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 |
2006-02-17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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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정신
2005. 2. 14.
릭조이너
지난 몇주간 우리가 살펴본대로, 지금 교회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진군을 하기 직전에 있습니다. 이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광야에서 계속 해맨다면, 교회는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나그네로 부름받았지, 방랑자로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나그네의 여행은 목적지가 있지만, 방랑자는 그저 방랑할 뿐입니다. 우리는 전체 교회 세대가 우리를 준비시켜온 목적지에 가까이 왔고, 이제는 건너가야 합니다.
지난 이십여년간 교회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과 영적인 진보가 일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사례들에서 전 지역이 변화되기도 하고, 온 나라가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역사적인 시작의 일부분일 뿐이며, 상당수의 이런 일들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단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많은 일들이 성취되었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크게 격려를 받았지만, 이런 일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조에 불과합니다. 현대의 군대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런 일들은 주 공습을 하기 전에 적군의 방어선 안쪽에 투하한 특별병력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주 공습을 할 때입니다.
저는 1987년에 다가올 영적 진보에 대해서, 이 일이 너무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마지막 추수로 여길 것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 추수가 아니며, 단지 이 시대의 마지막에 반드시 일어날 추수의 일꾼으로 사람들을 세우고 준비시키는 것 뿐입니다. 거대한 물결이 이미 왔습니다, 그러나 더 거대한 물결이 뒤따라올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세상에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으나, 매우 가까이 왔음이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때, 맨 먼저 본 것은 아마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방어벽도 높이 쌓인 견고한 성이었을 것입니다. 여리고는 온 세상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 유목민들이 여리고를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면으로 보나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사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뒤로 모든 일은 다 불가능한 일이었죠. 이제는 늘상 불가능한 일을 하는게 보통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기적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려면 백성이 싸우고 또 주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주시는 일이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 편에서는 백성들이 전쟁에 동참하기를 원하셨고, 백성들 편에서는 주님께서 전쟁에 개입해주셔야만 했습니다. 주님과 백성들이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이런 일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시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실패합니다. 주와 함께 멍에를 메고 좁은 길을 걸어가려면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명철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지혜롭고 분별있는 자만이 이 좁은 길을 갈 것입니다. 때때로 이스라엘이 좁은 길을 떠나 방황하면서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어리석고 분별없게 되어서 이스라엘이 그랬던것처럼 방황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와 같이, 우리는 모든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기로 결심해야 하고,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실수했다고 멈추지 말고 이스라엘이 많은 부흥과 각성, 새롭게 됨과 진보를 이룬것 같이 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숫자나 우리의 지혜로 정복하기에는 여전히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견고하게 에워싼 세상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에 수천년동안 깊이 뿌리를 내려왔던 초자연적인 견고한 진 앞에 서있습니다. 이 영적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대면했을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과 순종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이 승리로 나타날 것입니다. 따라서 나아가려면 하나님 안에서 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요단 언덕에 강물이 넘칠때 요단강을 건너면서, 이스라엘 지파간의 연합이 그들이 이전에 알고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서부터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없이는 이스라엘은 그 땅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물에 들어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가능한 상황 안으로 한걸음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바와 같이, 요단 강은 우리가 받아야 할 또 하나의 세례를 역설합니다. 십자가와 십자가를 지는 삶의 중요성에 우리가 깊이 잠길때, 전례가 없는 연합이 교회에 일어나고 하나님을 의뢰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강을 건넌 후에, 이스라엘의 연합과 순종에 대한 헌신을 확증하기 위해 두가지 사건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두가지 사건은 무엇입니까?
첫번째로,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 강 가운데서 열 두 돌을 취하여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것을 계속해서 기념하도록 기념석을 세우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수아 4장 19-24절을 보십시오.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 4:19-24)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것은 두가지 면에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선,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지혜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분의 힘으로 죽음의 강이 언덕에 넘치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너도록 하셨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기념석은 선조들의 경험을 개인적으로 직접 겪지 못하는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운동이 있지만, 주께서 그들을 위해 하신 일에 대해 기념석을 세우는 지혜가 없어서, 한두 세대 후에는 그 운동이 약화되고 맙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념석 앞에 머물러서 그것을 경배하는데 빠져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인생의 길 양쪽에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도랑이 있습니다. 올바른 동기로 기념석을 세우는 것은, 옳은 일일뿐 아니라 중요한 일입니다. 항상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그들을 주님께로 계속 인도하기 위해서 가교를 세우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두번째로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열두개의 돌은 곧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상징한다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파에 속했든지, 그들은 한 나라에 속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모든 지파의 보석을 물린 흉패(마음)를 입어야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 안에 걸어가려면 우리의 마음에 우리 지파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품어야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각 지파별로 각기 다른 영토와 목적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 모두가 공동의 목적을 가진 한 위대한 나라의 각 부분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에게도 지속적인 기념비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비전과 목적이 있는 운동이나 교파의 훌륭한 점들을 인정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한 몸의 지체로서 우리가 꼭 헌신해야 할 전체의 비전과 목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이 요단강에서 나오기 전에, 분명히 기념석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저는 연합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수고해야 하고, 짚고 넘어가야 하고, 촛점을 맞추고, 계속 이끌어내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저희가 샬로테에 교회를 세운 첫해에 하기 시작한 일 중의 하나는 모든 모임과 예배를 7월에 마치고, 성도들이 도시 안의 다른 교회에 가보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저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전체적인 몸에서 그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또한 누구든지 자기에게 더 잘 맞는 곳을 찾으면, 성령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든지 자신을 두시도록 해드리면서 자유롭게 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물론, 8월 첫째주에 누가 다시 교회에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되면 언제나 6월 마지막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떠나서 여기보다 더 자신에게 잘 맞는 곳을 찾았는데, 우리는 이 일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그립지만,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전체 몸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분들을 보냄으로써 다른 곳에서 자라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에 따라 걸으며, 대제사장과 같이 하나님 백성의 모든 지파를 우리의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은 주께서 인간으로서 이 땅에 계시던 마지막 밤에 중점적으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오늘밤에 당신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안다면, 당신은 당신 마음에서 정말로 가장 깊은데에 자리잡은 것을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연합하는 것에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몸의 어떤 부분이 몸의 나머지 부분에 상관없이 자라나는 것이 바로 암입니다. 우리는 암덩어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체 몸에 축복이 되기 원합니다. 매해 7월에 저희가 하는 일은 이제 기념석과 같은 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이 일에 놀라시면서, 저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하십니다. 자기 사람들을 소유하고 조정하려는 사람들은 이 일에 극도의 위협과 두려움을 느껴서, 저희를 거칠게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저희도 어쩔수가 없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의심할바 없이 좋습니다. 저희는 아주 좋은 분들을 보냄으로써 수많은 모임이 자라나도록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것을 믿으며,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더 잘 맞는 곳으로 가면 우리를 전체 몸으로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잘 맞지 않는데도 계속 머물러만 있으면 그들이 떠나서 더 잘 맞는 곳을 찾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엇습니다. 어떤 교회도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는데, 그렇게 하려고 하면 불가피하게 깊이가 깊지 않아서 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연약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7월에 하는 일을 모든 분들께 추천해드릴 수는 없겠지만, 저희는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8월에 성도들이 다시 모일때에는 얼마나 주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모이는지 모릅니다. 이 분명한 새로운 에너지가 매번 가을마다 저희가 의미있는 영적인 전진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매 가을마다 많은 분들이 저희와 함께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분들은 자유함에 대해 듣고 오신 분들인데, 더 중요한 것은 자유함이 있는 곳에는 성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8장 19-20절에는 연합하는 사람들을 향한 꼭 기억해야 할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19-20)
'합심하여'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심포니오라는 단어로, 문자적인 뜻은 '조화를 이루어' 또는 '한마음으로'입니다. 연합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합의 능력은 단지 우리 중의 두사람만 연합하고 '무엇이든지' 구하여도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신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우리 앞에 놓인 전투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연합한 것을 기억하도록 기념석을 세우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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