 변화를 일으킬 것을 믿습니다. 그래야 진짜 대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래야 진짜로 대추수가 일어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진짜로 예수님의 신부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런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개인적으로 깊이 회개하고 주님께 매달림으로 말미암아 더 좋은 포도주, 물이 변해서 된 포도주, 극상품 포도주를 마시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마시고 돌아가는 복된 시간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귀중한 말씀으로 축복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찬송드리며  찬양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드물게 알레고리로, 영해로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소화하고 물로 된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회개하며 기도할 때 이 시간에 깨어진 마음으로 상한 마음으로, 녹아진 마음으로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주여 오셔서 각 사람에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새로운 술, 영적인 극상품의 술, 최고의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시옵소서. 그 포도주로 만족하게 하시고 우리 영혼이 여기 나온 그대로 잔치 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국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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