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속한사람들 |
2013-12-29 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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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랑을 가지라‘
저는 이런 모든 말씀들이 저를 위한 말씀들이기 때문에 늘 감사합니다.
항상 나를 일깨우시고 나를 굳건히 세우시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홀로 있을 때,
‘지금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해서 많은 치유들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과연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 순수한 사랑이 더 깊어지고 커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바르게 가고 있고 바르게 사역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내가 행여 라도 여기에서 멀어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저는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늘 저를 살피고 깊이 탄식 합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은혜입니다. 저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자나 깨나 자신도 모르게 이 초점을 가지고 스스로를 살피고 기도하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은혜가 동일하게 부어져 여러분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항상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저희 담임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사역자가 되지 마십시오. 단지 사역자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연인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십시오.’
우리의 목적이 이렇게 되기 바랍니다.
주님을 향해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종교 행위를 행하고 있지 않은지 여러분 자신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에 하나 진실하고 깨끗한 사랑의 동기에서 벗어나게 되면 냉랭한 마음으로 습관적으로 사역하고 선교하고 영혼들을 돌보고 교사하고 셀장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되었으니까 그 요일이 되었으니까 내가 부득 불 해야 하기에 뚝딱 해 치우고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계적으로 하루하루가 돌아가고 있지 않은지 우리를 돌아보고 만약 그렇다면 멈추시고 지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로, 우리의 자세가 다시 바른 자세로 세워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말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행여 우리 중에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그 열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벗어나 있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라고 지금 이렇게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지 여기에 모든 관심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찾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다. 초록은 제 빛이 좋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이것처럼 사랑은 사랑을 기뻐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원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너무 신비하고 감사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사랑으로만 우리와 관계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 안에만 머물도록 그 사랑 안에만 거하도록 그 사랑이 우리의 전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한 우리가 그를 사랑하도록 우리에게 그 사랑을 부으시고 그래서 사랑,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되게 하십니다.
어제도 제가 말씀드렸죠.
악이 없고 거짓이 없고 거룩함에 흠이 없는 어둠이 전혀 없는 슬픔이 전혀 없는 고통이 전혀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이 우리 존재를 다 채우도록 하시고 그 사랑의 영역 안에서만 공간 안에서만 있게 하시는 그 사랑! 사랑이 우리의 호흡, 사랑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우리의 음료가 되고 행복이 되게 하는 이 영원한 사랑!
이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이것이 우리 존재의 비밀! 기독교에 대한 비밀입니다.
기독교가 얼마나 위대한 종교인지 기독교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아름답고 고귀한지, 여러분이 그 가치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치를 아셔야 됩니다. 구원의 가치 영생의 가치를 아셔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존재의 가치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을 목적으로 지은 바 된 그렇게 존귀한 자들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아름답고 어여쁘고 사랑스러운지요.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찾으신다. 우리에게서 사랑을 갈망하신다. 주님이 나를 갈망하시고 나를 목말라 하신다. 주님이 나를 사모하시고 그리워하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 하나님의 마음전부가 어디에 무엇에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갈망 하신다는 것 자체, 하나님이 우리를 사모 하신다는 것 자체, 우리를 원하신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전부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이 온통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밝혀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마음에 없는 것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그리워하거나 찾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목마름 배고픔 그리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를 향한 사랑을 의미입니다. 내안에 있는 그에 대한 사랑의 실체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사랑을 찾고 있다는 것 자신을 향한 사랑을 찾고 있다는 것 그것은 그가 우리를 사랑 하신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왜 우리 안에서 사랑을 찾고 계셔요?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원하시고 사모하시고 그리워하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나는 너를 찾고 있다. 나는 너를 원하고 있다. 나는 너를 갈망하고 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아 네가 아느냐?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믿음의 행위를 하고 있고 나를 위하여 열심히 수고를 하고 있고 열심히 참고 견디고 거짓된 것과 싸우고 있지만 그것으로 나를 만족 시킬 수 없다. 나는 너희와 사랑으로 교제하기를 원한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는 바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모한다.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 나는 너를 갈망한다. 내게로 다시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속히 돌아오라 어서 속히 내게로 돌아오라. 너희는 내게로 돌아와 나와 하나가 되어 내 사랑을 먹고 내 사랑을 마시며 행복한 존재가 되라.’ 이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표면을 보면, 말씀의 표면을 보면 지식이 되고 정보만 얻게 되어 종교화 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을, 인격과 성품을 보게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계명이 다 나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나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메시지로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말씀에 걸림이 없고 순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고 싶어서 그것을 갈망하고 자발적으로 기뻐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 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저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그 다음 모든 것들이 저절로 쉽게 자발적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그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나를 향한 사랑의 동기로 나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기에 그 모든 말씀과 교훈과 책망을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훈들을 부담스러워 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게 됩니다. 또한 신앙이 무겁고 힘든 것이 되지 않고 기쁘고 즐겁고 너무나 행복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이 없습니다.
여러분 한번 자신을 돌아보세요.
내안에 기쁨이 있는가? 내안에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가? 말씀에 대한 기쁨이 있는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인데 하나님의 모든 계명인데 말씀으로 인한 기쁨이 있는가? 하나님의 일에 대한 기쁨이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사역에 대한 기쁨이 있는가?
만약 버거워 하고 힘들어 하고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반드시 그 문제를 찾아 해결 해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상대를 안다면, 상대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진심을 알게 되면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어떻게 내 앞에서 행동을 하든지 상대에 대해서 오해가 없습니다.
잘못된 어그러진 소원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믿고 신뢰 하는 사랑의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전혀 불편함이 없고 거리가 없는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그와 나는 따로가 아닌 하나가 되어 아주 편안한 그 관계 안에 불편함이 전혀 없는 어떤 말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전혀 문제가 없는 그런 사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사이 좋은 사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되어야 정상입니다.
말씀에 대해서나 사역이든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불편함이나 장애나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를 그 높이와 깊이를 몰라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귐이요 교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먼저 해결 되어야 하는 절실한 문제입니다.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도요한은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알았습니다. 바울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지 않았습니다.
주를 위해서 희생하고 핍박 받는 일이, 세상을 다 내어 버리는 일이, 생명을 아낌없이 드리고 순교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내려놓는 일이 그것이 시험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들은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들은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사도요한이 알았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차원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차원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과 3년 6개월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 보았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어떤 고난 어떤 고초 어떤 희생 어떤 죽음을 당하셨는지 모두 보았습니다. 채찍에 맞아서 살점 하나하나가 다 떨어져 나가고 가시관에 찔리고 양손 양발에 못 박혀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와 물을 다 쏟으신 것을 그가 보았습니다. 극악한 고통과 형벌에서 절대로 돌아서지 않으신 그 사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것, 영혼들을 포기하지 않으신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자신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그 현장을 끝까지 떠나지 않고 요한은 두 눈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마음과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부활 하신 후에도 자신들을 찾아 오셔서 친히 섬겨 주시고 자신들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미쁘신 사랑인지 참된 사랑인지 변함없는 변개치 아니하시는 영원한 사랑임을 보았기에 그는 안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크기가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크기입니다. 절대로 착각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나 본적이 없는, 한 번도 교제해 본적이 없는 인격적으로 전혀 모르는 어떤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 마음을 아는 만큼 그 사랑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분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자주 많은 시간을 교제 했느냐?
말씀과 기도로 성령 안에서 얼마나 많이 깊이 교제 했느냐?
어떤 차원으로 교제했느냐? 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분량과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제목 첫 번째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엡1:16-17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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