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º▽º)민들레♡ |
2006-08-08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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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무릎 꿇고 기도 드리며 지극히 낮은 곳에 거한 자로서 모든 영광이 주님께 돌아가기를 원하며 작은 간증 올리고자 합니다.
아직은 저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나눌 때도 되지 않았거니와 과연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글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간증 올리기를 미루어 왔습니다.
며칠 전 주님으로부터 간증을 올리라는 계시가 두 번씩 주어졌음에도 이를 믿지 못하고 아직은 때가 아닌데 하면서.
그러자 이 밤에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왜 내 말을 무시하느냐? 모든 때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라. 내가 간증 올리기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는 곧바로 일어나서 주님 앞에 회개하고 이 글을 씁니다.
“ 주님,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간증다운 간증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던 것이....... 주님, 용서하시옵소서!”
얼마 전까지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던 불신자였습니다.'나약한 자가 신에게 의지하며 신께 구원을 요청한다' 는 신을 부정하는 사상에 동조하여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던 교만한 자였습니다. 저는 스스로 닦아 깨친 자 되기를 원하여서 열심히 절에 다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끝까지 부르셔서 당신 앞으로, 이곳 울산 큰믿음 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제 올케 언니와 어머니를 통하여서.
제 올케 언니와 오빠는 4년 전부터 이곳 큰믿음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 3년 전에 저에게 와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고, 제가 나오게 되어 있다고 언니가 권하였지만 듣지 않았지요.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 무슨 개종이냐고, 언니 오빠나 열심히 다니라고.
그런데 지난 3월 중순에 남동생 집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피접 오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시고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허리, 엉덩이가 아파서 앉지도 못 한 채 서서 밥 한술 드는 둥 마는 둥 하시고는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우셨습니다. 약도 병원도 아무 소용이 없는 상태여서 저는 혼자서 쩔쩔매며 애를 태우다가 울다가 어머니께 '관세음보살'염불을 권하면서 기도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열흘을 보내신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가 이대로 죽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둘째 오빠가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 전화를 받은 날 아침 곧바로 올케 언니가 오더니 어머니를 오빠 집으로 모셔 갔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낫는다면서.
며칠이 지나 오빠 집에 가보니 어머니는 누운 채 방언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상태가 다소 좋아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하이디 베이커’의 서울 집회에 어머니를 모셔 갔다가 3일만에 내려 왔는데 어머니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집회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고 착잡하였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온갖 정성 다 기울여 절에 다닌 저는 어머니께서 편찮으실 때 속수무책이었고 이제 하나님을 믿은 지 4년 밖에 안 된 언니는 어머니를 몰라보리만치 고쳤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지만..)
언니가 대단해 보이고 고마웠습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보이는 언니 모습에, 그 악몽같던 고통에서 벗어나신 어머니 모습에 저는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서 예수님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른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교회의 문을 열고 첫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저와 예수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저는 성령세례를 받고 4월 마지막 날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저에게서 일어났습니다. 그 날은 변승우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신 날이었는데 기도 중에 제 허벅지를 얼마나 사정없이 제 손이 내려쳤는지 그때 든 피멍이 거의 2주 동안이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앉아 있는데 이마를 바닥에 ‘콩,콩’ 찧으면서 수도 없이 계속 절을 해 대었습니다. 절에 다니는 동안 하였던 그 많은 절들을 흉내내면서 악령들이 저를 괴롭힌 것이지요. 소리를 지르면서 때리고 하던 악령들이 결국에는 훙내를 낼 수 없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몇 번을 구르더니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놀라서 달려오신 김순현 전도사님이 저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의 시작!’
지난 석달 동안 저는 처절하게 싸웠는데, 자세한 내용은 간증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회개는 어떻게 하며 죄사함은 언제 주시는지, 이 싸움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빠가 대략 석 달 가량 열심히 기도하여 죄 사함 받으면 이기게 되어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지 말고 오직 예수님께 의지하여 열심히 기도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그래, 나도 앞으로 석 달을 작정하고 열심히 기도할 거야. 그리하여 반드시 승리할 거야!’
라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등록한 지 일주일 만에 시작한 새벽기도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매사에 감사할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께서는 제가 교회에 오자마자 ‘믿음’을 내려 주셨습니다. 바로 저에게 ‘건강’을 선물로 주시면서 ‘믿음’까지 얹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50년을 살아오면서 요즈음처럼 건강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몸 구석구석이 아프지 않은 곳이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소화불량과 두통, 가슴 답답함은 기본이었고 손목, 발목, 무릎 관절이 아픈 것은 물론이려니와 심한 요통과 어깨 결림으로 늘 찡그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침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힘이 없어서 일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참치 캔 뚜껑 하나 딸 힘이 없어서 언제나 아이들 보고 해달라거나 칼을 사용할 정도로.
병원에 가서 위 내시경이다, 심장검사다, 뼈 사진 촬영이다 온갖 검사를 다 해 보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멀쩡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귀신의 짓이었습니다.
두통약을 심할 때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먹었으며 소화제도 떨어지는 날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늘 아픈 엄마로 인식되었지요. 저에게 있어서 지난 세월들은 산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닌, 고통스럽고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늘 아이들만 다 키우고 나면 곧바로 죽는다하여도 세상에는 아무 미련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몇 달 동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 나와서 등록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그 어떤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라면 한 그릇 먹기가 겁이 났고 좀 과식했다 싶으면 소화제에다가 늘 체한듯하여 피를 뽑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라면, 빵, 만두 등을 예사로 먹고 과식을 하여도 거뜬히 다 소화를 시켜 약을 찾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저를 괴롭히던 모든 질병들이 사라졌으며 지금은 예전에 비해 힘이 좋아졌습니다. 참치 캔 뚜껑 뜯는 것은 문제도 없고, 얼마 전 제 차를 막고 있는 자동차 소나타를 혼자서 밀어내고는 스스로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형도 못 밀어 내어서 쩔쩔 매고 중형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저였으니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저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예수님은 육체적인 건강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건강까지도 주셨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배신 당하고 혼자 손해 본 것에 대한 미움과 분노, 원망과 서러움에 몸을 떨며 울었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그 응어리들을 통곡으로 풀어내시더니 달래 주셨습니다.
“딸아, 용서하여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너를 지켜보고 있느니라. 이제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보상해 줄 터이니 다 놓아버려라.”
처음에는 용서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야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지만 가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예수님, 도와주소서! 제가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기를 원하나 잘되지를 않으니 주님께서 도와주소서! 사랑까지는 못하더라도 용서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를 올린 뒤 지금은 어느덧 그들을 다 용서하였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서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축복도 함께 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참으로 편안하고 가벼운 나날들입니다.
아,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 이상열 목사님 초청 부흥회에 참석하느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예전에는 울산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멀미약을 꼭 먹어야 했고, 약을 먹어도 도착하고 나면 속이 울렁거리고 피곤하여서 힘들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그냥 버스를 탔습니다. 그것도 아침을 거른 채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빈 속으로.
“주님 인도하소서! 주님을 믿사옵니다.”
그런데 과연 신기하게도 멀미를 하지도 않았고 밤늦게까지 별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멀쩡하게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울산으로 내려오는 길은 더 가뿐하였습니다. 은혜 받고 오는 길이어서.
이상열 목사님 부흥회에 갔다와서 은혜 받은 것 중에 두드러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깊이 잠재우는 영이 엄마와 저에게서 떠나간 것입니다. 엄마는 밤낮으로 잠자는 것이 일이었고 저도 대략 5~6년 전부터 머리만 땅에 닿으면 언제 잠이 드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골아 떨어지고는 했던 것입니다. 특히 성경이나 책을 읽을라치면 금방 쏟아지는 잠 때문에 30분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 잠재우는 영을 파쇄시키는 기도를 해왔는데 이번에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사실은 이 잠 때문에 교회에 등록을 하고나서도 성경이나 책들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든요.
요즘 저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죄 많은 저를 주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예수님을 잘 몰라서 더 배우고 더 알아가기를 원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늘 빨리 죽기가 소원이던 사람이 이제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남은 제 인생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보너스요, 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살아 있어도 살은 목숨이 아닌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이 오직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하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이제 예수님께 합한 자가 되어서, 말씀을 쫓아 행하는 자로서, 주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미약하지만 하나님 하시는 일에 적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세상적인 것 모두 내려놓고 주님 안에 거합니다.
아직 완전히 정결한 자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지금까지 옆에서 기도하면서 도와주신 전도사님과 여러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정결한 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립니다.
“아버지! 생을 마칠 때까지 제 안에 거하시면서 저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구원하소서! 아버지께 찬양 드리며 감사드리고 경배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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