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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팩트 체크! -“변승우 목사가 신사도운동을 한다?”(책 전문 공개)

Web Team |

2018-05-20 16:51:00 |

조회: 668

팩트 체크! -“변승우 목사가 신사도운동을 한다?”



  사랑하는교회(변승우 목사)는 사실과 다른 음해에 의해 이단시비를 겪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팩트 확인을 통해 여러 교단과 단체에 의해 이단성 없다는 판정을 얻었습니다. 기독교 성결교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2010년), 한기총 이단대책위원회(2010년), 예수교 성결교 사이비대책위원회(2013년), 장로교 통합 교단의 사면위원회와 이단대책위원회(2016년)이런 결과로 사랑하는교회를 잘못 알던 많은 분들이 오해를 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변승우 목사와 사랑하는교회가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단사냥꾼들에 의해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으로 매도를 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회 측에서 충분히 반박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는 ‘행위 심판’를 강조한 것을 밝혀서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 다음 음해의 내용은 사랑하는교회가 ‘직통계시 이단’이라는 것인데, 사랑하는교회의 주장은 사도들이 정경을 기록한 특별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순복음교단을 비롯한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인정하는 성령의 은사로 받는 계시를 주장하는 것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세계적인 조직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을 비롯해서 많은 신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 교회를 음해했던 최삼경 목사조차도 정경을 기록하는 특별계시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통한 일반적인 계시가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도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신사도운동 한다고 음해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황당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정작 신사도운동 하는 그룹(WLI, HIM)에 대해서는 교단들이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이 그룹의 책들이 전국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되고 기독교 신문에도 기사가 실리며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도 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짜 신사도운동 하는 교회들은 내버려두고 오히려 신사도운동을 반대하는 사랑하는교회를 신사도운동 하니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랑하는교회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비성경적인 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하여 신사도운동 그룹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고 있는 교회입니다. 변승우 목사는 신사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3권 이상 썼고, 그로 인해 신사도운동의 지도자들인 체 안과 홍정식 목사로부터 집요한 반대와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신사도운동을 반대하는 교회를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라고 거꾸로 매도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일입니다. 
  

 이 기막힌 사실을 변승우 목사의 책에 나오는 신사도운동을 반대한 내용들, 즉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를 통해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 변승우 목사가 2007년에 쓴 『보이지 않는 적: 귀신』에 나오는 내용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 ‘특정 지역을 지배하는 악령들’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마크 뷰벡(Mark Bubeck)은 사단을, 악령들의 위계 구조를 이끌어가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의 총사령관으로 보고 있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가장 힘 있는 존재는 ‘정사’(또는 왕)로서 막강한 세력을 지니고 상당 수준의 독립된 행동을 취한다. 그 아래 속한 ‘권세’는 정사보다 수효가 많으나, 세력이나 독립성 면에서 훨씬 뒤진다. 그 다음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은 하급 장교에 해당하며, 수많은 악령들을 거느리고 있다.” 피터 와그너 외 『영적 원수를 대적하라』 명성훈 옮김. 서울: 나단, 1993. pp. 87-88.


  이처럼 마크 뷰벡은 본문이 악령들을 높은 계급에서 낮은 계급 순으로 기록한 것으로 이해했는데, 피터 와그너 박사님의 다른 많은 책들을 읽어보면 이분 역시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이와 같은 견해를 각종 책과 설교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견해가 널리 확산되면서 어느덧 이것이 정설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p. 24, p. 32.)



  2. 변승우 목사가 2010년에 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전통적인 계시관』에 나오는 내용

  신사도운동을 벌이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WLI의 피터 와그너 박사님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의 추종자는 아닙니다. 저는 단지 ‘성경’과 ‘성령’의 추종자입니다. 즉 어느 운동에서든 성경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신사도운동을 하는 측에서도 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그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피터 와그너 박사님처럼 사도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분의 가르침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가르침 중에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체험에 근거하여 이론을 만들어내고 성경으로 약간 덧칠만 한 가르침들이 제법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어떤 체험이나 계시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완성되었고,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사도는 피터 와그너를 포함하여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pp. 70-71.)



  3. 변승우 목사가 2012년에 쓴 『터』에 나오는 내용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또 『사도와 선지자: 교회의 터』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터를 닦으셨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팽창할 수 있고 발전 가능한 역동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어 이후 수 세기 간에 걸쳐 교회를 세우시되, 사도와 선지자를 교회의 터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 『사도와 선지자: 교회의 터』 임수산 옮김. 서울: 쉐키나, 2008. p. 12.
 

  여기서 “지속적으로 팽창할 수 있고 발전 가능한 역동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세우셨다”는 말이 약간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그 표현에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사도와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이 아니라 사도와 선지자 자체를 교회의 터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1차로 사도와 선지자들이 쓴 성경을 교회의 기초로 인정하고, 2차로 그들과 그들의 사역을 교회의 기초로 생각한 것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와 선지자를 교회의 기초로 생각하고 있다면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피터 와그너 박사님의 여러 책을 읽어본 결과 말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지만 분명히 1차 의미를 간과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책의 좀 더 뒷부분에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말씀의 권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은 최종권위를 지닌다. 활기 넘치고 복음적이며 생명을 부여하는 교회들 가운데 성경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거의 없다. 기독교계에 팽배한 이러한 분위기는 성경의 영감에 대해 제기된 질문들이 금세 한 풀 꺾이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반면, 신세기를 개척하는 선구자의 역할도 필요 없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피터 와그너 『사도와 선지자: 교회의 터』 임수산 옮김. 서울: 쉐키나, 2008. pp. 21-22.
 

  이 말은 보다 확실하게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말이 왜 문제인 줄 아십니까? 아무리 선구자라 할지라도 성경과 다른 주장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성경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면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가 선구자의 역할을 필요 없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전통과 교리는 그런 악역을 왕왕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선구자들을 일으켜 세우며 교회를 전통과 교리에서 성경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문제가 있는 발언입니다. 혹 제가 이단사냥꾼들처럼 말꼬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피터 와그너 박사님의 책의 일부를 인용한 이유는, 그것을 빌미로 그분을 매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그분이 창안하여 널리 퍼트린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과 그것에 수반되는 ‘영적 도해’와 ‘소속 교회들에게 십일조를 받는 사도 네트워크’ 등 몇몇 가르침들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분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그것을 사도적인 사역의 핵심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그것이 왜 비성경적인 것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저의 책 『보이지 않는 적: 귀신』이나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모든 어둠의 권세를 다스리는 승리하는 교회』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pp. 62-65.)



  4. 변승우 목사가 2013년에 쓴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목차
  (내용이 너무 길어서 다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목차만 소개합니다.)

  2. 귀신들의 위계질서에 대한 그릇된 견해 ……………………………… 43
  (1) 예수님이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라고 명령하신 일이 없습니다.
  (2)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3) 바울이 말한 견고한 진은 신사도운동에서 말하는 도시나 나라에 있는 마귀의 진이 아닙니다.
  (4) 서신서에 나타나는 ‘전쟁’ 혹은 ‘전투’는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이 아닙니다.
  (5) 예수님과 제자들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6)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7)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 그 어느 도시에서도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p. 9)


  5. 변승우 목사가 2013년에 쓴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에 나오는 내용

  이쯤에서 저는 신사도운동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성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을까요? 왜 성경과 다른 높아진 생각과 이론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요? 왜 마귀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 원했던 그들이 도리어 자기 안에 견고한 진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 대표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사도에 대한 반쪽짜리 지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사도가 오늘날도 존재한다는 것은 받아들였으나 토대적인 사도들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즉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만약 피터 와그너 박사님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사도에 대한 두 번째 계시에 주의했더라면 성경에 착념했을 것이고 현상이나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러지 못했고 성경이 아니라 현상이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생성된 이론이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토대적인 사도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랐고, 성경에도 없는 영적 도해니 사도적인 네트워크니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이니 하는 것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큰 혼란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성령의 은사와 성령께로부터 오는 계시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사활적으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와야지 계시나 체험에서 끌어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이 중요한 원칙을 범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런 실수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성경학자가 아니라 교회성장학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성경을 깊이 연구한 성경학자가 아닙니다. 성장한 교회들을 찾아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비결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발표한 교회성장학자입니다. 즉 성경이 아니라 성장한 교회나 부흥이 일어난 도시를 찾아가 결과를 보고 연구한 분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나 도시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부흥이 그들이 전한 말씀이나 사용한 방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표적과 기사들은 단지 예수님과 복음을 확증합니다. 그리고 부흥이 일어난 것은 전한 메시지나 사역방법이 다 옳아서가 아니라 전해진 다른 바른 메시지와 함께 사용된 다른 성경적인 방법에 의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잔 폴 잭슨 목사님 역시 저와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영적 전쟁 분야에서도 성공과 승리의 열매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적인 결과는 그동안 영적 전쟁이 그 방법 면에서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으로 중보하는 성도들의 울부짖음이 점점 더 증가되고, 점점 더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를 세운 메리 베이커 에디(Mary Baker Eddy)의 예가 있습니다. 그녀의 가르침 안에도 성경으로부터 비롯된 올바른 가르침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역 가운데서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사역이나 그녀가 범한 오류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 가르침의 대부분은 영지주의 이단사설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기적적인 현상들이 그녀의 사역을 정당화시킬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전쟁에서 몇몇 표면적인 승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과거의 방법과 시도들이 모두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혹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John Paul Jackson, Needless Casualties of War (Streams Ministry International, 2010), pp. 9-10.
 

  그런데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이 점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아니라 부흥한 교회나 도시가 사용한 방법과 결과를 텍스트로 삼고 거기에서 이론을 끌어내어 조립한 후 성경으로 살짝 덧칠을 했습니다. 이것이 동기는 선하지만 피터 와그너 박사님이 범한 실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사도운동에 대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판단과 권면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적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의 건전한 지혜의 부족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우스운 일들을 하게 만든 것이고 그것들이 사람들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극단적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한쪽으로 치우쳐서 광신과 과다와 오류를 만들게 했기 때문에 이것은 해로운 것입니다. …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디도서 2:1)
  사람들은 그들이 영적인 전쟁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교리적으로 건전한 것인지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선 전쟁에 대한 계시를 받아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는 어떤 계시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어떤 계시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떠날 때, 그들은 마귀들의 영역에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따른다고 말은 합니다만 당신이 말씀을 떠나서 성령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첫 번째로 두고 성령님을 두 번째로 두십시오!” 케네스 E. 해긴 『모든 어둠의 권세를 다스리는 승리하는 교회』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07. pp. 334-335.


  신사도운동에서 가르치는 것 중 일부는 분명 비성경적인 것이며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우리나라의 조용기 목사님과 김선도 목사님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인맥이 넓은 분입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수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신사도운동에 동참하거나 혹은 비호하여 세력이 커졌고, 그 결과 성령운동이나 영성운동을 하는 교회들은 도매금으로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로 오해를 받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거짓말쟁이인 이단사냥꾼들과 일부 시기하는 목사들은 알면서도 일부러 우리 교회를 신사도운동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신사도운동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계의 굴절된 시각과 달리, 성령운동이나 영성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모두 신사도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와 영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평택대학교 김동수 박사님은 최근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모든 성령운동은 신사도운동인가? 김동수 교수(평택대학교)
  한국 복음주의권 목회자의 대표자 격인 이동원 목사는 최근 국내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2013년 3월호 사설에서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들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한마디 던진다. 자신의 신앙과 신학도 내용을 따지고 보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개혁주의적 복음주의가 다른 신앙전통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보다 열린 복음주의로, 다른 교파의 신학에 대해서 보다 포용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유독 한국의 개혁주의적 복음주의는 타 교파의 신학을 포용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의 대표적 신학교인 트리니티 신학교를 다니면서 열린 복음주의를 경험하고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최근에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을 신사도운동이라는 카테고리로 몰아넣고 비판한 정이철의 『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 한국 교회 속의 뒤틀린 성령운동』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을 읽고 나도 이동원 목사와 같은 말을 저자에게 하고 싶다. 본서의 저자는 기독교 교파 신학의 다양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매우 편협한 자신의 입장에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성령운동을 비판하고 있다. 또 성서학자가 볼 때 그의 성서해석은 아마추어 수준을 약간 벗어난 정도로, 성서 본문 본래의 정황과 저자의 신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한 교파 혹은 자신의 도그마적 해석에 빠져 있다. 본서는 성령운동이 성경이 말하는 정도를 벗어난 사례들에 대해 정당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으나, 그가 전제하고 있는 도그마는 매우 편협하며, 그의 판단은 극단적으로 단정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본서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것보다도 본서의 저자가 당연시하고 있는 그의 전제를 비판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도그마에 빠져 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1) 성경의 성격은 하나님의 계시다. (2) 사도들의 역할은 계시를 기록하는 데 있었고, 계시는 사도들로 인해 종결되었다. (3) 대부분의 기적적인 은사들(치유는 예외?)은 사도들의 계시의 방편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도들의 사라짐과 함께 그쳤다. (4) 그래서 이러한 은사들(사도, 예언자, 방언, 예언 등)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하는 것은 사도들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신사도운동이다. (5) 한국에서 많은 성령운동이 위와 같은 은사들을 인정하기에 그것들은 신사도운동일 수밖에 없다.
  나는 다른 책들(『신약이 말하는 방언』,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에서 이미 바울이 말하는 방언과 예언과 방언통역이 계시적 은사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른 문제에 집중해서 위 견해를 비판하려고 한다.
 우선,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신사도운동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신사도운동은 피터 와그너가 그의 책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서울: 쉐키나, 2006)에서 제기한 대로 2000년 이후를 ‘제2의 사도시대’로 규정한 것에 근거한다. 아마도 정이철이 신사도운동이라고 몰아붙인 대부분의 인물이나 단체는 지금이 ‘제2의 사도시대’라고 본 와그너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사도운동이라는 말을 너무 확대해서 해석하고 있다.
  나는 성서에서 옛 언약시대(구약시대)와 새 언약시대(신약시대)를 명확히 구분했다고 본다(렘 31:33). 그리고 신약시대는 예수시대와 교회시대로 구분된다. 요한은 그 기점을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때라고 본다(요 7:39). 사실 이것들 외에 신약성경은 어떤 의미 있는 시대 구분도 하지 않는다. 사도시대와 그 이후 시대의 구분도 인위적일 뿐 성서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시대를 교회시대에서 따로 떼어놓은 정이철이나 이 시대를 ‘제2의 사도시대’라고 보는 와그너의 구분은 모두 인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회사적으로 이런 구분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이 이것을 구분하여 그에 따른 성령의 역사가 다르게 일어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이철의 문제는 그의 비판이 초자연적 은사중지론의 입장에서 은사가 지금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가 여러 사람들을 신사도운동의 카테고리 안에 넣어 비판한 것은 결국 은사가 지금 지속된다고 믿고 그러한 신앙을 전개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는 방언을 주장하는 김우현, 치유를 주장하는 손기철, 예언을 주장하는 김하중을 비판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 이들 각각이 이러한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고 그러한 신앙 행동을 한다는 데 있다. 내가 볼 때 그가 비판한 많은 내용은 그가 오순절적 신앙 행습에 익숙하지 않고, 그러한 신앙 형태를 부정하는 것에서 온 것이다. 그는 치유는 인정하지만, 방언과 예언이 현재에 지속된다고 믿지 않는다. 이러한 은사들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서 저자의 문제는 그는 하나의 정통 신앙이 있고, 그것으로 다른 신앙 형태를 다 재단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웨슬레는 인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외에 알미니안적 신앙 전통에 대해서는 그는 매우 교조적으로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서 정통은 오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자들로 보이며, 오순절 운동과 그것을 잇는 20세기 이후의 성령운동은 모두 비정통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정통은 지금은 성경이 완성된 시대이기 때문에 성령으로부터 조명을 받아 성경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것만이다. 신약성경이 우리의 삶의 모델이며,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약속한 성령의 역사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대로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은 비정통인 셈이다. 사도행전을 우리 신앙생활의 모델로 보고 사도행전을 읽는 오순절주의는 그에게 당연히 비정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일대학교 신학부 조직신학 교수인 미로슬라브 볼프(M. Volf)는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저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2)라는 책에서 성경의 목소리의 다양성과 통일성은 물론, 본문의 다의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성이 있고, 그 말씀의 해석 자체에도 어느 정도 다의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본문에 대해서 어떤 해석도 가능한 것은 아니다. 본문은 기호화된 의미이기 때문에 개연성 있는 해석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기독교인 간에 이런 정도의 합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신교 정통 안에는 개혁주의적 입장(장로교, 침례교 등)과 알미니안적 입장(감리교, 성결교, 오순절파) 등이 있고, 각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그 역사적 기원이나 내용으로 볼 때 모두 의미 있는 해석 전통이다.’
  만약, 위와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실제로 교회 사역에서 활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그 자체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그것을 성경이 말한 대로 하고 있는지 우리는 늘 감시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구 소련 출신 불신자 우주비행사와 신자였던 미국 우주비행사가 우주를 여행하고 와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다른 말을 했던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지적 체험과 한 교파 전통의 체험은 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또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성령의 은사를 보면 한국에서의 성령운동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3348
 

  … 저는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신사도운동을 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2011년 “사랑하는교회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 글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대로 사도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교회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증거로 저의 최신간 『1세기의 사도와 오늘날의 사도』 제3장 ‘사도의 직무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신사도운동’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여러분께 인용해드리겠습니다.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분들 중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일하고 있는 분이 피터 와그너 박사님입니다. 이분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맥과 조직을 가지고 큰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WLI를 통해 하시는 일을 흔히 ‘신사도운동’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역시 사도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단사냥꾼들은 우리 교회를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로 분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다 신사도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피터 와그너 박사님보다도 먼저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믿음의 말씀운동’을 하는 분이지 신사도운동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도에 대하여 피터 와그너 박사님과 많은 부분 상반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외에도 빌리 그래함, 오랄 로버츠, 로렌 커닝햄,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많은 지도자들이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분들 역시 신사도운동을 하는 분들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저를 가리켜 ‘신사도운동의 선두주자’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증거로, 피터 와그너 박사님이 신사도운동에 대해 정리한 대표적인 책이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라는 책인데, 저는 그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몇 가지 점에 있어서는 매우 위험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에 저는 우리 교회 주보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명시했습니다.

  ‘사랑하는교회’는?
  하나, ‘말씀운동’을 하는 교회입니다.
  즉,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교리대로가 아니라 ‘성경의 문맥’(행 17:11)과 ‘성령의 조명’(요일 2:27)에 의지하여 성경대로만 설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교회입니다.
  둘,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입니다.
  즉, 교회는 ‘예수님의 몸’(엡 1:23)으로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해야 하므로,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존하여 사역하신 것처럼(행 10:38) 성도들 역시 성령충만을 받고 자기의 은사를 발전시켜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 일도 할 수 있도록 돕는 교회입니다(요 14:12).
  셋, ‘신부운동’을 하는 교회입니다.
  즉, 단순히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요 5:39)과 ‘성령’(요 15:26)이 증거하는 것이 예수님이므로, ‘예수님에 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요 17:3, 빌 3:8)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교제하고 본받고 동행하도록 오직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교회입니다(요 3:25-30).’” http://cafe.daum.net/Bigchurch/3xNV/24 
 

  지금까지 제가 쓴 60여 권의 책 중에 우리 교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터』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꼭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교회가 결코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교회는 절대로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짓 소문을 믿고 우리 교회를 오해하는 분들이 한 분도 없길 바랍니다. (pp. 120-133.)



  6. 변승우 목사가 2013년에 쓴 『자의식 대수술!』에 나오는 내용

  ‘3. 주장하려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에 속한 항목 중

  (1) 이 주제를 다룰 때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신사도운동에서는 사도 한 개인에게 집중된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합니다. 이것은 목회자들을 교만하게 만들고, 당연한 듯이 늘 권위 권위 하면서 성도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심지어 다른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도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려고 듭니다. 이것은 주제넘은 것이며 바른 것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신사도운동과 가까운 빌 해몬 박사나 신사도운동과 무관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사도에 대해서 가르칠 때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사도가 꼭 지도자는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각 교회 안에서 다스리는 자는 사도가 아니라 성경에 “다스리는 자”(롬 12:8, 고전 12:28)로 표현된 담임목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라 할지라도 다른 교회에 강사로 가면 담임목사의 권위 아래 순복해야 하며,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이 가르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p. 88.)



  7. 변승우 목사가 2016년에 쓴 『종말론 바로 알기!』에 나오는 내용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은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이 아닙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세윤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영적 전쟁입니까? 믿음을 지키고 사랑을 행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소망을 견지하는 이런 것이 참된 영적 전쟁입니다. 믿음을 견지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소망을 유지하는 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진리를 선포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평화 도모하기를 촉구하는 속격으로 표현되어 있는 가치들이 중요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견지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면서, 정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선포하면서, 열심히 전도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신중하겠습니까? 그게 사실은 전쟁과 같이 신중한 것입니다. 바울이 영적 무장의 그림들을 사용하는 것은 영적 전쟁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의도를 무시한 채 그냥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신학을 하다 보니 우리 기독교 신앙이 날로 미신화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김세윤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4. pp. 212-213.
 

  영적 전쟁에 관한 신사도운동의 가르침은 오류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은 고함지르고 땅 밟는 식의 주술적인 것이 아닙니다. 본문 8절이 보여주듯이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가지고 살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살고,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이 보여주듯이,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진실하게 살고,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복음을 전파하며 살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고 연구하여 타협하지 않고 나누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입니다. 이 위에 모든 기도와 간구, 즉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입니다. 전략적인 수준의 영적 전쟁이 아니라 이것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이 일에 집중하고 힘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pp. 48-50.)



  8. 변승우 목사가 2016년에 쓴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나오는 내용

  의도는 선하지만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은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트랜스포메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도시나 나라의 부흥을 넘어 일곱 개의 산으로 표현된 사회변혁까지 들먹인다. 피터 와그너가 제시한 이 비전을 믿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동참하여 전략적 수준의 영적전쟁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결과는 트랜스포메이션은 커녕 부흥이 일어난 곳조차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이 시들해지고 더 이상 그들을 따르지 않는다. (pp. 105-106.)



  9. 변승우 목사가 2016년에 쓴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진실은 다르다!』에 나오는 내용

  4) 합신
  합신은 제가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과 신사도운동을 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저는 합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신사도운동이 이단이라면 왜 WLI와 HIM의 대표자이며 드러내놓고 신사도운동을 하고 있는 홍정식 목사는 내버려둡니까? 형인 합신의 홍정길 목사님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유전무죄요 무전유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저는 신사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3권 이상 썼고, 체 안과 홍정식 목사로부터 집요한 반대와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참고로, 합신 이단사냥꾼 박형택은 저를 공격하면서 “바나바는 사도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성경에 무지한 자입니다. 또 조직신학에서 상식에 속하는 ‘칭의, 성화, 영화’ 즉 ‘구원의 서정’을 이단사설로 몰아붙이는 무지한 자입니다. 과연 이런 자의 판단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p. 30.)



  10. 변승우 목사가 2017년에 쓴 『땅에 떨어지는 예언들!』에 나오는 내용



  (1) 예언의 은사만 가진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가 아니다!

  신사도운동이나 영성운동에서는 일터사도나 일터선지자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그릇된 주장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오중사역자는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장로 즉 목회자들 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중사역자는 교회를 위해 교회 안에 세운 지도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목회자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도 이 사실에 동의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장로’나 ‘감독’ 즉 목회자의 자격에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딛 1:9)와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 3:2, 딤후 2:24)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참된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참된 교사는 단순히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딛 1:9)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p. 40.)

  케네스 해긴을 비롯하여 빌리 그래함, 오랄 로버츠, 로렌 커닝햄,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많은 지도자들이 오늘날도 1세기 사도와 동일한 사도는 아닐지라도 다른 종류의 사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의 책에서 증명한 바가 있습니다. 변승우 목사 역시 통합교단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오늘날 1세기 사도와는 다른 종류의 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신학적 근거를 통해 답변했습니다. 이를 통합 측의 사면위와 이대위에서 검토한 결과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변승우 목사가 2017년에 쓴 『사랑하는교회(舊 큰믿음교회) 이단시비 종결되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변승우 목사가 자신을 사도라고 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치 오늘날도 목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목사들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기를 사도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성운동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만약 거기 참여한 목사가 3,000명이면 그중에 족히 1,500~2,000명은 자기를 사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사도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목사들이 통합, 합동, 백석, 기성, 예성, 감리교 등 여러 교단들에 포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 없이 지금도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런 목사들은 문제가 되지 않고 변승우 목사만 자신을 사도라고 하기 때문에 이단이다? 이것은 형평성도 없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이 주제에 대한 무지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변승우 목사는 초기에 영성운동을 할 때에는 수많은 영성운동의 세계적인 종들이 그를 사도라고 예언해주었기 때문에 본인이 그런 줄 알았지만 벌써 오래전부터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해보고 자신은 사도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이는 성도들 앞에서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설교한 바가 있으며 그의 책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쓰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먼저 변승우 목사가 2015년에 쓴 책 『하나님의 선물』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많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목사님들이 저에게 사도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을 사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교회를 잘 섬기는 직분과 사역 은사』라는 책에 사도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사도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들은 말씀의 선포자이거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일 것입니다.
  2) 뚜렷이 드러나는 영적인 은사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3) 깊은 영적 체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4) 교회를 세우는 권위와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5) 영적 리더십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케네스 E. 해긴 『교회를 잘 섬기는 직분과 사역 은사』 정승혜 옮김. 서울: 베다니, 2012. p. 83.


  그런데 저는 이 중 첫째와 넷째와 다섯째 조건만 갖추었습니다(그것도 주의 은혜로). 둘째와 셋째 조건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변승우 『하나님의 선물』 서울: 거룩한진주, 2015. pp. 83-84.


  또한 변승우 목사는 통합 특별사면위에 제출한 답변서에서도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자신을 사도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셨는데, 저는 자신을 사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설교 중 이 말을 공공연하게 자주 해왔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제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많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목사님들이 저에게 사도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을 사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교회를 잘 섬기는 직분과 사역 은사』라는 책에 사도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사도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들은 말씀의 선포자이거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일 것입니다.
  2) 뚜렷이 드러나는 영적인 은사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3) 깊은 영적 체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4) 교회를 세우는 권위와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5) 영적 리더십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케네스 E. 해긴『교회를 잘 섬기는 직분과 사역 은사』정승혜 옮김. 서울: 베다니, 2012. p. 83.


  그런데 저는 이 중 첫째와 넷째와 다섯째 조건만 갖추었습니다(그것도 주의 은혜로). 둘째와 셋째 조건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변승우 『하나님의 선물』 서울: 거룩한진주, 2015. pp. 83-84.


  성경에서 바울은 사도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직접 본 일이 없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는 그런 능력 있는 목사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이 사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제가 사도든 아니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너무 작고 초라하고 부족한 자이기에 그저 참 신자와 참된 목사가 되길 원할 뿐입니다. 변승우 『사랑하는교회(舊 큰믿음교회) 이단시비 종결되다!』 서울: 거룩한진주, 2017. pp. 66-67.


  따라서, 변승우 목사가 신사도운동을 한다, 또는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한다는 말로 이단으로 매도하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고 악한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교회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은 주관적인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교회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처음으로 사랑하는교회를 이단으로 매도했던 통합 교단을 통해 확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합 교단은 변승우 목사를 서면으로 그리고 직접 불러서 교단 사면위원회와 이단대책 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아무런 이단성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교회가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율법주의라는 주장에 대해, 또 직통계시 이단이라는 주장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신사도운동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 중의 하나가 통합 사면위 위원장 이정환 목사가 양심선언 차원에서 쓴 『장자교단, 길을 잃다 예장(통합)의 사면 파동』이라는 책입니다. 이정환 목사는 그 책에 통합 교단 사면위가 두 명의 교수에게 변승우 목사에 대해 연구를 의뢰하여 받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통합사면위 변승우 목사에 대한 연구보고

 

1) A교수의 연구보고

1. 변승우 목사는 구원론에서 행위구원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회개의 열매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므로 행위구원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 믿는 사람도 지옥 갈 수 있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변승우 목사는 자신은 웨슬리안 아르미니안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구원관은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등의 교파도 동일하다. 장로교의 견인교리에는 분명 부적합하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파 간 다양한 구원관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사료된다.

 

2 . 계시론에서 변승우 목사는 성령의 직접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고 또 그런 주장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를 직통계시자로 매

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또 은사(기적)계속론을주장한다고 해서 성경보다 경험을 중시한다고 매도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변승우 목사는 성경 계시의 완전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성경보다 더 권위를 가지는 것(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3. 변승우 목사는 성령의 은사를 통한 말씀의 증언을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은사주의 목회를 이단시하는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으로 이 주장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은사목회를 한다고 해서 변승우 목사를 신비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비판이라 사료된다.

 

4. 변승우 목사의 경우는 신학적인 문제 이전에 인간관계의 미숙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아마도 변승우 목사는 그동안의 이단시비 때문에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변승우 목사가 한국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부패했다고 지나치게 비난한 것도 인간관계의 미숙과 자기 정당화의 젊은 패기에서 온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 목사들의 충고로 절제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5. 결론적으로 변승우 목사에게서 이단성을 찾기는 어려워보인다. 다만 지나치게 행위(열매)를 강조하는 설교와 은사목회에 치중해온 그의 목회 형태, 그리고 기성 교회와 교계 지도자들에 대한 지나친 비판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적절한 사과와 지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별사면위원회가 큰믿음교회 15천 교인들을 위해서 적절한 조치를 통해 사면할 수 있다면 변승우 목사 자신뿐 아니라 큰믿음교회와 나아가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유익한 일이 되리라 사료된다.

                                                                                  2016. 5. 28.

 

2) B교수의 연구보고

 

1. 변승우 목사는 구원론에서 행위구원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 회개의 열매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견해를 주장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2. “예수 믿는 사람도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은 서구기독교에서도 “Once saved, always saved”란 문제의 찬반양론으로 양쪽이 모두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논쟁을 하고 있다. “영원한 안전(Eternal Security)” 혹은 믿는 자의 조건적 안전(Conditional Security)”이란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는 고전적 칼빈주의, 온건한 칼빈주의, 개혁적 아르미니안주의, 웨슬리안 아르미니안주의 등 4가지 설이 있다. 이것은 칼빈의 TULIP라는 5개항 중에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는 장로교와는 다르게 자신들을 웨슬리안 아르미니안(Wesleyan Arminian)”이라고 주장한다. 변승우 목사도 자신은 웨슬리안 아르미니안이라고 진솔하게 말하고 있다. 이 문제로 변승우 목사를 이단시한다면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전부를 이단시해야 한다. 하나의 학설을 가지고 장로교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이단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3 . 계시론에서 변승우 목사는 성령의 직접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했으며, 신사도운동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이단으로 매도할 수는 없으며, 은사(기적)계속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성경보다 경험을 중시한다고 매도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변승우 목사는 성경보다 더 권위를 가지는 것(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4 . 변승우 목사는 성령의 은사를 통한 말씀의 증언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마가복음 16: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은사를 인정하고 중요시한다고 해서 변승우 목사를 신비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비판이라 사료된다.

 

5. 변승우 목사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사도적 교회임을 인정하고, 목회자의 사도성, 즉 사도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들, 사도와 같은 역할은 인정하지만,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한 사실은 없다고 말한다.

 

6. 변승우 목사의 경우는 신학적인 문제 이전에 인간관계의 미숙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아마도 변승우 목사는 그동안의 이단시비 때문에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변승우 목사가 한국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부패했다고 지나치게 비난한 것도 인간관계의 미숙과 자기 정당화의 젊은 패기에서 온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 목사들의 충고로 절제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7. 결론적으로 본 연구 교수는 변승우 목사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숙독한 결과 이단성이 없다고 판단된다. 변승우 목사는 젊은 목회자로서 많은 저서를 탐독하고, 많은 저서를 출판했으며, 일만여 명 성도들을 가진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이기에, 예장 통합 특별사면위원회에서 변승우 목사의 이단성의 굴레를 벗겨줌으로써, 변승우 목사는 개인적으로 보다 더 훌륭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고, 장차 한국 기독교계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 목회자가 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한 선한 일이라 사료된다.

                                                                                          2016. 5. 29.



  통합 사면위에서 사면을 받아 이단해제가 되려면 1. 사면위를 통과하고 2. 이대위를 통과하고 3. 임원회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청한 11개 단체 중 사면위, 이대위, 임원회까지 모두 통과가 된 것은 레마선교회와 사랑하는교회 뿐입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전에 한기총으로부터 8개월간 조사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기총 이대위 소위원회, 대위원회, 임원회를 통과하면 끝이고, 우리 교회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한기총이 이단이 아니라는 증명서까지 떼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한기총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최삼경 일당이 정치목사들을 움직여서 법적으로 끝난 것을 불법으로 뒤집었습니다. 이것이 조금도 꾸밈없는 진실입니다.
  이제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당신은 악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속아 피투성이가 된 억울한 형제 교회에게 다시 돌을 던질 것입니까? 아니면 통합 사면위 위원장님처럼 “사랑하는교회는 이단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라고 용기 있게 외칠 것입니까?

 


  P.S 진실이 널리 퍼지도록 할 수 있는 한 많은 곳에 올리거나 많은 분들에게 보내주세요!!!

 

  베스트 댓글 하늘빛 만지심

00:27 new

  
아멘!!!!! 제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그간 사랑하는교회는 불의한 자들의 이단 시비에 맞서 빼도박도 못하게 성경적으로 변증해왔고, 네 권의 변증서들이 나오는 동안 그들은 지금껏 그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숨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진실 앞에서 그들의 거짓이 훤히 드러났고 자신들의 벌거벗은 실체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없겠지만, 분명 이 책을 통해 눈이 떠질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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