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것이 믿음인거죠?

어떤분들은 믿지 않은분을 전도해서 같이 교회가서 그래도 잘 사신다고 하시고요

어떤분은 교회에서 만나셨지만 재정이나 성품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배우자 선택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영상도 좋고요 글도 좋구요 제가 붙잡을수 있는거라면 좋겠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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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성도님. 배우자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일단, 먼저 언급하신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밑에 글을 읽어보니, 성도님께서 사용하신 믿음이라는 단어는 믿음이 적냐 많냐하는 의미가 아닌것 같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냐 혹은 불신자냐를 의미할 때 그 믿음인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라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믿음은 얘기할 가치도 없을만큼 중요한것입니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얘기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축구 경기를 할때 준비물 목록에 축구공을 적어 넣지 않습니다. 축구할때 축구공이 필요한것이 너무나 당연하니까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나 중요해서 말할 가치조차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거듭난 신자와의 결혼인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결혼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 여기서 멍에라는 말은 바울이 구약성경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이 말은 신명기 22장 10절에 나오는 것인데, 소와 나귀를 동시에 나란히 멍에를 메워 밭을 가는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서로 다른 동물을 교배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살펴 볼 때 분명히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우리는 불신자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 우리가 접하는 세상속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도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결혼은 다릅니다. 최근에 청년수양회때 한 청년이 담임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친구가 자신을 계속해서 속이고 상처주고 악하게 구는데 예수님께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까? 담임목사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는 것과 교제는 다릅니다. 교제는 영적인 전이를 가져옵니다. 사람은 친한 사람과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관계는 단호하게 끊으십시오. 친구 관계가 이렇다면, 결혼은 얼마나 더 중요합니까? 결혼은 최고의 밀접한 결합속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이루는 가정은 교회보다도 앞서는 공동체입니다. 가정이 최초의 공동체이고 가장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은 이 가정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립니다. 매일 매일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긴장의 연속이고, 핍박이고 끔찍한 하루로 변화시킵니다. 저는 불신자와 결혼을 결심하는 형제 자매님들에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성도님은 주일 예배를 매번 눈치보며 겨우겨우 다니기 원하십니까?

 "성도님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을 할 때마다 배우자와 싸우고 다투고 속상한 마음으로 겨우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성도님은 하나님앞에 어떤 감동을 받아서 실행하고자 할때, 당신의 배우자가 그 일에 대적이 되어 매번 사사건건 방해하길 원하십니까?"

 그 무엇보다도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도님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거나 혹은 흐릿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최소한 그런 위험속에 빠져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어떤 분이 불신자와 결혼하신다고 할 때 그 불신자 분의 성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불신자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얼마나 집안이 좋은지 얼마나 학벌이 좋은지, 얼마나 인품이 뛰어난지, 얼마나 인물이 좋은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은 우리 삶을 파멸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간증이 나와있습니다. 한 신실한 자매님이 불신자와 결혼하길 원했습니다. 모두가 뜯어말렸지만, 그 자매님은 하나님께서 결혼하라고 하셨다면서 결혼을 강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은 주일 예배도 못나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하면 자매님을 두둘겨 패곤 했거든요. 그 자매님이 울면서 해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해긴 목사님, 왜 하나님께서 저를 이런 곤경에 빠뜨리신걸까요?" 그러자 해긴목사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자매님이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말씀이 분명히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냥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어떤 분은 믿지 않는 분을 전도해서 잘 살고 있다구요? 저는 그런 가정을 백에 하나도 못보았습니다. 물론 교회는 억지로 나올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전도하는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피가 마르는 고통이었습니다. 불신자와 전도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십년 째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수많은 가족, 친지,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너무나 완악하게 반응합니다. 그 때 저는 너무나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결혼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불신자와 데이트 하는 것조차 말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영적이고,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감정에 휘둘립니다. 남녀관계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이미 깊이 사랑에 빠져버리면 늪과 같아서 헤어나올수가 없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고 하는 표현이 있는것처럼 제대로 된 판단이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타협하게 됩니다. '그래, 이 사람을 전도하면 되.' 혹은 '그래, 적어도 교회에는 같이 출석하기로 약속했으니까'하면서 말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위험을 차단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우리는 반드시 이 전제를 깔아야합니다. 이와 같은 전제하에서 최근에 배운 것을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것은 계시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룻과 보아스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정한 짝이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짝지어 주셨다는 구절에 보면 더욱더 그렇게 보여집니다. 물론, 현명한 아내는 여호와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어느정도 그런것은 사실입니다. 어느정도라는 표현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먼저 룻과 보아스는 특별한 상황과 환경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어떤 특별한 케이스를 일반론으로 적용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께서 나귀를 구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매우 특수한 경우이고 일반론은 아닙니다. 그리고 창세기에 나온 구절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부름받았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배우자가 있다는 구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 대해서 계시받아서 배우자로 만난다는 건 무척 위험합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 기도만 해보고 결코 알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담임목사님의 "실전 영분별"에 무척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분별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보고 응답이 오는대로 판단하는것으로 생각합니다. ... 계시적인 은사가 열렸다고 잠깐 기도해 본 후에 하나님처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영분별인가? 인간은 혼을 가지고 몸안에 사는 영이다. 사람은 영이다. 그러므로 영분별은 사람 분별이다." 그러므로 영분별은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보아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기도해보고 그 사람이 내 짝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만나봐야 합니다. 그것도 수년을 만나보고 실제로 교제해보고 판단해봐야 합니다. 결혼은 영,혼,육의 결합입니다. 단순히 영적인 결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해서 실제로 알고나서 결혼해야 합니다. 

 

그 배우자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면, 그 이후에는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그 때서야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이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예전에 어떤 자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셔도 저는 순종할것입니다." 물론 그 마음은 무척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님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사역을 맡기실수도 있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실것이고, 내가 있기를 원치 않는 장소로 보내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아닙니다. 결혼은 무조건적인 순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나의 의지가 반드시 개입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만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는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도님은 스스로를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도님이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 중 한명이 아닌것만큼이나 그 계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님은 고멜과 결혼해야만 하는 호세아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에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그 둘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또한, 그 때 당시의 특별한 시대적 배경, 공간적 환경, 아브라함의 언약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 등 특별한 점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결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 모 선교단체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누구와 누가 결혼해야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짝지어주셨다 하고 운명론적으로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것입니다.  

 

글은 짧게 써야 하는데 길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의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반드시 이 두 가지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길어졌습니다. 아무쪼록 배우자 선택의 기준을 가지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