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선하심으로 역사하신 주님을 찬양드리고 감사드립니다!!

1월 28일 수요일에 사랑하는 아빠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주님의 세밀하신 사랑 안에서 행하여 졌기에 이렇게 간증을 올립니다.

20113월쯤 아빠께서 폐암2기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 후 회복되셨으나 3년 뒤 목 임파선으로 전이가 되어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며 고된 삶을 사시던중

올해 1월 27일 화요일에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지셨습니다. 심폐소생술의 골든타임은 4분이라고 하며 이때 성공하면 75% 소생 가능성이 있으나 그 시간 이후로는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40여 분 씩이나 심정지 상태에 있었지만 심폐소생술로 인해 극적으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70평생 교회한번 나가지 않으셨던 분이기에 저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 동안 전도를 하지 못한 죄책감과 지금 이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식은 없었고 인공호흡기로만 연명하고 계셨기에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셀장님께 아빠의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목요일에 시간이 되신다고 하셔서 오전 면회시간에 맞쳐 심방을 오시기로 되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아빠의 귀에 대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붙들라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그렇게 오전 면회가 지나고 2시간후 병원에서는 아빠 상태가 많이 나빠져서 다시한번 심정지가 오면 힘들 것 같다는 말과 2.3일 정도의 시간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더더욱 초조해지고 불안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1230분쯤 유아실 김집사님으로부터 오늘(수요일) 아버님께 기도하러 가도 괜찮겠냐는 문자가 왔고 새벽1시쯤 김집사님의 셀장님과 다른 셀장님께서 함께 오신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언니들과 남동생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혹시 예배드리는 것을 반대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걱정과 반대로  언니와 남동생에게 고맙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수요일 오전1030분쯤 김집사님과 두 분의 셀장님을 만나 함께 병원으로 가는 중에 왠지 모를 기쁨이 있었습니다.

면회시간이 되어 우리는 중환자실에 계신 아빠께로 다가가 예배를 드리는중 기쁨이 넘치고 감격의 눈물이 났습니다.

김집사님과 신랑에게 주님은 아빠의 영혼구원과 천국에 가셨다는 확증을 주셨습니다. 남편에게는 전서방 여기가 좋네하시며 남편을 어루만져 주셨고, 김집사님께는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허락하신 예배를 은혜속에 드린 후 지금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셨던 엄마께서도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마음속으로 모셔 드렸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고 난 후 힘들어 하시는 엄마를 뒤로한채 30-40분 뒤 집에 도착했을 무렵 아빠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정말 믿을수도 없고 믿기도 싫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가 쓰러지시기 3일전인 토요일에 5남매와 손자들 모두가 다 모여 모처럼 아빠와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둘째 형부만 일이 있어 참석을 못했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는날 오전 면회때 아빠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가족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쓰러지시고 돌아가시기전 그 중간 시간에 마음의 정리를 할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아빠가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다니셨었지만 쓰러지신날 너무 위급한 상황이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뉴고려병원으로 가셨는데 아빠 주치의가 그 병원에 오신지 몇일 안된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 상태를 어찌나 꼼꼼히 체크하고 더 이상의 심폐소생술이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내려주실 때도 의사로써가 아닌 정말 가족과 같은 심정으로 우리들에게 말해주셨습니다.

그때 당시 우리들은 전날 아빠가 정기검진도 잘 받고 오셨고 이제 살 것 같다는 아빠 말씀도 있으셨기에 받아 드릴수 없었지만 정말 의사선생님은 기분 상하지않게 아빠를 고통없이 보내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이 또한 주님이 주관하신 일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아빠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좋은 의사도 붙혀주시고 남은 가족들 마음까지 만져 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빠의 영혼이 구원 받으므로 기쁨의 눈물을 함께 흘릴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주님이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일일것입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형제들끼리 맘 상하는 일 없이 무탈하게 모든 것이 행해지도록. 형제들의 상의 끝에 일반장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이유는 아빠가 무교였기에 문상객들에게 강요하기 싫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선하신 주님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릴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시간 분향소가 두군데 붙어있는 곳을 보여 주셨고 우리는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많아서 둘곳이 마땅치가 않았는데 분향소는 한곳만 쓰니 다른 한곳을 아이들 방으로 쓰고 또한 예배도 그곳에서 드리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동생이 장례식장에서 예배 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상황이였는데 선뜻 분향소에서 예배 드리면 되겠네하며 저에게 먼저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날 조화가 많이 들어와 분향소 밖에 세울곳이 없어 이번에 들어오는 것부터 분향소 안에 넣자고 말 하자마자 조화가 들어 왔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에서 보내주신 것이였습니다.

또한 조화에 새겨진 글귀가 하나님 품에 고이 잠드소서이였는데 우리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진짜로 아빠가 좋은곳에 가셨다는 확증을 받은것 같다며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은혜 가운데 엄마를 모시고 위로예배를 마쳤습니다. 아빠의 입관할때 모습이 너무나도 평온하여 우리 가족 모두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발인식날 주님은 다시한번 우리들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타 교회에 다니시는 작은엄마께서 기도하는중에 아빠가 꽃을 타고 큰 날개짓하며 하늘로 올라 가는 것을 보시고 가슴이 벅차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뿐만 아니라 믿지않는 우리 형제들에게도 보여주셨습니다. 화장장에 도착하자마자 손으로 잡힐 것 같은 예쁜 눈송이를 보내 주셨습니다.

아주 잠깐 이였지만 언니들과 동생은 하늘에서도 이렇게 축복해주는구나 하며 기뻐했습니다.

주님의 보호 하심으로 화장을 마치고 납골당에 모셔야 하는데 여기서도 주님의 호의로 가족들을 놀라게 해주셨습니다.

김포에 위치한 납골당은 시립이라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서대로만 들어갈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갔을땐 제일 높은 곳의 자리여서 썩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많이 힘들어 하셔서 우리는 삼우제에 맞춰 원하는 자리에 들어가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않은 일이었습니다.

삼우제 당일 우리는 점심을 먹고 2시쯤 음식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음식준비가 다 끝나갈 무렵 납골당에서 자리가 나왔으니 얼른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할렐루야~~

납골당에 아빠를 무사히 안치 시킨후 앞으로 아빠 기일을 어떻게 할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니들과 동생의 입에서 기독교 식으로 하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다시한번 할렐루야~~

그리고 앞으로 교회를 다녀야 할 것 같다는 말과함께 기쁜 마음으로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삼우제가 주일이라 큰 아이 중고등부 선생님이 말없이 못나온 이유를 물어보시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하니 큰 아이 기도제목이 할아버지 병이 빨리 낫는 것이였다는 것과

작은아이가 초등부 친구들에게 외할아버지가 깨어날 수 있게 중보해 달라고 문자를 돌렸다는 이 두가지를 보고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기도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아빠를 통해 우리가족 모두를 변화시켜 주시고 앞으로 더 변화시켜 주실 주님께 감사 드리고 찬양 드립니다.

주님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